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 설교에 대한 오해들
by 고상섭2021-07-21

그리스도 중심으로 설교를 할 때 성자와 성부 하나님과 분리된다는 말은 성경을 문맥에 맞게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이다. 신약성경에서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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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팀 켈러의 책들이 번역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관심이 높아진 만큼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도 함께 있는 것 같다. 특히 팀 켈러의 설교가 극단적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라고 비판하는 논문들도 등장하고, 행동이 강조되지 않아 적용이 없는 설교라는 비판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필자가 팀 켈러는 아니지만, 팀 켈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그 비판이 팀 켈러의 설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첫 번째 오해: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삼위일체 중심 설교를 해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성경에서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설교할 때 ‘그리스도 일원론’(Christomonism)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일원론 설교’란 삼위 하나님 가운데 오직 그리스도만을 별도로 강조하는 설교를 말한다. 그렇게 되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분리가 되어서 청중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대체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극단적 그리스도 일원론적 설교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팀 켈러가 말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서 ‘그리스도 중심’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만을 따로 떼어서 설교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드니 그레이다누스(Sidney Greidanus)는 그의 책 ‘구약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이레서원)에서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서 가장 많이 혼동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설교함’이라는 의미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게 말해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것은 성육하신 그리스도를 구속사의 전 영역이라는 문맥에서 전파하는 것을 의미했다. … 바울에게 있어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것은 모든 설교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만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그 이상의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만큼이나 광범위하다. …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것은 나사렛 예수님의 인성과 사역, 그리고 그의 가르침의 여러 국면들을 선포함으로써, 사람들이 그를 믿고, 신뢰하고, 사랑하며 순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를 ‘그리스도 일원론’으로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중심’이라는 말의 의미를 오해한 결과일 것이다. 프레드 샌더스(Fred Sanders)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복음이다’(부흥과개혁사)라는 책에서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와 삼위일체 중심적 설교는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동시에 삼위일체 중심적인 좋은 소식에 대한 단일한 선포가 존재한다. 삼위일체 교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교리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은 동일한 하나의 실제를 중심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위일체 중심적이 될수록 그만큼 그리스도 중심적이 된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것은 성부를 방각하는 것도, 성령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설교를 할 때 성자와 성부 하나님과 분리된다는 말은 성경을 문맥에 맞게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이다. 신약성경에서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3~24)


사도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 말하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마무리한다.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결코 하나님과 분리된 설교가 아니다. 삼위일체에 관한 이단들의 논란이 있었을 때 니사의 그레고리우스(Saint Gregorius of Nyssa)가 말한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Opera Trinitatis ad extra sunt indivisa” “삼위일체의 바깥으로 사역은 나눠지지 않는다.”


삼위일체를 공부할 때 성부, 성자. 성령으로 나누어서 내재적 삼위일체를 공부하는 이유는 인간의 이해를 위해서이지 사실 삼위일체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예수님은 성령님에 대해 말씀하실 때도 독자적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시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요 16:13~15)


신구약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성령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깨달을 수 있다. 결국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그리스도 일원론적 설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삼위일체적 설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드니 그레이다누스는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를 반대해서 극단적으로 ‘삼위일체적 설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일침한다.


“모든 설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에 대해 증거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설교자들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 신약의 서신들은 처음에 시작되는 인사말과 끝에 나오는 축도조차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11개의 신약의 서신서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라고 언급한다. 이런 신약의 언급이 ‘성령님’을 뺀 잘못된 설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 오해 : 은혜를 적용함으로 실천과 행위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단순히 사람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와 행위를 강조하지 못하게 되는 약점이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은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가 아닌 제3의 길인 복음을 제시해야 한다는 팀 켈러의 메시지를 잘못 이해할 때 생기는 오해들이다.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를 하게 되면 “~을 하지 말라” 또는 “~을 하라”는 적용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오해는 팀 켈러의 설교를 비평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팀 켈러의 설교를 처음 배워서 적용하려는 사람들에게서도 많이 제기되는 의문이다.


팀 켈러는 그의 책 ‘설교’(두란노)에서 이렇게 말했다.


“설교의 마지막을 ‘이렇게 살라’는 문장으로 끝내지 마라, 대신 ‘우리는 이렇게 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신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음으로 우리도 이런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로 마무리하라.”


이 말은 인간의 의지를 말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렇게 살라’라는 말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을 오해할 경우 의지적 행위를 촉구하지 않는 형태의 설교라고 오해할 수 있다. 박현신 교수는 ‘가스펠 프리칭’에서 팀 켈러 설교에 대한 비평을 하면서 “성화의 열매인 율법의 제3용법과 언약적 충성의 차원에서 은혜언약에 근거한 윤리적 적용과 실천에 대한 강조가 약화된 측면은 없는가?” 라고 물었다. 김창훈 교수는 위의 팀 켈러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브라이언 채플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앙을 왜곡’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팀 켈러와 브라이언 채플이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면 ‘비구속적 메시지’가 된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팀 켈러의 변증설교’의 저자인 박용기 목사도 팀 켈러의 설교의 약점 중의 하나는 ‘의지적 훈련을 약화시키는 설교’라고 지적하면서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자기 의지적 훈련이 결여되었다고 평가했다. 자기부인이라는 의지적 결단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행위와 의지를 약화시키는 잘못된 은혜 중심적 설교인가?


여기에 대한 답변은 팀 켈러가 ‘센터처치’(두란노)에서 제임스 스미스(James K. A. Smith)의 책을 언급한 것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제임스 스미스는 ‘습관이 영성이다’와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라는 책등을 통해 인간의 몸의 훈련을 강조하고 있다. 팀 켈러는 전반적으로 제임스 스미스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한 가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점은 지나치게 마음을 주장하거나, 지나치게 행동을 강조하는 모두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팀 켈러는 제임스 스미스가 지나치게 몸과 습관을 강조한다고 본 것이다.


“플라톤은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라고 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는 행동하는 대로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각이나 행동을 열쇠로 숭상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적 견해는 강의나 설교가 삶을 바꾸는 주요 통로라고 본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적 견해는 예전과 성찬을 주된 방법으로 본다. 그러나 열쇠는 마음에 있다. 마음의 헌신은 회개를 통해 바뀌게 된다. 토머스 크랜머(Thomas Cranmer)는 기도를 가르칠 때 ‘우리의 마음과 옹 몸이 세상적이고 육적인 모든 욕망들에 대해 죽게 하시며,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일에서 당신의 복된 뜻에 순종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다.”


팀 켈러는 은혜를 강조하면서 행위를 강조하지 않는 것을 플라톤적 견해라고 말한다. 또 행위를 먼저 강조하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적 견해라고 비판한다. 그럼 팀 켈러의 견해는 무엇인가? 토마스 크랜머의 기도처럼 마음의 회개가 일어난 뒤 하나님의 복된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팀 켈러가 말하는 복음의 핵심과도 같은 부분인데 ’복음과 복음의 결과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은혜만을 강조하는 것도 행위만을 강조하는 것도 아닌 순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은혜만을 강조하면 반율법주의자가 된다. 또 행위만을 강조하면 율법주의자가 된다. 이 둘을 피하면서 복음을 제시하는 제3의 길은 바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혜택을 분리하지 않는 즉,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팀 켈러는 의지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라”, “~하지 말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높이기 전에,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선포하기 전에 바로 의지적 적용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브라이언 채플(Bryan Chapell)은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타락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FCF, The Fallen condition focus)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인간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자기절망을 경험한 후에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우리 대신 행하셨다는 복음을 듣고 나서 그 은혜를 동기로 해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싱클레어 퍼거슨(Sinclair Buchanan Ferguson)은 ‘온전한 그리스도’(디모데)에서 팀 켈러가 말한 ’복음과 복음의 결과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 받은 혜택을 분리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다시 말해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칭의와 성화가 분리될 때 “~하라”, “~하지 말라”라는 메시지는 인간의 의지적 행위만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율법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 칭의와 성화가 분리되지 않을 때 “~하라”, “~하지 말라”는 말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그리스도가 대신 행해주셨다는 그 은혜의 동기로서 순종이 있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공로가 될 수 없다. 인간의 선행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감사일뿐이다. 만약 은혜와 선행이 분리된다면 그 선행은 결국 자기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팀 켈러가 말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성화를 강조하지 않는 설교가 아니다. 칭의의 은혜를 먼저 선포한 후에 성화를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팀 켈러는 좋은 설교자지만 완벽한 설교자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팀 켈러의 설교에 어떤 오류도 없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팀 켈러의 설교를 비평할 때 정확한 사실에 기초한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계몽주의 이후의 학문은 통합하기 보다는 분석하고 나누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논문이나 서평을 쓸 때도 반드시 아쉬운 점을 쓰는 것이 더 비평적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쉬운 점은 비평을 위한 비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가 삼위일체적이지 않다거나, 의지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은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부분에 대한 오해이기에 팀 켈러의 설교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삼위일체 중심적 설교를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설교이다. 또한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적용은 칭의와 성화를 연결하는 설교이기에 인간의 회개와 은혜의 반응으로서의 순종을 더욱 극대화 시키는 설교라고 말할 수 있다.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삼위일체 중심적 설교를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설교이다. 또한 팀 켈러의 그리스도 중심적 적용은 칭의와 성화를 연결하는 설교이기에 인간의 회개와 은혜의 반응으로서의 순종을 더욱 극대화 시키는 설교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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