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연약함을 고친다
by Clarissa Moll2020-05-03

몇 년 전, 우리가 첫 대륙 횡단 여행을 가기 전에, 남편과 나는 야외 활동 용품점에서 데이트를 했다. 그는 나에게 여행용 배낭을 사주고 싶어했다. 우리는 미 서부를 가로질러 옐로스톤,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 그리고 로키 산맥을 지나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등산을 하게 될 나를 위해 복장과 장비를 갖추어 주며 즐거워했다.


열정적인 등산가였던 그는 배낭 코너를 활보했고, 가장 큰 것 하나를 신나서 꺼내 들었다. “이거 정말 멋진데!” 그가 소리쳤다. “한번 메어 봐!”


난 거대한 짙은 황록색 가방을 둘러메고서 몇몇 옷 선반 주위를 걸어 다니면서 연습했다. 어깨 끈은 어깨에 꼭 맞았고 허리 벨트도 내 허리를 편안하게 받쳐 주었다. 사이즈가 약간 과해 보이는 면이 있었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고 한번 사용해 볼만 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가볍게 여행하기로 계획했고, 배낭 하나만 챙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처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직원이 거리를 두고서 정중히 물었다. “무게를 늘려 보시겠습니까?”


우리가 서서 지켜보는 동안, 직원은 배낭에 모래 주머니를 넣기 시작했다. 배낭은 점점 무거워졌고 남편은 미소를 띄었다. 그는 이미 우리가 산을 오르고 있는 모습을 예상했다. 하지만 직원이 그 배낭을 내 등에 올려 주었을 때, 나는 등산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똑바로 서 보려고 했지만 계속 휘청거렸다. 내 어깨에 가중되는 짐의 무게 때문에 불안정하게 구부리고 있는 나를 남편이 잡아주었다. 그는 “한번 조금씩 걸어 다녀봐. 곧 익숙해질 거야”라고 격려해 주었다.


나는 배낭을 엉덩이 쪽으로 더 옮겨 메고 몸을 앞쪽으로 기울인 채로 옷 선반 주변을 걸어 다녀 보았다. 이번에는 고작 몇 걸음 정도만 가고는 멈추었다. 그것은 너무 무거웠고 결국 “도저히 못하겠어요”라고 고백했다. 


우리가 짊어진 것들


요즘 내가 지고 가는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내 짐이 감당하기엔 너무 무겁다고 자주 느끼곤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뉴스를 강타하기 전부터 내가 짊어진 짐들은 가볍지 않았다. 8개월 전, 남편은 등산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육아, 일 그리고 비통함은 이미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 더 많은 무게를 감당해 낼 수 있는 공간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서 나는 지금 식료품이 부족하고 사회적 관계가 거의 없는 자가격리의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추가로 일을 하려고 알아보던 중에 며칠 앞서 전달된 공지사항으로 인해 자녀들을 풀타임으로 홈스쿨링 하고 있다.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 격리에 대한 좌절감, 무너진 세상을 향한 의분으로 가득하다.


이 모든 것들과 그 이상의 것들은 나를 굴복시키기 위해 위협하는 매우 힘든 짐으로 내 삶을 가득 채운다. 솔직히 나는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직도 끊임없이 몸부림치고 있다. 나는 “상황이 힘들어지면 강한 사람은 더 강해진다”는 말 때문에라도 스스로 용기를 북돋으며, 입술을 악물고, 어깨에 짐을 짊어진 채로 내 인생의 진열장 주변을 거닐어 보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어찌되었건 나는 어려운 시기가 우리의 가치를 드러낸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실제 가치롭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을 통과한 것 때문에 얻어지는 수용의 가치, 사랑의 가치, 상급의 가치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 그 어디에서도 그러한 메시지를 찾을 수 없다.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나보고 무거운 돌을 어깨에 지라고 하시거나 내가 짊어진 짐의 고통을 강제로 이겨내라고 하시지 않는다. 그 어디에서도 가장 무거운 짐 운반을 목표로 하여 전력을 다하라고 하지 않는다. 


당신의 짐을 쉼으로 바꾸라


그 대신에 예수님께서는 나의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라고 몇 번이고 반복하여 말씀하신다. 내가 짊어진 분노, 좌절, 슬픔 그리고 걱정의 무게를 인정하라고 하신다! 지금 내게 결핍된 자유, 유연함, 특권과 지위의 상실에 대해 애통해 하도록 말이다! 이렇게 보기 흉한 짐을 짊어지겠다는 나의 권리를 포기하며 그분의 발 앞에 내 짐을 내려 놓을 수 있도록 주님은 나를 부르신다. 


만약 내가 고통의 시간 속에서 쉼을 찾아야 한다면, 이곳이 바로 그 출발점이 되어야만 한다. 나는 내가 내 짐을 지겠다는 생각을 벗어버려야 하며, 예수님의 더 쉬운 멍에가 내게도 필요하다고 고백해야만 한다. 


유독 힘들었던 청년시절 동안,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한 현명한 친구는 내 손으로 직접 기도할 수 있도록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녀는 신앙을 보다 외적으로 표현하는 교회에서 성장했으며 손을 사용해 기도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어린시절부터 나는 언제나 손을 모으고 갖추어진 자세로 의심할 나위없이 새끼손가락 조차 움직이지 않고 기도했다. 우리가 같이 기도할 때 그녀가 엿보았는지는 몰라도 나는 주로 모은 두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그녀는 손을 무릎 위에 펴고 기도하는 모습을 내게 보여 주었다. 이러한 열린 자세는 그녀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풀어 놓도록 일깨우는 것 같았다. 기도 중에 간구함을 아뢸 때,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을 위로하고 손을 들고서 마치 자신의 필요를 실제로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리는 것처럼 하였다. 


아름답게 몸으로 구현된 그녀의 믿음은 하나님과의 대화가 생각과 의지로 더 잘 실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다윗이 사울의 무거운 갑옷을 벗어 돌려 주었던 것처럼, 나의 사랑하는 친구는 자기 홀로 짊어지고 갈수도 있었던 무거운 것들을 하나님께 드리며 기도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내려 놓았다. 더 이상 그녀가 짊어질 가식이나, 슬픈 포기, 수치 따위는 없었다. 오직 평안 뿐이었다. 그녀는 짐을 내려 놓으며 자신의 영혼을 위한 참된 쉼을 찾게 되었다.


요즘에는 분명하게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나의 활동을 스스로 제한함으로써 나의 책임을 다하게 하고 있다. 매일 나를 따라오는 감정과 관심을 마법처럼 지워낼 수도 없다. 


하지만 내 통제를 벗어난 이 모든 것들 가운데, 이것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매우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내가 다 책임지려고 했었다는 것을 고백할 수는 있다. 손을 들고 기도하며, 탄식, 슬픔, 불안과 지침 그리고 나의 모든 짐을 예수님께 드릴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능력에 기대어 주님이 주시는 쉬운 멍에를 택할 수 있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Trading Your Weakness for God’s Strength

번역: 정진호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Clarissa Moll

클라리싸 몰은 비영리 단체를 위한 자선 모금가 및 작가로서, 현재 슬픔의 여정을 걷는 사람들과 동행하기 위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