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기독교 영성에 관하여
by David Strain2019-05-07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앙 생활의 뼈대를 이루는 구조적인 원리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이 글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우리의 영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확실히 ‘영성’(spirituality)이란 개념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주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개념을 흔히 개인이 추구하는 주관적인 영적 체험과 관련지어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정신적인 행복 내지 정서적인 만족과 연결시킨다거나, 때로는 동방 정교회의 명상이나 자아 성찰 등을 의미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독교 영성은 그런 활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무엇보다도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영성의 대상, 다시 말해 그 초점이 어디에 있느냐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속한 문화에서 유행하는 영성의 모델들은 각자의 자아를 중심으로 삼는다. 그래서 경험 그 자체, 또는 자신의 행복감을 위해 영적 체험을 추구한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 영성은 경험 그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으며 우리의 자아를 중심에 두지도 않는다. 기독교 영성은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이 그 핵심이다. 즉 그분을 알고 그분 안에서 즐거워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게 될 때에만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나는 영성을 이렇게 정의하고자 한다. 곧 성경의 방법대로 삼위 하나님과 점점 더 깊어지는 교제를 추구하는 신앙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교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리는 모든 교제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또한 그 교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은혜의 방편 역시도 그 연합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합은 사귐을 가져온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진리의 영인 또 다른 보혜사를 아버지께 부탁하여 보내겠다고 제자들에게 약속하신다. 여기서 “또 다른 보혜사”(another Helper)라는 표현은 예수님과 동일한 성품의 다른 보혜사가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자신은 십자가의 길을 가심으로써 아버지께로 떠나게 되었지만, 자신과 동일한 성품의 또 다른 보혜사를 제자들에게 보내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이 보혜사는 장차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 속에 거할 성령을 의미했다. 그런데 18-19절에서 우리는 흔히 생각하는 정도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에서 그리스도와 그 성령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요 14:18-19).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이 비록 떠나겠지만 제자들에게 이내 오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부활이라든가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재림을 가리키는 내용이 아니라 성령의 강림을 언급하시는 내용이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와 성령이 연합되어 있어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임재를 가져다주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여기서 예수님은 성령이 행하시는 사역으로 인해 우리가 예수님 자신과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연합의 경이로움을 이렇게 표현하신다. 우선 예수님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하신다. 이는 복되신 삼위일체의 내적 교통 가운데 성부와 성자 간의 연합과 사귐이 있다는 말씀이다. 이처럼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와 우리를 서로 매개함으로써 연합과 사귐을 이루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다. 결국 성령의 사역으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버지 안에 계시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또 다시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경험하며 누리게 된다.


이 사실은 사도 요한이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라고 말한 구절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진리이기도 하다. 여기서 요한이 묘사하는 교제의 아름다움은 우리가 서로 간에 사귐을 갖는다는 데서 머물지 않다. 그 진정한 아름다움은 우리가 서로 간에 사귐을 가질 뿐 아니라 그 사귐을 아버지와 아들과도 함께 누린다는 데에 있다. 이 교제의 범위와 영광을 생각하면 놀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복음을 믿을 때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곧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는 상태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다. 이 사실을 에베소서 2장 18절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 즉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그분 안에 살게 하시며, 이로써 우리는 그분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기독교의 경험적인 요소, 즉 경험적으로 알고 느낄 수 있는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다.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더 깊이 있는 교제, 즉 영혼을 살찌우는 교제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누리게 하신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이성에 의존하는 합리주의자(rationalists)가 아니라, 초자연주의자(super-naturalists)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도 소통과 사귐과 교제를 갖도록 이끄시는 성령의 역사를 믿는다. 혹시 누군가가 이런 설명이 불편하게 여겨진다면, 그래서 오직 교리와 관습에 대한 신학만 추구하고 하나님과 영적으로 친밀히 나누는 사귐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면, 아마도 그는 아직 회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연합이 가져오는 사귐은 은혜의 방편을 통해 경험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더욱 깊어지는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을까? 그 사귐이란 오싹한 느낌을 갖게 만드는 어떤 체험을 말하는 것일까? 아주 영적인 사람들이나 체험할 수 있는, 이를테면 오순절주의에서 말하는 두 번째 축복 같은 경험을 의미할까? 아니면 극단적인 관점을 가진 어떤 이들이 말하듯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통은 인위적인 행위를 통해 이끌어 낼 수 있는 현상을 의미할까? 정말 영적 체험을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가령 촛불을 켜 놓는다거나 그럴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의 154문은 이렇게 질문한다. “그리스도는 어떠한 외적 방편을 통해 자신이 행하시는 중보 사역의 혜택을 우리에게 전달하시는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염두에 두고 이 질문을 다시 해 본다면,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서 그분과의 사귐을 경험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대요리문답이 무엇이라고 답변하는지 한번 주목해 보자. “그리스도가 자신이 행하시는 중보 사역의 혜택을 교회에 전달할 때 사용하시는 외적이며 통상적인 방편은 그분의 모든 규례인데, 그 가운데 특별히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 이 방편들은 택함 받은 이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데에 효력 있게 사용된다.”


이 가르침에 따르면, 성경에서 그분에 의해 제정된 모든 규례가 외적이며 통상적인 방편이 되지만, 그중에서도 다른 모든 방편의 근본이 되는 세 가지 핵심적인 방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말씀과 성례와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는 자신의 사역으로 예비된 혜택을 우리에게 전달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방편들을 믿음을 가지고 부지런히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사귐 가운데 성장하며 우리가 그분과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과 더 깊은 사귐을 갖고자 한다면, 그렇게 우리의 신앙 생활 가운데 그리스도의 임재를 더욱 느끼고 싶다면, 어떤 특별한 모임이나 행사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영적 카타르시스라든가 두 번째 축복 등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교회에서 공동으로 드리는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다. 매주 말씀이 신실하게 선포되는 자리에 앉아 그 설교를 들어야 한다. 또한 성찬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떡과 잔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집에서는 성경을 펴고 그 안에 담긴 진리를 섭취하며, 더 나아가 우리 마음을 성령이 주관하시도록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한다.


이런 방편들을 통해 그리스도는 자신의 약속대로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키우고, 죄악은 죽이며, 우리의 심령에 평강을 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그분 안에 있고 그분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도우셔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자가 누리는 영광 가운데 그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며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가지고 은혜의 방편을 사용하게 하시기를 소망한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What Is Real Spirituality?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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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David Strain

데이비드 스트레인은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에 위치한 First Presbyterian Church의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