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가 그토록 중요한 다섯 가지 이유
by Kaitlin Miller2021-05-22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는 본인이 가진 내적 공허감을 채우기 위한 욕망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소식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공허를 채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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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묘사하기도 힘들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게다가 성경에 나오지도 않는 것이 삼위일체라고 한다. 그런데도 왜 삼위일체의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는 그토록 그 주제에 신경을 써야하는가?


삼위일체 교리가 왜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글이 나와있다. 그러나 한 분 하나님을 삼위로, 즉 겉으로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 


여기 우리가 그 교리를 믿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추가된)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1. 삼위일체는 하나님을 다른 신 개념과 구분짓는다


많은 이들이 무슬림과 유대인 그리고 기독교인이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상 무슬림과 메시아를 믿지 않는 유대인이 단지 하나로 이뤄진 신(a mono-personal god)을 믿는 반면 우리는 삼위일체라는, 세 분으로 이뤄진 하나님(the tri-personal God of the Trinity)을 믿는다. 이런 차이는 중요하다. 


단지 하나로 이뤄진 신도 얼마든지 영원히 사랑하고 영원히 은혜로울 수 있다. 문제는 이 세상이 생기기 전에는 그런 신은 사랑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신이 할 수 있었던 사랑이라고는 고작해야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뿐일 것이다. 그런 신은 잘 정의해야 자기만을 섬기는 이기주의에 빠져 고독을 즐기는 신 정도다. 신에 대한 이런 식의 정의는 결국 권력만을 중시하는 세계관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반해 기독교의 세계관은 사랑을 가장 중요한 명령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가장 가치있는 덕목으로 여긴다(마 22:36–40; 고전 13:13).


우리는 하나님이 변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믿는다(요1 4:8). 삼위일체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도 어떻게 사랑이었는지를 알려준다. 세 분의 하나님은 신적으로 또 영원히 서로를 사랑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 안에서조차 사랑으로 정의되는 분이다. 


또한 동시에 세 분으로 이뤄진 하나님은 다신과는 분명하게 구분된다. 예를 들어, 힌두교의 브라흐마, 비슈누 또는 시바와 같은 신들 말이다. 우리는 그런 식의 세 신을 섬기지 않는다. 우리의 주님이자 하나님은 한 분이다(신 6:4). 


세계 종교가 계속해서 증가함에 따라 또 보편주의의 조류에 대항하는 측면이라는 면에서도 기독교가 가진 이 독특한 특징은 우리가 가진 믿음을 전하는 방법론에 있어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2. 삼위일체는 구약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2세기 후반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드러난 비밀(엡1:9; 3:3)를 표현하기 위해서 ‘삼위일체’라는 말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복수의 모습이 처음 나온 것은 신약성경이 아니라 구약성경이다. 


첫 장부터 하나님의 성령이 소개된다(창 1:2),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키면서 ‘우리’라는 복수 대명사를 사용한다(창 1:26–27; 3:22; 11:7; 사 6:8). 하나님이 하나임을 강하게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어 성경에서 하나님을 ‘하나’로 묘사하는 데 사용된 단어 ehūd는 다양성 속에 있는 통일성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탄력적인 용어다. 이와 비슷하게 구약에 하나님을 지칭하는 단어 ‘엘로힘’과 ‘아도나이’도 복수형이다. 아마도 앞으로 온전히 드러날 삼위일체의 실재를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 역할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무려 백 번이 넘게 구약은 하나님의 영이라는 표현을 쓴다. 또한 장차 적을 물리칠 자(창 3:15),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단7:9–14), 존경받아야 할 아들(시 2:11–12), ‘전능한 하나님’이며 ‘영원한 아버지’로 불릴 처녀가 낳을 아들(사 9:6), 그리고 하나님으로 인정받은 여호와의 사자(창 16:10–13; 22:12–16; 출 3:1–6; 사 2:1–4; 6:11–24; 슥12:8)가 있다.  


출애굽기(3:14)가 말하는 ‘스스로 있는 자’(I Am)를 복음서는 그리스도가 ‘나는 있다’(I Am)라고 밝히는 것으로 말한다. 또한 광야의 반석(출 17; 고전 10:4) 그리고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자라고 한다(유 5). 부활한 그리스도는 성경을 풀어주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모든 성경에 다 있다고 말했다(눅 24:27). 또한 유대인이라면 타고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가정, 하나님 안에 있는 두 번째 위격에 관해서는 시편 110편 1절이 잘 보여주고 있다. 


3. 삼위일체는 신약성경 이해에 필요한 토대가 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고안해낸, 창조된 피조물이 아니었다. 그는 온전한 인간이었지만, 또한 처음부터 존재한(요 1:1) 영원하고 완전한 하나님이었다. 이것은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삼위일체가 여기에 도움을 준다. 


또한 삼위일체는 삼위 모두가 다 드러나는 구절을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신다(요 14:26).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은 다 아들의 것이고 성령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선포하신다(요 16:15). 아버지는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신다(롬 8:9; 갈 4:6; 딛3:6).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마 28:19). 아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영으로 아버지께 나아간다(엡 2:18).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 아들의 은혜, 성령의 교통하심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한다(고후 13:14).


4. 삼위일체는 하나님과 교회를 향한 우리의 관계에 기초가 된다


이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은 사랑과 섬김 그리고 서로를 영광스럽게 하는 면에서 완벽한 하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는 본인이 가진 내적 공허감을 채우기 위한 욕망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소식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공허를 채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 없이도 완전히 충족하시는 분이다. 그럼에도 그는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기로 마음먹었고, 하나님이 스스로 누리는 그 넘치는 기쁨을 우리도 누리고 충족함을 느끼도록 우리를 초대했다. 하나의 교회로서 우리는 이제 아버지의 집이고(딤전 3:15), 아들의 신부고(고후 11:2; 엡 5:27; 계 19:7), 또한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다(고전 6:19).


하나님과 사랑으로 하나되었기에 우리는 그분의 백성과도 연합할 수 있다. 그들과 함께 우리는 아들 안에서 성령으로 인해 아버지의 거처가 될 수 있다(엡 2:22). 삼위일체의 세 분이 신비롭게 하나로 통합된 것처럼, 이제 우리도 민족, 언어, 국가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백성으로(계 7:9)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 


5. 삼위일체는 우리의 사명을 설명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고, 아들이 성령을 보내는 것을 통해 우리가 가진 이 위대한 대사명이 삼위일체가 이 세상 안에서 가진 사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요 17:18; 마 28:18–20). 아버지의 미리 아심, 아들의 순종, 그리고 성령의 성화(벧전 1:2)에 의해서 우리도 보냄받았다.


하나님 안에서 세 위격이 서로를 영화롭게 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그분을 증거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양자의 영을 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아들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았을 때 우리는 아버지가 누린 궁극적인 영광을 볼 수 있었다(요 12:28; 롬 8:15). 이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버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부름받았다(요 15:13).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사명(missio Dei)을 수행하게 된다. 


삼위일체는 핵심이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결코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신이라고는 결국 우리 인간의 이미지를 투영시킨 신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야말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서 지음받은 존재다(창 1:26-27).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자에게 자신을 더 드러낸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렘 29:12; 히 11:6). 하나님을 더 정확하게 인식하면 할수록, 우리는 마음 깊이 그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더 온전하게 예배하게 되며, 나아가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수행하는 사명 속에 더 열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원제: 5 Reasons the Trinity Matters So Much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하나님 안에서 세 위격이 서로를 영화롭게 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그분을 증거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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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Kaitlin Miller

케이틀린 밀러는 University of Georgia와 Dallas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하고, 현재 Chick-fil-A Inc 서포트 센터에서 일하고 있으며, Passion City Church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