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를 분별하는 ‘듣는 마음’
by 이종훈2021-03-17

여기서 ‘듣는 마음’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백성들의 하소연을 잘 들을 수 있는 마음이고, 둘째는 그런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잘 아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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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왕상 3:26)


성경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는 바로 솔로몬 왕일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왕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이런 모습을 좋게 여기셔서 솔로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을 하십니다. 그때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솔로몬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을 알지 못하고 …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까.” 즉, 솔로몬은 자신은 너무 어리고 그가 다스려야 하는 백성들의 숫자는 많은데 자신이 어리석어서 백성들을 제대로 통치하지 못할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을 잘 재판하여 선악을 잘 분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간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솔로몬을 지혜롭게 한 기도입니다. 여기서 ‘듣는 마음’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백성들의 하소연을 잘 들을 수 있는 마음이고, 둘째는 그런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잘 아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솔로몬의 ‘듣는 마음’을 잘 드러내는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입니다.


어느 날 두 여인이 솔로몬을 찾아와 재판을 청합니다. 그 두 여인은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창기입니다. 그리고,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밤중에 실수로 자기 아들 위에 누워 어린 아기가 죽게 되자, 이 여인이 자기의 죽은 아이를 한 집에 살고 있던 다른 여인의 아이와 바꿔치기를 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여인이 서로 살아있는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친자 확인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 그런 방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 집에는 두 여인만 살고 있어서 이 아이가 누구의 아이다라고 판단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 아이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놀라운 판결을 내립니다. 살아있는 아이를 반으로 나누어서 두 여인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황당하기까지 한 판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황당한 판결에 두 여인의 반응이 갈립니다. 한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내가 100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0점을 받으면 그 사람은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또는 내가 100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100점을 받는다면 물론 내가 100점 받은 게 기쁘기는 하지만 나 혼자 100점을 받았을 때만큼 행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0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0점을 받았습니다. 내가 0점을 받은 것 때문에 속은 상하지만 다른 사람도 0점을 받았으니 그나마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내가 0점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은 100점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은 아마 가장 최악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처음에는 내가 100점 받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점점 내가 100점 받는 게 쉽지가 않다면 다른 사람이 0점 받기를 은근히 바라게 됩니다. 이유가 뭘까요? 최악은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내가 잘 되는 것 이상으로 남이 잘 안 되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 점점 커지기 시작합니다.


“내 것도 되지 말고, 네 것도 되지 말게 하자”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둘 다 0점이 되자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나는 0점인데 상대방은 100점이면 내가 너무 비참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둘 다 0점이 돼서 내 최악의 비참함은 피해 보자는 것입니다.


여기 인간의 죄성이 있습니다. 내가 소망을 잃어버리면 다른 사람도 소망을 잃어버리길 바랍니다. 내가 비참해지면 다른 사람도 비참해져야 내가 조금 덜 비참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내 인생에 소망이 끊어진 사람은 때때로 다른 사람 역시 자신처럼 비참해지기를 바라며 삽니다. 이것이 범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엄마는 어떻게 합니까?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진짜 엄마는 마음이 불붙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 아이를 안 가져도 좋으니 이 아이가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내가 엄마 안 해도 좋으니 이 아이가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이것이 진짜 엄마입니다. 가짜 엄마는 자기의 비참함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 다른 아이가 죽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진짜 엄마는 자기 아이를 살리기 위해 엄마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즉, 아기를 살리기 위해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고 자기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하늘의 보좌를 포기하시고 이 땅에 내려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 아들의 권리를 포기하시고,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진짜 목회자라면 교회를 살리기 위해 자기의 자존심을 포기합니다. 그런데 가짜 목회자는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교회를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진짜 성도는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자기의 권리를 포기합니다. 그런데 가짜 성도는 자기의 권리를 위해 공동체를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아기에 대한 태도를 보고 진짜 엄마와 가짜 엄마를 구별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대한 태도, 공동체에 대한 태도를 본다면 우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내가 진짜라면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이들의 덕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짜라면 내 자존심을 위해 그리고 내 이익을 위해 공동체를 죽이는 것에 아무 갈등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러한 기준을 갖는다면 진짜와 가짜를 쉽게 분별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어디서 올까요? 바로 ‘듣는 마음’이 있을 때 이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셨던 듣는 마음이 있어서 나를 잘 분별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잘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진짜 목회자라면 교회를 살리기 위해 자기의 자존심을 포기합니다. 그런데 가짜 목회자는 자기의 자존심을 위해 교회를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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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종훈

이종훈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와 장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온누리교회와 호치민 온누리교회, 시드니 새순교회 부목사를 거쳐, 현재는  부산 구덕교회 담임 목사와 TGC코리아 이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