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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속죄가 선교에 핵심이 되는 세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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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Alex Kocman  /  작성일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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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Luca Micheli on Unsplash

"그만 앉지, 젊은이. 비신자를 구원하겠다고 결정하신 하나님께 굳이 당신의 도움은 필요 없으니까 말일세."


이 말은 영국의 특수침례교인(Particular Baptists: 칼빈주의에 기초한 침례교인)이자 열정적인 젊은이였던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에게 침례교 목사 존 라일랜드(John Ryland)가 던진 충고이다. 지금 윌리엄 캐리는 현대 선교 운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때 이후, 개혁주의 신학과 선교를 원수로 만들고자 하는 유혹은 복음 운동을 광범위한 차원으로 괴롭혀 왔다. 진정한 칼빈주의자인 윌리엄 캐리뿐 아니라 그와 비슷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유혹은 다름 아닌 "당신이 진짜 칼빈주의자라면, 전도는 성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와 같은 논리이다(역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칼빈주의의 핵심 사상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행하는 전도는 구원받을 사람을 창세 전에 선택했다는 주권 교리와 조화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제기되는 것이다).


윌리엄 캐리와 앤드류 풀러(Andrew Fuller: 영국의 특수침례교회 목사이자 적극적인 선교를 옹호했던 신학자), 그리고 제임스 패커(J. I. Packer)와 같은 사람들은 개혁주의가 강조하는 제한 속죄(역주: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한 구원이 오직 선택받은 자에 대해서만 이루어지도록 의도하셨다는 교리)와 선교 활동은 서로 대립의 관계에 있지 않고, 실은 단짝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해 왔다. 그러나 우리 시대까지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질문이 남아 있다. 그 질문은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첫 글자를 따서 표기한) 'TULIP'에서도 특히 성가신 이 'L'에 관한 것이다(역주: L은 제한 속죄 Limited Atonement를 의미하는 약자이다). 즉 하나님이 미리 선택한 사람들만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고 믿는 자들이, 어떻게 먼 길을 떠나 복음을 전하고 싶은 동기를 가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제한 속죄 교리에는 '저 사람은 구원받지 않았어' 또는 '확실히 구원받은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무모한 베팅을 하게 하는 유혹이 있다. 한 마디로, 교리가 만든 모호함에 빠지도록 만드는 유혹이다. 게다가 그 누구도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두를 위해 죽었다고 말하는, 즉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주장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 고난받기를 즐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리와 같은 사람이 가졌던 선교 열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제한 속죄를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한 속죄는 성경적인 진리임과 동시에 선교에 꼭 필요한 성경적인 기초를 다져 준다.


1. 제한 속죄는 선교의 목적을 명확하게 한다


세게 선교라는 교회의 사명은 그 목적이 명확하다. 세계 선교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되살아날 영혼들을 부르고자 하나님이 설계하신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사야서에서 우리는 유배된 유대인을 다시 불러 모으는 것 이상의 예언, 즉 전 세계를 향한 ‘새 언약’의 예언을 찾을 수 있다.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6-7).


그리스도가 그의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나가라는 ‘대사명’을 주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그분의 자녀들을 찾으라는 분명한 명령을 받은 것이다. 주인이 종들에게 "큰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 14:23)라고 말한 것은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요 10:16)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리스도의 행군 명령도 이와 같다. "각각의 민족마다 내가 선택한 백성이 존재한다. 너희들은 가서 그들을 찾아라!"


만약에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면, 굳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를 넘어 세상 끝까지 선교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특별히 선택된 자들을 위해 죽으셨고 그들이 각각의 나라에 퍼져 있기에, 우리에게는 모든 나라, 민족, 언어 및 종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가 있는 것이다.


2. 제한 속죄는 선교의 방식을 유지한다


제한 속죄는 부패한 인류로부터 선택받은 자들을 회복시키려는 우리의 선교 목적을 공고히 한다. 그뿐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선교 방식, 즉 그리스도 한 분만을 설교해야 한다는 진리까지도 명확하게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진실되고, 완전하며, 효과적인 중보자이자 선교의 구심점이다. 또한 우리가 선포하는 모든 메시지의 중심이기도 하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그리스도가 주께로 나아오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유일한 분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 수 있다.


가설에 불과한 보편속죄의 교리(그리스도께서 모든 개인을 위해 죽으셨지만, 스스로가 믿음을 행사하지 않는 한 효과가 없다는 교리)가 갖는 문제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구세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즉 그분이 구원을 가능하게는 하셨지만, 실제로 성취하지는 않으셨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 교리를 선교에 적용할 때 외쳐야 할 메시지는 ‘믿음’ 그 자체가 된다(이 경우에는 믿겠다는 개인의 결정이 구원의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구원을 이루시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이 경우, 믿음은 우리를 그분과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지,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원의 핵심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 대속을 통하여 구원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그분을 설교해야 하며(고전 1:23; 고후 4:5), 이는 곧 '주권적'으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이다.


인간이 허락해야만 구원하는 그리스도라면, 굳이 세상의 모든 종족에까지 알려야 할 만큼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 그리스도는 바울이 알던 강권적인 그리스도도 아니다. 고집 세고 반항적인 바울을 구원하고자 그를 말에서 떨어뜨리기까지 하신 분이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 1:16).


주를 모르는 전 세계 40억 이상의 사람들에게 선포할 그리스도는 바로 이러한 분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그분은 성령을 통해 우리가 갖지 않은 믿음을 주권적으로 부어주시는 분이다. 아직 그분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만약 선택받은 자들이라면, 그 이름이 온전한 중보자인 그리스도의 손에 예외없이 새겨져 있다(사 49:16).


3. 제한 속죄는 선교의 결과를 보장한다


그렇다면, 전도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이 물음에 대해 요한계시록 5장은 우리가 문화의 차이를 떠나 모든 민족을 향해 선교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알려 준다.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계 5:9-10).


그리스도의 피는 절대 헛될 수 없다. 그래서 요한은 바로 두 장 뒤인 7장에서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계 7:9)라고 쓰고 있다. 임무는 이미 완수되었다.


간단히 말해, 주님께서 내리신 ‘대사명’은 그 결과에 대한 보장이 없다면 애초부터 달성 자체가 불가능한 명령이다. 우리는 모든 민족마다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신 이들이 있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대속 사역이 있었음을 알기에, 그리스도가 주신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교회는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을 안다. 


만약에 예수님이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무차별적인 대중을 위해 죽으셨다면, 우리는 망망대해에서 언제 잡힐지도 모를 물고기를 쫓고자 아무 곳에나 그물을 치는 허망한 어부가 될 것이다. 우리는 구원받도록 선택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아니, 굳이 추측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배에서 제자들에게 내리신 명령을 분명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요 21:6). 이 구절에 나타나듯이 분명히 잡게 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구원을 보장한다는 제한 속죄의 본질은 세계 교회의 그물이 물고기로 가득 채워질 것을 보장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그 명확한 사실을 보장한다.


모든 사상에는 따라오는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하나님은 종종 좋은 의도를 가진 성장하는 신학자를 쓰시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비뚤어진 막대기로도 직선을 그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계속 비뚤어져 있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제한 속죄가 인기와는 상관 없지만, 이는 분명히 영광스러운 교리이고 선교의 핵심을 이루는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구원할지를 선택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구원할 사람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로 그들을 위해서 죽으셨으며, 성령님이 그들의 마음을 바꾸고 구원을 이루신다. 그러니, 우리는 보장된 결말을 마음에 품고 땅끝까지 그리스도를 전해야만 한다.




출처: www.9marks.org

원제: 3 Reasons Definite Atonement is Basic to Biblical Missions

번역: 무제

작가 Alex Kocman

알렉스 콕맨은 Association of Baptists for World Evangelism(ABWE)의 디렉터로 신임 선교사들과 그들을 파송하는 교회를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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