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열망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by Kendra Dahl2018-11-11

건강, 운동, 다이어트는 새해 결심의 최상단을 장식하는 키워드로 매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몇 년 전까지 잘 맞던 청바지를 움켜쥐고 이 옷을 다시 입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피트니스 연간 회원권이나 요가복의 세일은 우리의 결심을 더욱 부추긴다. 또한, 페이스북에는 몸매와 운동에 대한 게시물이 넘쳐난다.


나 역시 살을 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어린 시절, 수영장에 가면 남자 아이들의 놀림이 두려워 항상 헐렁한 티셔츠로 몸을 가렸다. 그러다 열두 살 즈음에 다이어트에 성공했고, 친구들로부터 그토록 원했던 선망의 눈빛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내 몸매를 지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하리라 마음먹었다. 식이 조절과 운동, 심지어는 일부러 구토까지 하면서 이 모든 과정을 줄기차게 따랐다. 하지만 나는 애석하게도 몸매에 대하여 늘 부족함을 느꼈다. 거울 속의 나를 볼 때면 초라하기 그지없었고, 오래 보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보다 빠른 임신과 출산의 경험은 몸에 대한 불만족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젊고 늘씬한 친구들의 몸에 비하면 나의 몸은 처지고 모양새가 없어 보였다. 물론 예수님을 알게 되면서 끊어질 수 없는 그분과의 관계가 내게 자신감을 주었고, 사랑하는 남편과의 강한 유대감이 마음에 여유를 주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내 안에 지속되어 온 몸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 후로 여러 해가 지나고 사랑스러운 두 아이도 더 갖게 되었다. 그러나 거울 속 내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불평하는 자아와 크리스천으로서의 진정한 자아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여러 신학자들은 로마서 8장을 성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손꼽는다. 이 장에서 우리는 크리스천의 정체성에 대한 신학적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안의 풍부한 교훈은 추상적이거나 서로 동떨어진 개별적 개념이 아니다. 하나의 크고 원대한 통찰로서 우리의 몸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잘 알려 준다. 


이제부터 로마서 8장을 통해 하나님이 몸에 관해 알려 주시는 세 가지 진리를 살펴보려 한다. 이 교훈들이 당신의 내년 새해 다짐에 분명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1.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는 하나님


아름다움의 기준은 문화마다 다르고, 유행의 흐름에 따라 제각기 변화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풍만한 하체를 아름답게 본다. 반면, 또 다른 문화권에서는 날씬함을 넘어 가느다랗고 마른 다리를 미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이 갈망해야 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성경은 이상적인 몸매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 몸의 형태가 아닌 마음의 상태, 즉 우리에게 부족한 영의 모습에 대하여 가르친다. 


멋진 몸매를 향한 열망은 결국 자부심에 대한 목마름이다. 늘어난 몸무게, 또다시 실패한 다이어트, 등록만 한 채 가지 않은 헬스장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을 정죄하는 점점 더 많은 조건들이 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이 정도면 자부할 만하다고 평가하기 위해 완벽에 가까운 기준을 세운다. 그리고 그 기준에 맞추려고 고군분투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로마서 8장 1절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복음의 핵심이다. 하나님이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비로소 정죄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주님이 주시는 이러한 자유는 나의 겉모습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다. 


그토록 바라는 신체적 화려함이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몸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타인의 눈을 사로잡기 위함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가 아름답고, 섹시하고, 자신만만하고, 강하게 보이고 싶은 욕구인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타인의 눈을 두려워하며 동시에 갈망한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결코 변치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그 사랑의 뿌리가 우리의 외양이나 행위에 있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사람들의 찬사나 사랑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쉽게 변하기 마련이다. 


이상적인 몸매를 만드는 것과 그 결과인 타인의 선망은 결코 자아를 만족시킬 수 없다. 몸에 대한 욕구라는 주제 아래 영적인 문제와 죄성에 관하여 논할 부분들은 충분히 많지만 그중 다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나를 향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두려움이나 욕망의 외피를 벗어 던질 자유를 얻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껍질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 정죄함이 없는 그 사랑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몸매는 눈에 보이는 모습이다. 우리는 늘 거울 속 자신의 몸매가 자부할 만한 모습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보혈의 은혜는 그 모든 정죄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자유롭게 한다. 타인으로부터의 정죄는 물론이요, 약한 자아가 스스로를 정죄하려 할지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더 크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로마서 8장 28절에서 30절이 말하듯,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의 선(善)을 위하여 모든 일에 역사하신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이룬다 함은 우리의 성품이 변하여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관심을 어느 곳에 두어야 할지 잘 알려 준다. 멋진 몸매 만들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혹은 거룩하지 못한 삶)과 어떠한 연관성도 없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7절과 8절에서 우리의 몸과 거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바울은 우리가 가꾸고 훈련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한다. 바울은 외양이 아닌, 하나님을 닮은 영혼을 가꾸는 데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하나님이 우리의 거룩을 위하여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멋진 몸매를 만드는 시간 속에서 종종 반복되는 좌절에 부딪힐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황조차도 우리 영혼의 성숙을 위해 사용하신다. 당신은 식이 조절과 피트니스를 통해 성공과 실패를 오갈 것이다.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우리 마음속의 우상을 보게 하시고, 자만을 뿌리뽑으시며, 진정한 거룩을 이루도록 인도하신다. 이는 우리가 몸을 위하여 애쓰는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내가 무려 354번째 다이어트에 실패했을 때이다. 하나님은 이날의 실패를 내가 주님의 자녀로서 한걸음 더 성숙해지는 데에 사용하셨다고 확신한다. 그분은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이다(빌 1:6).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우리의 몸


로마서 8장 23절은 연약한 몸 때문에 마음으로 탄식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우리의 영혼은 구원에 이르기를 열망하고 기다린다. 더욱이 우리는 장차 받을 영광과 아프거나 죽지 않을 영원한 부활을 이미 약속 받았다. 하지만 육체는 여전히 약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때가 이르기 전까지는 “아직 부활하지 않은” 세상 속의 육체로 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의 흐름 속에서 육체의 노쇠를 경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결국에는 죽음에 이른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서신에서 바울은 우리의 몸을 멋지고 강하게 만들라고 권하지 않는다. “너희의 몸은 성령의 전이라.” 오히려 그는 교회인 몸으로 죄짓는 행위를 지적하고 있다. 우리 몸은 다른 무엇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고전 6:19-20). 그런데 매일 운동을 하는 것, 유기농 제품을 챙겨 먹는 것, 주님이 아닌 타인의 찬사를 갈망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몸을 헌신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인가?


몸은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목적을 이루어가는 매체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힘으로 성취하실 목적 때문에 창조되었다. 그렇기에 크리스천은 흙으로 빚은 연약한 몸 안에 복음이라는 보화를 담고 다니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왜 이러한 모습으로 만드셨을까? 우아하면서도 충격에 강한 값비싼 도자기처럼 만드실 수는 없었을까? 왜 하필 약한 질그릇의 형태로 만드셨을까? 그 이유는 몸의 약함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원대한 힘이 주님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고후 4:7).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몸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한 친구가 내게 당부했다. 만약 몸을 관리의 대상으로 본다면, 좀 더 강하고 멋진 신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육체는 연약하지만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 물리적, 외양적 차이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을 관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겉모습이 아닌 역할에 있음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몸을 준비해야 한다. 즉, 우리 몸을 살아 있는 희생제물로 드리도록 관리하라는 의미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특별하게 창조하셨다. 크리스천은 한낱 풀과 같이 시들어질 외양을 붙들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살아가는 그분의 백성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몸의 부활을 기다리며


몸을 대하는 방식은 곧 영혼의 상태를 대변한다. 음식에 대한 강박, 인정에 대한 욕구, 멋진 몸매가 만족을 완성한다는 환상까지,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영혼의 상태이다. 물론 신체를 강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건강과 멋진 몸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도, 육체는 여전히 연약할 수 밖에 없다. 크리스천은 부패할 수밖에 없는 육신을 넘어 영원히 다시 살아날 그날을 고대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고전 15:42). 우리는 육체의 부활이 이루어질 그날을 소망해야 한다. 그 소망 안에서 우리가 이미 구원 받았기 때문이다(롬 8:24).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As You Start that Diet: 3 Truths About Body Image
번역: 정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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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Kendra Dahl

켄드라 달은 Core ChristianityWhite Horse Inn의 콘텐트 디렉터이며, 작가이자 아내, 세 아이의 엄마다. 노스다코타 주 파고 출신이나 현재는 샌디에이고 지역에서 바다와 산 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다. 고향의 눈은 조금도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아는 데서 오는 치유와 자유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글을 쓴다. 인스타그램에서 그녀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