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내지 않으며 양육하는 비결
by Emily Jensen2019-04-17

내가 시리얼에 우유를 부을 때 쌍둥이 아들 둘은 식탁에서 붙어 앉아 서로 쿡쿡 찌르고 장난치며 킥킥거렸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막내는 자기 빨대컵을 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식탁을 탕탕 치고 있고, 맏아들은 어제부터 자기가 지난 달에 그렸던 그림을 찾아내라고 야단이었다. 쌍둥이 중 하나가 소리쳤다. “야! 그만 좀 해! 저쪽으로 좀 가! 엄마아아아!”


아침마다 우리 집 식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나의 반응 역시 이에 덜하지는 않았다. “얘들아, 그만 좀 해!” 첫 숟가락을 뜨기도 전에 나의 노여움은 비명으로 튀어나왔다. 그때마다 죄책감이 바로 밀려왔다. 그러고 나면 나는 진정하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내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자 내 목소리가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가만 살펴보면 아이들의 행동에도 화가 났지만, 특히 나 자신의 행동에 화가 났다. 나는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평온하게 아침 식사 시간을 즐기기 원했다. 나는 아이들이 사려깊게 생각하며 행동하고 스스로 챙길 수 있기를 원했다. 내 기대가 너무 컸었나? (그렇다.)


우리 집에서 이와 같은 상황은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벌어진다. 학교 가려고 집을 나설 때, 집안 청소를 할 때, 잠들어야 하는 시간에, 식사 시간에, 아마 당신도 이런 상황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 해 동안 다자녀 양육을 해 본 결과, 이러한 상황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제어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며 우선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와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내가 터득한 몇 가지 원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절제되지 않은 분노 표현은 죄다


모든 분노가 죄는 아니다(엡 4:26).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사악함, 불순종, 무자비한 행동에 대항하여 분노가 올라올 때, 우리는 정의와 공평의 하나님을 모범으로 삼는다. 자녀들이 불평하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고통을 가하면, 우리는 당연히 화가 난다. 이유 있는 정당한 분노는 자녀들에게도 사악함을 싫어하도록 가르치는 일이며, 이는 부모의 중요한 책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당한 분노라 하더라도 자녀를 혹독하게 다루는 일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또 고함치는 모든 것이 죄는 아니다. 아이들이 복잡한 길거리로 뛰어들어간다면, 나는 할 수 있는 한 크고 강한 소리로 그들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 지르는 일이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이미지를 통해 삶의 균형을 잃고 있는 우리에게 강한 경고를 보내시는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다(롬 6:23).


하지만 커피를 마실 틈도 없이 아이들이 다시 장난을 치고 있을 때마다 매번 고함을 치는 것은 정당한 양육법이 아니다(약 1:20). 아이들에게 절제 없이 분노를 터뜨리고, 부당하게 대하며, 즉각적으로 격노로 반응하는 것은 하나님의 품성이 아니다. 주님은 “오래 참으심을 보이[고]”(딤전 1:16)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다]”(시 145:8).


아이들이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벌을 주거나 제어하려 한다면, 그러한 양육 방식을 잘한 대응이라고 해야 할까? 단지 운이 없는 날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엄마로서 실패했다고 해야 할까? 진지하고 신실하게 생각해 보자. 그것은 죄이다.


모든 다른 죄처럼 우리는 그것을 고백해야 하며,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그리스도 안에 소망을 두고, 되돌아서서, 죄에서 자유함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순종하려는 새 마음을 기뻐함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요일 1:9).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라


아이들에게 고함칠 때마다 배우자나 친구들에게 말하거나 메시지를 보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절제되지 않은 분노를 터뜨렸을 때, 나는 늘 누군가에게 그것을 한결같이 고백해 왔으며, 그것은 나를 성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약 5:16). 절제되지 않은 나의 분노 이야기를 꺼내면, 다른 사람들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경청해 주고 또한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준다. 보통 분노가 어떻게 진행되고, 이를 어떻게 회개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고 순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히 10:24) 등에 대해서 말이다.


부모, 시댁 식구들, 친구들 등 다른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자녀를 양육하는지를 자주 보는 경우 내가 더 조심하며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에는 ‘좋은 엄마’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아이들에게 혹독하게 대하는 엄마라면, 내 양육 방식을 빛 가운데서 살펴보기를 권한다(요일 1:7).


부모의 겸허하고 솔직한 태도는 자신이 자녀를 학대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꼭 필요한 안전망이다. 점검되지 않은 분노는 제어되지 않고 밖으로 분출될 수 있다. 자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부모는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여 바로 도움을 얻을 필요가 있다.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모인 교회 공동체는 이러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매우 핵심적인 곳이다.


기도로 대비하라


자녀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려는 경향이 감지될 때, 떠오르는 패턴들을 나는 안다. 내가 숙면을 취하지 못한 날 아침에는 아침 식사 시간이 마치 서커스처럼 소란스럽게 느껴진다. 내 영혼이 건조해진 오후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자동차에 태워 집으로 갈 때, 으르렁 거리는 곰으로 가득한 승합차에 갇힌 느낌이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특히 내가 연약할 때,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신다(고전 10:13)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말씀과 실용적인 양육 전략으로 나를 무장시킨다.


우리가 원하는대로 상황을 항상 제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는 있다(약 1:5). 어떤 지혜로운 엄마가 한번은 내게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 순간은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 아이들이 울음을 그치고 징징거리지 않게 해주세요”에서 “하나님, 제게 힘을 주시고 내 감정을 조절하게 하시며, 자녀들을 훈육할 수 있도록 말씀을 주세요”라고 바뀌었을 때였다고 말했다. 그 순간은 바로 자녀의 변화를 구하는 기도에서 자신이 인내로 기다릴 수 있는 은혜를 구하는 기도로 바뀌었을 때이다.


폭발하는 분노를 방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인 우리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셨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롬 3:25). 우리가 복음의 확신이 있으면 자녀들에게 잘 하게 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큰 죄를 용서 받았다는 사실을 겸손히 기억할 때, 아이가 신발 한짝을 잃어버린 사실에 화를 낼 가능성이 훨씬 적어진다. 아이들이 자가용 안에서 옥신각신 하거나 가구에 낙서를 한 일로 화가 나면, 버럭 화를 내기 전에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돌아가셨음을 생각해 본다.


내일 아침 해는 다시 뜰 것이며, 나는 이미 우유가 조금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막내 아이는 분명히 또 징징거릴 것이고 쌍둥이는 장난하다가 그릇을 건드려 시리얼을 바닥에 엎을 것이 분명하다. 내일은 다른 날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아이들의 울음 소리와 옥신각신 하는 상황 속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로 결정했다는 사실 외에는 달라질 것은 없다. 내가 그 상황을 완벽하게 잘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나를 하나님 앞에 무릎꿇게 하며, 그것이 엄마가 되는 길임을 믿는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How to Fight in Motherhood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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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Emily Jensen

에밀리 젠슨은 Risen Motherhood의 공동 설립자로 현재는 컨텐츠 디렉터로 섬기고 있으며, 'Risen Motherhood: Gospel Hope for Everyday Moments'를 공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