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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에게는 어떤 친구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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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Matthew J. Hall  /  작성일 20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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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Kevin Gent on Unsplash

리더가 되는 일은 외로운 모험의 길을 걷는 것일까? 교계 안팎에서 리더십에 대한 권위 있는 이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리더에게는 대체로 외로움이 따름을 알 수 있다.


리더는 가끔 홀로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경험은 리더로 하여금 의사 결정과 중압감의 부담을 완전히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끼게 할 수도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전체 CEO의 절반이 자신의 업무와 관련하여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교회 리더들도 외로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교회 리더들에게는 짊어져야 할 고유한 부담들이 있다. 그런 그들에게 우정은 필수요소이다. 나는 제한적으로 리더의 역할을 부여 받은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 축에 속한다. 나는 경험과 반성을 통해, 즐겁고 효과적인 리더십을 위해서는 우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우정은 운이 좋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 그 이상의 것이다. 우정은 삶의 만족도를 높여 준다. 우정으로 인해 사람답게 사는 삶에 대해 배우게 된다. 감사하게도 교회 리더들도 그들을 위한 우정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


역사학자 마틴 마티(Martin Marty)의 현명한 말을 들어보자. “위인들의 삶에서 우정의 질이나 결여는 그들에 대해 다른 특징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나는 종종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서구 사회에서 살며, 우리가 오래된 진리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잠시만 생각해 보라. 기독교 역사에서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자신의 소명을 우정에 의존했다. 여기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계속해서 배우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배워 나갈 세 가지 교훈이 있다.


1. 참된 친구는 당신에게 진실을 말해 준다


우리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닮았다. 그리고 그런 우정의 기초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 본질적인 것이다. 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이 우정의 행위로써 피조물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하나님과의 교제는 진실을 말하기를 요청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으로서 경배와 신앙의 대상이 되신다.


가장 참되고 최상의 상태에 있는 인간의 우정은 이 진실을 반영한다. 친구들은 다른 사람들과 자신 그리고 복음에 대해 진실을 말해 준다. 리더십은 판단을 내리고 현명한 조치를 내리는 일에 달려 있다. 여기에는 리더가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판단이 필연적으로 개입된다. 나는 종종 나의 판단이 잘못된 정보에 기반했거나 불완전했음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때는 더 정확한 관점을 제공해 줄 참된 친구가 필요하다. 누군가 리더를 실망시킬 때, 그들을 해고하거나 관계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친구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설명해 줄 수 있다. 친구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들에 대해 최선의 상황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필요한 경우, 친구는 공동체의 사명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주의와 경고를 대신해 준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친구가 필요하다. 오직 진정한 친구만이 리더를 위해 그런 행동을 해 줄 수 있다.


또한 친구는 자신에 대한 진실을 알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리더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에 대해 취약하다. 죄와 교만은 자신의 약점들은 과소평가하고, 능력과 덕목들은 과장하는 일을 즐겨한다. 간혹 아부하기 위해서나 혹은 당신을 실망시킬까 두려워서 이런 사각 지대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는 선지자적 용기를 가지고 리더의 책임을 지적한다. 당신은 친구를 교만으로부터 당신 자신을 지켜 주는 은혜의 선물로 보는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크리스천 친구는 우리에게 복음에 대해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우리 앞에서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용어들로 복된 소식을 상기시켜 준다. 친구는 리더에게 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과 매일 구원의 은혜가 필요함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모든 좋은 것들은, 심지어는 리더로서의 역량까지도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임을 상기시켜 준다. 또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에서의 성공이나 지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정체성을 발견하는 일임을 일깨워 준다. 진정한 친구는 사라져 버릴 세상의 것이 아닌, 영원히 지속될 하늘의 것에 희망을 갖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2. 참된 친구는 자기의 유익이 아니라 사랑으로 움직인다


우정은 선호적인 사랑이다. 기독교적 우정은 우리가 다른 이들을 자신보다 더 선호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지만, 참된 우정을 갖기는 쉽지 않다. 우리의 삶은 필요에 의해 우호적인 문화를 요구하는 제도들과 조직들 속에 묻혀 있다. 우리는 복도에서, 회의에서, 사교석상에서 동료들을 만난다. 온정, 예의, 우호적인 선의의 문화는 분명 건강한 조직적 기풍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직업적인 대화들과 순수한 거래 관계를 뛰어 넘는 참된 우정은 보기 드문 선물이다.


그 이유는 만물의 태초에 기초하고 있는 오래된 진실이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창조되었다. 이 계획의 중심에는 사랑의 역동적 힘이 자리 잡고 있다. 이기심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들을 거래의 기회로 삼게 한다. 그리고 안정, 동의, 확인, 쾌락을 위한 나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도구화하게 한다. 그러나 삼위일체적 관계 속에서 흘러 넘치는 사랑은 자신을 추구하지 않는다. 사랑은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다.


우정의 상업화는 우리로 하여금 셀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게 한다. 심지어 사람들을 일종의 서비스로 바라보게 한다. 내재적 삼위일체  안에 있는 기쁨의 교제를 본받는 대신 우정은 훨씬 더 가치가 떨어지는 목적을 위해 이용되기도 한다. 죄로 인해 우리 모두는 우정에 있어 왜곡되고 편향되어 있다. 교회 리더들은 이기심이 교묘하게 우정으로 가장하는 구체적인 방식들에 대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정의 모습을 한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분명 치명적인 모조품이다.


3. 참된 친구는 당신의 리더십이 실패했을 때도 곁에 남는다


일정한 시점이 되면 당신의 리더십은 약화될 것이다. 이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하지만 실패는 이 과정을 가속화시킨다. 친구들처럼 보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성공의 시절을 보내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의 회사가 망하고 조직이 파산하거나 또는 당신이 더 이상 역량과 기술로 명성을 얻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는가?


성경에는 우정을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 17:17).


인생을 살다가 위기의 순간을 만나면 당신의 형제자매들이 함께할 것이다. 그러나 친구들은 삶의 모든 순간에 당신과 함께한다. 형제자매는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우정에는 우정을 훨씬 달콤하게 만드는 자발적인 성질이 있다. 친구는 우리를 거부하고 물리칠 수 있다. 이러한 선택적인 역학은 우정을 위협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사랑을 위한 잠재력이 드러나기도 한다.


당신이 만일 리더이고 주변에 친구들이 많다고 자만한다면, 너무 확신하지 말기 바란다. 한편, 직업적 관계의 피상성과 기회주의적 성격을 너무 의식하여 냉소적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라. 훨씬 더 성경적이고 현명한 전략은 현실주의적으로 관계에 접근하는 것이다. 냉소주의는 당신의 외로움을 악화시키고, 타인을 불신하게 만들며, 우정의 기쁨을 누릴 기회를 빼앗을 것이다. 현실주의는 당신에게 참된 우정의 가치를 밝은 눈으로 보게 할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로 인해 실망감을 느낄 때, 환멸로부터 당신을 지켜 줄 것이다.


참된 친구는 모든 이들이 떠났을 때에도 계속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충성과 신실함은 우리에게 더 큰 실재를 보여 준다. 즉 우정을 완전하게 지니고 계신 분, 바로 하나님이라는 실재를 보여 주는 표지가 된다. 한 찬송가의 가사가 이를 확실히 보여 준다. “죄인들의 친구 예수여! 내 영혼의 사랑 예수여! 친구들은 날 버리고 대적들은 날 해하나 구주는 날 온전케 하시네.”


면식 관계와 친구


아마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친구의 수는 적을 것이다. 사회관계망(SNS)과 유사 우정의 시대 속에서, 우리를 쉽게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하는 유해한 모조품들이 존재한다. 당신에게는 아마도 수백 명의 ‘지인’들이 있을 수 있지만, 진정한 친구는 서넛 정도 밖에 없을 확률이 높다. 이 말이 실망스럽게 들리는가? 당신은 아마도 우정의 본질을 오해했거나, 잘못된 기대들로 인해 반복적으로 좌절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C. S. 루이스가 우정과 교제를 구별한 설명에 혼란스러워 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우정은 둘 또는 그 이상의 동료들에 의해 발생한다. 곧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지 않아서 마지막까지 자신만의 고유한 보물(또는 부담)이라고 믿었던 어떤 통찰이나 관심, 혹은 선호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의 순수한 교제로부터 출발한다.”


다시 말해, 우정은 “뭐라고요? 당신도요? 나는 내가 유일한 줄 알고 있었는데”라는 말들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원제: The Kind of Friend Every Leader Needs
번역: 주영식
작가 Matthew J. Hall

매튜 J. 홀(PhD, University of Kentucky)은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며 교무처장과 교육행정 부학장을 맡고 있다. 'Essential Evangelicalism: The Enduring Legacy of Carl F. H. Henry'의 공동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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