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의 성공과 실패, “실패해도 괜찮아!”
by 김형익2021-10-12

열매는 즉각적이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 인생의 시간 안에 결실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열매는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는 가시적인 열매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나 자신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열매가 맺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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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뵌 이사야 선지자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전 그 자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사야 6:9–10).” 하나님께서는 자원하여 헌신하는 이사야를 칭찬하시며 그의 사역의 성공을 보장해주시는 대신, 도리어 그가 실패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사야는 보장된 실패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사역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팀 켈러는 ‘센터처치’의 프롤로그에서, 교회 내의 회심자, 등록자, 헌금 액수의 증가로 측정되는 성공, 그리고 성공이 아닌 신실함(faithfulness)을 사역을 평가하는 유일하고 참된 범주로 여기는 입장을 소개한다. 그리고 켈러는 성공이나 신실함보다 더 성경적인 기준으로 열매 맺음(fruitfulness)을 제시한다. 


그의 말에 공감하면서 이런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지게 된다. “신실함은 열매를 맺는가? 신실함과 열매 맺음의 관계는 무엇일까?” 나의 대답은 신실함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 열매는 즉각적이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 인생의 시간 안에 결실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열매는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는 가시적인 열매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나 자신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열매가 맺히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역자들을 자만하게도 하고 좌절하게도 하는 이 열매의 문제는 좀 더 세심한 성경적 이해를 필요로 한다. 


마틴 로이드 존스(1899-1981) vs. 아더 핑크(1886-1952)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 Jones)와 아더 핑크(Arthur Pink), 이 두 인물은 동시대를 살았던 영국의 목사들이다. 로이드존스는 런던 중심가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목회를 하면서 당대 최고의 설교가로 인정받았고 생전에 그의 설교는 영국을 넘어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반면, 핑크는 30대 중반 이후 설교할 강단을 원했으나 얻지 못했고 결국 월간지 ‘성경연구’(Studies in the Scriptures)에 설교를 쓰다가 루이스 섬에서 외로이 생을 마감했다. 훗날 핑크의 사후에 그가 ‘성경연구’에 남긴 많은 설교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삶을 부요하게 해주었다. 그의 사후에 말이다. 


이 두 인물은 생전에 개인적으로 접촉한 적은 전혀 없었지만, 핑크의 ‘성경연구’의 정기구독자였던 로이드 존스는 한 영향력 있는 목사에게 “설교를 위해서 핑크의 책을 읽으세요”라고 조언을 했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 핑크의 설교를 통해 섬광처럼 비친 하나님의 영광을 느꼈고 수일간 천국을 경험하는 압도적 확신과 기쁨의 상태를 경험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같은 복음을 전했던, 충성된 말씀의 사역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자리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우리는 로이드 존스의 사역은 성공이고 핑크의 사역은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전기를 쓴 이안 머레이(Iain Murray)는 로이드 존스의 회고담을 소개한다. “내가 핑크 처럼 행동했다면 나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래 참아야 했고 사물을 아주 멀리 보아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목사직에서 물러났을 것이고 모든 일은 끝났을 것이다.”(‘아더 핑크’ 228쪽; ‘로이드 존스 평전 2’ 398쪽).


 이 말은 두 사람의 기질과 성향이 만들어낸 차이를 잘 보여준다. 로이드 존스가 생전과 사후에 전세계 기독교회에 영향을 미쳤다면, 핑크는 사후에야 비로소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것은 기질과 성향의 차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끝까지 충성스러웠고 그들의 사역에는 열매 맺음도 풍성했다.


윌리엄 스틸(1911-1997)


또 한 사람을 생각해보자. 윌리엄 스틸(William Still)이다. 그에 대한 싱클레어 퍼거슨(Sinclair Ferguson)의 말이다. “나는 십대에 윌리엄 스틸을 처음 만난 후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빚을 졌다. 스틸만큼 나에게 목사의 일에 대해 인상적인 메시지를 준 사람은 없다.” 스틸은 1945년부터 1997년 임종하기 2개월 전까지 52년간 줄곧 스코틀랜드의 길컴스턴 남부교회에서만 목회를 했다. 그의 말씀 사역은 생전에 이미 영국은 물론 해외로까지 널리 알려졌었다. 그가 50 여년 목회의 반환점을 돌 무렵인 1964-1965년, 영국과 아일랜드의 IVF 신학생 컨퍼런스에서 전한 말씀이 ‘목사의 길’로 출판되었는데(장호준 역, 복있는사람, 2011), 이 책은 목회론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고, 싱클레어 퍼거슨은 모든 목사가 1년에 한번 씩은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 책에서 스틸은 자신이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목회를 하는지, 복음이 얼마나 많은 저항을 불러오며 목사는 얼마나 많은 오해와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면서 “목사의 가장 큰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이고 온전한 방식으로 수종 들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적어도 그가 이 설교를 했던 1964-1965년까지 그의 교회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의 설교로 인하여 계속 떠나고 있었다. 그는 죽기까지 충성된 말씀의 종이었다. 그의 자리는 로이드 존스와 핑크의 사이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스틸의 사역은 성공인가, 실패인가? 그의 사역은 생전 보다 사후에 더 많은 열매를 맺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에게도 말이다.


실패 같아 보이는 성공, 성공 같아 보이는 실패


아더 핑크는 ‘실패 같아 보이는 성공’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실패 같아 보이는 성공의 사례를 보여주는 인물들은 성경과 교회 그리고 선교의 역사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이런 사람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라고 썼던 히브리서 기자의 심정에 공감한다. 물론 우리는 모든 사역을 ‘실패 같아 보이는 성공’과 ‘성공 같아 보이는 실패’의 극단적 이분법으로 구분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역자는 눈에 보이는 성공과 실패 뿐 아니라, 진짜 성공과 실패의 다양한 조합을 경험하지만, ‘성공 같아 보이는 실패’만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너무나 많은 사역자가 성공 같은 실패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대형교회로 성장시켰거나 대형교회의 목사가 됨으로써, 경탄할 만한 사역의 결과를 만들어냄으로써, 탁월한 설교자나 저술가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얻음으로써 말이다. 


반면, ‘실패 같아 보이는 성공’은 거의 항상 사역자 자신에게는 고난의 형태로 주어지는데, 이것을 말씀으로 잘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리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라는 고백을 가지고 씨름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사역자 자신에게 미치는 유익은 가히 헤아릴 수 없다. ‘실패 같아 보이는 성공,’ 이 고난의 콘텍스트 안에서 사역자가 성경의 텍스트를 만날 때,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달콤하게 사역자 자신을 변화시키는 은혜를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가 지나온 삶과 그의 말씀 사역은 수렴의 과정을 거쳐 점점 더 삶의 깊이가 녹아있는 말씀의 능력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실패해도 괜찮아!


당신이 이제 사역을 준비하고 있거나 사역의 길로 들어서는 길목에 서 있다면, 혹시 사역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당신은 이제 막 사역에 들어섰거나 이미 오래도록 사역을 해온 사역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실패를 맛보았거나 실패감에 젖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실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실패해도 괜찮아. 그것이 네 눈에 실패로 보이든 성공으로 보이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나이고 또 실패하든 성공하든 네가 언제나 내 아들이고 내 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렴. 실패해도 괜찮아. 그리스도가 이미 십자가에서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지 않았니?” 


청교도 목사 헨리 스쿠걸(Henry Scougal, 1650-1678)이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에 남긴 중요한 경구가 있다. “한 영혼의 가치와 탁월함은 그 영혼이 사랑하는 대상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이 말을 이렇게 고쳐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 사역자의 설교와 사역의 가치와 탁월함은 그가 사랑하는 대상에 의해 평가(측정)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일을 계속하라!

한 영혼의 가치와 탁월함은 그 영혼이 사랑하는 대상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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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형익

김형익 목사는 건국대에서 역사와 철학을, 총신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인도네시아 선교사, GP(Global Partners)선교회 한국 대표 등을 거쳐 지금은 광주의 벧샬롬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 ‘율법과 복음’, ‘참신앙과 거짓신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