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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불확실성 시대 던져야 할 두 질문
by Joe Carter2020-04-03
지난 며칠간 워싱턴주 주지사는 시애틀(Seattle) 지역에서 250명 이상 규모의 모임을 금지했다. 켄터키주 역시 교회들의 주일예배 모임 자제를 부탁했으며, 뉴욕주 주지사는 뉴로쉘(New Rochelle) 지역 근교 1마일의 감염 통제를 위해 주 방위군(National Guard) 투입을 요청했다.

미국 전역에 걸쳐 학교와 대학들은 문을 닫고 의회에서는 상하원 의원들이 자가 격리에 들어가고 있다. 주식 시장은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파장은 가장 작은 유기체인 바이러스 하나로 인해 시작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실제 감염보다 더 위험한 것은 바이러스로 인해 미국 전역을 불확실성(uncertainty)으로 감염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다.

불확실성의 종류

불확실성이란 불완전한 정보나 미지의 정보를 토대로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내리지 않아야 하는 상황이라 정의할 수 있다. 1921년에 출판한 책 ‘Risk, Uncertainty and Profit’에서 프랭크 나이트(Frank Knight)는 불확실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잠재적인 결과를 미리 아는 경우, 그리고 이러한 결과가 나올 확률도 아는 경우이다. 이런 종류의 불확실성을 “위험”(리스크, risk)이라 한다. 저자에 의하면 진정한 불확실성은 측정하거나 그 양을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생의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잠언 27장 1절도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라고 말한다. 인간 활동의 많은 부분에 있어 단순한 위험, 즉 측정 가능한 종류의 불확실성이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타는 것은 부상이나 사망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 사고의 불확실성, 다시 말해 위험은 수량화할 수 있고 그 불확실성이 상대적으로 낮기에 수많은 사람이 두려움이나 걱정 없이 운전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불확실성은 수량화할 수 없기에 우리를 마비시키고 두렵게 만들어 행동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 불확실성은 이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한 국면이다.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우리 삶에서 지혜롭고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의 힘과 책임감이 커질수록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더 복잡해지고 더 어려워지며, 또한 더 많아진다.

분명한 이해를 위해 질문했던 다윗 왕

다윗 왕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늘 사람들의 사연과 요구를 듣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사무엘하 전반에 걸쳐, 우리는 다윗이 뭔가를 결정할 때 전혀 복잡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간단한 것, 즉 분명한 이해를 위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다윗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또는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삼하 21:2–4)와 같은 단순한 질문을 던졌다.

얼핏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질문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윗이 단순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복잡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것이다. 질문을 통해 정보를 얻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미국의 경영 전문가인 W. 에드워즈 데이밍(W. Edwards Deming)은 “자료 수집의 최종 목적은 어떤 행동을 취하거나 뭔가를 추천하고자 할 때 이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한다. 복잡한 질문보다는 단순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자료를 수집하고, 우리가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데 있어 더 도움이 된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다섯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1. 너무 먼 미래까지 생각하지 말라

개인적이든 전 세계적이든,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시대를 살아갈 때는 너무 먼 미래까지 아우르는 결정을 삼가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가까운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고, 지금이 우리의 영적인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가정해보라. 광범위하고 복잡한 질문은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변화는 무엇일까?”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질문을 던진다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 이번 주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작은 질문을 통해 초점을 좁혀갈 수 있다. 위의 경우 인생 전반의 문제에서 한 주(week)로 좁힐 수 있었다. 우리 문제에 대해 소규모의 해결책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이번 주에는 뭘 할까?”처럼 작고 즉각적인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작은 질문을 던지면 “내 삶을 어떻게 바꾸지?”와 같이 더 큰 질문에 답하는 법도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번 주에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방법은 불우한 아이들을 돕는 것이라 결심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더 큰 변화로 이끌 수도 있다. 다른 아이들을 일정 기간 맡아 양육하는 위탁 부모(foster parent)가 되는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2. 영향을 주거나 통제할 수 있는 것을 기반으로 결정하라

정보 수집의 주요 목적은 의사 결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의견 수렴을 위한 정보와 의사 결정을 위한 정보를 혼동하곤 한다. 한 예로 합당한 정보를 취득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한 나머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정말로 국가적 재난인지 아니면 언론이 괜한 공포감을 부추기는 것인지 알아보는 데에 너무도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SNS에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논쟁하는 데에는 그런 정보가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 각 개인이 어떻게 이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더 도움이 되는 질문은 “공포감에 빠지지 않고 바이러스가 더 퍼지지 않도록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것이다. 질문의 범위를 이런 식으로 좁혀가면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다하는 데 필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평상심 유지하기, 사람 많은 곳 피하기, 손 씻기 등에 이르는 소소한 개인적 행동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3. 지혜롭게 행하기 위해 무엇을 알아야 할지 결정하라

자신에게 던져야 할 가장 단순한 질문은 “슬기롭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이다.

잠언 13장 16절은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거니와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슬기로움(prudence)은 첫째, 주의 깊고 지혜로운 사리판단, 둘째, 경솔하게 행하거나 말하지 않음, 셋째, 주어진 달란트와 자원을 잘 활용함, 넷째,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다루는 지략과 지혜를 수반한다. 불확실성 앞에서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슬기로움의 네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지식으로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보를 취득해야 한다.

4. 불확실성으로 인해 바보가 되지 말라

불확실성으로 인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잊어버릴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미래를 위한 저축의 일환으로 주식 시장에 투자한다. 투자 전략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저점에 매수하고 고점에 매도하라”나 만기보유(buy-and-hold) 같은 이미 그 유효성이 증명된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원칙들을 자랑스레 말하곤 한다. 하지만 퇴직 적립금을 깨서 투자한 주식의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대규모 손실이 생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식 시장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렇게 경솔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우리는 “바뀐 게 뭐지?”와 같은 단순한 질문을 해야 한다. 내 투자 원칙이 바뀌었나? 내게 주어진 시간이 짧아졌나, 다시 말해 현금이 필요한 시기가 더 빨리 닥친 것인가? 단기 불확실성의 정도 외에는 바뀐 것이 없다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과연 지혜로운 일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5. 작은 질문을 큰 질문 두 개에 연결하라

불확실성을 핑계로 하나님의 변함없는 명령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하는 작은 질문은 궁극적으로 큰 질문 두 개에 연결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첫째, 이 결정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가? 둘째, 이 결정이 나의 이웃 사랑을 담아내는가?

두 질문은 오류가 없으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을 함께 섬긴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 그리고 그의 피조물 모두에게 다윗 왕이 했던 그 작은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원제: Asking Small Questions in an Age of Uncertainty
번역: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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