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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를 위한 인생교훈 여섯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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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Marshall Segal  /  작성일 20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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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Chetan Menaria on Unsplash

이십 대는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방식, 교회라는 신부가 너무 소중하기에 목숨까지 버리신 그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는 좋은 기회이다

Our twenties are an opportunity to learn to love the church like Jesus does — to treasure the bride he died to 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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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는 좋던 나쁘던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결정하는 시기이다.


지금 당신이 이십 대라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지금 한번 되돌아보라. 중요한 고비 때마다 당신이 취한 선택으로 인해 기뻤던 때와 슬펐던 때를 기억하는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감사와 후회의 감정을 느꼈던 순간들도 생각해보라. 친구들과의 우정은 또 어떤가? 시간과 돈을 주로 투자한 대상은 무엇이었는가? 사귀던 이성과 일했던 직장은?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지금까지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왔는가이다.


물론 나머지 인생이 이십 대 때문에 결정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는 어떤 인생을 사는가에 너무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하나님의 인내, 자비 그리고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중 누구나 다 예외없이 인생의 어떤 순간에서라도(서른다섯, 쉰다섯, 심지어 일흔다섯에라도) 급작스럽게 회개하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 수도 있다. 그때까지 어떤 결정을 하면서 살아왔든지 관계없이 성령님은 여전히 각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 3:7-8). 마침내 죄를 내려놓고, 영적 교만과 나태까지 옆으로 밀어놓고, 미래 삶의 방향을 바꾸는 데에 가장 최선의 날은 언제는 오늘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젊을 때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신다면,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수십 년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그리스도를 위한 기초를 젊을 때 더 든든하게 쌓을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인가?


기초가 무너질 때


이십 대는 기초를 쌓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단지 몇 년 정도만 정신차리고 진지하게 노력하면 충분하다고 간주하거나, 또는 젊은 시절의 몇 년 정도는 임대한 시간처럼 편하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적 생활은 변화가 필요할 때마다 바꿀 수 있는 아파트가 아니다. 젊은 시절을 포함해 매순간 우리는 미래의 나 자신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롬 6:19; 잠 4:18-19). 나이를 먹을수록 바뀌는 게 힘들기에, 젊은 시절은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오늘 나의 행동 하나가 내 인생이 디디고 살아가야할 초석을 더 단단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그 초석을 갉아먹어 흔들리게 만든다. 집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집을 고칠 때 가장 힘든 부분이 초석을 다시 손보는 일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좋은 초석을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 경고를 하셨다. 굳건한 초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와도 같이 약한 지반 위에 지은 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다. 두 집 다 하나하나 쌓아올린 벽돌로 만들었다. 그 벽돌은 다름 아니라 우리가 하루하루 만드는 결정과 선택이다. 두 집 다 자신감을 갖고 만들었고, 앞으로 오랫동안 튼튼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슨 일이 생겼는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6-27). 이십 대는 인생을 튼튼하게 만드는 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인생을 망칠 수 있는 수많은 길로 넘치는 시간이다. 넓은 길이 앞에 뚫려있기에 누구나 쉽게 길을 잃는 시간이다.

그러나 경고 뿐 아니라 예수님은 신실한 자를 향해 약속의 말씀도 주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마 7:24-25).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바람이 불고 비가 들이닥쳐서 집을 흔들릴 때가 되어야 제대로 알 수 있다. 이십 대에 기초를 잘 쌓은 사람은 나중에 고난의 바람, 실망의 빗줄기, 그리고 현실의 천둥이 쳐도 하나님 안에 뿌리내린 희망으로 인해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이십 대에 필요한 여섯 가지 교훈


그럼 어떻게 해야 이십 대에 좋은 기초를 쌓을까? 여러 해에 걸친 카운셀링과 내 자신의 부끄러운 경험 그리고 멘토들의 조언 등을 통해서 나는 몇 가지 소중하고 열매맺도록 하는 교훈을 발견하게 되었다.


1. 헌신으로 너의 기초를 확실하게 하라


다른 어떤 것과도 나눌 수 없는 절대적인 헌신을 그리스도께 바쳐라. 이십 대에 결혼하고 자녀를 낳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결국에는 나눠진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고전 7:32–34).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위한 배우자와 자녀를 준비하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결과 당신의 마음과 시간 그리고 헌신은 필연적으로 나눠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혼자 있을 때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강권하는 것이다.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전 7:35). 독신의 삶은 독특한 슬픔과 더불어 많은 도전거리를 던진다. 그렇기에 독신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독신이 주는 어려움이 독신만이 주는 기회마저 박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집중하는 힘, 사역에 열중하는 힘, 오로지 예수님만을 즐거워하는 것, 그럼으로 기초를 더 단단히 쌓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았을 때에도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헌신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나중에 인생이 훨씬 더 복잡해지고 감당할 책임이 더 많아졌을 때 어떻게 그리스도에게 제대로 헌신하겠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지금은 우리의 마음판과 우선순위 그리고 계획 속에 우리가 창조되고 구원받은 목적이라는 올바른 닻을 단단히 내려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오늘, 내일 그리고 영원히 누림(enjoying)으로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십 대에 가장 중요한 이 소명을 놓치고 살고, 그 결과 그런 기회를 다시는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만다.


2. 성경 읽는 법을 배우라


학교 다니면서 읽는 법이야 다 배웠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세상 글을 읽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이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기독교인이 정말 제대로 성경을 읽는 법을 아예 모르고 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교회에서 성경을 빨리 읽거나 몇몇 중요한 구절을 암송하도록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그냥 글을 읽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일이다. 그렇기에 이십 대에 성경을 읽으려고 시도한 많은 젊은이들이 성경 읽기를 힘들고 혼란스럽고 종종 아무런 유익이 없는 일이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많은 이십 대가 성경 읽기를 포기하고 결국 다른 이들이 내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의존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그렇기에 선한 일을 하고 싶다면 이십 대, 삼십 대 그리고 더 나이를 먹어서도 성경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혼란스럽고 맥이 빠지고 또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 없을 때, 바울의 약속을 기억하라.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딤후 2:7).


성경에 당신 자신을 온통 투자한다면, 매일매일 그리고 수년에 걸쳐서 기도하면서 도움을 청하고 성경을 읽는다면 하나님은 계속해서 새로운 깨달음으로 당신을 인도하실 것이다.


성경을 읽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이미 말씀을 사랑하고 잘 아는 누군가와 함께 소리내서 함께 읽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말씀을 바라보는 것은 내 자신의 시야를 넓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하루에 한 장씩 성경을 읽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에서 시작해서 에베소서까지 한번 읽고 그 다음은 신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비로소 구약과 신약을 모두 다 포함하는 성경읽기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읽는 중에도 한 달에 며칠은 집중 읽기 시간을 가짐으로 뒤쳐진 부분을 따라잡거나 또는 암송을 하는 것도 병행하면 좋다.)


3. 무릎 꿇는 게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신앙생활에 필요한 다른 모든 것처럼 기도는 결코 쉽지 않다. 기도하는 게 어렵다는 사람이 성경 읽는 게 어렵다는 사람보다 두 배는 더 많다. 기도가 개인 기도이든 그룹 기도이든 관계없이 그렇다. 


만약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기독교인이 하는 다른 모든 것들과 더불어 기도도 정말로 이상하고 한심한 일이다(고전 15:19).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신다면, 기도야말로 우리가 매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생산적인 활동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또 자신감을 가지고 기도하기를 원하시지 결코 띄엄 띄엄 기도하거나 주저하면서 기도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기도는 완벽하고, 자격이 있으며 또한 말 잘하는 사람이 쓰는 왕관이 아니다. 보좌에 앉아계신 아버지는 아버지를 향한 믿음으로 충만해서 기도하는 자들을 오래 참으심과 자비함 그리고 은혜로 돌보신다.


그 무엇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하나님이 없이 우리에게는 그 어떤 것도 진짜가 될 수 없고 영속적인 가치를 가질 수 없다(요 15:5). 다른 말로 하면 기도가 없이는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진짜가 될 수 없고 영속적인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 어떻게 기도하는지 물어보라(눅 11:1-4).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간단한 기도를 연습하고 깊이 기도하기 위한 시간을 따로 확보하도록 하라. 기도하는 시간이 잦아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무릎 꿇는 것이 편안해질 것이다.


4. 죄와의 싸움을 준비하라


우리의 이십 대를 망치는 수백 가지의 길들은 다 가장 큰 적이라는 하나의 길로 통한다. 바로 나 자신의 죄이다. 물론 우리를 유혹하고 협박하고 공격하는 것은 사탄이다. 또 다른 이들의 죄가 내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고난 때문에 우리가 좌초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은 나의 죄이다. 


바울은 이렇게 썼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많은 기독교인에게 이십 대는 죄와 싸우는 본격적인 길에 들어서는 시기이다. 또 많은 이들은 죄와의 전투를 회피하고 시간이 흘러 그 댓가를 치르기도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죄를 분별하고 바로 죄를 회개하거나 또는 죄와 맞선다. 그 결과 그리스도가 주시는 용서와 의롭게 하시는 능력 안에서 안식을 누린다. 그리고 그 은혜의 힘 안에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는다.


죄와의 전투와 관련해 기억해야 할 첫 번째 사실은 그 누구도 이 싸움을 혼자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여전히 우리 속에 거하는 이 완악하고 위험한 죄를 다룰 때, 우리는 함께 싸우면서 도와줄 다른 이들이 필요하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2-13). 죄는 가장 그럴듯한 거짓말을 가지고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 목표로 삼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내가 가진 약함을 가지지 않은 다른 기독교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5. 지역교회에 헌신하라


만약에 이십 대를 위한 딱 하나의 교훈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게 무엇일까? 아마도 놀라겠지만 이것이다. 건강한 지역교회에 등록하고 그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신앙생활을 유지하라. 그리스도를 높이고, 성경을 믿으며, 복음을 설교하고, 죄를 증오하며, 바른 권징을 실천하며, 제자를 만드는 교회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교회를 당신의 몸처럼 아껴야 한다(마 12:50). 교회는 지금 너무나 많은 기독교인에게는 별로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며, 그건 아직까지 어딘가에 매이지 않았고 헌신되지 않은 이십 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모든 게 더 확실해질 때까지 교회에 헌신하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대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당신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순종하고, 누리도록 영감을 주는 사람들 안에서 당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하늘과 땅의 주님은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교회를 선택할 정도로 교회를 사랑하셨다. 교회를 위해 고난을 받고 죽음을 맛보았으며 당신의 성령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고 이끌고 계신다. 또한 주님은 교회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고 미성숙하면 이런 교회를 경멸하고 무시하며 또 소홀히 한단 말인가?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게 많다는 사실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고 또 교회의 약점 때문에 마음을 상하기도 하다. 또 어떤 이들은 교회의 단점과 실수 때문에 쉽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교회를 향해 악한 감정을 품는다. 그들은 교회가 그들에게 기쁨과 충만함과 위로를 주기를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교회를 위해 희생하려는 마음은 없다. 이십 대는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방식, 교회라는 신부가 너무 소중하기에  목숨까지 버리신 그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는 좋은 기회이다.


교회가 당신 인생에서 단지 주일 오전 한두 시간만을 차지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교회에 당신의 삶을 다 쏟아 넣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없어도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고전 12:21). 또한 교회의 지체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도 말라. 당신의 지금 인생과 남은 모든 인생을 교회에 헌신하라.


6. 고난을 준비하라


한때 신앙고백을 하던 이삼십 대 중에 믿음에서 떠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을까? 진정한 복음을 이해한 적이 없기 때문에 또는 세상과 죄가 주는 즐거움이 결국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믿음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이 그토록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난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기독교는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지 고통을 주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고난이 찾아왔을 때 그들은 신앙을 버린다.


준비되지 않는 위험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미 경고했다.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눅 8:13). 뿌리가 없기에, 즉 “믿음”이 약하기에 그들은 떨어져 나간다. 그들은 이런 말씀을 들은 적이 없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3-4). 그 대신 고난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질문을 던지게 하다가 곧 하나님에 대해서 원한을 갖게 만들며 결국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고난을 잘 받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의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 영적인 눈을 바로 떠야 한다. 하나님이 고난 중에서도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를 배워야 한다. 나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나의 교만을 벗어던지고, 인내하면서 소망과 기쁨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다른 이들을 도우면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라는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이 올 것을 알 뿐만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 잘 섬기게 되고 또 더 강해지고 성숙해진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많은 이에게 이십 대는 처음으로 고난의 맛을 보는 시기이다. 그렇기에 이십 대는 불속에서도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갈 지 아니면 천천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첫 번째 기로가 된다.


신실함(Faithfulness)을 기초로 삼으라


지금까지 소개한 교훈을 하나로 꿰는 메시지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이십 대에 신실함을 배우라. 그리스도를 향한 신실함, 그분의 말씀을 향한 신실함, 그리고 그분이 당신을 어디에 두더라고 동일한 신실함을 잃지 않도록 하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눅 16:10). 미래의 신실함과 많은 열매를 맺는 비밀은 바로 작은 일에도 충성하는 데에 있다. 오늘 우리가 그 신실함을 지키도록 부름받았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너무 사소한 일, 바로 그런 일에도 신실한가 아닌가 여부에 달려있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신실함과 열매 맺음을 망치는 가장 확실한 길은 바로 오늘 부주의하고 안일하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소명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기도하라. 그리고 그 소명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을 이 세상에 더 드러낼 수 있을지 알려달라고 기도하라. 또한 무엇보다 당신을 신실한 종으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하라. 그렇게 앞으로 몇 년 아니 몇 십 년을 살았을 때 당신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Where Will Your Twenties Take You? Six Lessons for Beginning Well

번역: 무제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이 올 것을 알 뿐만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 잘 섬기게 되고 또 더 강해지고 성숙해진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In Christ, we not only expect suffering, but we know suffering will serve us, strengthen us, and mature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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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Marshall Segal

마샬 시걸은 작가이자 desiringGod.org의 책임 편집자이다. Bethlehem College & Seminary를 졸업했으며, 'Not Yet Married'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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