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이해하려면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할까?
by Trevin Wax2020-11-29

혹자는 문화적 눈가림(cultural blinders)이 성경 해석을 왜곡하거나 우리에게 도전을 줄 수 있는 영감 받은 말씀 속 여러 다양한 요소마저 제거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Some express concern that cultural blinders may distort our interpretation of Scripture or screen out various elements of God’s inspired Word that might challenge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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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에 인종적 다양성이 중요할까? 


주석책을 하나 산다고 할 때, 그 주석을 집필한 저자의 배경과 경험을 고려해야 할까?


문화적 맥락과 사회적 위치가 성경 해석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까?


복음주의자 지도자들은 최근 들어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다. 혹자는 문화적 눈가림(cultural blinders)이 성경 해석을 왜곡하거나 우리에게 도전을 줄 수 있는 영감 받은 말씀의 여러 다양한 요소마저 제거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또 동시에 번역자의 인종이나 개인적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하나님 말씀의 권위와 충분성을 최소화하는 상대주의를 낳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문제는 다방향(multi) 리더십을 요구하는 영역이다. 즉, 다양한 각도에서 위협을 인식하고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의미이다. 이 글과 이후 나올 세 개의 글을 통해서 나는 성경을 공부할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원칙을 설명하려고 한다.


지역 교회에 의지하기


첫 번째로 세계의 여러 지역으로부터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열망은 지역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라면 누구나 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원칙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할 것, 그리고 오류가 없으며 영감으로 기록된 명확한 말씀이라는 귀중한 교리는 결코 성경 해석학이 다른 사람들의 지혜와는 별개로 나 혼자 수행하는 “단독” 작업(discipline)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지역 교회에 함께 모여서 성경을 읽고 연구함으로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켜야 한다.


제대로 된 성경 공부를 하면서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본문이 당신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가 아니라(마치 특정 본문의 중요성이나 적용이 그 구절을 읽는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끝없이 변할 수 있는 것처럼), 본문 자체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가이다. 성경을 읽고 토론하기 위해 모인 우리는 다 배경이 다르고 그렇기에 던지는 질문도 다를 수 있으며, 사람마다 특정한 신학적 틀 속에서 본문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소망은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사랑을 키우고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드러내는 진리에 겸손하게 복종하는 것이다. 본문에 비추어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정(assumptions)을 검토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말씀만이 우리의 궁극적인 권위라는 사실에 복종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공동체 안에서 말씀에 관한 우리의 이해도를 더 증진시킬 수 있게 된다.


세계 곳곳의 교회에 의지하기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지역 교회가 필요하다면, 다른 교회와 문화권의 신자들의 의견을 들음으로 우리는 성경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유익을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먼저 공동체 안에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원칙을 채택했다. 그리고 그 적용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같은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들끼리 서로 배우는 것처럼 다른 문화의 기독교인들과도 똑같이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필요하다.


마크 앨랜 파웰(Mark Allan Powell)의 설명은 이 원리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례 중 하나이다. 그는 탕자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가 미국과 러시아에서 어떻게 각각 전혀 다르게 “들리는지에” 대해서 썼다. 지금 내 기억이 맞다면, 미국인들에 비해서 러시아인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탕자 아들의 절망을 촉발시킨 기근에 훨씬 더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레닌그라드의 포위 공격 당시 기아로 사망한 러시아인은 2차 세계대전 때 사망한 미국과 영국 군인을 합친 숫자보다 많았다고 파웰은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비극은 아직까지 살아있는 수많은 조부모와 증조부모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을 것이라고 파웰은 추정한다. 바로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탕자의 비유를 듣는 러시아 학생에게 가장 먼저 꽂히는 단어는 기근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랜돌프 리차드(E. Randolph Richards)와 리차드 제임스(Richard James)가 쓴 ‘개인적 눈으로 성경을 잘못 읽기(Misreading Scripture with Individualist Eyes)’는 고대의 친족 관계, 후견인, 명예와 수치심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구약과 신약에서 종종 드러나는 특정 공동체 기반 요소는 개인주의 문화에서 자란 우리에게 이상하고 또 이해하기 어렵게 보일 수도 있다. 수년 동안 중동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면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케네스 베일리(Kenneth Bailey)가 훌륭하게 풀어놓은 비유에 대한 훌륭한 업적은 해석적 통찰력을 제공한다. 물론 후기 전통이나 현대 중동의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해석한 경우도 종종 있지만 말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이러한 노력을 기뻐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신학자와 학자들의 부상을 응원해 왔으며, 그들이 발표하는 타 문화권 신학적 대화와 주석은 성경을 더 잘 듣고 순종하려는 우리의 열망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생각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목표는 더 나은 성경 해석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성경 연구 작업에 최대한 많은 글로벌 목소리를 통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 주류 세계(majority world) 또는 주류 문화 속 복음주의자들은 그들의 독서 목록을 “다양화” 할 수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사회적 위치와 경험을 가진 성경 독자들로 인해 우리가 성경 본문을 대할 때 의례히 가지게 되는 가정과 선입견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관점 이론은 그럼 어떤가?


그러나 성경 해석의 지평을 넓히려는 최근의 이러한 경향은 텍스트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는 게 애초에 가능한지에 관해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학계 및 더 넓은 문화의 경향과도 일치한다. 지식과 의미 그리고 의도성(significance)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견해는 “관점 이론”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 이론에 관해서 제임스 린지(James Lindsay)와 헬렌 플럭크로스(Helen Pluckrose)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관점  이론은 두 가지 가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인종, 성, 성 인식, 능력, 지위 등으로 드러나는 정체성에 따른 사회적 지위가 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경험을 올바르게 이해한다고 가정할 때, 동일하게 지배와 억압 경험을 받아들이며, 그에 따라 동일하게 그 경험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정은 다음 가정이 이어지는데, 이러한 경험이 그들에게 더 권위 있고 완전한 그림을 제공 한다는 것이다. 관점 이론이 바탕을 두고 있는 두 번째 가정은 사회적 권력의 역동성 내에서 가지고 있는 각각 다른 상대적 위치가 해당 사람으로 하여금 아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권층은 특권에 눈이 멀어 있는 반면에 억압받는 사람들은 지배적 위치와 억압 받는 경험을 모두 이해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이중적 시야를 소유한다.”


간단히 말해서 더 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일수록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란 더 어렵다는 것이다. 특권이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성경 해석에 이 이론을 적용시키는 경우, 기독교 역사 속 너무도 많은 주석가와 신학자, 그러니까 너무도 많은 특권을 가졌던 수많은 백인 남성들이 연루되게 된다. 그 결과 가장 주의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한 주석 내용에조차도 우리는 의심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그리고 반대로 억압과 가난이라는 “살아있는 경험”을 한 주석가의 주석을 더 큰 점수를 주는 결과를 빚게 된다.


전통적인 복음 해석학과 달리 관점 이론이 성경 해석에 적용될 때, 그 결과는 본문의 의미를 발견하는데 필요한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해당 본문에 정말로 제대로 된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인가 하는 불안감만을 더 증폭시킨다. 그 누구도 성경 해석에서 완벽하게 “객관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왜냐하면 객관성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참된 지식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그렇게 될 때 우리에게 남은 것은 나의 진실 또는 당신의 진실이며, 우리의 진실은 문화적 관점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해석자의 진실로 남을 뿐이다. 


관점 이론의 부상에 대응하는 방법에는 옳은 방법도 있지만 그른 방법도 있다. 앞으로 소개할 세 개의 글에서 우리는 포스트모던 철학의 함정을 피하는데 도움이 되는 동시에 우리를 최고의 전통적인 복음 해석학과 일치시켜주는 원칙을 찾아볼 것이다.




원제: Do We Need Diverse Voices to Understand the Bible Rightly?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전통적인 복음 해석학과 달리 관점 이론이 성경 해석에 적용될 때, 그 결과는 본문의 의미를 발견하는데 필요한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해당 본문에 정말로 제대로 된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인가 하는 불안감만을 더 증폭시킨다

Unlike traditional evangelical hermeneutics, standpoint theory—when applied to Scripture interpretation—doesn’t ultimately help us discover the meaning of the text, but instead destabilizes the idea of the text having a real meaning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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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revin Wax

트레빈 왁스는 LifeWay Christian Resources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학장이며 Wheaton College의 외래 교수이고, The Gospel Project의 편집자이다.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일그러진 복음', '우리시대의 6가지 우상', 'Gospel Centered Teaching'을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