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 이야기
by Colin Smith2019-03-19

우리는 유다를 단순한 악인 또는 희생자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여러 면에서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존재였고, 이 사실에 대해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유다는 예수님을 따르고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였지만, 그 마음에는 확신이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한때 고백했던 믿음을 저버리고 말았다.


유다의 이야기에는 쉽게 간과되는 네 가지 사실이 있다.


1. 유다의 헌신


유다는 예수님께 헌신한 사람이었다. 나머지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주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고 사역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으며, 놀라운 영적 선물을 부여 받았다. 예수님도 유다를 포함하여 "열 두 제자"라고 칭하셨으며 ,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능력을 주셨다고 누가는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눅 9:1-2).


가룟 유다는 바로 그 능력을 입은 복음 설교자였음을 기억하라. 그는 병을 고치는 은사를 받았고 귀신을 내쫓는 특별한 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그러한 행위가 영적인 삶 또는 영적인 건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2. 유다에게 주어진 기회


유다는 무려 3년 동안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가장 위대한 삶을 바로 옆에서 목격했다. 구세주와 함께 걷는 것보다 믿음을 형성하는 데 좋은 환경은 있을 수 없고, 또 예수님보다 더 나은 믿음의 모델 역시 있을 수 없다.


그는 기적도 직접 목격했다. 바로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시는 그 자리에 유다가 함께 있었다. 그는 거기에서 다른 제자들과 더불어 빵을 나누어 준 사람이었다. 예수님이 폭풍우를 잠잠케 하셨을 때도, 그는 거기에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을 때도 유다는 현장에 있던 사람이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유다보다 믿음에 대한 더 나은 증거를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유다는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도 직접 들었다. 산상수훈을 통해 그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과 멸망으로 가는 넓은 길이 있음을 알았다. 또한 그는 바리새인을 향한 예수님의 경고를 통해 피해야 할 지옥과 갈망해야 하는 천국이 있음도 알았다. 더욱이, 탕자의 비유를 통해 아무리 많은 죄를 지어도 사랑하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까지 제대로 배운 사람이 바로 유다였다.


그는 두 눈으로 똑똑히 가장 명백한 증거를 보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두 귀로 가장 훌륭한 가르침을 들은 사람이다. 유다는 자신의 두 발로 가장 위대한 모범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예수님을 배반했다.


인간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으며(렘 17:9), 성경 말씀처럼 한때 믿음을 고백했다가 포기한 사람의 마음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분명 자리한다. 건강한 교회를 다니고, 경건한 부모에게 양육받으며 어린 시절부터 성경의 진리를 먹고 자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 덕분에 왜 기독교가 진리인지를 알면서도 그들이 어떻게 예수를 포기할 수 있는지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유다의 이야기에는 믿음을 포기해 버린 자들과 그들 때문에 슬퍼하는 부모, 지도자 및 친구들이 귀기울여야 할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다. 우리는 잃어버린 양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우리가 도대체 뭘 잘못한 것일까?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인가?

우리가 믿음의 본을 제대로 보이지 못했기 때문인가?

애초에 우리 아이들이 다른 환경에서 양육받도록 했어야 했나?


그러나 유다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최고의 모범, 가장 강력한 증거, 최상의 교육, 신앙을 키우는 가장 이상적인 환경도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인간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3. 유다의 선택


사탄은 유다의 영혼을 끊임없이 공격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을 계속해서 공격하는 행위, 이것이 바로 사탄의 주된 일이다. 성경은 사탄의 공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눅 22:3-4).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 13:2).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요 13:27).


사탄이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에 관한 성경의 명확한 진술을 읽으면 이내 그에 대한 동정이 일어난다. "불쌍한 유다, 그가 무슨 힘이 있었겠어? 사탄이 이미 그 영혼에 들어갔는데, 유다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겠어?" 하지만 이런 식의 생각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다. 그것은 바로 유다가 사탄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유다가 돈을 훔치고 그 죄를 숨겼을 때, 사탄이 그의 마음에 들어갔다. 대제사장와 계약을 맺고 난 이후 예수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서도 여전히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 사탄은 더 깊이 그의 존재를 파고들었다. 이처럼 고백하지 않은 죄는 사탄에게 나를 내어주는 통로가 된다.


사탄은 예수님과 함께 빛 가운데를 걷는 사람들의 삶에는 결코 들어갈 여지를 찾지 못한다. 사탄은 오로지 우리가 문을 열 때에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클라우스 스키더(Klaus Schilder)는 그의 저서인 '고통 속의 그리스도'(Christ In His Suffering)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께 먼저 다가가지 않는 사람의 영혼도 주권적으로 정복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소유한 특이한 위엄이다. 바로 거기에 사탄의 약점이 있다. 그러니까 영혼이 먼저 허락하지 않는 한, 사탄은 결코 그 영혼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는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마음대로 접근하고 침입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걱정하면서, 정작 예수님은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들어오지 못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고는 한다. 그러나 이는 크나큰 착각이다. 성경은 그 반대가 진리라고 명확히 가르친다.


4. 유다가 받아들인 결과


유다는 그가 선택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당신이 예수님과 가까워지면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의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즉 당신은 온전히 예수님의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결국은 그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다.


그리스도를 강력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 중 일부는 한때 예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했던 이들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나 배타적이고 또 그분의 요구는 삶 전체를 포괄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전적으로 헌신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포기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의 선택지만 있을 뿐 중간지대란 존재할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를 아예 모르는 이들만이 그분께 무관심할 수 있다. 주님께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이라면, 완전한 헌신 또는 전적인 대립, 이 두 가지의 결과만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이 두 방향 중 한쪽으로 조금씩 더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한때 신앙을 고백했던 수많은 이들이 이제 그 믿음을 버리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유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난파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고 경고한다. 또한 유다의 이야기는 현재 믿음으로부터 멀어질 위기에 처한 유다와 같은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고 교훈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유 22-23)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마지막으로 유다의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한 사람에게는 그 어떤 선한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러도 따라야 하는, 결코 등져서는 안 되는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4 Things We Can Learn from Judas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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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Colin Smith

콜린 스미스는 London School of Theology에서 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Orchard Evangelical Free Church의 담임 목사이며, Unlocking the Bible이라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시카고 지역을 섬기고 있다. The Orchard Network를 통해서 다음세대 목사들과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을 멘토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