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회중은 관객이 아니다
by J. T. English2020-11-30

에베소서 4장은 교회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를 말하고 있지 않다. 대신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서 또 교회를 통해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를 보여주고 있다

Ephesians 4 isn’t just about what the church should be doing, but about what Jesus is doing for and through his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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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지금 뭘 하고 계신 걸까? 


에베소서 4장에 따르면 그는 하늘로 승천했으며 더 큰 선교와 연합을 위해 교회에 은사를 부어주고 계신다. 그리고 그는 모든 성도가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지도자를 주신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모두는 몸된 교회 전체가 아닌 직업적 목사(professional ministers)를 우선시하는 사역 시스템을 너무도 자주 만든다. 그러나 에베소서 4장은 바른 선교를 위해서는 직업적 목사 뿐 아니라 교회 전체가 필요함을 상기시킨다. 이것이 바로 내가 “깊은 제자도”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다. 다름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그리스도와 동일한 성숙함으로 성장하는 통일된 교회를 세우도록 초대하는 사역이다. 


그게 바로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그게 정말 예수님의 사명이라면, 그건 또한 지역 교회의 사명이 되어야 한다. 


사역은 단지 전문가만을 위한 게 아니다


오늘날 교회에 흔히 만나는 이분법은 사역에 있어서 전문가와 아마추어로 나누는 것이다. 


“전문가”와 “아마추어” 사이의 구분은 전문가(교회에 고용된 사람들)가 성도들과 함께가 아니라 성도들을 위해서 사역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커리큘럼을 작성하고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사역을 이끌어나간다. 또 성경을 읽고 가르친다. 이것은 교인들이 바라는 방식의 목회자 모습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런 식으로 성경을 읽을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예배 인도자는 회중을 더 많이 예배 속으로 참여시키는 것보다는 청중을 위한 공연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영적 엘리트 전문가들은 앞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교인들과 차별화되는 어떤 종류의 재능, 은사 또는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에베소서 4장은 교회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를 말하고 있지 않다. 대신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서 또 교회를 통해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자신을 아마추어라고 인식하는 그룹도 있다. 그들은 사역할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전문가들이 하는 사역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사역 전문가들은 너무도 자주 자신과 아마추어 교인들 사이의 거리를 즐긴다. 그들은 전문가로 인식되는 것을 좋아한다. 또 그들에게는 교인들과의 격차를 해소하도록 만드는 동기부여가 없기에 도리어 그 격차를 더 크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바울이 목자와 교사의 목적, 즉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엡 4:11-12)라고 설명한 내용이 아니다. 목사와 교사 그리고 지도자는 회중을 위해 모든 사역을 하는 게 아니라, “아마추어”가 사역을 수행할 수 있도록 회중을 섬기고 준비시키도록 부름받았다. 


‘아마추어’를 사역을 위해 준비시키기


훌륭한 교사는 자신과 학생 사이에 거리를 두지 않는다. 그들은 학생들이 더 많이 배우도록 도와줌으로 그 거리를 없애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단순히 훌륭한 선생님을 관찰만 하려고 하지 않는다. 더 많이 참여해서 더 배우고 싶어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사람들 사이에 거리를 두도록 부름 받은 게 아니라, 그들을 사역을 위해 준비시키도록 하기 위해서 부름받았다. 에베소서 4장은 교사, 사역자, 그리고 목사를 부르신 목적은 교회 사역을 교인들과 함께 하도록 부르신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관객 만드는 데에 관심이 없으시다. 그는 사역에 참여하는 교인을 원하신다. 바울은 교회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모든 사람을 사역에 초대하는 것이지, 단지 일부만을 위한 게 사역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한다. 교회에는 사역을 하는 특별한 그룹이, 또 사역 소명을 받는 특별한 그룹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교인이 사역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고, 모든 교인이 다른 지체의 사역의 수혜자가 되도록 부름받았다. 우리는 많은 지체를 가진 하나의 몸이고(고전 12:12), 리더는 그 지체 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역할을 맡았다. 깊은 제자도를 가진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교회는 교인 모두가 사역에 참여하도록 촉구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사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원한다. 


성숙을 향해서


에베소서 4장은 또한 모든 교인이 성숙, 즉 그리스도를 닮아 성장하도록 부름받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역 철학에서 발견하는 가장 큰 차이 중 하나일 지도 모르겠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대부분의 성숙이 지역 교회 밖에서, 그러니까 온라인 사역, 대규모 회의 또는 사적인 헌신을 통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은 ‘지역 교회야말로 성숙함을 키워내는 중요한 장이다’ 라고 주장한다. 


지역 교회의 주된 목적 중 하나는 성도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엡 4:13). 그리스도의 몸과 각 지체에 대한 하나님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향해서 지속적으로 성숙하는 것이다. 교회가 추구하는 깊은 제자도는 당신과 당신이 이끄는 사람들이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다. 


바쁘게 사역하자


제자도의 목표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라면, 우리의 모든 사역 노력은 그 목표를 향해야 한다. F. F. 브루스(F. F. Bruce)가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백성이 목표로 삼아야 할 표준은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이다.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미치지 못하면 한 몸이 된(corporate) 그리스도도 그 분량에 도달할 수 없다.”


성숙은 길고도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전적으로 헌신하셨던 과정이기도 하다. 그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엡 4:13)에 도달할 정도로 “자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우리가 서로 서로 도와 그 일을 이루길 원하신다. 그러니 우리 이제 서로를 위한 사역에 바쁘게 힘을 쏟자. 




원제: A Congregation Is Not an Audience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지역 교회야말로 성숙함을 키워내는 중요한 장이다

The local church is main context for fostering matu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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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 T. English

J. T. 잉글리시는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Storyline Fellowship의 담임 목사이다. Dallas Theological Seminary(ThM)와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PhD, 조직신학)에서 수학했다. 저서로는 ‘Deep Discipleship: How the Church Can Make Whole Disciples of Jesus’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