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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복음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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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Stephen Wellum  /  작성일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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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oul devOcean on Unsplash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으셨다는 기독교 교리가 최근에 공격을 받고 있다. 아니, 단순히 공격이라 하기에는 상황이 좀 더 심각하다. 말하자면 복음주의 진영 안팎에서, 십자가 사건에 대한 이해가 서구 문화 특유의 ‘근대적 시각’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그 교리가 폭압을 승인하고, 하나님의 사랑보다 보복적인 심판을 앞세우며, 성자인 아들이 이용당하는 모습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십자가 사건을 해석하는 성경의 관점을 지나치게 ‘율법적인’ 틀 안에 가둔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 모든 비판은 새롭게 등장한 게 아니다. 16세기 이래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 모든 비판은 사실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이런 비판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람들의 그릇된 견해가 어떻게 바른 신학에 해를 입히는지, 그리고 성경 자체의 용어로 십자가 사건을 해석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나는 이 글의 분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 그 모든 비난에 대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에 형벌을 받으셨다는 교리의 성경신학적 근거를 보여 주는 네 가지 물음에 대해 간략히 다루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교리가 왜 우리 같은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좋은 소식인지를 밝혀 보려고 한다.


짚고 넘어가야 할 네 가지 물음


우리는 자신이 받아야 할 형벌을 그리스도가 대신 받으셨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에만,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품으신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진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 그분 앞에서 우리의 죄악이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그리고 그런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인지도 묵상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분의 순종과 죽음으로 우리의 죄가 모두 용서받았을 뿐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를 대신해서 형벌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함께 바라보기 위해, 아래의 네 가지 물음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하나님은 누구신가?


먼저 우리는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물음에 답변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세상을 창조하신 언약의 주님, 곧 삼위일체 하나님을 떠올려야 한다. 이때 다음의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대속의 본질을 둘러싼 논쟁에서 최우선적으로 다루는 문제가 하나님에 관한 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성경적이지 않다면, 결코 십자가 사건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성경은 영원하고, 스스로 존재하며, 거룩한 사랑일 뿐 아니라, 의롭고 선하신 분으로서 하나님을 제시한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은 홀로 완전하기에 어떤 필요도 구하지 않으신다(창 1-2장; 시 50:12-14; 사 6:1-3; 행 17:24-25; 계 4:8-11).


하나님에 관한 이런 사실에 근거한 의미심장한 진리가 있다. 곧 하나님은 그 본질상 우주의 도덕적 기준이 된다는 진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그분 외부에 존재하는 독립적인 기준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법은 원하기만 하면 기준을 낮출 수 있는 그런 법이 아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삼위 하나님은 그 자신이 곧 법이다. 즉 그분의 의지와 본성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결정된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관점이 대속의 주제를 다루는 최근의 논의에서 자주 잊혀지곤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의가 단지 자신의 약속을 한결같이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거기에도 진실의 일면은 있다. 그러나 이 관점이 놓치고 있는 측면은, 하나님의 의란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이 지니신 본질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 본질상 우리의 죄악을 간과하실 수 없다는 측면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는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혹 자비를 베푸셔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더라도(롬 4:5), 그런 일은 그분 자신의 거룩하고 의로운 도덕적 요구를 충족시켜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의 죄악과 우리를 구속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생각해 볼 때, 구속사를 관통해서 주어지는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어떻게 하나님은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그분의 거룩한 공의와 언약적 사랑을 동시에 드러내실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그분의 대리적 죽음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분 안에서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롬 3:21-26).


2. 인간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이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를 맺게 될 자녀로서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첫 사람 아담이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이었을 뿐 아니라 인류를 대표하는 언약의 머리였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롬 5:12-21; 고전 15:21-22).


이 사실을 이해하는 일이 왜 중요할까? 세상을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곧 언약의 주님은 처음부터 언약의 조건을 세우시고 아담에게 전적인 신뢰와 사랑과 순종을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는 그분이 내리신 첫 번째 명령에 반영되어 있다. 이는 바꿔 말하면, 그 언약적 요구에 불순종할 경우 그 죄에 대한 거룩한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영혼과 육체의 죽음이 인간에게 찾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창 2:15-17; 롬 6:23).


3. 하나님은 죄인을 어떻게 의롭다 하실 수 있는가?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지닌 죄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아담은 언약에 충실한 자세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불순종했으며, 그로 인해 죄와 사망과 저주가 세상에 들어왔다. 곧 성경에서 아담의 죄는 모든 문제의 시작이 되었다.


그 결과 창세기 3장 이후에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류는 죄로 오염되고 저주를 받아 죽음이라는 심판 아래 살아가게 된다(창 3장; 롬 5:12-21; 엡 2:1-3). 따라서 하나님이 그런 인간을 구속하기로 약속하셨을 때(창 3:15), 이런 질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떻게 그 약속을 성취하실 것인가?’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전한 하나님, 즉 스스로 거룩한 공의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이 결코 자신의 기준을 낮출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어떻게 그 하나님이 자기 앞에 선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실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이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않고 그런 일을 하실 수는 없다. 그분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또한 선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죄에 대한 형벌을 내려 완벽한 공의를 실행하셔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을 내려 자신의 의로운 요구를 만족시키면서도 동시에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실 수 있을까?


아담의 죄로 인해 펼쳐진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고 그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 인류 가운데 출현하여(창 3:15), 우리에게 요구된 언약적 순종을 이행하고, 더 나아가 죄에 대한 형벌까지 다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는 언약의 대표자(representative)이자 대리자(substitute)가 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람의 순종과 죽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칭의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에 성경은 놀랍게도, 우리를 위해 그 일을 할 수 있는 한 명의 사람이 있다고 선언하는데,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히 2:5-18).


4.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렇기에 우리는 끝으로 ‘예수님은 누구며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즉 그분만이 우리를 구속하여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 속에서 의롭다 함을 받게 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성경이 제시하는 예수님은 누구신가? 간단히 말해 그분은 성육신하신 성자 하나님으로서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다. 그분은 성부에게 이용 당한 아들도 아니고, 하나님의 존재에서 떨어져 나간 분도 아니다. 우리는 결코 구원을 함께 성취하시는 삼위 하나님에 대한 이해 없이 성자 하나님의 대속만을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성자는 영원토록 성부와 성령의 사랑을 받는 분으로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스스로 우리의 구속자가 되기로 결정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표하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이다(히 5:1). 그처럼 사람으로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대표하여 율법에 순종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으로서 그분은 죽기까지 복종하여 아버지의 의로운 요구를 만족시키셨는데, 바로 우리의 대리자로서 나의 죄에 대한 형벌을 감당하심으로 그렇게 하셨다(롬 5:18-19; 빌 2:6-11; 히 5:1-10).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신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은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다. 바로 성육신하신 성자 하나님이자, 마지막 아담이고, 하나님 백성의 유일한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그 사랑이 확증된 것이다(롬 5:8-11).


십자가 복음으로 돌아가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셨다는 교리를 무엇인가 ‘더 듣기 좋은’ 가르침으로 대체하려 한다거나 한낱 과거의 유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순종의 삶을 사시고, 또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우리 각자를 하나님 앞에 부족함이 없는 자로 세우셨다는 사실보다 더 위대하고 놀라운 소식이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만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영광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또한 새 언약의 머리로서 우리와 연합하신 그리스도가 나의 자리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셨다는 사실은, 결국 부활의 영광을 통해 입증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의를 영원토록 소유하고 있다(롬 8:1; 고후 5:21; 갈 3:13).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가 온전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모든 죄를 용서받고 그분의 의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이다(롬 4:1-8; 5:1-2). 그러므로 이 성경의 가르침을 붙들고 확신하는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바울과 함께 이렇게 고백해야 할 것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아멘.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The Hill We All Must Die On: Four Questions to Ask About Atonement

번역: 장성우

작가 Stephen Wellum

스티븐 웰럼은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신학학 교수이다. Southern Baptist Journal of Theology의 에디터이며, 대표 저서로 '오직 그리스도'와 'God the Son Incarnate'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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