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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즐거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by 김선일·이금주
2023-07-10
엉겅퀴와 가시덤불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겪는 문제와 질문을 두고 김선일 교수와 이금주 교수, 두 신학자가 대화하며 그 답을 찾아 나선다.대담을 위한 질문 선정 및 내용 정리는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실천신학을 가르치는 김선일 교수가 맡았다. 이금주(Jewel Hyun)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핵물리학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도미하여 세계적 금융투자사인 피델리티 매니지먼트에서 28년 근무했다. 그후 고든콘웰신학교에 진학하여 신학석사와 목회학박사를 취득하고, 아프리카의 여성과 교육을 위한 선교단체인 Matthew 28 Ministries를 설립하였다. 일의 신학과 변혁적 리더십을 전문으로 하는 바키대학원대학교(Bakke Graduate University의 한국어 과정 위원장이며, 미국과 한국, 아프리카 등지에서 일의 신학을 가르쳐왔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일의 즐거움과 소명’ 강연에 참여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일터를 소명으로 삼는 것은 알겠는데,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은 알아서 하겠는데 일에서 즐거움을 못 느끼겠어요. 많은 일들을 하는 가운데서 즐거움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의 즐거움을 어떻게 찾고 누려야 할까요? 김선일: 이 질문은 일터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겠네요. ‘일의 즐거움’이라는 사상은 마태복음에서 충성된 종들에게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23)라고 한 말씀에 근거하는데요.이금주: 일의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은 이론이지 실제로는 매우 어렵습니다. 다른 문제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얼마나 실천하기 어렵습니까?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것도 실제로는 얼마나 힘듭니까?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문제는 “나는 여기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는 일의 신학에서 근본적인 질문이자 일터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를 조망하는 큰 그림입니다. 김: 그렇군요. 유독 일터에서만 겪는 문제는 아니겠어요. 엄밀히 말해서 그리스도인만이 처한 고민도 아닐 수 있고요.이: 우선은 왜 내가 일에서 즐거움을 못 찾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 문제가 있는지, 일의 요구가 너무 많은지, 일터에서 동료와 불화를 겪기 때문인지, 상관의 부당한 대우나 지시 때문인지, 아니면 일 외의 요인들 때문에 즐거움을 못 누릴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아이가 말썽을 부리거나 배우자와 사이가 안 좋다거나 하는 문제들이 우리의 일 뒤에서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일 자체가 내 적성과 안 맞을 수도 있죠. 사무직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장사하는 일을 하면 적성이 안 맞아서 괴로울 수 있습니다. 먼저 나에게 왜 일이 즐겁지 않은지 실제적인 이유를 찾아서 열거해 보세요. 그리고 가장 먼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부터 다뤄야 합니다. 김: 일로 인한 괴로움인지 일 외의 문제로 인한 괴로움인지를 분별하는 게 중요하겠군요. 이: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좁혀 가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초점을 바꿔야 합니다.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지 마십시오. 즐거움은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지 내가 찾아서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일의 즐거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은 ‘하나님께서 무슨 뜻을 갖고 나를 이 자리로 보내셨는가?’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하는 이 일을 통해서 무언가를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분의 목적을 위해서 내가 쓰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김: 그래서 일의 소명을 모르고서는 일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을 예로 들겠습니다. 저는 미국 회사에서 일할 때 즐겁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이 저를 시기하고 뒤에서 제 흉을 보며, 심지어는 제 상관에게 저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업무 성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김: 혹시 그때는 인종차별도 겪으신 것 아닌가요?이: 예, 인종차별뿐 아니라 저는 삼진아웃 당할 수 있는 여건이었습니다. 아시아인에다, 여성에다, IT 전공자도 아니었으니까요(웃음). 일은 많았지만 제 시간과 역량을 잘 조절해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관계가 문제였습니다. 만일 그때 제가 일의 신학을 알았다면 아마 즐거움을 찾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옮기기도 힘들어서 하는 수 없이 참고 일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서는 즐거움을 못 찾았고, 대신 나중에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 즐거울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김: 그래서 은퇴 무렵에 신학 공부를 하러 가신 것이고 선교단체도 설립하신 거군요. 이: 나중에 신학 공부를 하면서 일의 신학을 배우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좀 더 일찍 일의 신학을 알았다면 그때 힘든 일 속에서도 초점을 바꿔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니까 먼저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일을 통해서 어떤 소명을 주셨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일을 합니다. 어떤 제품을 만들거나 고객 관리하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십니다. 또는 하나님을 내가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소명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힘들어하는 동료를 위해서 기도하는 소명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잘 못했습니다(웃음). 김: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그러한 위로자와 격려자의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이: 자신이 하는 일의 궁극적인 결과를 생각하십시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일하는 택시 기사가 어떻게 기쁨을 찾겠습니까? 피곤하기만 할 겁니다. 하지만 그 기사가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하는 손님을 인도하고, 그 결과로 그의 일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면 기쁘지 않겠습니까?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이, 오전 내내 바쁘게 일하다가 오신 분들의 허기를 채워주고 그들이 힘을 얻고 일로 복귀하도록 돕는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보람이 있습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한다고 즐거움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억지로 일터로 가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김: 하나님께서 바로 이곳에서 나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이 초점이 돼야 하겠군요. 즐거움 그 자체가 초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내 일을 통한 소명을 발견하면 일의 즐거움을 찾는 길에 들어설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목회자들이 일터에서 힘들어하는 교인들에게 단순히 믿음으로 견뎌라, 기도하라고만 할 것이 아니네요. 이: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일을 통한 하나님의 소명을 찾는 과정은 미래의 다른 일을 위한 훈련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회사에 다닐 때 미래에 아프리카에서 사역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저는 회사에서 프로젝트 기획과 매니지먼트, 그리고 실행 결정과 평가 과정에도 참여했습니다. 당시에는 힘들었고 억지로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제가 케냐에 가서 대학 안에 신학부를 설립하기 위해 총장, 부총장과 같은 리더들과 함께 계획을 세우고 펀드레이징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일에 참여할 때 과거 피델리티 매니지먼트에서 일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금주 박사는 케냐 세인트폴 대학교(Saint Paul University) 신학부를 재건하는 일을 주도했다.] 이: 우리의 일터 경험으로부터 이러한 열매가 나올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제는 평생 고용이 없어지고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의 일터에서 하나님이 나를 훈련하시다는 인식은 내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바라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일을 대할 때 즐거움이 옵니다. 저는 과거에는 성-속 이원론에 빠져서 이러한 원리를 몰랐습니다. 견디고 견디다 신학교에 가서 나중에 선교 일을 하다가 일의 신학을 배우고는 무릎을 치면서 깨달았습니다. 생각의 초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일에서 즐거움을 찾기보다, 일에서 하나님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추십시오.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라고 했습니다. 견디기 힘든 일터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초점을 둘 때 즐거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김: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쓰임 받는 나의 위치와 내가 하는 일을 조명해야겠네요. 이 어마어마한 우주에서 티끌만도 못한 나를, 그리고 극히 작은 내가 하는 아주 작은 일을 통해서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의 일을 이루신다는 것이 놀라운 기쁨입니다. 이: 그래서 우리 일터의 그리스도인들은 아침에 출근할 때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나에게 건강을 주셔서 오늘도 일하러 갑니다. 비록 힘든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자 기도하고 이제 출발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이고 청지기일 뿐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니, 저는 그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겸손히 따르기를 원합니다. 오직 저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합니다.”김: 아멘!☞여기에 일터에서 지금 겪고 있거나 겪었던 여러분의 고민과 질문을 적어 보내주세요. 익명으로 하셔도 좋습니다. 함께 답을 찾아 나가겠습니다.
AI를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by Sarah Eekhoff Zylstra · Joel Jacob
2023-03-08
유력 미디어에 등장한 다음 헤드라인들이 모두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Time은 “AI 군비 경쟁이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고 했다. 또 Forbes는 이렇게 물었다. “AI는 앞으로 고용 시장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반면에 Yahoo Finance의 라울 팔(Raoul Pal)은 AI가 “역사상 가장 큰 거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학교 과제물에서 전투기와 의료 수술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의 손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결코 두려움에 떨고 싶지 않다. 인공지능을 포함한 모든 로봇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모하거나 부주의하게 AI에 접근해서도 안 된다(잠 14:16).Gospel Coalition은 첨단 컴퓨터와 AI 융합 분야의 제품 개발자 조엘 제이콥(Joel Jacob)과 자리를 함께했다. 그리고 AI가 무엇인지, AI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AI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물었다.AI는 무엇인가?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사람들은 혹시라도 컴퓨터가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수준의 지능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때는 거기에 관한 시도가 오로지 알고리즘(컴퓨터가 따르도록 정해 놓은 규칙 또는 규칙의 집합)을 통해서만 이뤄졌다. 2000년대 초반에 “딥 러닝”(deep learning)이라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도입되었다. 컴퓨터에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는 단순 코드를 만드는 대신, 하나님이 설계하신 인간 두뇌를 복제한 창조해내는 시스템(creating system)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단어와 소리 및 모양을 배우는 아기의 방법에서 시작해서, 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중 많은 부분이 환경 훈련을 기반으로 한 뇌의 뉴런 강화로 귀결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엄마” “아빠”라고 자꾸 말하면 아기는 그 소리를 복제하고 그 과정에서 뇌의 뉴런이 훈련되고 강화되는데, 우리는 이것을 ‘학습’(learning)이라고 부른다. 아무런 정보가 들어있지 않은 뉴런을 재생성한 다음 데이터를 기반으로 아기처럼 취급함으로써, 컴퓨터도 얼마든지 훈련시킬 수 있음이 밝혀졌다. 그 과정을 거쳐서 업계에서 “신경망”(neural net)이라고 부르는 소프트웨어가 탄생했다. 전기화학 반응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뇌보다 컴퓨터 회로 기판에서 움직이는 전기는 백 배 이상 빠르다. 따라서 신경망은 지금까지 나온 그 무엇보다 인간 지능과 흡사한 동시에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하나님은 궁극적인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항상 그에게 복종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도 지금 뭔가를 창조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게 인간보다 “더 낫게” 그리고 더 빨리 생각하는 능력을 지닌 무언가라는 사실이다. 그럼 AI를 무서워해야 할까?무섭다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워낙 강력한 기술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서 과학자들이 원자폭탄을 만들었을 때를 생각하면 된다. 첫 번째 테스트가 완료되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창조물 앞에서 충격을 받았다. AI도 마찬가지다. AI 신기술 경쟁에서 앞서는 사람은 뒤처진 사람보다 강력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OpenAI 조직(GPT 개발자들)이 처음 만들어졌다. 전제는 이것이었다. AI 기술에는 워낙 무서운 힘이 담겨있으니 한 개인이나 국가가 이 힘을 통제함으로 오용하는 위험을 막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술은 모두가 다 동등하게 다음 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말이 나중에는 “AI 기술은 모든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강력하다. 따라서 무슨 내용을 공개할지에 대해서 주의해야 한다”로 바뀌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AI를 허락하셨다. 그러나 올바른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거나 적절한 제한이 없는 경우에는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이 처음으로 다리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기술의 부족으로 많은 다리가 무너져 수많은 사람이 다쳤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실수로부터 배웠고, 이제는 튼튼한 다리를 건설하는 데 능숙해졌다. (물론 최근에도 무너지는 다리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AI에 대한 첫 번째 시도를 통해서 우리가 앞으로 AI를 제대로 다루지 못할 것임을 이미 알게 되었다. 그럼 앞으로 발생할 여파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AI로부터 나오는 편향되거나 아예 잘못된 답변을 통해서 이 여파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AI의 두뇌는 딥 러닝을 코딩하는 사람이 채택하는 모델과 그 모델에 입력된 데이터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신학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인간의 죄성을 기계에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개발자는 생각해야 한다. AI를 윤리적으로 개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래서 인류에게 유익하고, 바라기는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는 도구로 AI를 개발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어디를 향할 것인가? AI는 적응한다. 대화형 AI 또는 ChatGPT에서 사용되는 것과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s)은 계속해서 개선될 것이다. ChatGPT 4가 올해 말에 출시될 예정이며 현재 출시된 3.5보다 약 백 배 더 많은 매개변수가 신경망에 장착될 예정이다. 따라서 실수가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는 AI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영역에조차 점점 더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난 9월에는 최초의 AI 작품이 예술 콘테스트에서 우승했으며, 12월에는 최초의 AI 제어 전투기가 17시간 이상 비행했다. AI를 작동하거나 활용하는 기술 보유의 가치가 점점 더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직업도 바뀌겠지만, 이게 처음은 아니다. 트랙터는 농업 인력의 4분의 3을 대체했다. 그 정도 수준의 변화가 AI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은 AI가 기존 인간의 일자리 8,500만 개를 대체하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 9,700만 개를 창출할 것으로 추정한다. 실질적인 삶의 질에서도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AI로 구동되는 로봇이 집안일을 할 수 있다면, 거동이 힘든 노인이나 맞벌이 부부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는 AI가 설명을 할 수 있다면, 지식 접근성은 더 가속이 붙을 것이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 갈 수 없거나 방대한 양의 책을 검색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AI는 쉽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모든 변화에는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점이 더 크다. 단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은 것은 AI가 과연 어디까지 유능해질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도무지 AI의 한계를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특이점”(singularity)의 가능성(AI가 스스로 기술 성장을 지속하고 아예 멈출 수 없게 되는 경우) 여부와 발생한다면 과연 언제일지를 놓고 토론 중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AI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기억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1. 하나님은 일반적인 선(general benevolence and good)의 차원에서 여전히 기계를 사용하신다. 2. AI로부터 도움을 받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것을 우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AI는 결코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 핵심은 목적과 정체성과 자율성으로 귀결된다. AI가 설혹 인간보다 더 높은 “지능을 갖춘다”(intelligent) 하더라도, 뛰어난 지능이 AI에게 영혼을 부여하는 건 아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지능을 가진 생물이라는 인간의 지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이것은 절대로 쉽지 않은 문제이다. 설혹 AI가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해도(돌조차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으니(눅 19:40), 가능한 일이다) 그게 AI에게 인간이 하나님과 누리는 수준의 깊은 관계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AI 세상에서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그리고 복음이 어떻게 더 가속화되어 퍼질 수 있을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이 복음 성장에 어떤 유익을 끼칠 수 있을지를 고려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 20-30년을 더 기술 분야에서 일할 것이다. 이 일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받아들이기에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해서 어떤 기술을 만들어내야 하는가? AI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성경으로 안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AI와 같은 기술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 “이런 걸 만들어내다니, 내가 바로 신이지!”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 사람은 바벨탑을 쌓는 것과 하나 다를 바 없다. 나는 끊임없이 묻는다. AI를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나는 AI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고 싶다.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물을 통해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하고 싶다. 원제: How Not to Be Scared of AI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AI
인공지능
ChatGPT
상사로서는 힘들기만 한 담임목사님, 어떻게 해야 하나?
by Miranda Carls
2023-01-18
가시덤불과 엉겅퀴_신앙과 일의 통합을 추구하며 고민하는 이들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 가득한 일터(창 3:18) 현장의 조언을 들려드립니다.나의 직장은 교회입니다. 담임목사님이 상사인데, 직원과 업무 관리 면에서는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담임목사를 상사로 모시고 일하는 환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하긴 목사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주일마다 우리에게 격려와 영적 성장에 필요한 말씀을 주는 사람이 아닌가? 병원에서도 환자와 함께 기도하고, 또 성경적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한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모범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살면서 만난 훌륭한 목사님들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직업이 그렇듯이 목회자에게는 관리해야 할 은사와 더불어(롬 12:6-8), 조심해야 할 약점이 있다. 강단에 선 목사는 얼마든지 우리를 압도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목사라고 해도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얼마든지 일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 견고한 신학, 매력 넘치는 가르침, 자애로운 성품을 기대하며 고용한 목사가 적시에 필요한 의사소통, 세부 사항에 요구되는 세밀한 주의 집중, 그리고 명확하고 현실적인 기대치 설정에 전혀 능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성-속우리는 종종 세상 직장과 교회 직원에 대해 다른 기준을 가지곤 한다. 그건 두 가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담임목사를 향해서 그리스도와 같이 완벽한 행동을 할 거라는, 아예 불가능할 수준의 높은 기준을 적용할 수도 있다. 동시에 세상 직장이라면 결코 허용될 수 없는 부분까지 허용 내지 간과하면서, 그것을 은혜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에서 일하든지 관계없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경적 기준을 따라 살기 위해 똑같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마 5:48)? 그리고 교회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인도 세상 직장에서 일하는 형제자매들과 같은 수준의 탁월함을 목표로 해야 하지 않을까(골 3:23-24)?행여라도 지금 당신은 세속과 거룩을 구분하여 담임목사에게 조직 및 관리 기술을 향상하는 데 필요한 대화를 피하도록 하고, 하지 않아도 되도록 허용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부실한 관리에 대한 조사당신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을 내가 알 수는 없다. 어쩌면 하루하루가 비현실적인 기대, 부적절한 의사소통, 또는 껄끄러운 상사에게 하는 보고가 잇따르는 고된 일상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어쨌든 여기에 몇 가지 단계가 있다.1단계: 상황 분류위기 상황 최초의 대응은 필요에 따른 부상자 분류이다. 직장 내 대인 관계라는 위기에서도 어느 정도의 조사와 분류가 필요할 수 있다. 담임목사에 대해서 가진 복잡한 문제를 생각해 보라. 아래에 소개한 범주에 따라서 종이에 분류해 보라. 순서대로 처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간단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까지, 우려 사항을 정리하라. • 간과할 사항: 당신이 처한 상황 중에는 잘못을 눈감고 넘어가야 할 어떤 측면도 있을 것이다(잠 19:11). 이미 해결된 상황에 대해서 여전히 품고 있는 감정의 찌꺼기가 있는가? 담임목사를 떠올릴 때마다 심할 정도로까지 한심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그에 관한 사소한 일은 무엇인가?• 논의할 사항: 어떤 추가 조치를 하기 전에 약간의 대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담임목사의 행동이나 기대와 관련해서 말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가? 어떤 요청을 해야 할까? 그에게서 어떤 피드백이 필요한가?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지금 당신의 목표는 담임목사가 이전에 배운 적이 없는 기술을 향상하도록 돕는 것임을 기억하라. 몇 마디의 좋은 말(잠 25:11)이 그와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에게 죄를 범하는 방식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용서를 구하거나 서로 용서하는 아름다운 기회를 만나는 것이다(엡 4:32).• 해야 할 일: 취해야 할 몇 가지 조치를 앞에 두고도 망설일 수 있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 어떤 행동이 가능한가? 상황을 주도하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행여 상황을 악화시키는 어떤 행동을 당신이 하고 있는 건 아닌가? • 식별할 사항: 상황 속 몇 가지 측면에 대해서 확신이 없을 수도 있다. 특히 부담을 주거나 명확하지 않은 느낌을 주는 건 무엇인가?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기도할 부분은 없는가? 당신 손에 들린 큰 결정이 있다면, 그건 무엇인가? • 도움을 받아야 할 사항: 상황을 분별하는 과정에서 행여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마 7:3). 또는 문제가 당신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될 수도 있다. 담임목사와 둘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면, 전제 직원 회의에서 문제를 제기하거나 또는 신뢰할 수 있는 장로에게 조언을 구해야 할 수도 있다(마 18:15-17).2단계: 기도지혜를 구하라(약 1:5). 생각을 정리하면서 나열되는 모든 사항을 앞에 놓고 기도하라. 담임목사의 관리 능력을 위해 중보기도 하라(딤전 2:1).담임목사와의 짝 기도를 고려해 보라. 특히 두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문제라면 짝 기도는 더 필요하다. 세상 직장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이 보통 혼자 책상에 앉아 조용히 기도하지만, 당신은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일터 자체가 어려운 일이 생길 때 함께 기도할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마 18:19-20).3단계: 전진하라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처음에는 쉽게 느껴지지만, 그렇게 내버려두면 더 힘든 날이 오고 말 것이다. 관리 능력과 관련하여 담임목사에게 몇 가지 사각지대가 있을 수도 있다. 그가 자신의 약점을 알면서도 그게 초래하는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함께 사역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라도, 전진하겠다고 결심하라. 담임목사를 향한 용서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라(막 11:25). 피드백을 나누는 시간을 정하고,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서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노력하라. 당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과 담임목사뿐 아니라, 똑같은 좌절감을 겪고 있는 나머지 직원에게도 도움을 줄 것이다. 더불어서 효율적으로 관리되는 조직으로 탈바꿈함으로 교회 전체가 더 잘 교인을 섬길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역이니, 관리 미숙의 문제나 적시에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 따위는 사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기억하라. 당신이 일을 더 잘할 때, 하나님 나라는 더 크게 자랄 것이다. 원제: When Your Difficult Boss Is Also Your Pastor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일터신학
직업과신앙
교회직원
국가 부채, 미래 세대에 떠넘기는 짐
교회 지도자를 위한 경제학
by Joe Carter
2022-12-29
교회 지도자를 위한 경제학교회 지도자들이 “그 성읍의 평안”(렘 29:7)을 제대로 구하려면 경제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경제가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교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를 위한 경제학’ 시리즈는 경제 신학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시리즈의 취지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경제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제공하여 믿음의 공동체가 경제와 공공 정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용어 국가 부채—정부 또는 국가의 채무는 정부의 연간 적자의 총 합산 금액, 즉 정부가 채권자에게 빚을 지고 있는 돈을 말한다.의미미국의 경우, 국가 채무는 미국 연방 정부가 채권자(공채)와 스스로(정부 내에서의 채무)에게 진 빚이다.공채는 미 재무부가 정부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금융 시장을 통해 외부 대출 기관으로부터 빌린 국가 채무의 일부다. 이는 개인, 기업, 연금 및 뮤추얼 펀드, 국가 및 지방 정부, 외국 기업 등 채권자에게 진 부채의 달러 규모다. 오늘날 미국 공채의 규모는 22조 3,000억 달러이다.사회 보장 신탁 기금과 같은 일부 정부 기관은 매년 회계 연도 내에 지출할 필요가 있는 금액 이상을 세금으로 충당한다. 이 경우, 기관은 재무부에 자금을 "대출"해 주고 정부 계정 시리즈 유가 증권의 형태로 약식 차용증을 발행한다. 정부 내 보유 지분에 있는 부채는 6조 1,000억 달러이다.이것이 중요한 이유성경은 성도들이 빚진 것은 갚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라”(롬 13:7)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시편에서도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한다”(시 37:21)고 경고한다. 그리고 잠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라”(잠 3:27-28). 우리가 납세자로서 세금을 납부하고 채무자로서 빚진 것은 갚아야 한다고 하면, “하나님의 사역자”로 세워진 당국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우리는 22조 달러가 넘는 국가 부채를 갚을 수 있는 실행 가능한 해결책이 없다. 연방 세수(3조 4,000억 달러)를 한 푼도 남김 없이 빚을 갚는 데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6년 이상이 소요된다.문제는 총 부채뿐만 아니라 이 부채에 대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이자에도 있다. 국가 채무에 대한 이자는 연방정부가 매년 미상환된 공채에 대해 지급해야 하는 금액이다.지난 해 정부의 이자 지급액은 3,780억 달러였다. 10년 후에는 9,280억 달러로 연간 1조 달러에 육박할 것이다. 연방정부는 교육, 훈련, 고용, 사회 서비스, 보훈과 관련된 프로그램보다 이자에 더 많은 돈을 사용하고 있다. 2024년까지 우리는 국방비에 상당하는 금액을 이자 비용으로 지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책임 있는 연방 예산 위원회(Committee for a Responsible Federal Budget)에 따르면, 순이자 지출은 예산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 빠르게 증가할 것이고 30년 이내에 그것은 단일 정부 프로그램 중 가장 큰 것이 될 것이다.우리가 빚진 것을 갚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대에 우리의 채무를 떠넘기고 있다. 그것은 국가 부채를 ‘세대 간 정의’에 관한 문제로 만든다.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은 “예를 들어, 미래 세대가 현재 세대에서 착수한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상황을 만들 때, 현재 세대는 미래 세대에 대해 권력을 행사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존 콜먼(John Coleman)은 “빚은 본질적으로 미래 세대에서 현재 세대에 제공한 대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현재 프로젝트에 대해 일단 비용을 지불하고 미래 세대에게는 이 문제에 대한 발언권이나 투표권을 주지 않은 채 청구서를 보내고 있다.이것은 우리가 현 세대에서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위해 우리의 힘을 사용하고 있고 후대에 가서 그것을 그들이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그 세대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등의 복지에 필요한 자원은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현재의 사회 안전망을 확장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필요하다고 믿는 프로젝트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채무를 정당화하기는 쉽다. 우리는 심지어 미래에 유익한 프로젝트(화석 에너지에서 핵 에너지로 전환과 같은)에 대한 적자 지출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전반적으로 “미래 세대가 우리 세대의 프로젝트에 돈을 지불할 수 있도록 그들의 프로젝트에 돈을 지불하는 능력을 제한해도 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오늘날 우리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는 우리의 후대에 꽤 큰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우리의 비정상적인 국가 채무와 매년 늘어나는 부채는 세대 간 불공정의 한 형태로 간주될 수 있다. 우리 이전의 세대들에 의해 강요된 불의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우리는 후손들에게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기타 세부 정보부채와 적자의 차이는 무엇인가?적자는 연방정부가 거둬 들이는 매년의 수입(세금 및 납부금)과 같은 회계연도에 지출하는 금액의 차이이다. 국가 채무는 이전의 모든 미지급 적자의 누계이다.국채는 누가 보유하고 있는가?2018년 기준 국채의 약 3분의 1(30%)은 외국 정부와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 2021년 6월 기준으로 일본과 중국이 1.2조 달러, 1조 600억 달러로 가장 많은 미국 부채를 보유하고 있다. 상위 5개국 중 나머지는 영국(4,520억 달러), 아일랜드(3,220억 달러), 그리고 룩셈부르크(3,010억 달러)이다.미국 내에서는 개인, 은행, 투자자들이 2조 2,80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뮤추얼 펀드는 3조 5,00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0조 8,100억 달러를, 주정부와 지방정부는 별개로 1조 910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국가 부채는 어떤 형태를 취하는가?부채는 재무부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이자부 증권으로 발행된다. 일반인이 보유한 유가증권의 종류에는 재무부 증권, 확정금리채, 물가 연동 채권, 미국 저축 채권, 주 및 지방채 등이 있다.어떻게 하면 부채를 줄일 수 있는가?국가 부채는 다섯 가지 메커니즘을 통해서만 줄일 수 있다: 증세, 지출 절감, 채무 재조정(채권자에게 그들이 진 돈보다 더 적은 돈을 받도록 요청), 채무의 화폐화(정부가 새로 인쇄한 돈을 사용하여 부채를 지불하는 것), 그리고 디폴트(지불 거부)이다.납세자들이 국가 부채를 갚는 데 얼마나 필요한가?그것은 국민 1인당 86,147달러 또는 납세자 1인당 228,321달러를 요구할 것이다.원제: Economics for Church Leaders: National Debt as Intergenerational Injustice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장명근
경제학
국가부채
재정적자
세대간불공정
일을 제때 못 끝낼까 봐 걱정이에요
by Amy DiMarcangelo
2022-12-14
'시간 내에 일을 끝낼 수 있을까?' 불안감에 가슴이 떨립니다. 문제는 이런 걱정을 어떻게 하나님께 맡겨야 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일에 대한 불안은 종종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할 일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집니다. 임박한 마감일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뜁니다. 마쳐야 할 일이 가져온 공포감에 짓눌려 물속 깊이 빠져드는 것만 같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실망을 안길 대상은 상사나 고객, 나아가서 나 자신까지 다 포함합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래서 각종 생산성 관련 서적을 읽고 또 업무와 관련한 팟캐스트도 듣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나의 결점일 뿐입니다. 상황은 이제 이전보다 훨씬 더 나빠집니다. 견디기 힘든 불안이 나를 감쌉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감정 중 하나라도 당신에게 익숙하다면,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더 열심히 일하라고 재촉하는 문화, 더 많은 일을 해내라고 부추기는 문화에서 업무가 주는 불안은 이제 아주 흔한 감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폭풍우 몰아치는 스트레스의 바다에 좌초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닻을 내려야 할 근본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우리를 돕는 실용적인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고정된 진리일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땅이 저주받음으로써 일은 힘든 노동이 되었습니다. 꿈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피할 수 없는 게, 가시와 엉겅퀴의 찌름입니다. 그래서 종종 모든 수고가 헛된 것처럼 느껴지고, 또 모든 노력이 좌절되는 것같이 보입니다. 비록 이런 모든 현실이 다소 실망스러운 진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도움이 됩니다. 헛된 꿈을 좇지 않도록, 또한 실현되지 않은 꿈에 좌절하지 않도록 나를 붙잡습니다. 일과 관련한 진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기 전까지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저주의 결과를 감당할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재림의 약속은 우리가 희망을 품고서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모든 일을 성취하십니다. 자신의 계획에 따라 의도한 시간에 일을 완수하실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피조물인 우리에게는 그런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나의 교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아닌 무한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자존심이라는 교만 말입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나의 한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직장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건 당연합니다. 우리는 종종 무엇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피곤하고 또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교만과 자만에 빠지기 쉬운 나의 죄된 본성은 여지없이 나를 또다시 넘어뜨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와 지식과 기술을 키울 수는 있지만, 결코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성장은 피조물이라는 우리의 한계 안에서만 일어납니다. 부족함이 우리를 좌절시킬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부족함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을 더 경배할 수 있습니다. 혼란스러운가요? 혼란을 느끼지 않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피곤하지도, 졸지도, 또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실수를 범했나요? 실수를 통해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실 하나님을 다시 찬양합시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정체성은 결코 직업과 생산성 또는 성취와 성공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은 피조물인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일부이지만, 그게 반드시 당신이 누구인지는 알려주는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에 나의 정체성을 두는 것처럼 나의 안전을 흔드는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 확신했던 것도 달라지곤 합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토록 변함없으십니다. 당신이 주의 몸의 영광스러운 지체로서 그와 연합한다면, 당신의 정체성과 신분은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질적인 지혜업무 관련 불안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특정한 습관과 관행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뽑은 두 가지, 그리고 성경 밖에서 찾은 두 가지, 모두 네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규칙적으로 쉬어라. 직장이 주는 압박감에 압도된다면, 쉴 마음이 아예 안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안식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쉬도록 설계되었기에, 쉬어야 합니다. 1마일이나 되는 할 일 목록이 있을 때도 쉴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내가 지금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표현입니다. 쉼은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일을 향하도록 합니다. 동시에 일은 단지 일에 불과하다는, 합당한 위치에 일을 두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2.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라. 자급자족을 갈망할수록 불안감도 지속됩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해야 합니다. 종일 쉬지 않고 기도를 연습함으로 내가 하나님을 의존하고 있음을 상기합니다. 다음과 같은 특정 시간에 하는 기도가 큰 도움이 됩니다. 차에 오를 때. 정오에. 회의 직전에. 프로젝트를 검토할 때. 기도가 굳이 길고 유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순하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는 지금 지혜가 필요합니다. 제발 좀 저를 지도해 주시고, 이 일을 통해서 당신께 영광을 돌리도록 도와주세요.” 3. 정기적으로 “두뇌를 비워라.” 당신이 나와 비슷하다면, 똑같은 일, 압박감, 그리고 두려움이 계속해서 마음을 맴돌 것입니다. 그것들을 한번 싹 다 종이에 적어보십시오. 또는 누군가에게 숨기지 말고 털어놓으십시오. 그렇게 하면 마음속에서 반복되는 불안의 주기가 중단됩니다. 머리를 비우는 건 새로운 관점을 가짐으로 진짜 중요한 일을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4. 집중 시간을 적용하라. 집중 시간을 알도록 한 칼 뉴포트(Cal Newport)와 그의 뛰어난 저서 딥 워크(Deep Work)에 감사를 표합니다. 멀티태스킹은 대개 역효과를 낳습니다. 서로 다른 프로젝트, 이메일, 대화 사이로 계속해서 주의가 흩어지면, 작업 능률은 떨어집니다. 다시 집중하는 데에만 시간이 걸리므로 지속해서 주의를 돌리는 것은 매번 새로운 프로세스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집중 시간‘(block schedule)은 특정 작업을 위한 특정 시간의 할당을 의미합니다. 해당 시간대에는 오로지 그 일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원고 작업에 두 시간이 할당되었다면, 그 시간 동안 작업 흐름에 방해가 되는, 이메일 확인을 비롯한 다른 모든 일에 대한 충동을 참습니다. 작업 특성에 따라, 프로젝트별로 특정 시간 또는 요일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사이에 다른 일 때문에 불안감이 엄습한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건 내 문제가 아니야. 내일 작업하기로 한 거니까. 오늘 할 일은 이거야.” (나도 지금 이것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지금 벽에는 처리해야 할 학교 논문이 걸려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면서, ‘이건 오늘 내가 할 일이 아니야’라고 스스로 말하는 건 내게 자유로움을 선사합니다.)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돕고 싶어 하십니다. 당신의 짐까지 대신 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돌보십니다. 그렇기에 이제 당신은 얼마든지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길 수 있습니다(벧전 5:7).원제: Help! I’m Worried I Can’t Finish My Work in Time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집중시간
멀티태스킹
직장스트레스
업무압박감
소득세율 이해하기: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교회 지도자를 위한 경제학
by Joe Carter
2022-12-07
교회 지도자를 위한 경제학교회 지도자들이 “그 성읍의 평안”(렘 29:7)을 제대로 구하려면 경제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경제가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교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를 위한 경제학’ 시리즈는 경제 신학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시리즈의 취지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경제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제공하여 믿음의 공동체가 경제와 공공 정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용어: 한계세율 및 평균세율의미: 한계 세율은 추가 소득에 대해 지불되는 금액이다. 평균 세율은 세금 총액을 과세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설명: 현재 수입에 대해 당신이 내는 세율은 얼마인가?대부분의 미국인에게, 놀랍게도 이것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세율을 모르는 이유는 우리가 소득에 대한 누진적 과세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한계 세율과 평균 세율의 차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다행히도, 그 개념은 일단 여러분이 혼란스러운 전문 용어를 넘어서기만 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게 무슨 뜻인지 한번 풀어보도록 하자.우선, 우리는 “세율”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과세하는 금액에 대한 세금 비율이다. 이 비율은 거의 항상 백분율로 표시되기 때문에 세율이 1:10이라고 말하는 대신 세율은 10%라고 말한다. 즉, 1달러당 10센트(1:10 또는 10%)의 세금이 부과된다. 납세자는 공제 및 크레딧을 받기 때문에, 우리가 내야 하는 금액은 우리가 내는 금액과는 종종 차이가 난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같다고 가정할 것이다.미국에는 누진소득세가 있는데, 이는 과세 대상 금액이 증가할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연방 소득세의 경우, 세율은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낮은 세율로부터 점점 증가한다.우리가 알아야 할 세 번째 것은 한계 세율에서의 “한계”의 의미이다. 한계는 경제학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이지만, 이 “한계”라는 용어는 “추가”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한계 세율은 사용자가 버는 규정된 한계 이상의 (추가) 소득에 대한 추가 세금을 의미한다.이제 우리는 단지 하나의 개념만 더 추가하면 된다: 그것은 바로 ‘과세 등급’이다. 이해를 위해 우리는 오직 연방 정부의 과세 등급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소득에 대한 연방 과세 시스템은 진보적이고 한계적이며, 이것은 우리가 벌어들이는 매 1달러마다의 소득에 대해 동일한 세율을 지불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한번 이 문장을 읽어보라.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이 소득세율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과세 등급을 소득의 특정 금액을 담고 계단 위에 얹어 놓은 양동이라고 상상해 보자. 맨 아래 계단에 있는 첫 번째 양동이에는 “$0~$100 – 세율 10%”라 표기되어 있고, 두 번째 단의 양동이에는 “$101~200 – 세율 20%”이 표기되어 있다. 첫 번째 양동이를 채우면 그 이상의 추가(마진) 달러 소득(예를 들면 101번째 달러부터)은 다음 양동이에 소득액을 채우며 계단을 따라 계속된다. 이 예시는 몇 가지 과세 등급을 포함하는 한계 세율의 누진제 시스템의 이미지를 설명해 준다.이제 우리는 베키라는 이름을 가진 미혼 노동자의 한계 세율을 살펴봄으로써 실제의 예를 돌아보도록 하자. 다음은 독신 개인에 대한 2020년 소득세 분류이다.0달러에서 9,875달러 10%9,876달러에서 40,125달러 12%40,145달러에서 85,525달러 22%85,526달러에서 163,300달러 24%163,301달러에서 207,350달러 32%207,351달러에서 518,400달러 35%518,401달러 이상일 경우 37%베키가 1년에 8,000달러의 수입이 있다면 세율은 어떻게 될까? 이건 10%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베키가 1년에 1만 달러의 수입이 있다면 세율은 몇 %일까? 그건 약간 까다롭다. 베키에게는 두 가지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베키의 평균 세율을 계산해야 한다.계단 위의 양동이 이미지를 다시 한번 사용해 보자. 베키의 수입 중 처음 $9,875는 첫 번째 양동이(세율 10%)에 들어가고, 나머지 $125는 두 번째 양동이(세율 12%)로 들어간다. 처음 $9,875에 대해서 그녀는 세금 $987.50을 냈고 $125에 $15를 지불했다. 그녀는 세금으로 총 1,002달러 50센트를 납부했다. 1002.50:10,000의 비율은 약 10%의 평균 세율과 같다.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이다. 베키에게 자신의 한계세율이 얼마인지 아느냐고 묻는다면, 베키는 차트를 보고 12%라고 대답할 것이다. 따라서 베키는 자신이 12퍼센트의 소득세율을 낸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이 벌어들인 9,875달러 이상의 추가 수입에 대해서만 12%의 비율, 즉 125달러를 추가로 지불한다. 하지만 베키에게 우리의 원래 질문인 "당신의 현재 수입에 대해 지불하는 세율은 얼마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녀는 아마도 12%라고 말할 것이다.일리가 있는 말이다. 우리는 국세청의 과세 등급에 의해 우리의 세율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차트는 우리의 한계 비율(즉, 소득의 한계 세율 적용 구간의 수입 이상의 마지막 몇 달러에 대해 우리가 내는 세금)에 대해서만 말하고 평균 비율(즉, 모든 소득에 대해 지불하는 세금의 평균치)은 밝히지 않는다.우리의 평균 세율을 계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지 약간의 곱셈과 덧셈이 필요할 뿐이다. 한 가지 예를 더 살펴보도록 하자. 베키의 미혼 상사인 밥은 1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밥의 평균 세율을 계산하기 위해, 그의 10만 달러의 수입을 각각의 해당 양동이(한계세율)에 담아보자. 우리가 그의 수입 전부를 현금으로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각 달러당 1에서 10만까지의 번호를 쓴 다음 각각의 버킷에 달러를 넣는다.10% 버킷: $9,875 (1 ~ 9,875)12% 버킷: $30,249 (9,876 ~ 40,125)22% 버킷: $45,399 (40,525 ~ 85,525)24% 버킷: $14,474 (85,526 ~ 100,000)이제 각 버킷에 포함된 금액에 해당 괄호안의 세율을 곱한다.10% x $9,875 = $987.5012% x $30,249 = $3,629.8822% x $45,399 = $9,987.7824% x $14,474 = $3,473.76마지막으로, 이 모든 금액을 더한다.$987.50$3,629.88$9,987.78$3,473.76= $18,078.92밥은 총 18,078.92달러의 세금을 내야 하며, 이는 그의 평균 세율이 18.1%라는 것을 의미한다.왜 이것이 중요한가: 우리는 이제 소득에 대해 지불하는 평균 세율을 계산하기 위해 한계 세율을 사용하는 방법을 이해했다. 하지만 왜 이것이 그리스도인 리더들에게 중요한 것일까?첫 번째 이유는 우리의 모든 수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는 그가 허락하신 모든 것을 잘 관리하도록 요구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의 세금을 내고 있는지 정확히 알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지만, 우리의 평균 세율을 알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막 12:17) 납부한 이후 우리가 하나님의 다른 목적에 사용할 자원이 얼마나 있는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모든 시간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는 그가 허락하신 모든 것을 잘 관리하도록 요구되기 때문이다. 급여이든 시급이든 근로자들이 버는 추가 소득의 수준은 그들이 추가로 일하는 시간과 관련이 있다.모든 고용자들은 하나님께서 이 자원을 추가적인 일을 위해 얼마나 쓰길 원하시는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나 현실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기초하여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한계 세율이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오해는 사람들에게 추가 근무나 작업이 노력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그들이 왜 이렇게 인식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베키와 밥에게는 연간 4만 달러를 버는 바니라는 동료가 있다. 그는 자신의 한계세율이 12%이기 때문에 수입의 12%인 4,800달러를 세금으로 낼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그는 4,602.38달러만 내고 있다.바니의 상사는 그에게 매달 세 시간을 추가 근무함으로써 연간 42,000달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바니는 국세청 차트를 보고 인상으로 인한 자신의 한계세율은 22%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는 인상으로 인해 9,240달러(22% x 42,000 달러)의 세금을 내야 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잘못) 가정한다.그는 이전에 자신이 4,800달러를 세금으로 납부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인상으로 인해 4,440 달러의 추가 세금을 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즉, 2천 달러 인상으로 벌어들인 세금보다 두 배 이상 더 많은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한다.이것은 억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세금을 계산하는 것은 직관적이지 않고 매우 현명한 사람들조차 이러한 실수를 할 수 있다. 여러분이 사람들의 재정 관리를 돕는 교회 지도자라면, 언젠가 여러분은 세금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사실, 바니는 그의 한계 구간 이상의 추가 수입($1,875)에 대해서만 더 높은 비율을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인상 후 4,400달러를 더 내는 것이 아니라 412.50달러만 더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바니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더 높은 세금 구간을 적용하는 것이 결코 더 낮은 순수입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한계 세율이 바니의 급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것은 바니가 더 일해야 하는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원을 관리해야 하는지 그 배경을 이해하는 가운데 결정을 내리기 위한 도움이 될 수 있다.다른 세부 사항들최저 과세 계층에 속하지 않는 한 한계 세율은 항상 평균 세율보다 높다. 최저 과세 계층의 한계 세율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평균 세율과 같다. 당신의 가장 높은 한계세율이 무엇이든 경험적으로 평균 세율은 최소한 그보다 몇 퍼센트포인트 낮다.소득 공제는 과세 소득을 낮추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세액 공제는 훨씬 더 좋다. 세액 공제는 소득세 부담의 달러 대 달러 감소를 제공한다. 한계세율이 22%이고 100달러 소득 공제받으면 22달러를 절약하게 된다. 대조적으로, 100달러의 세금 공제는 100달러를 절약한다. 국세청이 말하듯이, 세액 공제는 달러에 상응하는 소득 공제보다 더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소득 공제는 백분율을 사용하여 계산되기 때문이다.원제: Economics for Church Leaders: Understanding Income Tax Rates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장명근
소득세율
소득공제
한계세율
평균세율
경제개념
과세등급
국세청
세액공제
게으른 건 쉬는 게 아니다
by Amy DiMarcangelo
2022-11-28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잘 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쉼은 감사함으로 기쁘게 누려야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은사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성은 우리를 쉼의 선물을 남용하도록 유혹합니다. 애초에 의도한 대로 쉼을 누리지 못하고, 방종과 게으름에 빠지도록 만듭니다. 생산적인 하루를 마치고 보는 영화 한 편과 아무런 목적 없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의 차이를 우리는 잘 압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서 우리는 일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 부르심에 충실한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는 어떤 쉼을 누리느냐와 직결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도 게으름의 유혹이 없는 건 아닙니다. 나는 꽤 바쁜 삶을 산다고 자부합니다. 아이들을 홈스쿨링하고, 대학원에 다니고, 또 파트타임 작가로도 일합니다. 그런데도 내가 게으르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텔레비전에 빠져서 또는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스크롤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습니다. 아래는 바른 쉼과 게으름의 차이를 분별하는 데 도움을 주는 네 가지 원칙입니다.원칙 1: 쉼에는 리듬이 있다.하나님은 결코 지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도 일곱째 날에 안식하심으로써, 피조물이라는 천에 안식이라는 선물을 무늬로 짜 넣으셨습니다(창 2:2-3). 우리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것은 창조주께서 먼저 쉬셨기 때문입니다(출 20:8-10). 안식일의 쉼은 하나님을 본받는 습관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려야 할 선물이기도 합니다(출 16:29; 막 2:27). 안식일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땀 흘리는 수고에서 잠시 떨어져서 마음을 재정렬하여 다시금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유한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낮이 밤으로 바뀌면 우리는 휴식이 삶의 리듬이 되어야 함을 상기합니다. 우리에게는 잠이 필요합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음식과 친교가 필요합니다. 일에서 벗어나 함께 빵을 떼는 것은 몸과 영혼에 영양을 공급하는 중요한 리듬입니다. 하나님은 작업 관리자가 아닙니다. 또 끊임없이 해야 할 일로만 구성된 게 인생이 아닙니다. 인생은 결코 체크리스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물을, 그리고 서로를 즐기도록 만드셨습니다. 원칙 2: 쉼은 활력을 주어야 한다.아무 생각 없이 소셜 미디어를 스크롤하거나, 일을 하는 중에 중간중간 텔레비전 쇼를 보면서 활력을 회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후회가 뒤따릅니다. 차라리 푹 쉬거나 아니면 일에 몰두할 걸 하는 아쉬움을 떨치기 힘듭니다. 우리가 “쉼”이라고 간주한 무엇이 동기 부여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영감을 느끼게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시 일하고 싶은 의욕을 북돋는 것도 아니라면, 사실 우리는 쉰다는 핑계를 대며 게으름에 굴복한 것입니다. 게으름은 그냥 그대로 두면 끊임없이 지속됩니다. 쉼은 활력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쉼이 필요한 영역이 뇌이건 몸이건, 올바른 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소명을 위해 다시금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축구를 합니다. 축구를 하다가 지치면 잠깐 나와서 휴식을 취합니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또 팀원들과 잡담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러한 쉼은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어 다시 경기에서 열심히 뛰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시원한 물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의 플레이는 느리고 무기력해질 것입니다. 휴식 시간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새 힘을 공급해서 일과 책임을 다하도록 돕는 쉼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저마다 똑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그 세부 사항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내가 가장 즐기는 쉼은 책을 읽고 혼자 누리는 긴 산책입니다. 그게 정원 가꾸기, 카드놀이, 친구와 나누는 커피 수다, 또는 낱말 퍼즐 풀기인 사람도 있습니다. 영화나 비디오 게임도 적당히만 즐기면 얼마든지 활력을 주는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원칙 3: 쉼은 방향을 재설정하도록 한다.쉼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중요한 열매는 마음의 방향을 재설정한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에 빠지면 영혼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성령에 덜 민감해지고, 유혹에 더 무감각해집니다. 게으름은 우리를 죄로 유인하는 교묘한 속임수입니다. 게으름은 하나님께 냉담해지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쉼은 우리의 방향을 재설정합니다. 일이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님을 되새기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또 하나님과 관계를 누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생산성이라는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일의 속도를 줄이고 하나님의 발 앞에 앉아서 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를 탐구하면서 하나님과 교감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든지 일을 잠시 옆으로 제쳐둘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을 우선시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 추억을 만들고 애초에 우리가 창조된 목적에 맞게 하나님의 형제자매와 함께 웃고 떠드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원칙 4: 쉼은 좋은 열매를 맺는다.게으름이 자신만을 위하는 방종이라면, 쉼은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는 즐김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에 달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생각하십시오. 게으름은 이기심을 낳습니다. 반면에 쉼은 다시 일어나 봉사할 준비를 하게 합니다. 게으름은 책임을 미루고 회피하게 만들지만, 쉼은 다시금 책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활력을 줍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쉼의 은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마음과 행위조차도 항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언제나 겸손하게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해야 합니다. 종종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나의 상태를 더 잘 알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일의 속도를 좀 늦추고 쉼을 가져야 하는지, 아니면 게으름과 나태를 회개해야 하는지 더 정확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원제: Am I Resting or Just Being Lazy?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쉼
안식
게으름
나태
활력
재충전
가격 체계도 하나님의 작품이다
교회 지도자를 위한 경제학
by Joe Carter
2022-11-23
교회 지도자를 위한 경제학교회 지도자들이 “그 성읍의 평안”(렘 29:7)을 제대로 구하려면 경제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경제가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교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를 위한 경제학’ 시리즈는 경제 신학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시리즈의 취지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경제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제공하여 믿음의 공동체가 경제와 공공 정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용어 가격 체계는 상품과 서비스의 평가와 분배, 그리고 생산의 분석을 위해 수치 화폐 형태로 표현된 수치를 사용한다.이것이 중요한 이유2007년 한 경매에서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는 99센트를 334만 달러로 바꾸어 놓았다.아마도 그가 슈퍼마켓의 내부를 묘사한 99 Cent II Diptychon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수백만 달러로 바꿨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당시 이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이었다.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수백만 달러에 팔린 동일한 이미지의 세 번째 인쇄물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두 개는 2006년에 225만 달러에 팔렸고, 다른 하나는 248만 달러에 팔렸다. 이 사진들은 모두 807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식료품점의 스냅 사진치고는 나쁘지 않다.거스키는 디지털 방식으로 이미지를 수정하여 시청자가 다른 관점에서 친숙한 광경을 보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사진에서 주로 주목하는 것은 색상이다. 하지만, 그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 이미지는 우리가 종종 당연하게 여기는 아름다움과 다양함으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멀어지게 한다. 나는 예술가도 아니고 미술 평론가도 아니지만, 우리가 그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당신은 그것이 보이는가? 아니, 케첩 말고 거기에 붙어 있는 가격표 말이다. 언뜻 보기에 케첩은 (단지 그 케첩이 세일가에 판매된다는 사실 말고는) 특별한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2.49달러라는 이 단 하나의 숫자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정보를 전달한다.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작품의 위엄을 생각할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자연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한 다윗의 말에 동의한다(시 19:1). 그러나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적 능력에는 우리가 자주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대상들이 있다.가격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가격은 단지 제품이나 서비스에 할당된 숫자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가격이란 하나님의 의도가 부여된 동기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학자 알렉스 타바로크(Alex Tabbarrok)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고, 가격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탐구하며, 어떻게 가격 체계가 분산된 지식과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세계 경제 활동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지 연구한다.인간이 제품 각각의 가격을 정하지만, 인간의 번영을 위해 인간 활동의 균형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가격 체계를 설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타바로크가 비디오에서 말하는 것처럼, ‘만일 그것이 발명된 것이었다면, 가격 체계는 인간에 의한 가장 놀라운 창조물이 되었을 것이다.’ 가격 체계는 실로 놀라운 창조물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그러나 케첩이 2.49달러에 팔릴지, 아니면 사진 한 장이 334만 달러에 팔릴지 누가 결정하겠는가? 물론 직접적이거나 혹은 소비자 개인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결정은 소비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경제학자 돈 부드로(Don Boudreaux)가 설명하듯이, “가격은 소비자들이 제품이 그에 합당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값을 반영한다. 케첩 한 병의 가격이든 에르메스의 버킨 지갑이든 가격표는 ‘글로벌 협력 연결 시스템’에 의한 최종 결과이다.”우리는 흔히 우리가 무언가를 사고팔 때에만 가격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이 부패하고 남용되었을 때만 가격 체계를 생각한다. 이처럼 협소한 시각은 하나님께서 가격 체계를 소통과 조정에 이용하시는 아름다움과 다양함을 놓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감자튀김을 케첩과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하는지 여부와 같은) 사소한 문제처럼 보일 수 있는 것까지도 아시며 관심을 두고 계시며 우리의 이웃들에게 그러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제공해 주셨다.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용하신 대부분의 좋은 선물이 그렇듯, 우리는 그것을 오용하고 이웃에게 해를 끼치도록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가격 체계는 인간의 형편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된 기발한 의사소통의 방법이다.앞으로 우리는 날마다 주시는 양식에 대해 감사 기도드릴 때, 이 양식이 우리에게 올 수 있도록 신기하고 오묘한 가격 체계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원제: Economics for Church Leaders: Why the Price System Is One of God’s Artworks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장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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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성읍의평안
렘28:7
평가와분배
“경제”를 이해하다
교회 지도자를 위한 경제학
by Joe Carter
2022-09-27
편집자 주: 교회 지도자들은 “그 성읍의 평안”(렘 29:7)을 위하여 노력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경제가 우리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며, 교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를 위한 경제학’ 시리즈는 경제 신학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시리즈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경제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제공하여 믿음의 공동체가 경제와 공공 정책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용어: 경제(GDP-‘국내 총 생산’이라고도 함)의미: 인간은 외면적으로 무한한 욕구와 필요를 가지고 있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이것을 희소성이라 하며, 경제학에서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된 방법은 시장 교환이나 거래를 통해서이다. 즉, 누군가는 내가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고, 나는 그에게 그가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을 대가로 제공한다(우리는 화폐를 사용하여 간접적으로 이를 행한다).거래는 단순히 구매자가 상품, 서비스 또는 금융 자산을 위해 보통 합의된 가격으로 판매자와 금전 또는 신용을 교환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당신이 3달러를 지불하고 신문을 산다고 상상해 보라. 이것이 거래이다. 이제 당신이 신문사 자체를 3억 달러에 샀다고 상상해 보자. 그것도 거래이다. 두 경우 모두 상품과 화폐(현금 3억 달러가 없다면 신용)를 교환하였다.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인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경제의 모든 사이클과 활력은 거래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한다. 거래를 이해할 수 있다면 경제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거래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주된 방법은 그것들을 그룹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룹화는 시장을 구성하며, 모든 구매자와 판매자가 같은 물건에 대해 거래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지역 농산물 시장에 가면 주로 계란이나 야채와 같은 농산물과 관련된 거래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뉴욕 증권 거래소에 가면 주로 주식과 관련된 거래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_____ 시장’(주식시장, 밀시장, 서적시장 등)이란 유사한 상품을 거래하고 있는 모든 장소를 말한다.경제는 특정 지역, 모든 시장에서의 모든 거래로 구성된다. ‘모든 시장에서 있어서의 총지출과 총판매량을 합하면, 경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라고 달리오는 말한다. 그처럼 간단하다.미국인이 “경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이 생각하는 거래의 특정 지역은 미국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 나라의 모든 시장에서 매일 일어나는 수십억 건의 거래에 대해 합리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것을 단일 경제 지표인 국내 총생산(GDP)으로 단순화함으로써 이를 표시한다.GDP는 종종 경제를 “측정”하는 단일 수치로 사용된다.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생산되는 모든 최종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에 가격표를 붙인다고 상상해 보라(예: 재배되는 모든 농작물, 커피숍에서 제공되는 모든 라떼, 변호사가 청구하는 모든 시간 등). 당신이 가격표에 기재한 총 숫자가 GDP이다.GDP와 “경제”는 종종 동의어로 취급된다. 경제가 성장 또는 축소되고 있다는 것은 교환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총가치가 증가 또는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왜 그것이 중요한가. 미국의 경제는 경제적인 거래의 총합일 뿐이다. 교회 지도자들에게 그게 왜 중요한가?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물질적 욕구에 신경 쓰기 때문이다. 성경적 기준에 의하면 경제 정의는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경제 정의에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경제, 특히 경제의 성장이 어떻게 우리의 이웃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지 축소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경제 단위(가족, 국가 등)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또는 거의 모든 사람)이 물질적 필요와 많은 물질적 불필요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때 더 잘 살 수 있다. 그것이 경제 성장이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이 문제는 복잡하고 완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비유가 필요하지만, 단순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계속해서 아이를 낳기 때문에 경제성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아이를 사랑하고 더 많은 아기가 우리 주위에 있기를 원한다면 경제성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아이들과 GDP의 연관성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미국에서 경제성장이 없는 기간이 장기화하였을 경우의 결과를 생각해 보자.▶ 실업과 빈곤이 급증할 것이다.▶ 세수가 감소함에 따라 국가 부채는 증가할 것이다.▶ 은행과 다른 금융 기관들은 파산할 것이고, 주택과 신용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집값과 땅값이 급격히 상승할 것이다.▶ 식량 가격이 상승하여 다른 나라의 기근과 우리나라의 기근으로 이어질 것이다.▶ 사회 복지 프로그램들은 축소되어야 할 것이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정부 부채를 갚을 수 없을 것이다.▶ 근로자들은 현재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오랜 시간을 일해야 할 것이다.달리 표현하면 경제성장이 멈추는 순간, 경제 쇠퇴가 시작된다. 하지만 무엇이 즉각적인 감소를 야기하는가? 한마디로 신생아들이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만들어지는 모든 새로운 사람들을 먹이고, 의복을 제공하고, 보호하는데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축소된 경제 모델을 생각해 보자.100명의 사람이 경제적 균형 상태 아래에서 살고 있는 마을을 상상해 보자. 그들의 경제는 성장도 축소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GVP(Gross Village Product; 마을 총생산)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에게 필요한 충분한 음식, 의복, 쉼터 및 기타 편의시설을 가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 “베이비 붐”이 일어나 마을에 20명의 새로운 아이들이 추가된다고 상상해 보자. 마을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어떻게 될까? 만약 그들이 그들의 자원을 공평하게 재분배한다고 가정한다면, 모든 사람(신생아 포함)은 그들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자원의 83퍼센트만 갖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굶거나 영양실조로 죽기 시작할 것이다.이는 오늘날 경제성장률이 낮은 나라(GDP가 정체되어 있거나 감소하는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모든 사람이 빈곤 수준을 넘어설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이 없다.마찬가지로 미국에서는 성장하여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아이들에 맞추어 매달 약 7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일자리는 없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실업자가 굶주리는 것을 막기 위해 실업 보상이나 복지 혜택과 같은 재분배를 통해 자원을 이동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성장이 없으면, 즉 GDP가 장기적으로 증가하지 않으면, 국가의 부는 고갈되어 불안정과 사회 붕괴를 야기한다. 그러나 만약 새로운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한다면, 이런 근로자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면서 경제는 자동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경제 성장으로 기아, 빈곤, 질병이 줄어들고 기대수명이 수십 년 만에 증가했다. 이것은 또한 1970년보다 오늘날 약 11억 명의 사람들이 덜 빈곤한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과 같은 나라들의 경제 성장의 결과로, 세계의 극빈층의 수는 1970년의 1/3정도로 낮아졌다.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추구해야 할 목표도 아니고 물질주의 천국을 이루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경제성장은 인간의 주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두 가지 문화 명령을 이행함으로 오는 축복일 뿐이다. 즉, 생육하고 번성하며 지구의 자원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창 1:28).기타 알아야 할 내용지역 경제는 국가 경제와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 국가 경제는 미국 내의 모든 다양한 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지역 경제는 특정 시장에 의해 지배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아이오와 사람들은 로드 아일랜드 주민들보다 농산물 시장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국내총생산(GDP)이 성장하더라도 농산물 시장이 부진하면 아이오와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것은 지역 교회의 사람들에게 어떤 시장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지 교회 지도자들이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경제”는 20세기의 발명품이다. 우리는 “경제”라는 말을 너무 흔히 듣기에 그것이 20세기에 파생된 것이란 사실을 믿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은 대공황 시기에 생긴 용어이다. ‘선행지수’(The Leading Indicators)의 저자인 재커리 카라벨(Zachary Karabell)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그것은 뭔가 정말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인식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생각해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있었고, 먼지 폭풍으로 인한 농업의 폐해로 오클라호마 농장에서 캘리포니아로 수만 명씩 이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생기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걸 이해할 수는 없었다.GDP의 측정 GDP는 세 가지 방법으로 결정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지출 접근법 (즉, 특정 연도에 개인이 지출한 모든 지출)이며 그 공식은 다음과 같다.Y = C + I + G + (X − M)여기서 (Y)는 (C)소비(소비지출), (I)투자(기업투자), (G)정부지출(예: 정부임금, 무기 시스템), 그리고 (X-M)순수출(총 수출물량에서 수입물량을 뺀 것)의 합계이다.GDP는 GNP가 아니다. 국내총생산과 국민총생산은 너무 비슷해서 대부분의 사람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요 차이점은 GDP는 생산의 지리적 위치를 기반으로 하고 GNP는 생산의 소유권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외국 기업이 미국 국경 내에서 활동하면 생산량은 GDP에 반영되지만, 미국 기업이 외국에서 활동한다면 생산량은 GNP에는 반영되지만, GDP에 반영되지는 않는다.아무도 경제를 운영하거나 통제하지 못한다. 사회생활에서 흔히 반복되는 사실은 대통령이나 의회는 늘 경제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거나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현실은, 경제란 매우 복잡하고 거대하기 때문에 - 현재 GDP는 20조 5,400억 달러임 - 어떤 개인이나 기관도 그렇게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 미국에서 가장 큰 구매자이자 소비자로서, 정부는 많은 거래에 관여한다. 2019년, 정부가 차지한 GDP에서의 비중은 약 17퍼센트였지만, 미국 대통령은 경제 전체는커녕 모든 정부 지출을 통제하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마법 같은 사고를 하기 쉽고 누군가는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고 지속해서 생각한다.GDP는 경기 침체의 지표이다. 경기후퇴의 기술적 지표는 GDP로 측정되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이다. (이는 경기후퇴를 공식적으로 판단하는 기관인 국립경제조사국이 경기후퇴를 부르기 위해 정한 표준적 정의)GDP는 생활 수준을 측정하지는 않는다. 한 나라의 GDP를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의 수로 나누면 1인당 GDP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수치는 개인의 생활 수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한 가정의 소득을 그 가족의 인원수로 나누는 것과 같다. 한 가족이 연간 10만 달러를 벌 수는 있지만, 4인 가족 중 두 아이가 각각 25,000달러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GDP의 감소는 한 국가가 어떤 기준보다 더 가난하다는 신호일 수 있지만, GDP의 증가가 반드시 평균적인 개인의 생활 수준이 나아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때론 부적절한 회계의 결과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2010년에 가나는 측정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하루아침에 GDP를 60퍼센트 증가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회계 내용의 변화가 있다고 해서 이것이 가나 국민들의 생활 수준도 그만큼 나아진 것은 아니다.관련이 없는 것을 GDP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1968년 대통령 후보 로버트 케네디는 “GDP는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유명한 말을 했다. 거기에 시의 아름다움이나 결혼생활의 힘, 공론화의 지능, 공직자의 청렴성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이고 전혀 관련이 없다.GDP는 우리 경제의 상태를 알려줄 수 있지만, 경제는 우리 영혼의 상태를 알려줄 수 없다. 우리는 계량의 방법이 전혀 의도되지 않았던 것을 측정하지 못했다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 추상적인 “경제”를 탓하기보다는, 우리는 개인이 그들이 내리는 경제적 선택에서 성경의 정의를 어떻게 넓게 펼치지 못하고 있는지를 지적해야 한다.원제: Economics for Church Leaders: Understanding ‘The Economy’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장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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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임금 인상을 요구해야 할까?
by Courtney Powell
2022-09-20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해도 괜찮을 때는 언제일까요?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성경적인 방법이 있습니까? 나는 16살 때에 동네에 있는 작은 안경점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때 내 시급은 6.5달러였다. 당시에는 엄청 큰돈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시급을 올려달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저 기름값을 충당할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음에 감사했다.그러나 나의 경력, 경험, 교육이 늘어나면서, 또한 기름값 외에도 내가 감당해야 하는 비용들이 늘어나면서 나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나는 그리스도인이 임금 인상을 요구해도 괜찮은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임금 인상을 요구해야 할까?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경건한 삶에 필요한 모든 지혜(벧후 1:3)를 주신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모든 충만한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이처럼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가난 또는 풍요: 하나님께서 주신 재산잠언에는 단 하나의 기도만 등장하는데, 그것은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잠 30:7-9)라는 기도이다. 가난할 때나 부할 때 우리는 죄를 범하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잠언의 기도는 이 둘 모두에 빠지지 않기를 구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잠언의 저자가 가난을 구하지도 않았고, 가난한 것이 경건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그는 너무 가난하거나 너무 부유하지 않도록 일용할 양식을 구했다.하나님께서 주신 재산이라는 관점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샘 스톰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의 모든 재산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재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인정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다.풍요와 필요하나님께서 남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우리에게 딱 필요한 만큼만 정확하게 공급하시는 분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바울처럼 이렇게 고백하고 싶을 것이다.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빌 4:11-12).바울의 가르침은 하나님께 모든 필요를 구하라는 것이었다(빌 4:6).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바울의 만족은 자신이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그에게 넉넉하게 주었던 교회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받아서, 풍족하게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빌 4:18).지금은 너무 부족한 것보다는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될 때가 많다. 세계가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나면서 이 문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식탁에 충분한 음식과 옷장에 여러 벌의 옷을 넣어둘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소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안 되는가?마땅히 받아야 할 당신의 임금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세계 경제는 내핍의 경제를 넘어서서 점점 더 많은 부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임금에 대한 성경의 원리를 여러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신 25:4).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눅 10:7; 마 10:10).그저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라면 임금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당신의 경험과 경력을 고려해보면 지금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이 당신에게 마땅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임금 인상을 요구해야만 하는가? 다음에 제시되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통하여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1. 인상을 요구하는 이유를 확인하라 당신은 자신의 왕국을 만들기 위하여서 인상을 요구하는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인상을 요구하는가? 당신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인상을 요구하는가? 아니면 절대로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지고 인상을 요구하는가?2. 당신이 일하고 있는 직장을 고려하라교회 사역이나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다른 직종에서 그들이 벌 수 있는 것보다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그분을 위하여서 희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독교 단체들도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임금을 제공할 수 있을 때도 있다. 지금 당신이 일하고 있는 근무지가 재정적으로는 어떻게 운영이 되고 있는가? 현재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가? 아니면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으며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대우를 제공할 수 있는가?3. 당신의 직급을 평가하라당신의 노동의 질과 조직에 기여하고 있는 바를 고려하여서 가능한 임금 인상을 평가하라. 일반적으로 조직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한 경험이 있다면 이는 당신의 가치를 더해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까지 조직이 운영되어온 과거의 역사와 노하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항상 성실하게 주어진 노동을 감당하였는가? 더 많은 책임을 부여받았는가? 4. 한계를 정하라모든 직업은 명확한 근로계약서를 필요로 한다. 근로계약서의 세부적인 내용에 변경이 있다면, 그에 맞추어서 당신의 임금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져야 한다. 임금 인상이 없이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당신이 지쳐서 쓰러지지 않도록 적절한 한계를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당신의 조직이나 기업이 적절한 보상이 없이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한다면 당신의 관리자에게 노동에 대한 기대를 적절한 수준으로 낮추어달라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 5. 현실을 고려하라당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반드시 기업에 임금 인상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서, 당신의 자녀가 자라고 있으며, 당신은 더 큰 집을 구매하였으며, 자녀를 기독교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생각해보자. 이에 따른 경제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서 더 많은 임금을 기업에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대신, 당신이 직장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라. 임금 인상은 당신이 더 많은 일,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의 삶에서 경제적인 필요의 변화가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이유라고 할 수는 없다.어떻게 요구할 것인가?당신의 고용주에게 협상의 조건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는 말라. 또는 회사를 곤란하게 만드는 최후통첩과 같은 방식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 말라. 당신의 노동의 가치가 당신이 받아야 할 임금 인상의 이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당신의 임금 인상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주님께 하듯이 계속해서 최선을 다하여 일하라. 사실 우리는 우리가 받는 임금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의 노동은 임금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수단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라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의 필요와 우리가 하는 노동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평가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 위하여 주신 직업을 통하여서 임금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성경은 노동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동시에 우리의 필요를 항상 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갈 것을 가르친다. 이렇게 기도해보라. “하나님, 저의 필요를 모두 아시며, 제가 어떻게 일하는지 항상 보고 계심을 믿습니다. 저와 제 가족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실 것을 신뢰합니다. 저의 고용주가 저의 임금을 올려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저를 돌보시며 영광을 받으실 것을 확신합니다.” 원제: How Should a Christian Ask for a Raise?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박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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