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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찾는 지성인에게 기독교는 가장 안전한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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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Brett Mccracken /  작성일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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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lex Block on Unsplash

객관적이고, 초월적이며, 또한 모든 사람에게 진실이 되는 하나님의 진리는 제한적이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를 검열하는 진리도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에는 자유함과 세상을 넓히는 확장성 그리고 활력을 불어넣는 목적이 있다. 그 진리는 지적 추구를 위한 공통된 언어와 방향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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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사고, 두려움 없이 나누는 열린 대화, 인기 없는 소수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의지, 이런 자세는 이제 조지 오웬(Orwellian)이 경고했던 세상, 사상 경찰에 의해 더욱 감시받는 사회에서는 멸종의 위기에 처한 종(species)이 되어버렸다. 철저한 충성(adherence)의 요구라는 신조와 함께 새롭고도 근본주의적인 세속 종교가 등장했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 여성도 여성이다”와 같이 어떤 세속적 신조가 가진 논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증오받아 마땅한 이단자로 스스로를 낙인 찍는 행위가 된다. 오늘날 현존하는 정통에 논리적으로 도전하는 책은 지금 아마존에서 금지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무신론자의 영웅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트랜스젠더리즘에 대한 새로운 정통성에 대해 (매우 논리적인) 질문을 담은 트윗을 게시한 사실 때문에, ‘자유로운 사상(freethinkers)’을 옹호하는 것이 조직의 존재 목적 중 하나라고 명시적으로 표명한 무신론자 조직에서 탈퇴 당하게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미국 휴머니스트 협회는 트랜스젠더리즘이라는 용어에 관한 새로운 정통성 부여에 관한 도킨스의 매우 합리적인 트윗을 논하기보다는 그의 트윗을 시대를 역행하는 오류(retroactive cancellation)의 근거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상의 옹호’라는 말 속에 단지 주류의 생각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제명(canceling)해도 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랜 기간 편협하고 반지성적이며 또한 어려운 질문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비난받아 온 기독교가 서구 문화가 유발한 빈틈을 채울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하나의 반전이다. 논쟁의 대상이 되는 문제에 대해 언제 어떻게 또는 과연 공개적으로 말하는 게 가능이나 한지에 관해서 조마조마해야 하는 오늘날 사회에서 기독교는 호기심 많은 질문자, 의심을 품은 반체제자, 그리고 당파적 서사가 우위를 점하는 세상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로 가득한 안식처가 될 수 있다. 


비록 최근에 들어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기독교는 그래도 지난 이천 년 동안 인류 지성의 토대가 되어왔다. 간단히 말해서, 그런 기독교에게 오늘날 다시 한번 과거처럼 가장 비옥한 지적 토대가 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진정 풍요로운 지적 문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린, 기독교처럼 결코 흔들리지 않는 초월적 기초 위에 세워져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토대가 없다면, ‘진리’에 대한 모든 담론은 임의적이며 결국에는 권력 투쟁으로 이어질 뿐이다. 모든 주장은 공유된 지적 프로젝트를 구축하는 건설적인 벽돌이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 또는 나와 다른 정체성에 상해를 입히는 탄약에 불과하다. 


성경적 토대가 지적 호기심에 영감을 주어야 한다


담론에 대한 세속적 접근은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해체로만 이어질 뿐이다. 진리에 대한 합의를 얻을 능력 자체가 없는 세속주의는 취소, 비난, 금지, 침묵만을 자행한다. 이 모두는 다 근본적인 파괴다. 그러나 기독교적 접근 방식에는 토대를 놓을 견고한 기반이 있기에 얼마든지 건설적으로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쓴 ‘지혜의 피라미드(Wisdom Pyramid)’ 속 표제에서 성경이 모든 지혜의 기초가 되는 이유다.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은 ‘단단한 기초’를 이루는 수평적 토대가 될 뿐 아니라, 그 토대 위에 놓이는 모든 지식 체계가 흔들리지 않고 고정될 수 있도록 하는 수직적 질서까지도 제공한다. 인간은 책, 예술, 자연/과학, 이성, 공동체, 생생한 경험과 같은 모든 종류의 자료를 사용하여 지식을 구축할 수 있지만, 그것들이 흔들리지 않는 기반 위에 구축되지 않는 한 결코 구조적으로 건전한 지식이라고 말할 수 없다. 


객관적이고, 초월적이며, 또한 모든 사람에게 진실이 되는 하나님의 진리는 제한적이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를 검열하는 진리도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에는 자유함과 세상을 넓히는 확장성 그리고 활력을 불어넣는 목적이 있다. 그 진리는 지적 추구를 위한 공통된 언어와 방향을 제공한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유롭게 하는 진리’(요 8:32)다. 자유를 주는 이 진리는 옥스포드, 하버드 및 대부분의 위대한 대학을 창립하게 했을 뿐 아니라 번영에 필요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Nicholas Copernicus), 블레이즈 파스칼(Blaise Pascal), 아이작 뉴턴(Isaac Newton)과 같은 인물들이 이룬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견과 혁명적인 아이디어의 바탕이 된 진리도 바로 이 진리다. 수많은 예술가, 작가, 철학자에게 생명을 주는 깨달음과 탐험의 원동력을 제공한 진리이기도 하다. 


C. S. 루이스의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태양이 떠올랐음을 믿는 것과 똑같은 원리로 기독교를 믿는다. 내 눈으로 태양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태양으로 인해 다른 모든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지적 안일함을 흔들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신비한 깊이를 더 탐구하도록 만드는 흔들리지 않는 진리다. 이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광범위하게 읽고 공부하도록 독려하며 또한 나와 다른 생각의 상대적인 장점을 평가하는 프레임을 제공한다. 또한 이 진리는,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또 거짓인 각종 사상으로 가득한 이 타락한 세상을 탐색할 때 방향을 잃고 좌절하지 않도록 바른 길을 제공하는 나침반이기도 하다. 


교회에 닥친 도전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역사를 되돌아볼 때 성경 속에서 심오한 지적 에너지와 호기심을 위한 촉매제를 발견하는 기독교인은 거의 없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R.C. 스프로울(R.C. Sproul)이 지적했듯이,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의 바른 의미는 단지 성경이 기독교인에게 유일한 권위라는 것이 아니라 성경만이 유일하게 오류 없는 권위라는 사실이며, 이 말을 모든 기독교인이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지적 싸움을 할 때 우리는 언제나 성경으로 시작해야 하지만 반드시 거기서 끝날 필요는 없다. 성경의 무오성은 우리로 하여금 타락한 창조 세계로부터 배우는 자유뿐 아니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자유까지 제공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성경에 눈을 뜬 기독교 공동체는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으로 비옥한 공동체가 되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이 오히려 황당하게 들린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 기독교 역사가 제공하는 지적 풍요로움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문화 현실은 교회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 캠퍼스는 이제 상호간 대화와 그룹적 사고라는 측면에서 동질적인 단일체다.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유익한 공간이라는 말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오늘날 소셜 미디어다. 소셜 미디어에서 대중이 가진 ‘상식(commons)’은 이제 리처드 도킨스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단 한 번이라도 주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소셜 미디어는 한마디로 폭탄으로 가득한 지뢰밭이 되어버렸다. 이런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교회와 기독교 기관이 가장 흥미롭고 은혜로 가득 찬 지적 활력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이 얼마나 놀라운가? 


물론 여기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1. 어려운 질문을 반갑게 받으라


교회에서 양육된 많은 젊은이들이 기독교 신앙을 해체하는 여행 속으로 들어서는 이유는 그들에게 교회가 결코 의심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안전한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에서 과연 이런 질문을 해도 될까?” 이런 의문은 너무도 흔할 뿐 아니라 안타깝게도 너무도 당연한 두려움이다. 수많은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가 의심하는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질문을 막거나 어려운 교리를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좋지 않다! 활기찬 지적 문화를 교회 속에 회복하려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교회가 어려운 질문에 대한 안전한 장소가 되겠다는 의지를 가질 때에만 가능하다. 카렌 스왈로우 프라이어(Karen Swallow Prior)는 TGC가 출판한 그의 새 책, ‘신앙을 버리기 전에(Before You Lose Your Faith)’에서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지적했다. “올바른 방식으로 묻는 올바른 질문은 진리로, 그것도 참 진리(the Truth)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신앙을 버리기 전에 기독교에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라. 우리가 손에 쥔 것이 지적 건설을 위한 도구인 반면에 세상이 갖고 있는 것은 오로지 해체를 위한 도구라는 것을. 똑똑한 아이들, 호기심 많은 예술가, 과학자, 그리고 ‘자유 사상가’까지도 환영받고 영감을 받는 환경을 우리 기독교가 조성해야 한다. 세상은 플랫폼을 해체하고 또한 거부하며, 자유로운 토론마저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 모두를 수용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두려운 것이 없다. 하나님의 진리는 무한히 견고하며 우리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면밀한 까다로운 조사까지 다 이겨낼 수 있다. 선의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던지는 질문(잠 9:10)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에서 더 많은 층(layer)을 발굴하고 그 안에서 더 많은 보물을 발굴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2. ‘비핵심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너그럽게 반대하는 모델을 만들어내라


기독교인들이 지적으로 관대하고 ‘열린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내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선언하는 진리에 관해서까지 ‘마음을 닫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신앙의 지적인 활력은 정통 기독교인들이 수천 년 동안 믿어 왔던 명백한 ‘핵심 고백(first things)’에 대한 분명한 합의에 달려있다. 교회의 지적 건강을 위해서 단지 ‘대화’를 위한 대화 자체를 목적으로 삼거나 또는 이단적이고 명백하게 비정통적인 사상에까지 대화의 발판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건전한 토론과 ‘비핵심적인 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탐구는 교회가 과거보다 지금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 Z세대는 기독교 장로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담론을 보며 그것이 트위터에서 만나는 싸움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욕하기, 논리적 오류, 그리고 인종주의적 배타주의(깨어나라! 인종 우선! 가부장제! 백인 우월주의!)는 의미 있는 대화 자체를 가로막는다. 아이디어는 날카로울 수 있지만 어조는 부드러우며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는 실제적이고 실질적이며 또한 너그러운 토론 방법을 만들어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다 진리를 찾는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핵심’과 ‘비핵심’을 결정하는 것조차 열띤 논쟁을 부르는 문제다. 신학적 분류는 중요하고 도전적인 목회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우리에겐 두려움 없이 함께 해야 할 또 하나의 대화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함께 대화하자. 


3. 호기심과 비판적 사고를 키우라


‘자유로운 사고’는 경계가 없이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내 눈에 맞는 대로 생각한다의 동의어가 아니다. 참으로 자유로운 사고는 탐구를 강화하는 초월적인 진리로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 동료 크리스 콜킷(Chris Colquitt)이 성화된 개인주의(sanctified individualism)라고 이름 붙인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기초해서, 기독교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항상 홀로 설 준비가 되어있음.”


기독교인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상가가 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진실을 상대화하는 당파적 의제에서 벗어나라. 총체적인 주관성이 주는 무의미함에서 자유로워지라. 주님의 말씀과 상충되는 시대의 정신을 거스르는 자유함이 있는가? 가능한 곳에서 시대 정신(zeitgeist)의 한 측면을 긍정하면서도 또한 반대할 것을 분명히 반대하는 용기가 있는가? 세상에 넘치는 책, 영화, 강의, 그리고 논쟁을 접하길 두려워하지 말라. 그 속에는 진리도 있지만 거짓도 있다. 전자로부터 배워서 후자를 버리거나 거기에 도전하라. 


그러나 이런 자세는 교회뿐 아니라 오늘날 세상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도움이 되는 생각과 해로운 생각이 모두 포함된 작품을 감상하고 씨름하면서, 그 속에서 숨은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하나의 능력이다. 예를 들어, 너무도 자주 우리는 책에 있는 모든 내용을 무의식적으로 다 받아들이기도 하고 또는 그 반대로 무조건 무시하고 읽기조차 거부한다. 그러나 인간이 쓴 대부분의 책에는 옳고 그름이 섞여 있다. 이런 혼합된 가방 속에서 진주를 찾아내는 게 바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기독교인이여, 우리가 이런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의 피난처


오늘날 이 세상에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한 피난처란 거의 없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과 창의적인 사상가의 특정 질문이나 반대되는 생각에 대해서까지 충분히 편안하게 느끼면서 토론하는 포럼은 거의 없다. 교회여, 지금 이런 기회를 포착하여 우리의 세속적인 이웃을 교회로 초대하자.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전율을 주는 지적 커뮤니티를 그들이 경험하도록 만들자. 


차마 트윗에는 할 수 없는 질문이 있는가? 교회에서는 해도 된다. 비슷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 진리를 발견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가? 우리도 그렇다. 리처드 도킨스 씨? 당신도 여기 와서 우리와 함께 대화를 나누자. 얘기하다 보면 동의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하겠지만, 당신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한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원제: Christianity Can Be the Safest Space for Truth-Seeking Intellectuals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참으로 자유로운 사고는 탐구를 강화하는 초월적인 진리로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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