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5장이 이야기하는 예루살렘 공회
by Scott Swain2019-03-21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진행된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복음의 확장이 이루어진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준다. 그 이야기는 복음이 진전되는 과정에 아무런 갈등이 없었다는 내용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도행전 15장에서 소개되는 예루살렘 공회에 대한 이야기는 초대 교회가 직면한 갈등의 한 사례를 보여 주며, 어떻게 하나님이 교회의 권위 있는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 문제에 대해 회의하고 심사숙고하여 마침내는 복음의 확장에 도움이 되는 결과에 이르게 하셨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논쟁


예루살렘 공회는 구원의 본질을 다루는 심각한 논쟁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논쟁은 사도들의 지시를 받지 않은 어떤 교사들이 이방인을 중심으로 새롭게 세워진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서는 할례와 모세 율법에 대한 순종이 구원에 필요하다고 가르친 데서 비롯되었다(행 15:1, 5, 24). 당시 안디옥 교회에서 목회하던 바울과 바나바는 그러한 가르침이 복음의 진리에 상반된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적으로 그에 반대하였다. 그러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다]”(행 15:2). 결국 이 문제가 가볍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발생한 논쟁의 범위도 확대되었기에,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사도들과 장로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된다.


공회의 소집


이렇게 안디옥 교회가 도움을 요청하자,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인다]”(행 15:6). 여기서 우리는 “이 일을 의논”할 때 그들이 취한 방법을 살펴보기 위해 세 가지 질문을 던짐으로써 예루살렘 공회에 대한 누가의 설명을 더 깊이 이해해 보고자 한다. 그 세 가지 질문이란 ‘누가 결정하는가’, ‘어떻게 결정하는가’, ‘무엇을 결정하는가’이다.


누가 결정하는가


첫째로, ‘누가’ 문제의 해결 방안을 결정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바로 “사도와 장로들이” 결정한다. 누가는 다섯 차례나 반복하여 사도들과 장로들이 예루살렘 공회에서 수행한 역할을 주목하도록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행 15:2, 4, 6, 22-23). 물론 여기서 사도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내용이 아닐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시작부터 그들은 계속해서 교회를 지도하는 책임을 감당해 왔기 때문이다(행 2:42-43; 4:33, 35, 37; 5:29; 6:1-6; 8:1, 14; 9:27; 11:1). 오히려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사도행전 11장 30절에서야 처음으로 언급된 직분인 장로들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의 현재 단계에서 장로들의 역할이 갖는 중요성은, 그 역할을 통해 리더십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주고자 한 누가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사도행전 15장 이후로 누가가 더 이상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듯, 교회를 설립하는 데 필요했던 사도들의 근본적인 역할이 마무리되어 가자, 초대 교회의 리더십은 장로들의 손에 위임되고 있었다(행 20:17-38). 즉 사도들과 더불어 장로들은 당면한 문제를 논의하며 해결 방안을 결정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결정하는가


둘째로, ‘어떻게’ 사도들과 장로들이 문제의 해결 방안을 결정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드러난 대로 그분의 구원 계획이 펼쳐지는 방식을 고찰하여 결정을 내리게 된다.


베드로가 주장하듯이, 이 문제에 대한 교회의 결정은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행하신 일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대로 이루어져야 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자신의 입을 통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선택하셔서 그들이 복음을 듣고 믿게 하셨을 뿐 아니라(행 15:7),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행 15:8) 이방인의 회심에 대한 증거로서 하나님 자신의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셨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셨을 때 행하신 일 외에 할례나 율법 준수와 같은 다른 요구 사항을 구원의 조건으로 부가하는 일은 “하나님을 시험하”(행 15:10)는 행위가 되었다.


더 나아가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대언하는 권위를 과연 누가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도 공회에 참석한 회원들은 명백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하나님이 스스로 세우신 권위 있는 대변자인 사도와 선지자를 통하여 그분의 계획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이 공회에서 (신약의) 사도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베드로를 통해 주어졌다. 그는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말했다(행 15:14). 다음으로 (구약의)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아모스 9장 11-12절을 공회에서 인용하며 구약성경의 여러 본문들을 암시한 야고보에 의해 주어졌다(행 15:13-21). 결국 야고보가 주장하듯이, 사도와 선지자를 통하여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은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그분의 목적에 대해 서로 “일치”된 메시지를 드러냄이 확인되었다(행 15:15).


따라서 예루살렘 공회에서 권위 있는 결정을 내린 자들은 교회의 지도층이지만, 그들은 “신앙의 모든 논쟁”과 “공회의 모든 판결”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는 최고의 권위(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조 10항), 즉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엇을 결정하는가


셋째로, 사도들과 장로들이 예루살렘 공회에서 ‘무엇을’ 결정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교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사도와 선지자를 통하여 확인한 이상, 공회의 남은 절차는 분명해졌다. “성경이 말씀하니, 문제가 해결된다”라는 옛 교훈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결의하는 과정만 남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이방인을 모세 율법에 대한 순종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은혜로 구원하셨기 때문에, 공회는 할례나 율법의 다른 요구 사항을 구원의 조건으로 부과함으로써 이방인을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할 권한이 없었다(행 15:19, 24). 대신에 이방 기독교인들이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해야 한다고만 결의하게 되었다(행 15:20). 왜냐하면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왔기 때문이다(행 15:21).


여기서 다음과 같은 까다로운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곧 어떻게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모세 율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유를 허용한 공회의 결정과 레위기 17-18장에 근거한 사도행전 15장 20절의 네 가지 금기 사항의 예처럼 율법의 몇 가지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준수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제한한 공회의 결정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신약학자 리처드 보캄(Richard Bauckham)의 해석을 통해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보캄에 의하면, 레위기 17-18장에 근거한 네 가지 금기 사항은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살고 있지만” 할례를 받아 모세 율법 전체를 준수할 책임이 있는 경우가 아닌 자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사항들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기서 야고보는 모세 율법을 준수할 책임이 없는 이방인이 유대인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지침을 제시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추론이 옳다면, 공회의 결정은 복음의 본질과 그 복음이 제시하는 율법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깊이 이해하는 신학적 통찰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를테면, 공회는 이방인이 행위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기에(엡 2:8-9), 모세 율법이라는 짐을 구원의 조건으로 삼아 그들에게 부과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방인이 선한 일을 위해 구원받았기에(엡 2:10), 그들에게 “각 성에서”(행 15:21) 함께 사는 이웃인 유대인을 섬길 기회로 그 자유를 활용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사도행전 15장 20절의 금기 사항을 지킴으로써 이방 기독교인들은 그들 주변에 있는 유대인과의 관계에서 불필요한 마찰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몇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고전 9:19-23).


그리하여 예루살렘 공회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서 제기될 수 있는 두 가지 중대한 오류를 피하게 되었다. 먼저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내세우는 율법주의를 피하게 되었고, 다음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구원의 필수 결과임을 부인하는 반율법주의를 피하게 된 것이다.


사도들이 정한 규례


사도행전 15장 22-29절에서 보내진 편지는 사도들이 정한 규례(the Apostolic Decree)를 담고 있으며, 이는 예루살렘 공회가 내린 결정을 요약하고 있다. 이 규례는 교회의 권위 있는 지도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구원 목적과 조화롭게 공포되었기에, 예루살렘 밖에 있는 다른 교회들에게 결정적이며 교의적인 권위를 갖게 되었다(참고로 사도행전 16장 4절에서 언급된 ‘규례’는 문자적으로 교의를 가리킨다). 안디옥 교회에 이 편지가 전달되자, 그 안에 담긴 규례는 그들에게 기쁨, 위로, 능력, 평안을 가져다주었다(행 15:31-33). 더 나아가 그 규례는 안디옥 교회 말고도 다른 이방인 교회들에까지 전달되었다. 사도행전 16장 5절은 그 결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행 16:5).


결론


거짓된 가르침은 교회를 “괴롭게 하고”, “혼란하게 한다”(행 15:24). 사도행전 15장은 거짓된 가르침이 일으키는 괴로움이 확장될 때 교회가 취할 수 있는 한 가지 해결 방안을 보여 준다. 지난 역사 동안 많은 문제들을 다룰 때 교회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를 따라 왔다. 그 사례로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에베소, 칼케돈 공회만이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총회까지 들 수 있다. 이처럼 교회가 예루살렘 공회의 모범을 따르며 진행했던 지난 회의들은 교회의 평안과 순결 및 복음의 확장을 촉진시켜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그분 자신이 정하신 수단으로 입증되어 왔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The Jerusalem Council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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