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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에도 뉴노멀이 도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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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김선일  /  작성일 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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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Jody Parks from Pixabay

코로나바이러스가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 시대로 인해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정착을 미뤄왔던 비대면 방식의 일과 교육, 기본소득제, 생태적 실천이 우리 삶의 중요한 지형이 될 전망이다. 전도 사역은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한 우리의 생활 양식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때문에, 이 또한 과거의 익숙함과 거리를 두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문명의 전환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인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복음이 소통되고 전파되는 적절한 방식에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뉴노멀은 전도 사역에 적신호와 청신호를 동시에 밝혀 준다. 상황은 늘 위기와 기회를 모두 안고 있기 때문이다.


1. 코로나 시대 전도의 적신호


바이러스로 인해서 집합 예배만 힘들어진 것이 아니라, 전도에도 중대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전도 방식이 바로 인력 동원의 집회 전도와 개인 접촉을 통한 노방 전도였기 때문이다. 매년 4~5월과 9~10월은 많은 교회들이 총동원 전도, 새생명축제 등의 이름으로 집회 전도를 여는 시기였으나, 올해는 어떠한 행사도 불가한 상황이다. 불신자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행사는 고사하고, 거리두기로 인해 기존 신자들도 매주 교회 출석이 어려운 상황이다.  아무리 절대 다수 교회들이 방역지침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음을 항변해도 옹색한 방어 논리로 들릴 뿐이다.   


길거리에서 익명을 대상으로 접촉하는 노방 전도는 어떤가? 이러한 행위는 이제 종교라서가 아니라 타인의 위생과 안전을 위해서 금기시될 것이다. 누군가와 몸이 살짝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경험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낯선 이들을 꺼리는 정서와 태도는 머지않아 새로운 생활 습관이 될 것이다. 근래에 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 거부감이 확산되었던 노방 전도는 이제 변신을 하지 않으면 유물로 전락될 것이다. 왜 ‘변신’이라고 하는지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최근 집회 전도와 노방 전도를 넘어서는 대안으로 추구되던 전도 방법으로 소그룹 전도가 지목되곤 했다. 혹자는 대규모 모임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소그룹이 부상할 것이라고도 한다(존 피니 ‘새로운 전도가 온다’ 124쪽). 과연 그럴까? 소그룹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face to face relationship)를 기본 원리로 삼는다. 비대면이 기본 모드가 되어 가는 사회에서 대면적 만남을 통한 영적 상호 작용이 증진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소그룹 전도는 신자와 불신자가 5:5 내지는 6:4의 비율로 구성되어야 하는데, 모르는 자들과의 만남에 헌신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까? 물론 소그룹 사역의 근본적 가치인 관계적 헌신은 소중하다. 그것은 소그룹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모습으로든 지속되어야 한다.


2. 코로나 시대 전도의 청신호


집회 전도, 개인 전도, 소그룹 전도가 모두 난관에 봉착한다면, 이제 전도는 미지의 땅으로 들어서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고민과 연구는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떠안아야 할 과제다. 그러나 복음은 불변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복음의 능력은 우리의 방법과 관계없이 자명해질 것이다. 또한 새로운 상황의 불확실성은 사람들의 (하나님께로 연결되어야 할) 영적 갈망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지난 봄에 구글 트렌드에서 기도라는 단어의 검색량이 크게 늘어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인 제넷 벤첸(Jeanet S. Bentzen)은 미국과 유럽 전역으로 바이러스 감염이 확산되던 3월경 구글에 기도 검색이 두 배 이상 폭증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위기의 상황을 종교적으로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원초적 심리가 작동된 것으로 보았다(“In Crisis, We Pray: Religiosity and the COVID-19 Pandemic” in Covid Economics (Issue 20), 20 May 2020: 52-108). 이러한 검색량의 폭증이 기독교 복음에 대한 관심으로 직결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오늘날의 불확실함 속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근본적 책무를 일깨워 준다. 교회 안에서만 혹은 혼자서만 기도하지 말고 세상을 향해서, 이웃을 위해서 직접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잊지 말자.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보편적 습관이 될수록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갈망 또한 더욱 커져 갈 것이다. 인간은 몸을 지닌 존재인 이상 비대면으로는 만남의 근원적 욕구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이미 현대 도시화와 1인 가구, 개인주의는 인간을 홀로 살아가야 할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 곁에 있어 주는 존재다. 이해관계나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관계적 사람이 필요하다. 


이러한 영성과 관계는 성경적이고 복음 중심적인 교회가 전도 사역의 주된 영역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당연한 영역이다. 영성은 관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실체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삶의 초월성에 눈을 뜨는 것이다. 영성적 가치를 잃어버린 인간은 현실 세계의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된다. 영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기독교의 고유함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지만, 복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중간 지점은 된다. 관계는 복음이 삶으로 표현되는 영역이다. 기독교의 진리는 문자에 갇히지 않고 생생한 인격과 이웃 사랑의 관계로 드러난다. 전도를 위해 관계를 도구화하지 말자. 관계에 먼저 충실하고 전도는 신뢰적 관계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되어야 한다. 


3. 전도의 ‘오래된 뉴’노멀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 전도의 핵심은 무엇일까? 복음의 선포와 실천이 아니겠는가? 복음을 우리의 말과 삶으로 표현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 오늘날에는 복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정기적인 교회의 설교와 개인의 일상적 관계에서 신앙을 권하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복음을 나누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최근 회심자들에 대한 조사를 보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계기나 전략보다는 이러한 일상적인 교회 예배나 관계를 통해서 신앙을 갖게 된다. (단, 오늘날 온라인 미디어의 지배적인 영향력을 고려할 때, 유튜브 등을 통해서 기독교를 선명하고 흥미롭게 소개하는 특별한 작업이 요청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교단 차원, 혹은 교회 연합 차원의 프로젝트도 필요하다.)


초대 교회는 당시의 적대적 환경으로 인해서 극히 제한되고 폐쇄적인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교회는 새신자를 환영하기보다 오히려 검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알렌 크라이더 ‘회심의 변질’ 참조). 그럼에도 교회는 전도를 통해서 성장했다. 전도의 열쇠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삶에 있었다. 특별한 방법이 아닌 성경의 가르침 대로다.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 너희 선한 일을 보고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벧전 3:1). 이러한 말씀들의 실천은 어떤 밀접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바이러스의 위협이 그치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대면적 만남은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관계로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가족과 이웃, 직장 동료, 친한 지인 정도일 것이다. 신약 시대의 전도는 오이코스라고 하는 확대 가족 관계를 통해서였다. 오늘날 우리는 평소의 관계를 진실하게 성찰하게 된다. 팀 켈러는 ‘팀 켈러의 센터처치’에서 복음의 열매를 맺는 사역의 역동성은 이러한 일상적이고 비공식적이며 다양한 관계들에서 일어남을 증언한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교인들의 20~25퍼센트가 자신의 일상에서 가족, 친지,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복음을 나누고 그들을 환대하는 사역에 참여하면 교회 전체에 큰 효과를 일으킨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전도 사역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일상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유명 인사를 동원한 전도 집회를 열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매력적인 삶을 사는 이웃이 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교회 프로그램이나 봉사를 위한 제자도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선교적 제자도여야 한다. 관계를 이용하는 전도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 충실한 이웃 사랑의 삶이어야 한다. 특별한 이해관계나 용건 없이도 이웃과 인사하고, 그들의 안부를 묻고, 상대의 말을 성의 있게 경청하고, 그들의 삶에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로 오는 것 뿐 아니라, 그들이 교회가 되게 하라. 최근 미국 빌리그레이엄센터의 불신자 전도 조사 결과에서는 미래의 전도를 위한 중요한 모델로 ‘마이크로처치’(microchurch 초소형 교회)를 제시한다. 마이이크로처치는 가족, 친척, 이웃 등의 관계로부터 시작되는 작은 믿음의 공동체다(Rick Richardson, You Found Me, IVP, 2019). 직장인이었던 Y는 우울증을 앓는 아내의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여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며 기도해 주는 영적으로 친밀한 모임을 시작했다. 우울증 해소에 도움을 받은 그 친구는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믿지 않는 다른 친구를 그 모임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Y의 가정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관심과 돌봄을 제공하면서 초대와 환대의 공동체로 발전했고, 몇 년 후 Y는 필자가 재직하는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이제는 건실한 강소형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전도에 관한한 방법과 전략의 유혹을 버리고, 성경의 단순한 원리를 실천하는 오래된 뉴노멀을 마주하게 하고 있다. 그것은 일상의 작은 관계들에서 따뜻하고 진실하며 영적으로 배려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좋은 말이지만 사실 쉽지는 않다. 그동안 익숙했던 가족 및 이웃 관계에서 어색함을 떨치고 관심과 돌봄을 제공하는 용기가 요청된다. 그래서 교회 전체 차원의 격려와 기도가 필요하다. 개인이 알아서 하도록 맡길 문제가 아니다. 전도를 위한 당위로서가 아니라 다른 이를 섬기는 예수님의 행복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작가 김선일

김선일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를 거쳐 풀러신학대학원(MDiv, PhD)에서 수학하고 2008년 9월부터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풀러신학대학원 재학 중에는 한인 최초의 캠퍼스 교목으로 일했으며, 한국교회의 청년 선교와 교회 성장을 위해 섬겨왔다. 저서로는 ‘전도의 유산: 오래된 복음의 미래’, ‘교회를 위한 전도가이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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