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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에 부딪혀 인생이 절뚝거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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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Scott Sauls  /  작성일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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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achan DeVol on Unsplash

나는 믿음과 행위 사이에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보며 당황할 때가 많다. 어느 부활절을 앞둔 주간에도 그런 경험을 했다. 당시 나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그 결과 내 자신을 심히 미워하게 되었다. 그 잘못이란, 아내와 외식을 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던 자리에서, 누군가에 대한 실망감을 털어놓다 못해 그 사람에 대한 험담까지 쏟으면서 상대방을 헐뜯은 것이다. 그렇게 거친 말로 그 사람의 인격을 짓밟고 나자, 아내가 나를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여보, 오늘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뻔했어요.”


그렇게 내 잘못을 짚어 주며 솔직하게 반응하는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 설교를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내가 험담을 매우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험담을 '입으로 즐기는 포르노그라피'와 다를 바 없다고 여겼다. 타인과 진실하게 교제하거나 그에게 헌신하려는 노력도 없이, 상대방을 그저 희생양으로 삼아 값싼 즐거움을 느껴 보려는 욕망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의 정서적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을 비인격적으로 취급하는 행위가 험담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지적을 받고 정신을 차리자, 이렇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내 스스로를 복음의 일꾼이자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는 자라고 여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동료를 그리 쉽게 저주하고도 똑같은 입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선포할 수 있을까?’ 그때 이 말씀이 떠올랐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약 3:9-10).


나의 실패와 하나님의 은혜


이 경험은 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고 당혹스럽게 했을 뿐 아니라 자기 혐오감까지 갖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붙들고 혹시 내가 가짜 목사는 아닐까 물어보았다. 정말 사역을 그만두는 편이 낫지 않을지를 물어본 것이다. 그녀는 내게 드리운 죄악의 그림자를 매일같이 살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우선 내 마음이 매우 어두운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주저하지 않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또한, 목회 사역에 대한 나의 소명과 하나님이 내게 주신 특권 역시 부인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여기서 특권이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 거룩한 이름을 지니신 주님의 대변인으로 섬길 수 있는 권한을 의미했는데, 이는 간음했던 다윗이나 살인을 저지른 바울 그리고 성격이 거칠었던 베드로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던 특권을 가리켰다. 더 나아가 아내는, 내가 복음의 양면적 메시지를 곧잘 선포해 왔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이를테면 (1)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떠나서는 전혀 소망이 없는 실패한 죄인이라는 측면과 (2)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살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자신의 공의를 만족시키신다는 측면을 함께 강조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다른 이들에게는’ 일관되게 전달해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여보, 지금이야말로 매주 교인들에게 설교하듯이 복음의 두 번째 측면을 ‘당신 자신에게도’ 선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지금 당신의 마음은 엉망이지만, 그 마음에 드리운 어두움이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앞지르거나 당해낼 수는 없을 거예요.”


그리고 부활 주일이 다가왔을 때, 나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지난 주간에 경험했던 그 어두움, 즉 내 삶에 일어났던 실패를 있는 그대로 고백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부활절을 맞아 교회를 찾은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이 죄악에 부딪혀 절뚝거리는 목사를 만날 필요가 있다고, 아니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간혹 절뚝거리며 설교단에 올랐다가 내려올 때, 우리가 속한 공동체 안에 그분이 놀라운 일들을 행하곤 하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반대로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제단이 아니라 마치 무대처럼 여기며 과시하려고 설교단에 뛰어오를 때, 공동체가 약해지는 일은 시간 문제라는 사실도 알았기 때문이다.


매시간 우리는 그분이 필요하다


앤 라모트(Anne Lamott)는 어느 인터뷰에서 모든 이에게는 어딘가 꼬이고 깨져 있을 뿐 아니라 무엇인가에 집착하면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힌 마음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흔히 이야기하듯이,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막길을 타고 낮은 곳으로 흘러가지 오르막길을 거슬러 교만하고 잘난 체하는 자리로 흐르지 않는다는 표현은, 그렇게 무너진 마음을 지닌 이들을 염두에 둔 말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바로 그분 자신이 필요하다는 상태를 깨닫는 마음이다. 혹은 팀 켈러(Tim Keller)가 자주 말하듯이,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필요 자체를 인정하는 마음이다. 이런 말들이 그 부활절에 나를 건지는 구명 밧줄이 되어 주었다. 혹시 당신도 한 주간의 삶을 완전히 망치고도 마이크 앞에 서야 하는 설교자라면, 지금이야말로 성경의 가르침과 당신의 가족 및 친구들의 목소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어떻게 당신을 에워싸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베드로처럼, 우리는 모두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죄인들이다. 분명히 열심을 다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결단코 배신하지 않겠다고 장담해 놓고는,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분을 부인하는 사람들과 같다(마 26:30-35, 69-75). 그러나 베드로에게 그러하셨듯, 주님은 우리에게 다가와 그 사랑을 보이시며 자신의 양을 먹일 목자로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요 21:15-19).


내가 영적 싸움에서 처절하게 무너진 아픔을 부활절에 고백하고 나자, 교회의 어느 지체가 편지 한 통을 보내 왔다. 그 편지는 자신에 대한 회의감으로 투쟁 중인 한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써 내려간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오늘도 자신과 싸우고 있을 너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단다. 이 편지에, 나 역시 생각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던 몇 가지 사실을 적어 보고자 한다. 혹시 너는 모세가 말을 더듬었고, 다윗의 갑옷은 그의 몸에 맞지도 않았으며, 마가는 바울에게 거절을 당했고, 호세아의 아내는 창녀였으며, 아모스는 시골 농부였는데도 선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니? 또한 예레미야는 우울증으로 의기소침했고, 기드온과 도마는 의심 많기로 유명했으며,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해 달아났지. 아브라함은 부끄럽게도 결정적인 순간에 거짓말을 했고, 그 결과 아들과 손자가 똑같이 그 거짓말을 따라했지. 이들은 모두 처절한 실패, 좌절, 결함, 무능에 직면해야 했던 한낱 인생들이었어.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켰지. 마찬가지로 그분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자신의 권능으로 일하신단다. 바로 그 권능으로, 너에게 다시 용기를 주시기를 나는 기도하고 있다.


너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우리 각자가 살아온 인생이 어떠하든, 그 길에서 어떠한 일들을 후회하고 있든 간에, 참된 현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우리 모두가 굳건히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그 현실이란, 바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에, 우리가 저지른 최악의 실패와 과오라고 하더라도 그 일들은 우리의 인생을 규정하거나 사명을 박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입으로 저지른 죄악이 아무리 추하고 또 다른 도덕적 실패들로 고통할지라도, 그로 인한 회개와 통회가 일어나는 낮은 자리까지 우리의 마음이 이른다면, 비로소 열매 맺는 사역이 거기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무 뽐내며 활보하지 말고, 차라리 절뚝절뚝 걷자.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Self-Loathing Almost Ruined My Easter—and I’m Glad It Did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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