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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없이 맞닥뜨린 미지근함과 탈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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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Marshall Segal  /  작성일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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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Radosław Cieśla from Pixabay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분리된 냉소주의와 영혼을 부수는 율법주의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멜로디이다

Union with Christ is the warm melody between detached cynicism and crushing leg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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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놀라운 기적의 연속, 실제로 매일매일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말 그대로 불가능한 삶이다. 그 기적은 다름 아니라 진실된 마음과 함께 삶 속에서 영적으로 만들어지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과의 연합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경험하지 않은 채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다음 두 가지 길 중 하나로 들어서게 된다. 첫 번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과의 거리감과 미지근함을 느끼게 하는 값싼 은총 그리고 순종을 선결 조건으로 하는 값싼 믿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외부에서 오는 명령에 스스로를 노예화함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치고 수치심만을 느끼다가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두 번째 길이다. 랜킨 윌본(Rankin Wilbourne)은 다음과 같이 썼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서 복음의 핵심으로 들어야 할 노래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없는 은혜의 노래는 비인격적이며 당신 안에 냉소적인 차가움만을 남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없는 제자도의 노래는 기쁨 없는 의무가 되고, 당신을 지치게 만드는 끝없는 과제의 연속이 될 뿐입니다”(Union with Christ, 78).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분리된 냉소주의와 영혼을 부수는 율법주의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멜로디이다. 그리스도가 주시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사시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배우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은혜’의 위험


인간의 마음, 가족 또는 교회에 관계없이, 은혜가 진정으로 지배하는 곳이면 죄가 달아나고 거기에는 의가 피어난다. 불행히도 우리 중 일부는 은혜를 왕으로 삼으려고 하면서도 은혜가 우리 삶에 진정한 권위를 가지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용서, 자유, 받아들임, 그리고 깨끗한 양심을 원하지만, 그렇게 할 때 결코 쉽거나 만만하지 않을 어떤 조건 또는 명령이 따라오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은혜가 단지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배하기 위해서 오는 것임을 분명하게 했다(롬 5:2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롬 6:1). 은혜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면 나는 이미 용서받았다, 그렇지 않은가? 왜 성경 말씀을 놓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고민하는가? 왜 죄책감이 우리 맘 한켠을 차지하도록 만드는가? 


바울은 자신이 물었던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엄한 경고를 답으로 준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5-16). “은혜”가 더 이상 죄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해 두 배로 얽매인 노예로 삼는 게 된다. 순종하고 있지만 사실상 우리가 순종하는 대상은 우리 안에 있는 잔인하고 억압적인 주인이다(롬 6:12).


죄에 굴복하면서도 은혜라는 말을 운운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향해 차갑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는 단지 우리에게 무죄 판결을 주는 판사,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는 집사, 우리의 빚을 처리해주는 은행가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냉소주의가 싹트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정말로 우리를 돌보지 않고 우리를 원하지도 않으면 또한 우리를 기뻐하지도 않는 게 분명하다. 은혜가 신이 될 때, 하나님은 둔감하고 무관심하며 멀리 떨어진 존재가 되고 자연스럽게 우리 속에서 기쁨은 사라지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된다.


‘순종’의 위험


불량한 순종은 값싼 은혜만큼이나 위험하다. 어떤 사람들은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고자 순종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자신감과 자부심에 대한 근거를 위해서 순종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잘못된 손에 들린 성경은 우리에게 순종이 자기를 높이는데 필요한 충분한 근거로 제공된다. 단지 성경말씀을 잘 아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얼마든지 교만해질 수 있다(고전 8:1).


은혜의 함정에 대해 경고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지나치게 용서에 의존하면 우리는 죄의 노예가 될 뿐 아니라 과도하게 자아에 의존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로움에 감명을 받으셔야 한다는 은근한 생각이 우리 속에 들어오고, 따라서 순종 잘 하는 나의 경우에 사실상 십자가의 죽음은 너무 지나친 방법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면서, 우리는 순종을 통해 하늘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미묘한 생각에까지 빠지게 된다. 그 결과는 다름 아니라 뒷문에 숨어있는 사탄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죄로 우리를 유혹할 수 없게 되는 경우, 사탄은 훨씬 더 교묘하고, 더 자아도취에 빠지게 만들며, 더 종교적인 방법으로 위장해서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교만이 주는 초기의 스릴이 잠시 만족감을 줄 수는 있다. 자신감과 성취가 주는 따뜻한 느낌, 나를 인정하는 타인의 시선, 조금씩 사라지는 의존감 등등이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들은 결국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 직면하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열매는커녕 먼지만 날리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는 지치고 기쁨은 사라진다.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고통스럽게 느낄 뿐 아니라,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작 하나님을 조금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된다. 


나 자신을 끌어내리기


우리가 은혜를 오용하든, 또는 삶의 여러 다른 시기에서 우리 자신의 교만을 더 키우든 관계없이, 하나님께서는 미지근한 방탕함과 낡은 율법주의 사이에 길을 하나 열어놓으셨다. 그러나 그 길을 걸으려면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윌본은 이렇게 썼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나 자신을 삶의 중심에서 끌어내립니다. 그 연합은 하나님이 인간은 그의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만 존재의 의미가 있도록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그 연합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이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분리될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면 모든 삶이 더 나아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가 여러분이 행하고 말하는 모든 삶에서 살아있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은혜를 사용하여 죄를 정당화하는 사람과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의 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중심에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다. 은혜와 율법, 신앙, 직장, 교회, 그리스도와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타오르는 태양, 도무지 저항할 수 없는 무게 중심이 되시면, 자연스럽게 은혜가 우리를 다스리고 참된 의의 열매를 맺게 된다. 팀 켈러(Tim Keller)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주님이다. 당신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예수님은 당신을 완전하게 만드신다. 설혹 당신이 그를 실망시켰다고 해도, 예수님은 영원히 당신을 용서하신다”(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Reason for God).


그렇다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가 은혜를 남용하고 자아를 신뢰하는 것을 어떻게 막는가? 첫 번째 편지에서 사도 요한은 양방향에서 동시에 정화의 역할을 하는 연합의 힘을 보여줍니다.


당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


첫째,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가 은혜를 남용하는 것을 어떻게 막는가? 요한은 은혜를 당연하게 간주하고 계속 죄를 지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썼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요일 1:6). 죄 안에서 계속 거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정말로 알지 못하고, 그분이 실제로 우리 안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계속해서 죄를 짓는 모습은 우리가 쓴 가면을 벗겨내고 우리가 사실은 은혜를 모를 뿐 아니라 사실상 은혜의 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요일 1:7). 이것은 은혜를 남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놀라운 치료법이다.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에 점점 더 순종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빛 가운데 걷는 모습은 우리가 예수님과 그분의 은혜를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순종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죄없는 아들의 피만이 우리의 죄값을 갚고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자유의 증거는 어둠 속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빛 가운데 걷는 것이다. 순종이야말로 우리가 은혜의 통치를 받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용서만 하는 은혜는 변화시키는 은혜만큼 크지 않다. 죄를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에 가까이 다가갈 때, 우리가 기대하는 값싼 은혜보다 더 큰 것을 기대하라.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없애는 은혜 뿐 아니라 당신 안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창조하는 놀라운 은혜를 기대하라. 그리스도께서 당신 안에 사실 것을 기대하라(갈 2:20).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당신


그러나 “빛 가운데 걷는 것”이 우리 자신의 힘과 지혜와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 되지 않도록, 요한은 자기의에 관한 경고를 잊지 않는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만약에 기독교가 그리스도를 떠나서 우리의 의를 확인하는 식으로 바뀐다면, 그건 결코 기독교가 아니다. 어떻게든 노력을 기반으로 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은혜에 대해서, 심지어 순종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우리는 깨끗하기 위해 고백해야 한다. 빛 가운데 걸으려면 남아있는 죄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또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가 지은 모든 죄의 무게를 다 짊어지거나 의로움을 향해 가혹한 산을 올라갈 필요가 없다. 믿음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가 배울 수 없는 지혜, 우리가 얻을 수 없는 의, 우리가 만들 수 없는 성화, 우리가 이룰 수 없는 구속이 되셨다(고전 1:30). 더 이상 나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의 은혜를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요한은 몇 구절이 더 지나서 이 좁은 길을 다시 언급한다. 요한일서 2장 1절이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은혜의 남용을 주의하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자기의를 조심하라).” 이것이야말로 자유와 기쁨, 거룩함과 겸손, 확신과 고백, 그리고 노력과 의존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길은 다 은혜로 채워지고 은혜로 연료가 공급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가 그분과 연합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The Path Between Lukewarm and Worn Out

번역: 무제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없애는 은혜 뿐 아니라 당신 안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창조하는 놀라운 은혜를 기대하라

Expect grace to not only cancel the wrath of God against you but to create the holiness of God within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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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Marshall Segal

마샬 시걸은 작가이자 desiringGod.org의 책임 편집자이다. Bethlehem College & Seminary를 졸업했으며, 'Not Yet Married'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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