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 찾기, 그거 생각보다 힘드네!
by Trevin Wax2020-11-10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전체 프로젝트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The whole project of looking inside to find yourself is filled with contradi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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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라”는 말에 91%의 미국인이 찬성했다는 최근 어느 연구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내 자신이 누구이고 나의 목적이 뭔지 알고 싶을 때, 그 답이 있는 곳은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내면을 들여다봄으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당신의 마음을 믿고 무엇보다 직감을 따르라. 다른 사람은 그 누구라도 당신이 누구인지 정의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부터 바로 삶을 “깊이 성찰하는” 길이 시작된다.


이런 식으로 인생을 볼 때 느끼는 자유가 매혹적일 수도 있다. 당신 스스로 당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원하는 대로 나 자신을 정의할 수 있게 된다. 이름을 바꾸고 얼마든지 새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 경력이나 취미 또는 재능으로 내 자신을 정의할 수도 있다. 오로지 나 자신만이 궁극적으로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내 자신을 표현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오로지 나 자신만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 독특함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기에, 이 세상을 향해 나의 특별함을 어떻게 드러낼지를 결정하는 주체도 당연히 나 자신이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 내면을 살펴보다 보면 반드시 좋은 점을 찾게 되기 마련이다. 당신이 찾은 게 무엇이 되었든, 그것은 아름답다. 그 누구도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서 내린 자기 정의(self-definition)가 틀렸다거나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은 말 그대로 궁극적인 모험이 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사고방식에는 심각한 단점이 있는데,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전체 프로젝트가 온전히 나 자신에게만 달려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려고 하다가 모든 게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꿈을 쫓아가다가 도달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할까? 이런 식의 실패가 당신이 정의내린 삶의 목적과 정체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이런 실패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감각을 위협하지는 않을까?


더욱이, 당신이 스스로에게 내린 정의가 현실과 아예 동떨어졌거나,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보는 생각과 전혀 다른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처음에는 모험심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외로움으로 이어질 뿐이라면 어떻게 될까? 공동체 속에서 느끼는 만족감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라면?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서 내린 정의를 향해 박수치는 허수아비들과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공동체 속에서 뭔가를 기여하면서 사는 게 더 의미있고 보람되지 않을까?


상호 모순되는 정체성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전체 프로젝트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를 생각해 보자. 과연 다른 사람과 전혀 비교하지 않고도 나 자신의 독특함(uniqueness)을 발견할 수 있을까? 외부에서 미치는 힘이 당신이 가진 진정한 개성에 그 어떤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확신하면서, 온전히 내면만을 성찰한다는 게 애초에 가능이나 한 이야기일까?


교사라는 직업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한 사람을 생각해보자.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는 데에 능숙할 뿐 아니라 학생들을 좋아하는 그 사람은 교사라는 일에서 만족과 가치를 발견한다. 그가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특징을 가진 지금의 교사가 된 데에는 어렸을 때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두 명의 선생님 때문이다. 첫 번째 선생님은 아주 훌륭했다. 학생들에게 교육 과정을 안내하고 그들 속에서 배움에 대한 갈증과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두 번째 선생님은 끔찍했다. 창의력을 억제했을 뿐 아니라 특정 주제에 대한 경멸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권위적인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당연히 이 두 명의 선생님을 비교하면서 그는 좋은 선생님을 모방하고 싶어했고, 나쁜 선생님과 비슷해지는 그 어떤 방법도 피하고 싶어했다.


물론 이 교사는 자신의 열정과 은사를 발견하기 위해 내면을 성찰했으며, 그 결과 교사라는 직업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목적을 정의하게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오로지 혼자서 그런 과정을 거쳤을까? 그건 전혀 아니다. 그는 과거 만났던 좋은 선생님이 보여준 길을 따라가고 있는 동시에 나쁜 선생님이 보였던 부정적인 영향에도 반응하고 있다. 결국 이 교사는 자기 스스로 내면을 성찰하고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인생의 길을 계획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의 과거는 여전히 그가 내린 자기 정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에게는 닮고 싶은 한 사람과 닮고 싶지 않은 또 한 사람이 있다. 달리 말해,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물론 당신은 이렇게 반박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아는 누구처럼 되려고 하지 않아요. 나는 의식적으로라도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우라면 당신은 어쩌면 오로지 끔찍한 선생님만을 만났던 어느 청년과 비슷할 것이다. 해마다 그는 끔찍한 선생님들이 일으키는 문제와 씨름해야만 했다. 학생을 조롱하고 권위를 남용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가르치는 능력은 부족한 그런 끔찍한 선생들 말이다. 그래서 그 청년은 결국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모든 끔찍한 선생님들과는 전혀 다른, 아주 좋은 선생님이 될 거야.” 하지만 누구라도 지금 예로든 이야기에서 깨달을 수 있다시피, 그 청년이 스스로에 대해서 내린 정의는 결코 고립된 상태에서 이뤄진 게 아니다. 그는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비록 그가 참조하는 그 모든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그가 닮고 싶지 않은 대상이라고 해도 말이다.


당신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에 대한 “내면 성찰(look in)” 방식은 개인의 개성과 공동체가 서로 등을 지도록 만드는데, 마치 공동체는 언제나 개인을 억압함으로 공동체에 순응하도록 위협한다고 생각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 자신을 제대로 발견하고 또 정의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내 자신의 가장 깊은 자아를 격리해야 한다고 가정하는데, 그 결과 우리의 배경, 가족의 영향력, 또는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관계없이 우리 주변의 모든 공동체를 배제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이런 식의 고립된 계획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신화에 불과하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을 참조하지 않고는 결코 자신을 발견할 수도 또는 정의할 수도 없다. 그건 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 식의 자아 발견이 가진 가장 아이러니 한 점은 당신이 가장 자유롭다고 느낄 때,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서 누가 봐도 당신이 아주 많이 다른 사람처럼 보일 때 조차도, 당신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관심과 반응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동체가 기대하는 특정한 기대 또는 제한을 벗어나겠다는 선택조차도 결국은 당신이 가장 신경쓰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다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타인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오로지 내면 성찰만을 통해서 자신을 찾는 것은 그렇기에 불가능하다.


더욱이, 당신이 스스로 정한 자기 정의에 따라 살기 위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즉 당신이 바라는 어떤 사람이 되려고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인간이기에 누구나 진실되지 않은 삶의 패턴과 나쁜 습관에 빠지기 마련이다. 좋은 선생님처럼 되고 싶은 그 교사가 너무 지친 나머지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가장 혐오하는 나쁜 선생님의 모습을 보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 우리 중 많은 부모들이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이 했던 나쁜 행동을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어떤 순간 내 속에서 경멸했던 내 부모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어린 시절 부모가 내 속에 만들어놓은 나쁜 영향력에서 벗어난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절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처럼 우리가 스스로 정해놓은 정의를 따르지 못할 때 또 다른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스스로 정한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바로 그 최고의 순간에 만나는 자신이 진정한 당신 자신인가? 아니면 행여나 당신 자신을 실망시키는 말과 행동이 터져 나오는 바로 그 최악의 순간에 만나는 당신이 “진짜 당신”인가? 진짜 당신은 당신이 되고 싶은 그 사람인가, 아니면 지금의 당신 자신인가?


더 나은 길


내면 성찰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는 것은 중대한 도전 과제를 동반할 뿐 아니라, 결국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데에도 결코 충분한 방식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나 더 나은 방법이 있다. 그리고 이 방법은 당신으로 하여금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게 맞는지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 방법은 내 자신을 정의하고 찾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다. 이 방법은 나 자신의 외부를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위를 바라본다. 바로 나 자신을 창조하신 분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위를 바라봄으로 당신은 더 크고 위대한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Finding Yourself’ Is Harder Than You Think

번역: 무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이런 식의 고립된 계획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신화에 불과하다. … 다른 사람을 참조하지 않고는 결코 자신을 발견할 수도 또는 정의할 수도 없다

This isolated plan for discovering yourself is impossible. It’s a myth. … [Y]ou cannot discover and define yourself without reference to other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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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revin Wax

트레빈 왁스는 LifeWay Christian Resources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학장이며 Wheaton College의 외래 교수이고, The Gospel Project의 편집자이다.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일그러진 복음', '우리시대의 6가지 우상', 'Gospel Centered Teaching'을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