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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진리 vs 찾아오는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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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정요석  /  작성일 20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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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Phuong Nguyen from Pixabay

시인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도록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말하였다. 실로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의 관점에서는 잎새에 이는 바람조차도 살인과 간음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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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교회를 떠나 10년간 방황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삼국지, 수호지와 같은 역사 소설을 읽으며 다양한 리더십에 관해서 배웠지만, 정작 깨달은 것은 등장인물이 모두 죽는다는 것이었다. 죽음 앞에 모든 의미를 잃어버리는 허무감은 점점 심해졌다. 그 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했는데 찾지 못하고, 중학교 졸업 무렵에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고등학교 때 진리를 찾아 불교에 입문하였고, 대학교에 가서도 허무감을 극복하기 위해 청년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열심을 내었다. 그때 현각(玄覺)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요사이 ‘현각’과 ‘혜민’이라는 두 명의 스님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나와 동년배이자 같은 법명의 현각 스님은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장차 신부가 되길 꿈꾸며 성장했다. 하지만 신정론(神正論)의 의문을 갖던 중 16살의 동갑내기 사촌이 사고로 죽는 것을 보면서, 신앙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그때 키에르케고르를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믿음에서 출구를 찾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키에르케고르의 철학 중 석연치 않은 부분이 생겼다. 그의 철학을 곰곰이 따져보면 결론은 결국 ‘하느님’과 ‘믿음’으로 돌아간다는 점이었다. 신 앞에 홀로 던져진 나약한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수긍이 갔지만 결국 그 진리란 신을 확실하게 믿음으로써 발견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멈칫했다.”


그 후 현각은 “진리란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오직 참선과 수행을 통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말한 쇼펜하우어에게 큰 감명을 받았고, 보스턴의 유명한 교회 목사였다가 철학자가 된 에머슨의 “진리란 우리 안에 있다”라는 말에 심취하였다. 1989년 9월, 그는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하던 중 숭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를 결심했다. 3년 후인 1992년 9월에 “나는 나 자신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세상 고통의 본질에 대한 이 심오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그 수많은 철학책,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가르침을 받았던 종교는 나에게 해답을 주지 못했으므로 나 혼자서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라고 말하며 출가했다.


현각은 기독교의 믿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진리와 구원을 얻고자 했다. 그는 아직도 믿음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득도하기 위해 여전히 하안거와 동안거라는 3개월간의 고행과 참선을 한다. 스스로 진리를 찾기 위해서이고, 자기 안에 진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자력 구원의 모습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혜민 스님은 무소유를 말하였지만 실제로는 ‘풀(Full)소유’임이 드러나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현각은 혜민에 대하여 “그는 단지 사업자/배우뿐입니다. 진정한 참선하는 경험이 완전 없다고 합니다. ……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아먹는 지옥으로 가고 있는 기생충일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2008년에 조계종 승려가 된 혜민의 비판 중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지난 12년 동안 하안거와 동안거를 했다는 기록이 승적에 없다는 것이다. 스님들은 스스로 진리를 찾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에 90일 동안 한 곳에 머물며 수행에 몰두한다. 하안거와 동안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진리를 향한 치열한 정진이 적었다는 뜻이다. 현각이 혜민을 비판하는 것은 혜민의 풀소유 문제도 있지만, 하안거와 동안거로 대변되는 치열한 구도의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거나,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다. 사람 중 마음에 떠오르는 순간적인 생각까지도 통제할 자가 어디에 있는가? 시인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도록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말하였다. 실로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의 관점에서는 잎새에 이는 바람조차도 살인과 간음에 해당한다.


바울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기에 율법의 행위를 통해 의로움에 이르려는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다고(갈 3:10) 말한다. 외형적으로는 모든 율법을 늘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음속으로까지 모든 것을 늘 지킬 자는 아무도 없다. 바리새인들은 외형적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자신들이 율법적으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이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저주하셨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도 없도다. 사람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다(롬 3:10-15). 사람들의 악독함이 얼마나 심하면 긍휼함이 풍성하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께서 노아의 가족 8명을 빼고 모두 홍수로 죽게 하셨겠는가?


사람의 마음에서는 선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 나온다. 이 모든 악한 것이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지, 절대로 선한 것이 나와 사람을 깨끗하게 하지 않는다(막 7:20-23).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사람들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다(고전 2:9). 타락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생명과 구원에 대하여 마음으로 개념조차도 갖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로 그 생명과 구원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하시므로 우리가 깨닫는 것이지 절대로 우리의 힘으로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받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생명과 구원을 알게 된다(고전 2:1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마저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중학교 이후 10년 동안 허무함에 빠진 삶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쳐진다. 허무가 밀려오면 공부도, 운동도, 어떤 것도 즐겁지 않고 의미가 없었다. 허무감은 피부를 벗기고 뼈를 깎는 고통만큼 심하였고, 잡히지 않는 진리를 탐구하는 마음은 미혹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이런 나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 27살 늦은 가을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내가 찾은 줄 알았는데, 신앙생활을 할수록 그리고 성경을 알수록 내가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음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두꺼운 미혹의 벽을 깨부수셨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심어주셨다. 나는 한계가 분명한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심을 알게 되며 전적으로 그분에게 기댈 수 있었다. 그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함이 내 마음에 가득 했던 허무함을 내쫓았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것이다(롬 8:20). 인생의 관찰력이 있는 자라면 인생이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칠 수밖에 없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것은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은 자가 스스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가장 복된 것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통해 해방되는 것이다.


기독교에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생명과 진리가 있다. 그것을 받은 신자들은 진리와 구원을 누리기 위해 그리고 귀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기 위해 진지한 성화의 길을 걷는다. 그 길마저도 우리의 의지와 행위로 걷는 것이 아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도우심으로 이룬다. 그렇기에 우리는 얼마나 복된 자들인지 모른다. 신자들은 성화의 길에서 종종 좌절하고 죄를 짓지만, 그때에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시며 끝내 걷게 하신다(롬 8:28-30). 우리는 먼지와 같은 존재이고,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롬 11:36). 그분을 영원토록 찬송하자!

인생에서 가장 슬픈 것은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은 자가 스스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가장 복된 것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통해 해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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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요석

정요석 목사는 서강대와 영국 애버딘대학교(토지경제학 석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안양대학교(Th.M.)와 백석대학교(PhD)를 거쳐 1999년 개척한 세움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기도인가 주문인가’, ‘소요리문답, 삶을 읽다(상ㆍ하)’, ‘하이델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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