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기독교인에게 명하는 십일조
by William Barcley2019-03-25

성경은 신약의 성도에게 십일조를 명령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 기준선은 구약에 명시된 대로 10%인가?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십일조는 경건을 위해 필수적이며, 교회의 지속적인 사역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한 요구 사항이기도 하다.


내 주장을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면, 모세 율법보다도 선행된 십일조에 대한 요구는 의식적인(ceremonial) 면이 추가되어 성문화(成文化) 되었고,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에게도 적용됨으로써 예수님에 의해 확증되었다는 것이다.


모세 이전의 십일조


우선 십일조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하는 성경 본문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창세기 14장과 야곱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하는 창세기 28장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십일조에 대한 개념 자체는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야곱이 주변 나라들의 풍습을 단순히 따랐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경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창세기 26장 5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이후의 가르침과 거의 동일하다. 이 본문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 외의 율법도 주셨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는 창세기 4장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인류 최초의 가족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셨던 소산의 일부를 하나님 앞에 돌려 드려야 할 의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바친 제물의 종류에 대한 책임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셨다. 또 이후 구약성경에 “처음 난 것”과 “첫 열매”의 제물이 십일조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아벨이 드린 제사는 십일조였기에 확실히 하나님 앞에 열납될 수 있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반드시 그분께 되돌려 드려야 한다는 원칙과 또한 하나님이 이에 수반되는 모든 규례를 주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친다.


몇몇 사람들은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이 일회성으로만 십일조를 드렸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존 커리드(John Currid)에 따르면, “십일조를 드리다”라는 동사는 빈번한 혹은 다수의 동작을 묘사한다. 즉 우리는 야곱이 “십일조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과 평생의 언약을 체결”했으리라고 이해할 수 있다.


왜 모세는 이러한 사건들을 기록했을까? 모세가 나중에 십일조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록했기 때문에, 그는 아브라함과 야곱이 국가적 풍습에 맞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세는 그들의 경건함을 나타내기 위해 이러한 사실을 기록했다.


더구나 히브리서의 저자는 아브라함이 드린 십일조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히 7:1)에게 드린 것이기 때문에 그 십일조가 합당한 것임을 보여 준다. 히브리서 7장에는 아브라함의 십일조와 레위 사람들이 모세 언약 아래에서 준수했던 십일조를 연결 짓는 고유의 연속성이 존재한다. 이는 히브리서가 새 언약의 신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옛 언약의 측면을 드러내는 데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주목할 만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즉 두 언약 사이의 불연속성을 드러내는 다른 내용들과는 달리 십일조에 대해서는 크리스천이 영원한 대제사장께 십일조를 하게 된다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본문들 안에서 제시되는 십일조에 대한 명백한 요구는 모세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등장하는 것이지 그것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성문화(成文化)되어 있는 옛 언약일지라도,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어 새 언약을 믿는 신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옛 언약의 일부라고 묵살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들은 창세기 족장들의 경건함을 나타내며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으로부터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나타낸다.


모든 것이 그분의 것


우리가 율법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십일조는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기 위한 기준이라는 점이 명확해 진다. 십일조는 드리는 자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시는 주님께 속한 것이다(레 27:30). 하나님의 백성은 십일조를 마음에 내키는 대로 자신의 것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된다. 십일조는 여호와의 것이며, 또한 그들은 자동적으로 주님께 돌려 드려야만 했다.


모세 율법 아래에 세 종류의 십일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제사장들과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을 돕기 위해 정기적으로 드리는 십일조이고, 다른 하나는 ‘절기 십일조’로서 요구된 절기를 축하하기 위해 드리는 것이었다(신 12:17-19).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구제 십일조’로 매 3년마다 레위인, 거류민, 아비가 없는 고아나 과부들을 위해 드리는 것이었다(신 14:28–29).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스라엘 백성은 실제로 그들 수입의 10%가 아니라 23.3%를 바칠 의무가 있었다는 말이다.


많은 구약 학자들은 이 세 종류의 십일조를 서로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고 세 개의 용도를 가진 하나의 개념으로 본다. 그러나 혹 세 종류의 십일조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비용은 여러 필수 절기들과 관련된 의식법(ceremonial law)과 결합될 때 당연히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물론 그 모든 절기들은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우리는 이를 창조에 근원을 두고 있는 영원한 도덕법인 안식일 규례에서 볼 수 있으며, 이는 모세 율법 아래에서 다양한 의식적인(ceremonial) 측면을 표현하게 된다(예를 들어 진설병을 가지고 행하는 의식들과 같이 말이다). 이는 또한 바울이 골로새서 2장 16절에서 말하는 바, 누구든지 안식일에 대한 질문 앞에 비판 받지 못하게 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새 언약 아래에서 안식일의 도덕법은 남아있는 반면, 의식적인 부분들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십일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록 의식적인 면은 점차 사라지지만, 사역의 일을 돕는 기본적인 십일조는 남아있다. 하지만 십일조는 최소한의 것이다. 크리스천은 언제나 가난한 자에게 주어야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다른 사역들도 지원해야 한다(고후 8–9장). 이때 기본적인 십일조를 말라기 3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교회에 드려 그 사역과 선교를 돕도록 해야 한다.


말라기 3장 6절부터 12절에 걸쳐 주어지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책망은 최소한 세 가지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1.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그의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다고 고발하신다(말 3:8). 이 구절은 십일조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반영한다.


2. 거의 유례가 없는 경우로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당신을 시험해 보기를 도전하신다. 십일조는 언제나 믿음의 시험이다. 큰 고통을 줄 수도 있으며,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주어진 수입 안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결코 큰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3.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십일조를 드릴 때, 넘치는 복을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신다(고후 9:6). 모세 율법의 의식적인 면에 있어 부패한 제물로 드린 제사 외에는 이렇게까지 비난을 표현한 곳이 없다. 하나님은 십일조의 부족함을 경멸할 만한 것으로 보신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십일조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십일조를 지지하신다(눅 11:42).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일부분인 십일조에 대해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린 채 그릇되게 행하는 헌신을 정죄하신다. 그러고 나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ESV(English Standard Version) 성경에서 'ought'(해야 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강한 어조와 필수성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너희는 반드시 이것들도 행해야 하고, 저것들도 버려서는 안 된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전체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실천과 가르침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이 “무리들과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며 시작하고 있다. 오늘날 십일조를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이 여전히 옛 언약 아래에 놓여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만 전하는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문맥을 놓친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다른 말씀에서 예수님은 더 이상 제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어떤 율법을 제하는 일을 피하지 않으신다(막 7:19). 하지만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십일조에 대해서는 주장하신다.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


아내와 나는 결혼 생활을 하며 십일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는 여섯 명의 자녀를 키우며, 기독교 대학과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하는 가운데 많은 도전이 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비싼 지역이라고 알려진 보스턴 북쪽 해안 지역에 살던 때에는 특히 더 힘들었다. 우리는 십일조를 드릴 뿐 아니라, 매년 선교비도 후원했었다. 


우리는 십일조가 총소득에서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정부가 세금을 거두기 전에, 하나님이 당신의 십일조를 받으실 수 있도록 말이다.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의 필요를 맞춰 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풍성하게 공급해 주셨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복음주의 크리스천들이 소득의 채 3%도 안 되는 부분을 교회와 사역에 봉헌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도전을 받아들이라고 간곡히 권하고 싶다. 다시 말해, 성경에서 가르치는 십일조에 헌신하라. 하나님이 당신을 부유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시지는 않지만, 그분은 분명 당신의 필요를 공급하시며 복을 부어주실 것이다.


옛말처럼, 당신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것 이상으로 드릴 수는 없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The Bible Commands Christians to Tithe

번역: 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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