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치어리더가 아니다
by Melissa Kruger2019-03-28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전하는 경건한 책이든지, 블로그이든지, 혹은 거대한 컨퍼런스이든지 상관없이, 예수님의 말씀이 주로 사람들을 격려하고 지지하기 위해서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당신은 훌륭해요! 잘했어요! 당신 자신이 되세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라고 하는 말을 매우 듣기 좋아한다.


명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은 용기를 주신다. 예수님은 지친 자에게 힘을 주고 상처입은 자에게 위로하는 말씀을 하신다. 우리는 세상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에 늘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기 때문에, 매일 그분의 격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메시지 중 일부에만 초점을 맞추면, 예수님을 우리의 영적 기분을 북돋우는 치어리더로 축소시키는 잘못을 행할 수 있다. 또한 우리도 서로에게 영적 치어리더의 역할만을 하게 된다는 우려도 든다. 우리는 서로에게 칭찬의 말을 하지만, 조언이나 꾸짖는 말은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용서의 말을 하지만, 회개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분의 은혜를 바르게 기뻐해야 하지만, 죄를 슬퍼하는 일은 종종 잊고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와 우리 서로의 관계가 생명을 주는 관계임을 놓치고 있다. 내가 가장 신뢰하는 친구는 내가 죄를 지었을 때 나를 불러서 직언을 해줄 친구이다. 그들은 내가 조언과 지혜를 얻기 위하여 찾고 또 찾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나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내가 바른 길을 걷지 않을 때 직언을 해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하신다. 그분은 가르치시고, 명령하시고, 꾸짖으시고, 부르시고, 촉구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관중석에서 우리를 응원하는 치어리더의 위치로 축소시키면, 우리는 우리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신실한 친구를 놓치게 된다. 당신의 사역에서 당신이 주로 듣는 말이 “당신은 훌륭해요!”라는 말이라면, 당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초대하고자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 보자.


예수님은 가르치신다: ‘나는 ~이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에 대해 명확하게 아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 예수님은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가르치신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문이다. 나는 참 목자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목록은 모든 대화를 자기에게 집중시키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므로,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우리에게 다양하게 가르쳐 주신다.


당신의 성경 공부 그룹이나 컨퍼런스가 예수님이 누구신가보다는 당신이 누구인가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새 책을 선택하거나 다른 그룹을 찾아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 안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으므로 우리는 절실하게 그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명령하신다: ‘말씀에 순종하라’


예수님은 우리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바리새인들과 달리, 예수님은 말과 행동뿐 아니라 우리의 욕망과 감정 면에서도 진정한 순종을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온 삶으로 그분의 명령을 지키기를 원하신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


우리에게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때로 짐이나 고역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기쁨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분을 가장 잘 드러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의 명령대로 사는 것이 항상 기쁨이 넘치는 일은 아닐 수 있지만, 그것은 기쁨으로 가득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예수님은 꾸짖으신다: ‘죄에서 달아나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보고 “별일 아니다. 네가 즐거운 것이면 뭐든지 해라”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 대신 예수님은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마 5:29)라고 꾸짖으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죄를 싫어하신다. 죄가 우리 영혼을 좀먹는다는 사실을 아신다. 죄가 만족함이 없고 항상 우리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아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죄에서 달아나기를 원하신다(마 18:15-17). 가르치는 자가 자기 충족의 수단으로 죄악된 행동을 장려할 때, 예수님은 그들을 엄하게 꾸짖으며 경고하신다(눅 17:1-3).


예수님은 부르신다: ‘너의 십자가를 지라’


종은 주인보다 크지 않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고 우리도 그렇게 하기를 기대하신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우리 자신의 삶에서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지 의문을 가져야만 한다. 엘리자베스 엘리엇(Elisabeth Elliot)이 말했듯이, “십자가를 지신 자의 추종자가 되는 일은, 바로 십자가와 개인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십자가는 항상 상실을 수반한다.”


우리의 교사들이 우리의 삶을 잃는 것보다 찾는 것에 관하여 더 말한다면, 우리는 놀라운 크리스천의 삶을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좁은 길로 가도록 권하고 희생의 삶을 살도록 하는 일에 우리가 두려움을 느낀다면, 우리는 소망을 아직 이 현세에 두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고정시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을 열심히 살면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포기함으로써 정확하게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은 촉구하신다: ‘온 세상으로 가라’


예수님은 당신의 삶을 위한 놀라운 목적과 사역을 가지고 계신다. 그것은 당신을 포함하지만 당신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분, 그분의 나라, 그분의 뜻, 그분의 영광에 관한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모든 세상에서 이보다 더 좋은 목적은 없다. 예수님이 당신을 어디에 두시든지 그분은 당신이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기 원하신다. 예수님은 당신이 씨를 뿌리고 추수한 곡식을 즐기기 원하신다(마 28:19-20).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수용하기 힘든 가르침을 포함하여 그분의 말씀 모두를 필요로 한다. 예수님을 더 멋지게 만들기 위하여 그분의 진리를 축소시키는 일은 사실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온다. 그렇게 하면, 그분의 풍성함을 모두 잃게 되고, 그분을 본받는 일이 그저 무미건조하게 되어버린다.


예수님은 구원하신다: ‘복음을 들으라’


우리는 우리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구세주가 절실히 필요하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미래에 가게 될 천국을 그냥 약속하지 않고 오늘 우리를 변화시키겠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신다.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를 구속하신다. 우리를 양자삼으신다. 우리 안에 부활의 능력이 작동하게 하신다. 우리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의 노예가 아니다.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살 자유가 있다. 우리가 나누어야 할 소식은 ‘괜찮아’라는 말보다 훨씬 더 좋은 말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용기를 가지라. 당신의 감정이 아닌 예수님 안에 당신을 심어라.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물라. 예수님은 우리의 기분을 고취시키는 치어리더보다 더 낫다. 그분은 우리의 시작과 끝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Sisters, Jesus Is Not Your Cheerleader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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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Melissa Kruger

멜리사 쿠르거는 미국 TGC에서 여성 컨텐츠 담당 디렉터이다. 저서로 '당신의 자녀를 위한 5가지 기도'와 'The Envy of Eve: Finding Contentment in a Covetous World'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