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그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by Sammy Rhodes2020-11-08

COVID-19이 세계 안으로 밀고 들어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우리가 알고 있던 삶은 온통 바꿔져 버렸다

COVID-19 pushed its gnarly tendrils farther into the world, gripping our hearts with fear, upending our lives as we knew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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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간처럼 종잡을 수 없는 때를 말할 때 보통 하늘이 파랗다고 한다.


내겐 그것이 어린 시절부터 친한 친구의 40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와 함께 뉴올리언즈로 떠난 여행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함께 가고 싶은 도시를 다니며 최고의 음식을 먹고 마시며 즐겼다. 적어도 그 48시간은 더할 수 없이 신나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내 친구는 가슴 아프게도 지난 해에 중풍으로 마비가 왔고, 지난 반년 이상 긴 회복 기간을 갖고 있었다. 그의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하는 것은 아직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그는 “내 말이 아직은 어눌한 거 알아”라고 말하곤 한다. 그의 말 중에서 “내 말”이라는 말은 내 마음을 매우 아프게 한다. 하지만 “아직은”이라는 말은 큰 소망이 된다.


미시시피 해티스버그에 있는 그의 집에 돌아가서 그를 내려놓은 후에, 나는 그와 포옹을 하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렌터카로 향했다. 온 세상이 바꿔져 버린 느낌이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리 안에 낯선 향수병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모든 것들이 예전의 상태로 되돌려지기를 갈망한다. 내 친구가 예전에 건강하던 상태로 다시 돌아가기 원하는 갈망. 그와 함께 완전히 자유롭게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기를 원하는 갈망 말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콜롬비아로 돌아가고 있는데, 친구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에 대한 생각이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얼마나 달라졌고 그의 삶이 지금 얼마나 더 힘들지에 대한 생각 말이다.


그러고는 검은 구멍이 점차로 커지는 것처럼, 전 세계는 다른 세계가 되어버렸다. COVID-19가 세계 안으로 밀고 들어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우리가 알고 있던 삶은 온통 바꿔져 버렸다. 모든 것들이 다시 예전과 같아질까? 얼마나 달라질까? 우리는 괜찮아질까?


힘든 세상에서 예수님은 어디 계신가?


우리 삶의 곳곳에서 그런 혹독함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것이 중풍으로 마비된 몸이든지 혹은 치명적 바이러스이든지, 이 세계는 예전 같지 않다. 모든 것이 온전하지 않다. 모든 것이 제 위치에 있지 않다. 외적인 면을 통제함으로 이러한 것들을 감당하고자 최선을 다해 보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이 터무니없었음을 알게 된다.


삶의 모든 영역은 선물이다. 그렇다 그리고 그렇다고 믿는다. 하지만 영원히 바꿔져 버린 삶의 영역들 그리고 좋지 않게 바뀐 부분들은 어디에서 되찾을 수 있을까?


여러 해 전에 나는 우울증으로 상담사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내게 “이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디에 계신다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했다. 그것은 이제 내가 학생들과 만나서 목회적 조언을 찾을 때 하는 질문이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질문이지만 영적 현실을 꿰뚫어보는 질문이다. 이번 주에 나는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을 많이 해보았다. 이는 시편에도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다. 시편 기자가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시 44:23) 그리고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시 88:14)라고 쓴 것처럼 말이다.


욥의 “상담자들”처럼 되지 않고자, 마치 모든 것이 안정된 것처럼 들리도록 내가 씨름한 것에 대해서 너무 많은 말을 하지는 않으려 한다. 이러한 고통의 상황에서 그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적어도 때로 삶이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모든 것에 대한 답변을 다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의 대답에서 해답을 얻으려고 씨름하지만, 그것들은 너무 무미건조하거나 상투적이거나 현실성이 떨어질 때가 많다.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며 일하고 계신다


내 스스로 ‘이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으려고 하자, 위로가 되는 두 가지 진리가 계속 떠올랐다.


첫째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그분은 이 세상의 고통과 멀리 있어 그것에 대한 느낌이 없는 것이 아니다. 고통으로 인한 모든 굳은살과 흉터와 자기방어기제들로 우리의 마음은 지금 감각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로 인해 이 땅에 생긴 모든 질병과 상실과 고통과 죽음을 아파하고 계신다. 그분이 거룩하심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거룩하심 때문이다. 모든 것이 아직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건강하지 않은 것이다.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예수님을 살펴보면, 그분의 친구 나사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시는 걸 볼 수 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분노와 깊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그분의 친구들을 깊이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공감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예수님은 여전히 같은 분 아니신가? 그분은 여전히 사랑하시는 이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시는 분 아니신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셔서 이제 마음에 감동이 없으신 건가 아니면 여전히 그분의 사랑하는 형상들로 인해 가슴이 뛰고 계신가?


프레드릭 데일 브루너가 아마도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것 같다. “우리는 ‘놀라워라 주 사랑이, 날 위해 죽은 그 사랑’이라고 찬양한다. 하지만 ‘놀라워라 주 사랑이, 날 위해 우는 그 사랑’이라고 찬양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이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가? 그분은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하지만 두 번째로, 그분은 또한 일하고 계신다.


예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분은 우리가 홀로 모든 걸 다스릴 수 있다는 환상을 깨뜨리시고,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기억하게 하시는 것 같다. 발코니에서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다른 나라 이웃들의 비디오에서 이것을 매우 아름답게 보았다. 우리는 늘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제는 더 확실해졌다. 우리 홀로는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사이에 있는 미세한 다름이나 잡담을 나누는 정도의 관계의 장벽을 뛰어 넘어 진정한 공동체로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다.


일에 묶여 있던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혼돈과 어려움이 아마도 그분이 강제로 휴식을 주고 낯설지만 안식을 취하게 하시는 것일 수 있다. 우리의 삶에 리셋 버튼이 눌러졌다. 온라인상에서는 일과 휴식의 복잡한 관계가 어떻게 다르게 보일까? Lynn Ungar는 그녀의 시 “팬데믹”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것을 유대인이 안식일을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어떨까
가장 성스러운 시간으로?
이동을 중단하라. 사고 파는 것도 중단해 보라.
그냥 지금 당장 내려놓아 보라.
현재와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보라.
노래하라.
기도하라.
꼭 접촉해야 할 이들만 만나라.
중요한 문제에만 전념하라.”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므로, 우리는 중요한 문제에만 전념하면 된다.


눈물 흘리는 이들과 함께 (논쟁하지 말고) 울라


그 다음엔 좀 더 어려운 질문이 있다. 내 친구와 프랑스 거리에 있는 한 음식점 테라스에 앉아 있을 때, 그는 조심스럽게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셨을까?”라고 물었다.


팀 켈러의 저서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가 아무리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라 하더라도 그가 그 순간에 필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불쑥 꺼내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필요한 건 그러한 어려운 질문을 하는 그의 옆에 그냥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어 주는 것이다. 아마도 언택트 시대에 (적어도 잠시지만), 이러한 것은 창조적으로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통스럽게 삶의 활동이 중단된 상태에서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


Ungar는 그녀의 아름다운 시를 이렇게 마친다.


“우리 몸이 가만히 있으면,
우리 마음으로 다가가게 된다.
두렵지만 아름다운 방식으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은 그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생명이 서로의 손에 달려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분명히 이제는 명백해졌을 것이다)
도움을 주려고 하지 말라.
마음으로 다가가라.
말로 위로하라.
우리가 접촉할 수 없을 때
감동을 주는 보이지 않는
긍휼의 덩굴손을 내밀라.
당신의 사랑을 약속하라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건강할 때와 똑같이 아플 때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Jesus Is Here, in Sickness and in Health

번역: 정은심

이러한 고통의 상황에서 그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적어도 때로 삶이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모든 것에 대한 답변을 다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If we learn nothing else in this season of suffering, I hope we at least learn to accept that sometimes life is unspeakably hard, and we don’t have all the ans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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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ammy Rhodes

사미 로즈는 University of South Carolina에 있는 Reformed University Fellowship의 교목으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Broken and Beloved'와 'This Is Awkward'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