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 가짜 복음의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by 김형익2020-10-01

참되신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 물건을 팔아넘기려 하는 속이는 장사꾼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참된 지식에 근거하여 참된 동기를 유발시키시고 참된 결과를 얻어 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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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기도제목?


언젠가 잘 아는 분으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인도의 한 지역에서 무슬림들에 의해 교회당들이 불타고 교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으니 긴급기도를 부탁하는 메시지였다. 매우 구체적으로 사건의 날짜들이 적혀 있었고, 이 기도제목을 널리 알려달라는 전언까지 있었다. 고약한 버릇이랄까, 그 뉴스를 검색해보았고 그 지역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똑같은 기도제목이 수년 전부터 유포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기도제목에 언급된 지역은 무슬림 지역이 아닌 힌두교 지역이었다! 그래서 이 기도제목을 보낸 분에게 이것을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 물어보았고, 그분은 이것이 가짜 기도제목이었으며 자신이 경솔하게 행동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당신도 이와 비슷한 경험들을 해보았으리라. 기도제목 만이 아니라, SNS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가짜 뉴스들이 퍼날라지고 있는가?


비록 가짜라도, 그것이 기도하자는 것이었고, 그래서 우리가 힘써 기도하였다면 그리고 선교지에 대한 관심을 더 가질 수 있게 되었다면 그로써 유익한 것이 아닌가 라고 반문하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참되신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민 23:19).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 물건을 팔아넘기려 하는 속이는 장사꾼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참된 지식에 근거하여 참된 동기를 유발시키시고 참된 결과를 얻어 내신다.


가짜 뉴스의 시대


가짜 기도제목은 그나마 양반(?)이다. 우리가 퍼나르는 뉴스들 중에는 기도제목이나 건강에 관한 뉴스들도 있을 수 있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 뉴스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종종 노회의 단체 카톡방이나 혹 개인 메시지로 가짜 정치 뉴스를 공유하는 목사들도 있다. 한 번만 검색해보면, 가짜 뉴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만한 내용들도 적지 않다. 이런 가짜 뉴스의 폐해는 개인의 의식과 생각과 행동에 미치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 사회 전체를 거의 붕괴시킬 정도다. 가짜 뉴스들은 그 제작자의 의도를 따라 사람의 의식을 조종하고 행동을 부추긴다. 그리고 사회(심지어 교회조차도)를 혐오와 멸시로 양분시키고 파괴한다. 단지 비중 있는 정치인의 말이라고 해서, 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언론이 쓴 기사라고 해서 무조건 믿을 수 없는 사회에서, 저마다 자칭 전문가가 되어 뉴스를 해설하고 사실과 자기 의견을 구분하지 못한 채 뭔가를 퍼나르는 사람들은 부지기수(不知其數)다.


퍼나름의 문화


가짜 뉴스의 전성시대를 특징짓는 문화가 퍼나름의 문화다. 퍼나른다는 말은 그 뜻 그대로라면 어떤 물질을 퍼서 날라야 하는 일이기에 많은 수고를 전제하는 일이다. 그럴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하지 않을 일이고,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판단이 섰을 때 하는 일이다. 그러나 퍼나르는 대상이 유형의 물질이 아닌 말과 글이라면 그건 다른 문제다. 발을 가지지 않은 말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전파될 수 있는지는 동서고금의 만인이 인정하는 바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말이 전파되는 범위와 속도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어떤 소식이 하루 만에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시대다. 지난 6월, 그룹 블랙핑크의 신곡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뮤직비디오 사상 최단 시간에 1억 뷰를 돌파했다는 뉴스가 나왔다(이건 진짜 뉴스일 것이다!). 6월 26일 오후 6시에 공개된지 32시간 만에 1억 뷰를 돌파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퍼나름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었던 대기록이다.


문화적 컨텐츠도 따져볼 것들이 있겠지만, 그 내용이 의도된 가짜 뉴스라면 그것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거짓이 만드는 결과는 혼란과 혐오와 다툼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의도를 가지고 거짓말을 지어내거나 퍼나르는 일을 명백히 금하셨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 하지만, 의도를 가지지 않았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사람에 대한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서 그것을 퍼나르는 일이 허용될 수 있다는 말씀은 아니다.


퍼나르기 전에 고려해야 할 실제적 지침들


SNS 덕분에 퍼나르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시대가 되었다. 단 몇 초 만에, 수많은 지역, 수많은 사람에게 퍼나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인 당신이 무언가를 퍼나르기 전에 혹은 당신의 생각을 공시(公示)하기 전에 고려해야만 할 사항 몇 가지를 성경의 원리를 따라 제안하고 싶다.


1. 언제나 사실을 먼저 확인하라. 사실 확인을 할 수 없다면 퍼나르지 마라. 특히 익명으로 쓰여졌거나 인용된 글은 퍼나르지 않는 것이 좋다. 그 내용은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글이다.
2. 사실관계를 확인했다면, 당신이 그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고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라. 충분히 파악하고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라면 퍼나르지 마라. 많은 학자들, 많은 이론이 언급되었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3. 사실을 확인했고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고 이해했다면, 그것이 미칠 영향을 생각하라. 사실이라고 해서 언제나 좋은 결과만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람에 관한 판단의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4. 그러므로 사람에 관한 사실일 경우, 한 번 더 조심하라. 그에 대한 거짓 증거가 되지 않을지 한 번 더 생각하라. 
5. (퍼나르기가 아니라) 자신의 어떤 판단을 공시하려면, 충분한 자료들을 가지고 내린 판단인지 다시 자문하라. 
6. 그 판단을 글이나 말로 공시할 때, 당신의 글도 퍼날라질 수 있으며, 당신이 거짓말쟁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라.


가짜 복음의 문제


우리 사회 속의 가짜 뉴스의 문제만큼이나 교회 안에서의 가짜 복음의 문제도 심각하다. 그것이 가짜 뉴스이든 가짜 복음이든 뿌리는 동일하다. 모든 거짓, 모든 가짜의 원천은 주님께서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신 마귀다(요 8:44).


바울 사도의 복음 사역으로 세워진 갈라디아 교회를 흔들어댔고 무너뜨리려고 한 것은 가짜 복음을 가지고 들어온 거짓 교사들이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펜을 들었고 편지의 처음부터 무서운 저주를 운운하지 않을 수 없었다(갈 1:6-8). 사도들의 시대에 거짓 교사들이 전한 가짜 복음의 문제는 비단 갈라디아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게도 이렇게 말해야만 했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3–15).”


가짜 복음의 문제는 사도 시대 이전, 에덴동산의 뱀에게서, 구약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에게서 쉬지 않고 나타났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주류 교단에 속한 교회들에서 선포되는 가짜 복음의 문제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교회라고 다 믿을 수 없고 목사라고 다 믿을 수 없으니,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와 목사를 분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주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고, 열매로써 그들을 분별하라고 말씀하셨고(마 7:15-16),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 4:1).”고 말씀하였다.


분별이 필요한 말씀들


유튜브나 팟캐스트 또는 웹상에는 매주일 수많은 설교가 올라온다. 물론 거기에는 가짜 복음이 섞여 있고 그 설교들을 퍼나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당신은 어떻게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는가? 설교의 영역에서도, 성경에 근거한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베뢰아 사람들이 했던 것이 말하자면 성경에 근거한 팩트 체크였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가짜가 넘치는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존재


바울 사도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고 에베소 사람들에게 권면하였다(엡 4:15). 그리스도인은 거짓을 말하여 혐오를 조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다. 넘쳐나는 가짜로 불신이 팽배한 이 사회에서, 나는 믿을만하고 신중하고 신뢰할만한 사람들의 존재를 보고 싶다.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이 사회 속에서 그런 존재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두워서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없는 세상에서 빛이 되고, 참을 거짓이라 하고 거짓을 참이라고 하는 부패한 세상에서 소금이 되는 것,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참 뜻이 아니겠는가?

어두워서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없는 세상에서 빛이 되고, 참을 거짓이라 하고 거짓을 참이라고 하는 부패한 세상에서 소금이 되는 것,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참 뜻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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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형익

김형익 목사는 건국대에서 역사와 철학을, 총신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인도네시아 선교사, GP(Global Partners)선교회 한국 대표 등을 거쳐 지금은 광주의 벧샬롬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 ‘율법과 복음’, ‘참신앙과 거짓신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