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by Matt Redmond2018-12-24
요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힘들어 하는지 알고 있다. 스크루지의 이야기는 더 이상 한 편의 이야기로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당연한 일들이 되었고, 어쩌면 늘 그래 왔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시즌의 즐거움은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즐거움을 상상하기도 어려운 자들에게는 오히려 고통이 되어 왔으리라.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인데, 나는 누군가의 가족에게 일어난 슬픈 사건으로 인해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어려운 시간이 될 수 있는지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에는 거의 극단적인 절망과 실패가 자리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이 고통을 상기시키기 때문에, 즐거워하기란 불가능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후로도 나는 그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이해한다.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이라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휴일이란, 심지어 완벽한 상황 중에도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일은 꼭 암이나 이혼, 아니면 식사 자리에 빈자리가 생기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연중 가장 멋진 시간으로 만드는 요인이 동시에 그 시간을 가장 잔혹한 시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돌아보면, 나 역시도 그런 어려움에 잘 대비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일반적인 통념과 조금 다른 생각을 말해 보고자 한다. 나는 어쩌면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거꾸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행복한 사람들을 위한 날이라는 집단적인 문화 의식(collective cultural consciousness) 속에서 이날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목가적인 분위기에서 가족들과 함께 벽난로 주변에 모여 앉아 행복해 하는 그런 날로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웃을 일이 늘 많은 사람들만을 위한 날로 생각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정말로 그런 날인가? 그렇게 도심의 축복 가운데 살아가는 성공적이고 멋진 사람들은 휴일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그들은 가족들과 함께 소파에 기대어 크리스마스 시즌의 클래식 영화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우리는 마치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이다. 크리스마스, 곧 우리를 구원하는 자가 육신이 되어 찾아오셨다는 위대한 이야기는 모든 사람을 위한 소식이다. 특히, 구원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소식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알고 우리의 연약함을 끌어안기 위해 아기로 태어나셨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우리가 그분과 같이 되게 하시고자 먼저 우리와 같이 되셨다. 즉, 죽음의 두려움과 상실의 아픔으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찾아 오신 것이다. 예수님을 처음으로 경배했다고 알려진 자들은 고상한 사회적 신분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난하고 지저분하며 생활과 노동에 짓눌린 목자들이었다. 그들은 많은 이들에게 무시당하는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거울을 보면 추한 모습만 비추어지는 그런 자들을 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결코 예쁘다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는 딸들을 위해 오셨다. 크리스마스는 돈이 없어 ‘술집의 공연’이나 홀로 보러 가는 자들을 위한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암 때문에 삶이 절망스럽게 된 자들을 위한 날이며, 그 외의 다른 삶은 불가능한 꿈처럼 보이는 자들을 위한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소셜 미디어밖에 친구가 없는 자들을 위한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흔들리는 결혼 관계로 인하여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위한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미술 도구들을 갖길 원하지만 아버지가 계속해서 공사 장비만을 맡기는 가정에서 살아가는 아들들을 위한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사망 선고를 앞두고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그릇된 장소에서 사랑을 갈망하는 창녀들을 위한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세상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아이들을 위한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실패한 꿈들에 갇힌 자들을 위한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가문의 명예와 재산을 탕진하여 가정으로 돌아가길 원하지만, 감히 자신을 너그럽게 받아 줄 곳이 없는 자들을 위한 날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자녀들의 결혼 생활이 혼란 속으로 접어드는 상황을 지켜 보는 부모들을 위한 날이다.

결국 크리스마스는 이 모든 죄인들에게 필요한 은혜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날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행하신 모든 일들로 인해, 그 아기가 태어났을 때 뉘였던 구유는 절망으로 어두워진 이 세상에서 가장 희망이 넘치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니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마스는 그날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날이다. 바로 그런 날이 크리스마스이다.



원제: Christmas Is for Those Who Hate It Most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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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Matt Redmond

맷 레드먼드는 앨러배마주 버밍햄에 위치한 Branch Life Church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