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ck

사이트 내 전체검색

tgck

검색버튼
사이트 내 전체검색
Articles
homeHome Articles 교회 교회 생활

코로나19로 교회가 분열되면 안 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by Brett McCracken  /  작성일 2020-06-19

본문

Image by Queven from Pixabay

COVID-19 사태를 맞은 지난 몇 달, 전세계 교회는 어떻게 해야 교인들을 잘 양육할 수 있을지와 관련한 복잡한 도전들로 인해 끊임없이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다양하고도 복잡한 도전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대두된 문제는 어쩌면 가장 까다로운 것인데, 다름 아니라 현장 예배 재개 여부와 관련한 문제다. 


개인간 거리두기, 예배 참석자의 숫자 제한, 마스크 착용 문제, 소리 내어 찬양을 할 것인가의 여부, 주일학교 문제 등등과 같은 물리적 디테일이 필요한 문제들이 별로 도전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예배 재개와 관련한 대부분의 대화는 말 그대로 교회를 분열시킬 잠재력으로 넘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리더십 그룹을 포함하는) 회중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속에서 우리는 지금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서 사회 구성원들이 가진 다양한 확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비정상적 상황을 참지 못해 하루라도 빨리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또 이와는 정반대로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아마도 이 양극단의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불안정하고 극단적 사고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교회가 부끄러운 분열의 모습이 아니라 아름다운 하나됨을(시 133) 보여줄 수 있을까?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능력은 육체의 소욕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하나로 만들고 있으며, 지금이야말로 교회는 이 세상 앞에서 분열과 반목을 이겨내는 반문화적인 모델(countercultural model)을 보여줄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반문화적인 희생


자기 우상 숭배(self-idolatry)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때야말로 교회에게는 좋은 기회가 된다.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나 자신보다 앞세우는 사랑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마스크를 쓰거나 서로 간에 항상 2미터의 거리를 두는 것을 미친 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이런 예방 조치가 불필요한 과잉 조치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설혹 이런 예방 조치가 불필요하다는 당신의 생각이 옳다고 하더라도,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으로 당신의 그 확신을 잠시나마 접어놓을 수는 없는 것일까? 교회가 예배를 재개했는데도 여전히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어리석고 또는 겁쟁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로마서 14장 속 바울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건 어떨까?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또는 고린도전서 8장 9절을 기억하는 것은 어떨까?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이와 마찬가지로, 봉쇄 정책(lockdowns)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행동 제한 정책을 고수하는 정부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향해 비판의 화살을 쏘아서는 안 된다. 교회는 이런 양극단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다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현장 예배 재개에  부담을 가진 교인들 때문에 계속적으로 온라인 예배를 지속하는 것은 교회에 많은 피해를 가져다준다. 마스크나 사회적 거리두기에 거부감을 가진 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온라인 예배와 같은 예방 조치에 동조하는 것이 또 하나의 희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작은 양보가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 보다 훨씬 더 기독교인다운 모습이다(롬 12:1). 우리는 이런 모든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반문화적인 겸손


지금의 사태와 관련해서 나 자신부터가 얼마나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 차 있는지 스스로 돌아본 적이 있는가? 평신도와 리더 또는 소위 전문가들을 가리지 않고 전혀 근거 없는 확신을 퍼뜨리는 것은 최소한 COVID-19만큼이나 전염성이 강하다. 그 누구라도 모든 사실을 100퍼센트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조금씩 더 겸손해져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그런 모습에 앞장서야 한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기독교인은 야고보 사도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계획 수립과 실행을 조금 느리게 만들지는 몰라도, 그 자체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현장 예배를 다시 시작하는 것과 관련해서 시간을 두고 최대한 다양한 의견에 겸손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그와 관련한 포럼을 열어서 교회 내 다양한 직분의 사람들 뿐 아니라 다른 교회 지도자 또는 정부 관련한 사람까지 초대해서 의견을 청취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을 향해서도 그리스도가 보여준 겸손의 모델을 따라서 반응해야 한다(빌 2:3). 우리 중 그 누구도 '나는 이미 확실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에 다른 의견이 필요없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현재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그와 더불어 마치 "비행을 하면서 비행기를 고치는" 것과 같은 위기의 순간인 지금, 우리 모두는 다 예외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반문화적인 인내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오늘날, 인내라는 단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 자가격리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은 조바심에 안달하는 지금처럼, 인내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도 없다. 다시 함께 교회에 모여서 예배 드리고 싶어하는 갈망은 바른 것이고 또 좋은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25절 말씀처럼 우리는 결코 모이는 것을 소홀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모여서 예배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뿐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면 예외 없이 하루라도 빨리 온라인 예배가 현장 예배로 회복되기를 갈망해야 한다. 그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된다. 정부의 방침보다 빨라도 안 되고, 사회가 합의하는 수준보다 앞서도 안 된다. 바라는 만큼 빨리 되지 않더라도 인내해야 하고, 다시 예배를 재개하는 과정에서 원할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도 인내해야 하며, 또한 이런 복잡한 상황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교회 지도자들의 상황도 인내해야 하고, 뉴노멀이 무엇인지를 놓고 대화를 나눌 때에도 서로를 향해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현장 예배가 꺼려지는 사람은 현장 예배를 바라는 사람들을 인내해야 하고, 현장 예배를 갈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인내해야 한다. 인내하는 게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의 사태가 비록 몇 달 또는 몇 년이 되더라도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반문화적인 뉘앙스(Nuance)


우리는 지금 말에 여지를 두는 대신 모 아니면 도를 주장하는, 뉘앙스가 사라진 시대(un-nuanced age)를 살고 있다. 뉘앙스, 즉 의미에 여지를 두는 것은 클릭수와 뷰어 숫자에 좌우되는 오늘날의 미디어 경제 모델과도 맞지 않는다. 정치인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과 같이 극단적으로 편을 가르고 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겸손한 자세로 복잡한 상황을 놓고 “둘 다(both/and)”를 주장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위기의 시대에 교회가 하나됨과 친교를 온전하게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면, 교회는 무엇보다 반문화적인 뉘앙스의 길, 즉 극단적 주장을 피해 서로를 향해 여지를 두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 길은 모든 사항에 대하여 무조건 소리 높여 극단적으로 주장하지 않는 것이며, 또한 진리가 결코 트위터 몇 마디로 전달될 수 있는 그런 단순하고 시시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길은 용기와 신중함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동시에 극단 및 절망적인 반응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예를 들어, 봉쇄 조치에 관해서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면서도 결코 황당한 음모론에 빠지지 않는 것이며, 동시에 설혹 사회 정서에 역행하는 정책을 발표하더라도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롬 13). 이런 반문화적인 뉘앙스의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우리는 상대에 대해 최악의 생각을 하는 대신 나와 다른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는 것을, 달리 말해 나도 항상 옳지만은 않음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상대를 향해 여지를 가지는 이런 자세는 종종 겸손과 인내가 합쳐질 때 생기는 결과물이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여지를 두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으며, 그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모든 성경 말씀에 대한 우리의 확신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 무엇보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게 했던 간곡한 요청에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Church, Don’t Let Coronavirus Divide You

번역: 무제


작가 Brett McCracken

브랫 맥크레켄은 미국 TGC의 편집장으로 Southlands Church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으며, 'Hipster Christianity: When Church and Cool Collide'를 비롯하여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최근 교회 생활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