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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내면이 설교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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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고상섭  /  작성일 2020-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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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의 ‘현대 교회와 설교’의 원제는 ‘Between Two Worlds’며, 설교란 두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존 스토트의 책이 나오기 이전 설교학의 관심은 Text, 즉 성경이었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주해하는지가 관심이었다면, 이 책이 출판된 이후에는 또 다른 세계인 Context(청중의 상황)도 고려해야 하는 주제라는 것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팀 켈러는 또 하나의 Text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설교자의 내면의 정서인 Subtext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설교자는 Text인 성경말씀을 바르게 주해해야 한다. 그리고 Context인 청중의 상황에 맞도록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교자의 내면의 정서인 Subtext다. 아무리 주해를 바르게 하고 청중의 상황에 맞는 적용을 하더라도 설교자의 내면에서 사람을 싫어하고, 편을 가르면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연합을 설교할 때 청중들은 은혜를 경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물론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면 가능할 수도 있다).


팀 켈러는 Subtext를 이렇게 정의했다. “서브텍스트는 설교자 메시지 저변에 흐르는 메시지다. 그것은 메시지가 의도한 진정한(의식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의미로서, 단어의 표면적인 의미보다 깊다. 예를 들어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라는 진술은 ‘저는 관심 없어요, 당신 원하는 대로 하세요’라는 서브텍스트를 품고 있을 수 있다.”


이 서브텍스트는 설교자의 말이 아니라 어조, 얼굴 표정, 자세, 제스처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숨길 수 없는 그의 내면의 정서다.


1. 내부 강화(Reinforcement)의 서브텍스트


설교를 아름다운 말로 하지만 설교자의 내면에서 ‘우리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라는 정서를 품고 설교할 수 있다. 이런 메시지를 은연중에 퍼뜨리면서 소속감을 증진시키고 내부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어떤 설교자들은 신학에 집착하여 '우리 교회'의 설교와 신학만이 최고의 신학이라는 뉘앙스를 풍길 수도 있다. 어떤 설교자는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한 말보다 ‘우리 교회’라는 말을 더 많이 하는 경우도 있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강화될지 모르지만 대체로 교만해질 위험성이 있다. 좋은 설교를 계속 듣는데 왜 사람들이 교만해질까를 고민하고 있다면 설교자 자신의 내면에 ‘내부 강화’의 서브텍스트가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2. 과시(Performance)의 서브텍스트


과시의 서브텍스트는 ‘나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다. 자의식이 강한 설교자는 Text와 Context보다 설교하는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 설교하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청중들의 관심을 그리스도가 아닌 설교자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열정적으로 설교를 하지만 그렇게 좋은 설교를 통해 자신이 환심을 사고 싶은 것이다. 과시의 서브텍스트를 가지고 있으면 설교자 자신은 유명해지고 높아지지만 청중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그리스도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오직 설교자에게 집중하는 영적 교주의 형태로 변화되어 간다.


3. 훈련(Training)의 서브텍스트


훈련의 서브텍스트는 ‘이 진리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다. 목표는 듣는 이들의 지식을 키워서 그들이 바람직한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이런 서브텍스트를 가지고 있는 설교자는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전에 듣지 못한 새로운 것’을 설교하고 싶어한다. 새신자나 신앙이 어린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신학과 가르침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단단한 음식’을 지속적으로 설교하는 것이다. 탁월하고 새로운 가르침에 집착하기 때문에 때로는 신학적으로 오류가 있어 보이는 해석들도 새롭기만 하면 과감하게 설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서브텍스트를 가진 설교자의 교회는 주로 엘리트 중심의 지성적인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복음을 통해 연합되는 교회가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로 고립되어 끝없이 어려운 신학적 주제들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행 17:21)


바울이 아테네에서 만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이 복음을 거부한 이유는 그들이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시간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훈련의 서브텍스트를 가진 설교자의 내면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4. 예배(Worship)의 서브텍스트


설교자가 가져야 하는 바람직한 서브텍스트가 바로 ‘예배의 서브텍스트’다. 이 서브텍스트의 본질은 ‘그리스도 정말 위대하지 않아요?’다. “그리스도가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얼마나 더 경이로운 분인지를 보세요! 당신의 모든 문제가 결국 이 진실을 직시하지 못한 데서 온 것임을 깨닫지 못하겠나요?”


팀 켈러는 이것이 진정한 설교의 심장이라 말한다. 결국,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의 핵심은 본문 안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 그 전에 설교자의 마음 깊은 곳에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싶은 간절한 열망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설교자로서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느끼고 있는가?’ 설교하는 바로 그 순간 그분을 묵상하고 그분께로 침잠하고 있는가? 입을 열어 그분이 찬양받기에 합당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진심으로 그분을 찬양하고 있는가? 


이런 일들이 실제 우리 설교에서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단지 설교 준비만 하는 게 아니라 매일 기도와 묵상을 통해 정기적으로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들이 깊어져야 한다. 그리스도를 높이고 싶은 간절한 열망은 설교단이 아니라 설교자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설교자로서 나의 간절한 소원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싶은 것인가?

작가 고상섭

고상섭 목사는 영남신학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그 사랑교회'를 개척해 섬기고 있다. ‘팀 켈러 연구가’로 알려져 있으며 CTC코리아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최근 공저한 ‘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 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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