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사람이시다는 사실에 관하여
by David Mathis2019-02-22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사람이시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실 중에 어느 쪽의 내용을 붙들고 더 씨름하게 되는가?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자라신 예수님이 진정으로 사람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그분을 눈으로 보며 목소리도 듣고 몸을 만져보면서 시간을 함께 보낸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었다(요일 1:1). 어느 누구도 공생애 기간 동안 그분이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 승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러한 의문은 생각치 못한 방향에서 일어나게 된다. 우선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지내며 그분이 사람이심을 알고 지내던 제자들은 이제 그분을 하나님으로서 높이고 경배하기 시작한다(마 28:17). 그런데 대부분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제자들과는 다른 조건에서 신앙을 갖게 되었다. 즉 그들은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였기에, 그분이 또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씨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교회가 첫 번째로 맞닥뜨린 이단은 예수님이 실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가르침을 전했다(요일 4:2; 요이 7).


이처럼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진자 운동은 교회사의 처음 몇 세기부터 시작되어 지난 2천 년 동안 진행되었다. 기독교를 대적하는 자들은 주로 예수님의 신성을 거부했고, 그분을 예배하는 자들은 그 인성의 범위를 놓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결국 신인(the God-man), 즉 신성과 인성을 완전하고도 충만하게 지니신 존재에 대한 의문은 오늘 이 시대까지 전달되어 심지어는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에도 퍼지게 되었다.


사람으로 완전히 낮아지심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사람이라는 사실만이 명백한 역사이지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가르침은 비상식적인 주장이 된다. 따라서 그들은 신학적인 의미를 배제하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여 ‘과연 어떤 의미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그분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도록 질문하는 것이다. 한편 성경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도 그들만의 과제를 안고 씨름한다.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성육신의 범위를 과연 어디까지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현대의 복음주의자들도 예수님이 진정으로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한 경이로움을 잃어 가고 있다. 그분의 신성을 변호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싸우면서도, 어떻게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되셨는지에 대해서는 놀라움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성육신 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내용보다는 예수님이 완전한 의미에서 사람이라는 사실이 함축하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고 도전도 되는 내용을 다루려고 한다. 즉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의 육체만이 아니라, 그 지성과 정서와 의지까지 모두 다 취하셨다는 사실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지니신 사람의 육체


신약성경은 일단 예수님이 사람의 육체를 지니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친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선언하는 요한복음 1장 14절이 그 사실을 설명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그분의 인성을 고백하는 일은 정통 신앙을 검증하는 기준이었다(요일 4:2; 요이 7).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면, 예수님은 사람으로 나셔서 성장하셨다(눅 2:7, 40, 52). 그래서 피로(요 4:6)와 갈증(요 19:28)과 허기(마 4:2)를 느끼셨다. 또한 육체의 연약함도 보이셨다(마 4:11; 눅 23:26). 무엇보다도 죽음까지 경험하셨다(눅 23:46). 그리고 심지어는 부활 후에도 사람의 몸을 지닌 상태로 나타나셨다(눅 24:39; 요 20:20, 27).


예수님이 지니신 사람의 정서


복음서 전체에 걸쳐 예수님은 인간의 정서도 분명히 드러내셨다. 이 사실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달한다. 먼저 마태복음 8장 10절에서는 예수님이 백부장의 말을 들으셨을 때 매우 놀라워하셨다. 그리고 마태복음 26장 38절에서는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도 말씀하셨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 11장 33-35절에서는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눈물까지 흘리셨다. 이와 비슷하게 요한복음 12장 27절에서는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라고 하셨으며, 요한복음 13장 21절에서는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기도 하셨다. 또 히브리서 저자는 그분이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도 기록했다(히 5:7).


이러한 모든 내용을 기억하기 쉽게 잘 요약한 칼빈의 진술은 이렇다. “그리스도는 육체와 함께 우리의 감정까지 입으셨다.”


예수님이 지니신 사람의 지성


예수님이 사람의 지성까지 지니셨다는 문제는 생각하기가 좀 더 까다롭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지성만을 소유했기에, 누군가가 하나님의 지성과 사람의 지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상태가 어떠할지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아래의 두 성경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이 난해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 13:32).


이 중에서 두 번째 구절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지식을 절대적인 수준에서만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난해하게 느낄 수 있는 내용을 전한다. 그런데 그 내용을 직접 이야기하신 분은 예수님 자신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신성에만 우리가 집중한다면, 이 구절은 받아들이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를 깊이 숙고해 본다면, 바로 그런 말씀이야말로 예수님 자신의 인성을 고백하는 영광스러운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람이시다는 사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을 경우, 그저 이렇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분이 정말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면, 어떻게 자신이 언제 돌아오는지를 모르실 수 있는가?’


이런 물음에 대하여 교회 역사에서 제시된 주의 깊고도 성숙한 답변은, 예수님은 완전히 하나님이시고 또 완전히 사람이시다는 것이다. 즉 그분의 한 인격 안에 무한한 하나님의 지성과 유한한 사람의 지성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분은 유한하고 전지하지도 않은 사람의 지성을 지니셨기에, 마가복음 13장 32절에서와 같이 어떤 내용을 모른다고 말씀하실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무한한 하나님의 지성도 지니셨기에, 요한복음 21장 17절에서 베드로가 한 고백처럼 모든 것을 안다고도 말씀하실 수 있다.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성경은 명백하게도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인간으로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 독특한 두 본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실은 모순이 아니라 하나님이면서 사람이신 존재만이 가진 영광을 반영하는 진리이다.


예수님이 지니신 사람의 의지


이처럼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면서 사람이시라는 사실은 계속해서 우리로 하여금 더 깊은 문제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아마도 이 사실이 가져다주는 가장 까다로운 문제는 그분 안에 하나님의 의지와 사람의 의지가 공존한다는 내용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두 군데 성경 본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예수님은 그 아버지가 지니신 의지, 다시 말해 삼위일체 안에 있는 무한한 하나님의 의지를 가지고 계신다. 그러면서 또한 사람으로서 유한한 의지를 지니셨다. 그런데 이 사람으로서 지니신 의지가 본래 하나님으로서 소유하신 의지에 완벽하게 복종하여 조화를 이룬다.


이런 사실은 우리의 경험과 이해를 초월하고 또 앞으로도 우리가 인간으로서 알게 될 그 어떤 지식도 뛰어넘는 큰 미스터리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들에게 이 신비는 혼란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께 경배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유일무이한 인격을 소유하신 분이다. 완전히 하나님이시며 완전히 사람이시기 때문이다. 만일 이처럼 절대적으로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면, 과연 우리가 영원히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며 예배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오직 한 분의 중보자밖에 없다. 바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딤전 2:5).


진정한 사람이 베풀 수 있는 진정한 구원


예수님은 죄를 제외하고, 사람의 육체, 정서, 지성, 의지까지 다 지니신 분으로서 모든 측면에서 우리와 동일한 존재이시다(히 2:17; 4:15). 바로 그 신성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가 가진 인성의 일부만 취하지 않으시고 그 전부를 가지고 사람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자리까지 나아가시고 마침내는 하늘로 오르셔서 새 창조를 이루고 계시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분은 우리의 육체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육체를 가지셨다. 또 우리의 지성을 새롭게 하기 위해 사람의 지성을 지니셨다. 더 나아가 사람의 정서를 취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정서는 치유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의지까지 소유하지 않으셨다면, 깨지고 흔들리는 우리의 의지는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가 한 말처럼, “그분이 떠맡지 않고서 치유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예수님은 완전한 차원에서 사람이 되셨기에,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다. 따라서 오직 그분만이 사람의 진정한 구원자이시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Jesus Is Fully Human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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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David Mathis

데이비드 마티스는 desiringGod.org의 주필이며,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Cities Church의 목사이다. '은혜받는 습관'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