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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초기 기독교인들은 다양한 신학적 견해를 가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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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Michael Kruger  /  작성일 201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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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athan Dumlao on Unsplash

초기 기독교 역사를 연구하는 비평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는 당시 기독교인들이 주장한 신학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견해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의 가르침 중 대부분에 대해서 그들은 동일한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처음 몇 세기 동안 기독교는 자신들만이 원류이며 사도성을 지닌다고 내세우는 여러 가지 분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날 우리가 ‘정통 기독교’라고 부르는 특정 그룹이 신학적 대립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렇게 도전한다. “왜 우리는 결과적으로 승리한 그룹만이 그 논쟁에서 패배한 다른 그룹들에 비해 더 정당하다고 여겨야 하는가? 만일 영지주의와 같은 그룹이 논쟁에서 이겼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랬다면, 당연히 우리가 기독교라고 부르는 종교는 그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비평학자들은 초기 2~3세기에는 ‘기독교’라고 불릴 만한 어떤 단일한 체계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그렇기에 신학적 패권을 놓고 쟁투를 벌인 모든 분파를 일컫는 ‘기독교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바트 어만의 주장


이런 주장의 기원은 발터 바우어(Walter Bauer)의 1934년 작품 ‘초기 기독교의 정통과 이단’(Orthodoxy and Heresy in Earliest Christianity)으로 소급된다. 하지만 오늘날에 있어 그러한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대변하는 사람은 바트 어만(Bart Ehrman)이다. 그는 초기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초기 기독교의 특징인 넓은 다양성은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예수의 추종자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가진 신학적 견해들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당연히 2~3세기에는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믿은 기독교인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두 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서른 분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삼백예순다섯 분의 하나님이 계신다고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내용과 더불어 어만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주장한 견해들 가운데 서로 상충하는 의견의 리스트를 제시한다. 물론 이 리스트는 일반 독자들이 충격을 받고 놀랄 수밖에 없도록 소개된다.


오해를 가져올 수 있는 용어 사용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정말로 초기 기독교는 어만이 지적하듯이 여러 가지 신념으로 이루어져 있었을까? 과연 2세기의 기독교인들은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 너무 많은데, 그중 상당수를 이미 나는 ‘정통과 다른 이단’(The Heresy of Orthodoxy)이라는 책에서 설명한 바가 있다.


따라서 이 짧은 글에서는 어만의 방법론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을 살펴보며 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어만이 두 분이나 서른 분, 심지어는 삼백예순다섯 분의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그룹들을 모두 다 ‘기독교인’으로 언급한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언급할 수 있는가? 다름 아닌 그들이 “스스로를 예수의 추종자라고” 여긴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오해를 가져올 수 있는 용어 사용의 문제가 자리한다. 물론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주장하고 다녔다. 이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어만의 접근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용어가 자신의 신학을 정확하고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신분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한 분 하나님을 믿었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두 분이나 서른 분 혹은 삼백예순다섯 분의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구약성경뿐 아니라 그 성경이 가르치는 유일신 사상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증거가 압도적으로 많다.


어만이 언급한 삼백예순다섯 분의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그룹은 사실 영지주의자들이었다. 아마도 어만은 (초기 영지주의 교사였던) 바실리데스(Basilides)를 염두에 두고 그런 주장을 하였을 텐데,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하나님(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분이 아니라 창조주의 역할을 하는 천사들과 같은 존재를 의미한다.


그리고 영지주의 신학은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기독교’라는 표어를 붙일 수 있는 그룹이 전혀 아니다.


물론 비평학자들이 왜 그러한 이단에 대해서도 ‘기독교’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하려고 하는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초기 기독교의 신학적 불일치가 실제 역사적인 상황보다도 더 심각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라는 단어가 기준 없이 사용되면 될수록 기독교인들은 무엇이든지 믿기 쉬워진다. 당연히 그러는 사이에, 그 단어는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언어 사용의 속임수


이런 이유 때문에, 어만의 설명을 따라가는 독자들은 언어 사용의 속임수에 빠지게 된다. “이 사람들이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했으니, 그 외에 내가 그들을 누구라고 일컬을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실은 역사를 오해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현대의 예를 거론한다면, 마샬 애플와이트(Marshall Applewhite)가 창설한 ‘천국의 문’(Heaven’s Gate)이라는 UFO 종교 단체를 들 수 있다. 이 단체는 자신들이 죽은 후에 헤일 봅 혜성(the Hale-Bopp comet)을 추적하는 외계인 우주선을 타게 된다고 믿었으며, 바로 이 믿음을 따라 서른아홉 명이 1997년에 집단으로 자살했다. 그런데 이 단체도 자신들이 예수님을 따르며 계시록의 예언을 성취하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만일 어떤 신문 기자가 “UFO의 존재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헤일 봅 혜성을 따라가는 외계인 우주선을 타기 위해 집단으로 자살했습니다”라는 기사를 실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또 누군가가 그런 기사에 반론을 제기했는데, 그 기자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면 어떠했겠는가? “뭐가 잘못되었죠? 그들은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답변이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느 정상적인 언론인도 그 단체의 믿음이 역사적인 차원의 기독교 신앙을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그렇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사건을 보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자기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든지 참된 기독교인으로 간주되면 안 된다. 이 기본적인 원리가 2세기 기독교 연구에도 균형 있고 공정한 방식으로 적용되었다면, 초기 역사에 심각한 수준의 신학적 분일치가 있었다는 발언은 대부분 수정되었을 것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How Much Did Early Christians Disagree Over Their Theology?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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