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 양육
by Elyse Fitzpatrick2018-12-13

앨리(Allie)는 괴로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예전에도 그녀는 목사 아들의 뺨을 때려서 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아이의 형을 때렸기 때문이다. 앨리의 엄마 역시 창피하고 실망스러웠다. 앨리는 자신에게 화나고 수치스럽고 절망적인 기분으로 꾸지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대화를 하고자 방으로 들어섰을 때, 앨리는 울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친구들과 놀 자격이 없어!”


이것이 당신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녀들에게 다른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근본적인 교육 방법에 대해서 고민할 때에는 조금 다른 차원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내가 무슨 수로 이 아이의 행동을 고칠 수 있을까?”에서 “내가 자녀를 바로잡는 방식이 과연 복음적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신약성경에는 양육에 관한 두 가지 명령이 나온다. 그중 하나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이 구절을 주제로 삼은 책들도 더러 있는데, 아버지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방법 또는 적절히 징계하거나 교육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해석할 때 우리는 가장 중요한 표현인 ‘주님의’라는 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울의 초기 독자들은 아마 이 가르침에 무척 놀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베소의 부모들은 헬라 철학자들의 징계와 교훈으로 자녀를 훈육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 앞에서 크리스천 부모들은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먼저, ‘주님의’ 양육법은 은혜에 의존한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했기 때문에(욘 2:9), 우리가 자녀의 마음을 돌려 주님께 순종하도록 할 수는 없다. 따라서 크리스천 부모들은 안달하거나, 조종하려 하거나, 심히 염려하거나, 압박을 가하기 보다는, 주님의 은혜 안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기뻐하고 기다려야 한다. 오직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 일을 내 힘으로 하려고 기를 쓰지 말라.

 

또한 기독교적인 양육은 솔직하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의를 논한다면, 우리는 결코 다른 그 누구보다 더 의로울 수 없는 존재이다. 자녀보다 의롭다고 말할 수 없음도 물론이다. 혹시 '왜 우리 아이는 저럴까'라고 생각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 아이가 죄인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우리가 자녀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죄와 싸우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즉, 부모 대 자녀들의 대결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들 그리고 죄와 불신의 대결이다.

 

크리스천 부모는 자녀의 삶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알게 하고, 받은 은혜에 반응하는 법을 가르치며, 또한 그들로 하여금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신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도록 이끈다. 하지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 있는데, 바로 율법이 그들을 선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율법을 내세워 자녀들에게 선을 기대한다면, 그 마음을 접어야 할 것이다. 선한 것은 ‘그리스도의 의’뿐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양육에 있어서 무엇을 의지해야 할까? 당신의 교육법이 진정으로 기독교적이며 주님의 말씀에 입각한 방법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기도에 의지해야 한다. 기독교적인 교육 방법은 복음을 떠나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의 삶이 복음과 연결되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크리스천 부모는 자녀를 율법적으로 조종하려 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보혈과 의에 의존하여 양육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실천적 방법으로 자녀들에게 은혜롭게, 그러나 단호하게 복음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그들을 선한 길로 이끌고 계심을 알도록 도울 수 있다.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꾸짖기도 하며, 더불어 예수님에 대해 반드시 들려주어라.

 

이제 서두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앨리는 “나는 밖에서 친구들과 같이 놀 자격이 없어”라고 소리치며 낙담했다. 이 외침에 대해 복음은 앨리의 엄마가 어떻게 반응하도록 가르칠까?

 

비록 앨리의 엄마가 먼저 복음을 떠올리지 않았지만, 주님은 앨리의 말을 통해 그 엄마의 마음을 녹이셨다. “네 말이 맞아, 앨리야. 너는 친구를 때렸기 때문에 함께 어울릴 자격이 없어. 하지만 엄마도 마찬가지야. 내가 너에게 화를 많이 냈잖아. 엄마 역시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어. 그렇지만 하나님은 너무나 친절하고,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귀한 선물을 주시는 분이야.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자비를 베푸셔. 앨리야, 자비가 뭔지 아니?”


앨리는 고개를 저었다. “자비란 벌을 받아야 마땅한 네게 하나님이 사랑을 주시는 거야. 네가 아무리 착하게 행동해도 얻을 수 없는 귀한 것들을 하나님이 네게 가득 주시는 거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니? 바로 그분의 아들이 우리 대신에 뺨을 맞으셨기 때문이란다. 예수님은 너와 내가 하나님의 심판 대신 자비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셨어. 정말 좋으신 분이지?”


“눈물이 나요.” 앨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그래, 하나님의 자비 때문에 엄마도 눈물이 나. 오늘밤에 엄마랑 손잡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기도를 마친 후에 앨리가 엄마를 안으며 말했다. “엄마, 나도 알겠어. 하나님이 나를 정말로 사랑하셔.”


기독교적인 양육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복음을 자녀와 함께 나누는 것이 크리스천의 교육법이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Christian Parenting

번역: 김태곤 (매일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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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Elyse Fitzpatrick

일라이즈 핏츠패트릭은 Trinity Theological Seminary에서 수학 후 1989년부터 여성 상담을 해오고 있으며, National Association of Nouthetic Counseling의 멤버로 여성 컨퍼런스 강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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