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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처치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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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김선일  /  작성일 20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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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Creative Christians on Unsplash

이미 우리 사회가 인간관계를 맺는 규모에 있어서 이전보다 개인적이고, 의미 있는 소수로 좁혀지고 있다. 엠브레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무의미한 관계의 확장 및 유지보다 소수의 ‘친밀한 관계’에만 집중하고 싶어”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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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는 일반교회와 가정교회(6~12명의 소그룹으로 매주 모여 교회의 본질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형태)가 코로나 상황 속에서 어떻게 신앙의 교제를 했는지에 대한 비교 항목이 나온다. 일반교회는 카톡/문자(65%), 온라인 교제(41%), 전화 통화(37%)가 가장 많았던 반면, 가정 교회는 카톡/문자(62%)와 전화 통화(39%)는 일반교회와 비슷한 반면, 온라인 교제는 62%로 훨씬 높게 나왔다. 주목을 끄는 점은 코로나 상황에서도 대면 모임(일대일 만남, 작은 소그룹 등)에 있어서 가정교회는 68%의 경험을 한 반면, 일반교회의 25%보다 훨씬 높게 나온다. 전체적으로 방역조치로 인한 제한적 상황에서도 소모임 형태의 가정교회는 일반교회보다 한층 다양한 방식으로 교제를 지속해왔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코로나 상황에서 가정교회 성도가 일반교회 성도보다 더 활발한 경건생활을 하였으며, 헌금 감소의 타격도 가정교회가 덜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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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도 주장했지만, 필자는 앞으로 사람들의 관계와 공동체 유형은 더욱 안전하고 신뢰할만한 작은 모임이 될 것이라고 본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방역 통제가 가능한 규모여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비단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가 인간관계를 맺는 규모에 있어서 이전보다 개인적이고, 의미 있는 소수로 좁혀지고 있다. 엠브레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무의미한 관계의 확장 및 유지보다 소수의 ‘친밀한 관계’에만 집중하고 싶어”한다는 결과가 나왔다(Trendmonitor 2020년 9월 24일자 리포트).


새로운 관계를 많이 만드는 오지라퍼가 되기보다는 가족과 친구 중심의 관계에 더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정서적 변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다 짜놓은 소그룹에, 잘 모르고 편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어색한 공동체 관계를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를 당연시 여기고 무조건 용인만 해줄 수는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낯선 자를 환대하며(신 10:19, 눅 10:25-37) 선한 이웃이 될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회나 선교 사역은 사람들이 있는 현 상황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있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맞는 접촉을 하되, 은혜 안에서 새로운 삶의 비전을 갖고 제자의 삶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이러한 작은 소모임을 중심으로 하는 사역들은 원래 초기 교회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로마서 16장을 보면, 당시 로마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교회(5절) 외에도 아리스도블로의 권속(10절, 나깃수의 가족(11절), 아순그리스도와 불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마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14),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15) 등의 4개의 공동체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모두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교회에 속한 모임들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로마 내에서 간헐적으로는 전체적으로 신앙의 연결은 가지면서도 평소에는 따로 모였던 모임일 것으로 추측한다(로버트 뱅크스의 ‘바울의 공동체 사상’, IVP, 72-74쪽). 이는 바울이 로마서 16장 7절에서 단일한 교회를 언급하지 않고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라는 표현을 쓰거나, “너희가 거룩하게 서로 입맞춤으로 문안하라”고 하며 서로의 교제를 권하는 것에도 암시된다.


위와 같은 모임과 관계의 소규모화에 비추어 흥미로운 기독교 사역의 형태는 ‘마이크로처치’(microchurch) 현상이다. 마이크로처치는 공식적이거나 제도적인 교회가 아닌, 일상의 작은 만남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는 신앙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서로 공감하고 쉽게 만날 수 있는 가족, 이웃, 공통적 삶의 이슈, 관심사 등을 토대로 5명 내외의 (예수님 말씀처럼 2~3명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정기적 교제권을 형성하는 것이다. 물론 초 소규모라고 해서 반드시 그 한계 내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이상으로 자연스럽게 성장하여 모임이 분화될 것인지는 구성원들이 의논해서 결정하면 된다. 


미국 플로리다주 템파(Tampa, Florida)에 위치한 언더그러운드(Underground) 교회는 200개 이상의 마이크로처치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그 안에는 지역에서 이웃과 만나는 모임부터, 선생님들의 모임, 간호사들의 모임, 싱글맘 모임, 대학생들의 모임과 같은 다양한 마이크로처치들이 있다. 필리핀과 미얀마의 마이크로처치들도 이 언더그라운드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 중앙 통제적이고 집중적인 교회 구조가 아니라, 허브(Hub)라고 불리는 ‘코워킹’(co-working) 공유 공간만 있을 뿐이다. 중앙에서부터 소모임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소모임들이 공동의 신앙고백과 사명으로 확장되어가는 형태다.


또한 워싱턴주 타코마(Tacoma, Washington)에서 시작된 소마(Soma) 운동 또한 마이크로처치들의 가족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소마는 마이크로처치라는 용어가 아니라 ‘선교적 공동체’(missional communities)를 사용하지만, 그 사역의 유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웃 생활 공동체, 공립학교 교사 공동체, 시니어 공동체, 이슬람 선교 공동체 등 수백 여 개의 마이크로처치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는 주로 주중에 선교적 공동체 모임을 갖고 주일에는 연합 예배를 드리곤 한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 뿐 아니라 그들의 사명이 주중 선교적 공동체 모임에 있다.


영국 성공회의 대표적 선교 운동인 ‘교회의 새로운 표현’(Fresh Expressions of the Church)은 파이오니아(Pioneer)라 불리는 사역자들을 훈련하고 양성한다. 파이오니아는 제일 먼저 1)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2)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고, 2) 정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3)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함으로, 4) 교회로 발전하는 계획을 실행하게 한다. 이 운동은 지난 10년 이상의 실험적 사역을 통해 영국에서는 가장 건강하고 거의 유일하게 실질적인 전도와 교회성장을 이루고 있다.


마이크로처치는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서 선진화된 사역의 모델인 것은 아니다. 이는 이미 우리의 현장에서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일 수 있다. 판교에 있는 심플교회는 약 10년 전 한 평신도 가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교회 집사 부부로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지인을 위로하고 영적으로 도와주었는데, 그 지인이 다른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을 소개하면서 규칙적인 기도와 성경공부 모임이 시작되었다. 합류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정례화되자, 모임의 리더는 신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신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주일 교회로 발전하였다. 이제는 신앙 공동체와 기독교 대안학교 사역을 겸하는 모범적인 교회로 자립하였다.

꼭 마이크로처치로서의 정체성을 갖거나, 위 사례들의 궤적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힌트는 미래의 교회 및 선교 사역이 우리와 굉장히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가족, 이웃, 관심사, 취미 등이 의미 있는 신앙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 뜻밖의 자산이 될 수 있다. 근래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불안과 탄식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예수님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눅 10;2)라고 하셨건만, 우리는 ‘추수할 것은 적고 일꾼은 많다’고 탄식하는 현실이 아닌가. 우리의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일상에 관심을 갖고 돌아보면, 많은 잠재력 있는 관계들을 볼 수 있다. 그곳에는 진실하고 의미 있는 만남을 갈구하는 심령들이 있을 것이다. 복음만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그들을 진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고 믿는다면, 우리에게 주신 선교명령은 때로 ‘멀리’만 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그리고 더욱 깊이’ 가야 할 과제일 수 있다. 임박한 마이크로처치 현상은 그와 같은 가능성과 소명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우리에게 주신 선교명령은 때로 ‘멀리’만 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그리고 더욱 깊이’ 가야 할 과제일 수 있다. 임박한 마이크로처치 현상은 그와 같은 가능성과 소명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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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선일

김선일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를 거쳐 풀러신학대학원(MDiv, PhD)에서 수학하고 2008년 9월부터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풀러신학대학원 재학 중에는 한인 최초의 캠퍼스 교목으로 일했으며, 한국교회의 청년 선교와 교회 성장을 위해 섬겨왔다. 저서로는 ‘전도의 유산: 오래된 복음의 미래’, ‘교회를 위한 전도가이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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