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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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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Marshall Segal  /  작성일 2019-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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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wisconsinpictures on Unsplash

우리 모두는 죽음이 초래하는 아픔을 안다. 사랑하는 이를 암으로 잃은 경험을 갖고 있다. 우리 자신의 약함으로 하루하루를 견딜 뿐 아니라 과거의 실패를 부여안고 살아간다. 깨어져 버린 인간 관계, 그리고 죄가 초래한 끔찍한 결과와 매일 싸우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이 얼마나 간절하게 부활을 염원하는지를.


어떻게 죽음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죽음이 주는 아픔을 가장 크게 느낄 때는 언제일까? 누구나 어두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책과 신제품 광고와 끊임없이 나오는 최신 기술(lifehack)을 믿었다가 실망한 아픈 기억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위로와 구원, 그리고 생명에 관한 약속으로 넘친다. 부활은 어떻게 보면 아주 하기 쉬운 약속이다. 그러나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한 약속이기도 하다.


너무 쉬운 인생은 때가 되면 서서히 우리를 질식시키기 마련이다. 무덤에서 빠져 나오는 유일한 길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은 이의 피로 우리를 덮는 것이다. 결국 죽음을 이기는 길은 죽음밖에 없다.


만약 예수님이 다시 살지 않으셨다면


고린도전서를 쓴 사람은 죽음이 주는 어두움을 맛보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직접 죽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예수님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 기꺼이 그들을 살해했다. 그가 죽음에 대해 쓸 때, 그의 손에는 그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서 순교한 형제자매들의 피가 묻어 있었다. 그러나 부활한 왕이 그 살인자를 만났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켰다. 비록 지금 이 순간 가장 어둡고 두려운 인생 한복판에 당신이 있다 해도 바울과 같은 인생에 생명을 불어 넣으신 하나님이 그 인생을 일으키지 못하시겠는가?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전직 살인범이었던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중략]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7, 19). 만약 그리스도가 다시 숨을 쉬지 않고 무덤을 떠나지 않으셨다면, 또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지 않고 하늘에도 올라가지 않으셨다면, 즉,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루하루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죄와 수치, 그리고 고통을 짊어지고 이 무덤 같은 삶을 지나 죽음보다 더 나쁜 어딘가로 가는 존재가 될 것이다. 만약에 예수님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몰아쉰 그 숨이 만약 그분의 마지막 호흡이었다면, 하루하루 죽음 속에서 사는 우리의 이 짧고 희망 없는 삶을 지배하는 것은 다름아닌 두려움이리라.


그러나 죽음은 결코 예수님의 숨을 틀어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고전 15:20). 죽음을 향한 영원한 승리를 선언하기 전까지 우리의 왕은 딱 이틀 밤 동안 무덤을 빌렸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정말로 그분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위해 기꺼이 죽기를 원한다면, 그뷴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가 될 것이다.


이 사실을 믿는가


그러나 우리에게는 공포가 승리보다 더 피부에 와닿는다.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 11:25). 이 말씀을 하신 때는 마리아와 마르다가 그의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을 본 직후이다. 그 누이들은 예수님의 도움을 청했지만 그분은 바로 오지 않으셨고, 그 결과 나사로는 죽고 말았다. 마르다는 절망했고 왜 더 빨리 오지 않으셨냐고 예수님께 물었다. 우리도 마르다처럼 때때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너무 늦게 개입하신다고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하나님이 지금 당장 뭔가 하실 수 있는데도 내가 고통받는 상황을 그냥 보고만 계신다고,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마르다는 믿었고,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에게 무덤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셨다. 그러자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당신은 이 말씀을 믿는가?


우리가 믿을 때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힘을 잃게 된다. 두려움이 다시 슬금슬금 파고든다면, 사도와 선지자가 불렀던 이 노래를 불러보자.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4-57). 두려움보다 더 강한 상대 앞에서, 즉 두려움을 정복하는 왕 앞에서 두려움은 녹아 없어질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은 우리의 승리이다. 우리의 죄, 수치, 죽음을 정복하는 승리의 이름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의 약함이 빚어낸 삶의 모든 끔찍한 결과들까지 다 정복하는 승리가 될 것이다.  


두려움이 사라진다


두려움에 얽매여 부활을 고대하는 이 비참한 세상을 구하려고 예수님이 오셨다. 그리고 우리처럼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이 되셨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 2:14-15).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역에서, 또 심지어 육신의 약함에서 느껴지는 우리의 절망이야말로 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알려 주는 증거가 된다.


죽음과 거기에 달린 모든 촉수는 죽음보다 더 강한 능력이 그 죽음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전까지만 위세를 떨친다. 생명이 침투해서 죽어가던 자를 구하고 포로된 자를 자유롭게 할 바로 그 때까지만 죽음은 지배할 뿐이다.


우리를 사로잡던 공포가 사라지네

우리의 평화가 되시는 그분 앞에서

십자가에서 내쉰 그 마지막 숨결

이제 내 속에 살아있네


그분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공포와 죽음의 종이 아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분 때문에 다시 살아난 존재이다. 따라서 이제는 죽음조차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이제는 그 끔찍했던 두려움이 우리를 그분이 계신 본향으로 이끄는 도구가 되었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All We Feared Now Gives Way

번역: 무제

작가 Marshall Segal

마샬 시걸은 작가이자 desiringGod.org의 책임 편집자이다. Bethlehem College & Seminary를 졸업했으며, 한국어로 번역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당신에게'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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