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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성전과 예수님의 빈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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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Chad Ashby  /  작성일 201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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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Zeny Rosalina on Unsplash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는 대제사장, 골고다, 두 강도, 빌라도, 군중, 십자가, 무덤, 그리고 예수님 자신과 같은 익숙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친숙한 기사이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있다.


마태에 따르면, 그 요소는 바로 성전이다.


마태는 마지막 여덟 장에 걸쳐 성전을 16회 언급한다. 마태복음이 정점에 도달할 때, 성전이 중대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마태의 서술이 십자가에서 성전을 지나 무덤으로 이동하는 흐름 속에는 독자들이 예상하기 어려운 문학 장치가 자리하고 있다.


곧 마태는 전문가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무덤을 단순한 바위나 돌 그 이상의 것으로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그 무덤은 바로 한 장의 성전 그림과 같이 묘사된다.


성전 허물기


예루살렘을 향하는 종려주일 가두행진 후에 예수님은 성전의 뜰로 자리를 옮기셨다. 그분은 성전이 부정한 것들, 즉 환전상이나 강도들의 행위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하셨다. 예수님은 상을 뒤엎고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았고, 눈 먼 자와 저는 자를 고치셨다. 다음 날, 그분은 제사장들 및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셨고, 그들에게 지옥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선언하신 후 그 성전을 떠나셨다.


이때 제자들이 성전의 외면적인 아름다움에 감탄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 24:2) 그리고 몇 장의 이야기가 흐른 후, 우리는 예수님을 붙잡고자 모의하는 대제사장들이 그분을 고발할 만한 내용을 겨우 한 가지밖에 얻지 못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 한 가지는 어느 두 사람이 대제사장 앞에 나와 다음과 같이 언급한 내용이다.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마 26:60-61).


예수님은 성전을 무너뜨릴 생각이셨다. 이 장소는 자기 의로 가득한 그릇된 종교 지도자들의 오물로 채워진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성전을 회칠한 무덤으로 바꿔 놓았으며, 겉은 번쩍번쩍하고 깨끗하지만 속은 악으로 가득 찬 곳으로 만들었다. 예수님은 성전을 허물고 3일 만에 새로 짓고자 계획하셨다.


휘장 찢기


마태의 수난 이야기는 놀라운 변화로 끝이 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를 향한 모욕이 가해지자, 예수님은 시편 22편의 말씀을 큰 소리로 외치셨다. 그리고 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셨다(마 27:50).


하지만 클라이맥스는 여기가 아니라 그 마지막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성전에 울려 퍼지는 순간이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마 27:51-52).


이렇듯 수난의 일주일은 예수님이 성전 외부 뜰에서 격노하신 일로 시작된 후, 성전의 파괴에 관한 예언으로 이어지고, 하나님과 인간을 분리했던 휘장이 찢어지는 소리로 마무리되었다.


성전에서 무덤으로


요셉이라는 한 남자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했고, 그 시신을 세마포로 감싼 후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갔다(마 27:60). 마태는 여기서 무덤을 성전과 병행구조로 연결시키는 문학 장치를 사용한다. 곧 성전 벽은 사람들이 출입할 수 없는 무덤 벽으로, 불의 천사들로 수 놓인 휘장은 경비가 보초를 서는 큰 돌로 대치된다.


이렇게 마태는 그 당시 성전의 이미지를 무덤에 투영한다. 마치 석관 상자인 언약궤가 두꺼운 휘장 뒤에 놓여 인간이 보지 못하게 감춰진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인) 임마누엘 곧 예수님은 무덤의 입구를 막아 놓은 돌로 인해 우리의 시야에서 가리워 지셨다. 돌 휘장이 하나님과 죄인의 사귐을 막은 것이다.


성전은 곧 죽음의 장소, 피가 흘려져서 항상 죄를 기억하게 하는 무덤과도 같았다. 또한 성전은 무덤처럼 악한 제사장, 거짓 가르침, 오물 같은 부패한 장사꾼의 부정함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곧 큰 변화를 앞두고 있었다.


빈 무덤


예수님은 성전을 허물고 3일 만에 다시 세우기 위해 돌아오셨다. 돌 성전도 돌 무덤도 하나님의 임재를 영원히 가둬 놓을 수는 없었다.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에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다(마 28:2).


성전 휘장에 수 놓여 있던 천사들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았었다. 그러나 이번 천사는 반대로 주님이 계셨던 무덤으로 여자들을 이끌었다.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 28:5-6).


휘장처럼 돌이 입구에서 제거되었다. 그리고 여자들이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하나님의 임재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대제사장들이 작은 방에 하나님을 다시 가두려고 했지만, 예수님과 세상을 분리한 바위벽과 무거운 돌은 더 이상 그분을 가둬 놓을 수 없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무덤을 떠나셨다. 성전이든 무덤이든 어떤 물리적인 벽도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더 이상 분리할 수 없었다.


여자들이 두려움과 기쁨으로 무덤에서 떠날 때, 걸어오던 누군가와 마주쳤다.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마 28:9).


그렇다. 예수님은 무덤에서 나와 세상으로 오셨다. 마침내 하나님과 인간은 오래 전 에덴 동산에서 그러했듯이 다시 함께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무덤에서 새 성전으로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면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돌을 모으라고 제자들을 보내신다. 부활하신 왕은 이제 차갑고 생명이 없는 돌로 된 무덤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돌로 지어진 영적인 집, 곧 새 성전을 짓고 계신다. 그리고 깨끗하게 씻음 받고 제자의 길을 따르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을 세상 곳곳에서 모으고 계신다.


최고의 소식은 이것이다. 우리가 바로 그분의 성전이며, 이 땅에 심겨져서 번성하고 충만하게 될 정원(곧 회복된 에덴동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임재는 바로 이 살아 있는 성전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The Earthly Temple and the Empty Tomb

번역: 이주일


작가 Chad Ashby

채드 에쉬비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뉴베리에 위치한 College Street Baptist Church의 부목사이다. 그는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위치한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에서 석사학위(MDiv)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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