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힘든 지역에서 선교하는 이들에게
by Brett Rayl2019-02-27

“만국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1-2).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힌 수많은 사람들이 선교지로 나간다. 그런데 그 열정을 끌어안고 찾아간 현지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아프리카 선교사 C. T. 스터드(Charles Thomas Studd)의 표현대로—사역의 “로맨스”가 “단조롭고 수고스러운 노동”으로 바뀌는 순간 마음이 식어 버린다.


선교는 도전적인 일이며 우리의 믿음대로 현실이 펼쳐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새로운 언어를 훈련하는 고달픔, 현지 문화에 부적응해서 남발하게 되는 잦은 실수들, 자녀 교육의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고민과 이민국에 수시로 방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업무, 그리고 안식년에 출입국하는 과정과 후원 교회를 돌아보는 일 등 선교 사역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과제들로 인해 처음에 가지고 온 뜨거운 열정은 점차 사라진다.


특별히 선교하기가 매우 힘든 지역에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품었던 소망을 잃어버리고 사역의 열매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고후 1:8). 이처럼 온갖 고난 속에 처하다 보면, 애초에 선교지를 향해 발길을 옮기게 만들었던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갈망이 모두 상실되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우리의 선교가 바로 이 같은 어려움을 만날 때 해야 할 일이란, 다름 아닌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기쁨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그 외에 우리를 붙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선교란 무엇인가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시 84:5-7).


선교의 여정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시 84:7), 은혜 위에 은혜가 더하고(요 1:16),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고후 3:18) 과정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힘 주시는 이는 주님이시며, 우리는 그 힘을 얻어 주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우리의 믿음이 현실화되는 여정 위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선교는 바로 그 믿음이 이끄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마음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면, 그 마음은 삶의 변화를 거쳐 비전을 소유하는 데에 이르는데, 그 비전은 거룩하고 온전한 심령만이 알 수 있는 형언할 수 없는 영광을 드러내므로 바로 그 비전이 충만한 곳에 최상의 행복이 있다.”


만일 아직 눈앞에 드러나지 않은 실재가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면, 굳이 선교에 참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런 사역을 후원하는 일이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영광’을 갈망하기에 단지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상의 행복을 보여 주는 충만한 비전’을 추구하기 위해 선교 현장에 나간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더욱 갈망하고 기뻐하며, 약속하신 대로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다가 마침내는 하나님 앞에 서리라는 확신을 안고 선교를 지속한다(시 84:7; 히 11:13-16). 결국 선교란 하늘에 계신 그분을 추구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되는 비전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실제로 하나님이 이루시는 세계 선교에 헌신하기 위해서는 장차 영원히 즐거워하게 될 그분의 영광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즉 내 자신의 이기적인 야망을 삼킬 만한 그분의 영광과 명예를 추구하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선교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위의 시편에서와 같이) 악인의 저택에서 누리는 호화로운 생활을 거부하고 천국의 문지기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고백을 구체화하게 된다. 현재로서는 주님의 궁정을 지키는 문지기로 선교한다는 비전이 오직 믿음으로만 인식되지만, 결국에는 영원토록 즐거워할 수 있는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바로 이런 비전을 통해 단조롭고 힘든 사역을 지탱하고 견딜 수 있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선교는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세상을 향해 선포하는 주님의 이름을 추구하는 사역이다. 그렇기에 선교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로 시작되고, 그 믿음이 현실이 될 때 드리는 예배 가운데 마쳐진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비전이 저항할 수 없이 강력하게 주어질 때, 그 비전은 어려운 지역에 가서 선교를 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고, 그 지역에서 경험하는 고된 사역 중에서도 우리를 붙들어 주며, 영원한 즐거움을 오직 그분 안에서 찾게 만든다. 신학자들은 바로 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전망을 행복의 비전(the beatific vision)이라고 가르쳤다.


예를 들면, 프란시스 튜레틴(Francis Turretin)은 이렇게 설명했다. “행복의 비전은 유한한 피조물이 소유할 수 있는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거룩한 사역에 관한 가장 완벽하고 뚜렷한 지식을 포함하는데, 이는 단지 믿음으로 이 땅에서 소유하는 불완전하고 흐릿한 지식과는 다른 지식이다.” 마찬가지로 존 오웬(John Owen)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리는 결국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중략] 그리스도를 직접 보게 되는 이 경험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모두가 이 땅에서 사모하고 간절히 원하는 일이다.”


모든 예배는 바로 이 예배, 즉 하나님을 보게 되는 예배를 지향한다. 모든 선교도 바로 이 예배를 추구한다. 이러한 행복의 비전은 예배를 목적으로 삼는 선교의 토대이자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예배는 장차 경험하게 될 그 예배를 미리 맛보는 행위이다. 이 영광스러운 비전이야말로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따라 위대한 걸음을 내딛게 하고, 우리가 섬기는 자들을 위해 매일같이 희생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는 유일한 소망을 제시한다. 영존하시는 하나님과 마주하는 한 날이 이생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일생보다 낫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파하는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까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 84:11).


지금까지 설명한 비전은 선교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왜냐하면 해와 같이 세상 모든 곳을 비추기 때문이다. 행복의 비전은 어느 한 성도만이 누리는 경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가 함께 기뻐하는 전망이다. 즉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계 7:9) 즐거워하는 영광이 그 비전을 통해 주어진다. 주님의 신실한 백성을 위해 그리스도가 예비하신 상급은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인데(시 2:8-9; 계 2:26-27), 이는 그분을 영원히 예배하는 온 세상의 우주적 교회를 의미한다.


칼빈은 이 예배의 즐거움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 행복이 얼마나 위대한가는 사람이 아무리 표현하더라도 그 가장 작은 부분도 포착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선교가 종국에는 예배로 온전히 마쳐질 것이기에,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모든 백성과 방언으로 하여금 그분을 찬양하도록 해야 한다. 오늘도 가장 힘든 지역에 가서 극심한 도전에 직면하는 선교 사역을 일으키고 지속시키는 원동력은 바로 그 행복을 약속하는 비전이다.


그러므로 지쳐있는 모든 종들이 인내와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구해야 할 가장 큰 필요는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다. 세상에서 수치를 당할 때, 그분은 우리를 선대하며 존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그분을 의지하는 자가 복 되다고 가르친다(시 84:12). 그분은 우리에게 선이 되는 어떤 일도 철회하지 않으신다. 결국에는 이 복음, 즉 우리가 너무나도 힘든 지역에 가서 선포하는 그 복음이 우리를 붙들어 줄 것이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What Sustains Missions in the Hardest Places?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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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Brett Rayl

브렛 레일은 CBI Japan의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