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일, 뗄 수 없는 하나
by 김돈영2020-11-11

일은 생활을 위한 수단이고 도구일 뿐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다. 일과 자신의 목적, 즉 신앙과 성도의 삶을 일과 철저하게 구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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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사역을 하다 보니 신앙과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종종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이나 현재 직장에 다니는 이들, 사업을 하는 이들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직장을 다니는 이유, 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가장 많이 답하는 것은 경제적인 부분을 충당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직업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구나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직업을 가지고 일하고, 돈을 벌어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것과 먹는 것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장로님은 이런 말을 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합니다.” 사업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며 했던 말이다. 지금 벌여 놓은 사업이 잘되어야 하는 이유는 선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커지고, 많은 수익을 내면 선교 헌금을 더 많이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선교 헌금을 통하여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오지에 교회를 세우는 것을 꿈꾼다. 굶주린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방법으로 선교 헌금이 사용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다른 회사보다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매출이 더 많이 늘어나야 한다고,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고 말이다. 거기에 덧붙여서 한마디 더 말한다. 이런 일을 하고 있기에 자신의 회사 물건을 사는 것만으로도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니 많이 사용하고 널리 홍보해 달라고 말이다. 참으로 멋진 비전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큰 꿈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대단히 열정적인 분으로 보였다.


‘나’는 둘인가? 하나인가?


일은 생활을 위한 수단이고 도구일 뿐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다. 일과 자신의 목적, 즉 신앙과 성도의 삶을 일과 철저하게 구별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성도로서 드러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직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일하지만, ‘성도로서의 나’와 ‘회사 구성원으로서의 나’라는 두 인격이 존재하는 것이다.


‘성도로서의 나’는 교회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은 활동을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예배당 청소나 화장실을 청소하기도 한다. 대형 현수막을 걸기 위해 지붕에 오르기도 하고, 깨진 바닥을 보수하기 위해 시멘트 바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다. 교회 재정을 생각하여 내 돈을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몸으로 일하고, 돈도 쓰지만 불평하지 않는다. 성도로서 마땅한 일이라 생각하기에 오히려 기쁨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회사 구성원으로서의 나’는 어떠한가? 회사에 출근하면 인사를 나누고 익숙한 자리에 앉는다. 주어진 업무를 확인하고 급한 일을 처리한다. 하지만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남보다 더 많이 더 힘들게 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이 넘어오면 적당한 핑계를 대고 다른 이에게 넘기는 것이 경험에서 오는 노하우라 생각한다. 새로운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회피하는 데 익숙하고, 높은 인사고과를 위해서는 나에게 유리한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승진을 위해 ‘슬쩍’ 청탁을 하거나, 적은 금액이지만 눈먼 돈을 – 야근비, 부서의 공금, 회사 카드의 포인트, 남는 행사 진행비, 물건 반품으로 환불받은 비용 등 - 내 주머니에 넣기 위해 머리를 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담당자가 창고에 쌓인 재고 물품을 한두 개쯤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은 바보 같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을 하면서도 튀지 않고, 윗사람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회사 생활을 잘하는 ‘슬기로운 회사 생활’이라고 여긴다.


설마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드는가? 안타깝지만 회사에서 실제로 많이 보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회사 생활이라고 말했던 선배가 생각난다. 특별하게 알려주는 것이니 잘 배우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그 선배가 주일에는 열심히 예배하고 봉사하며 나름대로 철저한 신앙생활을 한다고 자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성도로서의 나’와 ‘회사 구성원으로서의 나’는 왜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생활하는가? 이유는 한 가지다. 하나님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모든 만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말하지만, 사실은 교회당에만 계신 하나님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회사는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영역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남들과 같은 목적을 가기고, 남들과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잘하는 직장 생활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성도로서의 나’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목적으로 행하지만, ‘회사 구성원으로서의 나’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목적이 없는 것이다. 단지 나를 위하여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에베소서 6장의 말씀처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인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지 않는 것이며,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개의 인격이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성도로서의 나’와 ‘회사 구성원으로서의 나’라는 두 인격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만물을 통치하는 하나님을 온전하게 믿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배당에만 계신 하나님이 아닌 내가 있는 직장도 하나님의 통치권에 있다는 사실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막연하게 믿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온종일 일을 해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기쁘게 느껴졌던 것처럼 회사에서도 이러한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내가 있는 직장 역시도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 안에 있다는 것을 온전히 믿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4)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 두 가지 일을 하는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매출이 많아져야 하고, 선교 헌금을 많이 한다고 말한 장로님의 회사에는 여러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다. 매출이 떨어지자 회사의 숙소에서 생활하는 그들에게 지급하던 것을 줄였다고 한다. 일을 위해 지급하던 의복과 소모품의 공급량을 줄였고, 생필품과 식비를 줄였다. 물론 회사의 존폐가 걸린 상황이라면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비용을 줄이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문제는 다른 곳은 그대로 두고 그들에게 가는 것만 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문제는 그렇게 줄인 비용을 해외 선교 헌금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의 나라를 위한 선교 헌금이라고 한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그분에게서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일 것이다. 그렇기에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선교에 열정적이고 헌신적이며, 지혜로운 방법으로 회사를 운영하며 헌금하고 있는지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는 듯이 말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신앙과 일을 분리하고 있다는 데 있다. 곧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일’과 직업을 가지고 하는 일인 ‘세상의 일’로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누구나 아는 것이다. 예배하고, 전도하는 일, 선교하고, 성경 가르치는 일 등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아는 일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을 뺀 나머지 일은 ‘세상의 일’인가? 그렇다면 ‘세상의 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나님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인가?


일하는 성도로서 세상을 사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분명하게 해야만 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인간에게 다른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셨다. 다만 그것을 허락하신 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마음대로 사용하고 다스리되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방향성을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예배와 전도,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애쓰는 일만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회사에 출근하고, 일하고, 먹고, 쉬는 것까지 하나님의 통치를 인식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모두가 ‘하나님의 일’인 것이다. 물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죄는 그 방향을 돌려놓았다.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로 향하게 한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일하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일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닐 것이다. 외형적인 모습이 전도와 선교라고 해도, 그 이유와 목적이 자신의 무엇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죄’인 것이다. 이것은 목회 사역에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모습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 내면의 모습은 하나님과 자신만 알 것이다. 무엇을 위해 하는지 말이다.


우리는 결국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장로님의 경우를 이야기해 본다. 회사가 번창하여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수익으로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지에 보내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그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근본적인 것이 빠져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하나님을 온전하게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씀을 따르는 것이고,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은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다. 선교지에 헌금을 많이 보내는 것과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좀 더 편안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하여 오지에 예배당을 짓는 것과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잘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먼 곳에 있는 이들을 위해 선교 헌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이들에게 먼저 선교 헌금을 사용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일 것이다.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이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온전하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맡겨주신 청지기로서 바르게 사는 것이다.


신앙과 일, 뗄 수 없는 하나


그리스도인에게 일과 신앙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도 구별할 수 없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이며, 그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하나님께서 스스로 돌아서기를 보고 계시는 것이다. 기다려 주시는 것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조금 더 빨리 깨달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일터에서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조금 더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야는 참으로 좁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품는다고 하지만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한다. 이러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따르기 위해 애쓰는 방법밖에는 없다.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 지혜를 구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 4:23)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이며, 그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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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돈영

김돈영 목사는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CTS라디오조이 ‘찬양의자리’ 진행자와 BASE성경교육원 공동대표로 섬기고 있다. ‘직장선교아카데미’와 ‘군세움프로젝트’를 통해 성경을 강의하며, 다양한 집필 활동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