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사대(字小事大)와 주체적인 언약 관계
by 노승수2020-12-12

사대란 기본적으로 윗사람을 잘 섬기는 원리며 자소란 아랫사람을 아낄 줄 아는 원리이자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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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고전인 사서오경 중에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며 공자가 직접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춘추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워낙 간략해서 주석 없이 볼 수가 없는데 잘 알려진 주석으로는 춘추곡량전, 춘추공양전, 그리고 춘추좌씨전이 있다. 이 책은 춘추 시대 노나라의 역사를 주로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 춘추 좌씨전이 가장 유명하며 거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예(禮)라는 것은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기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아끼는 것을 말한다(禮也者, 小事大, 大字小之謂).”

여기서 온 말이 “사대주의”다. 사대주의는 사대를 매우 부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제 식민사관(植民史觀)의 산물이기도 하다. 주체성을 결여한 노예근성이라고 일본이 우리에게 붙인 꼬리표다. 사무라이들의 복종으로 특징지어지는 질서를 일본인들이 한국을 지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우리 민족의 사대 전통을 왜곡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춘추에 나오는 자소사대(字小事大)는 국제 질서이기 전에 인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예절이라 할 수 있다. 큰 자는 어린 자를 아끼고 어린 자는 큰 자를 섬기는 질서는 정치 질서 이전에 우리 사회의 근간이었다. 국제관계에서 조선이 명나라와 사대외교의 구체적인 예시라 할 수 있는 조공무역에 관한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고 사대의 구체적 의미를 들여다보자.


의정부에서 무역하여 바꿀 말 값을 정하였다. 큰 말 상등 값은 상오승포(常五升布) 500필, 중등 값은 450필, 하등 값은 400필이고, 중말 상등 값은 300필, 중등 값은 250필, 하등 값은 200필로 정했다(태종실록 1년 10월 3일)


 호조에서 상계하였다. '말을 올린 야인(野人: 여진족)에게 답례로 내려주는 물품은 큰 말의 상등은 면포 45필, 중등은 40필, 하등은 35필로 하며, 중질 말의 상등은 30필, 중등은 25필, 하등은 20필로 하며, 작은 말의 상등은 15필, 중등은 10필, 하등은 6필로 하는 규례를 정하게 하소서'  이에 그대로 따랐다(세종실록 8년 1월 7일).


조공무역의 주요 품목은 말과 포였다. 명에 보내는 말 값이 상등품은 500필이고 여진에 보내는 말의 상등품은 45필이다. 당시 평균적이 말 가격은 30필 정도였으니 거의 17배 정도의 시세차익이 발생한다. 그에 비해 작은 나라인 여진에 대해서는 말의 시세가 면포 30필 정도였음에도 45필로 정해 더 많은 금액을 사여(賜與. 하사품)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번은 명나라가 나중에 사여를 할 테니 말을 먼저 달라고 했지만 태종은 거절했다. 이처럼 사대(事大)는 자소(字小)를 배경으로 한다. 오히려 섬기는 쪽이 큰 이득을 보는 구조를 하고 있으며 태종의 거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굴종이나 복종을 의미하지 않으며 주체적인 외교질서를 의미한다.


사대란 기본적으로 윗사람을 잘 섬기는 원리며 자소란 아랫사람을 아낄 줄 아는 원리이자 힘이다. 사실 한국인에게는 이게 몸에 베여 있다. 예일대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 홍유니가 "눈치의 힘(The Power of Nunchi)"이라는 책을 썼는데 눈치는 번역할 적당한 영어 단어가 없는 단어다. 한국인의 이 눈치가 바로 자소사대의 원리다. 공동체 의식의 발로이자 이웃과 더불어 사귀면서 윗사람을 잘 섬기고 아랫사람을 아끼는 사대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뉴욕의 할렘가 극빈층 거주 지역에 극빈층 아이들을 완전 한국의 교육방식을 그대로 이식해서 가르치는 데모크라시 프렙 공립학교(Democracy Prep Public School)는 80프로 정도의 학생이 미국 명문대에 진학하는데 이 학교가 가르치는 것이 한국의 정신이 바로 사대 곧 윗사람에 대한 존경이다.


한국인의 위기를 극복하는 국난 극복의 DNA에는 모두 이웃을 배려하는 사귐의 정신과  윗사람을 잘 섬기고 아랫사람을 아끼는 자소사대의 전통에서 온 것이다. 예를 들어, IMF 때의 금모으기, 태안 기름 유출 사건에 보인 전 국민의 자원봉사, 세월호에서 보인 이웃에 대한 배려가 사대의 힘이다.


조선의 선비가 언제 왕의 말만 듣고 그 말에 동의만 했던 적이 있는가? 예문관은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기록했다. 생전에 임금은 자신의 사초를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사후에 작성된 실록은 전국 4개의 서고에 보내져 그 기록을 후손에 보존했다. 여기 임금을 섬기는 조선의 선비의 사대에 어디 사대주의가 있는가? 오히려 왕권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의 기개와 질서가 있다. 사대주의적 굴종은 일본의 사무라이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조선의 선비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군신 간에 의가 있고 부부 간에 구별됨이 있고 부모자식 간에 친밀함이 있는 이 원리가 사대의 힘이다. 고려가 상인으로 유명했던 것 역시 사대하면서 주체적인 한국인의 특성 때문이다. 서희가 강동 6주를 외교로 얻은 것도 이런 주체적인 힘이다.


그런데 이런 정신은 성경의 언약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언약 공식이라고 알려진 출애굽기 19장 5절,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에서 “소유(segullah סְגוּלָּה)”라는 단어는 원래 고대 근동의 외교문서에 나오는 정치 외교적 단어다. 신명기 26장 18절에서는 “보배로운 백성(segullah סְגוּלָּה)”이라 번역했고 말라기 3장 17절에서는 “나의 특별한 소유”라고 번역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언약 관계와 언약 백성이 보석으로 비유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계시록 21장에서 어린양의 신부를 보이리라고 하면서 새 예루살렘이 나타나는데 이는 모두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으며 이 보석은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를 보여준다. 이 단어는 고대 근동의 종주, 곧 큰 자가 봉신 곧 작은 자들을 부르던 말이다. 종주가 봉신을 내 보석이라고 부른 것이다. 여기에 바로 자소의 원리가 들어 있으며 그렇게 사랑을 받는 봉신은 종주를 향해서 사대의 예를 다 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 고대 근동의 정치 질서에 세례를 베풀어 성경의 언약관계를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신학적 개념으로 삼았다. 동아시아의 정치질서인 군신간의 의(義)는 다말이 그 남편에 대한 의리를 다하고자 자신의 시부 유다와 동침하여 후손을 얻고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계보에 든 사건에서의 다말의 의와 거의 같은 개념이다. 자소사대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때 그것을 성경은 의라고 표현한다.


춘추에서 사대는 큰 나라를 잘 예우하면서 그것으로부터 제대로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시아가 유럽과 같은 많은 전쟁이 없이 근대의 시기를 보낸 것도 바로 이 자소사대의 정치 원리에 기대어 있기도 하다. 한국인은 항상 외국과 자신을 비교한다. 선진국의 모습을 보며 배우려 한다. 그런데 이제 더 배울 데가 없는 자리에 왔다. 한국의 이런 비약적인 발전은 패스트 팔로워를 넘어서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된 이 힘에는 주체적인 사대의 힘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 사대는 미국의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처럼 세계에 봉사하는 정신으로 거듭나는 지점에 와 있기도 하다. 이 미국의 예외주의의 기원은 청교도들이다. ‘언덕위의 도시(A city upon a hill)’를 건설하고자 했던 이들이 바로 이 예외주의 탄생의 주인공들이다.


최근 미국의 한 언론은 이 미국적 예외주의를 한국의 방역모범에 적용해서 기사를 냈다["한국의 코로나19 예외주의 이면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What's Behind South Korea's COVID-19 Exceptionalism”, The Atlantic, May. 6. 2020,)]. 한국 사회와 국가가 이런 평가를 받는다면, 하나님을 사대하며 주님으로부터의 자소를 입은 언약 백성인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얼마나 더 성숙하고 거룩한 삶과 공동체로서 이 세상 속에서 소금이며 빛이어야 하겠는가? 우리는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가?

하나님을 사대하며 주님으로부터의 자소를 입은 언약 백성인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얼마나 더 성숙하고 거룩한 삶과 공동체로서 이 세상 속에서 소금이며 빛이어야 하겠는가? 우리는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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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승수

노승수 목사는 경상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학위(MDiv),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핵심감정 시리즈(탐구, 치유, 성화, 공동체)’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