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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대마초를 피워도 될까
by Kevin J. Vanhoozer2021-06-21

황홀감에 빠지면 절제력이 사라진다 … 비록 오락 목적이라고 해도 대마초를 피우는 것은 결국 황홀감에 빠지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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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와 복음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약사였던 내 아버지는 대마초를 피우는 것은 인생을 망치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1960년대와 70년대, 나는 심심풀이로라도 대마초를 건드리는 것은 나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랐다. 결과적으로, 나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표준이 되어 가는 상황, 즉 오락 목적으로 대마초를 피우는 것이 이미 합법화 되었거나 되어가고 있는 지금 현실에 대해 사실상 개인적인 지식이 거의 없다. 


오락 목적의 합법적인 대마초 사용이 기독교인의 윤리와 삶에 과연 어울리는 걸까? 예수님은 나의 멍에가 쉽다고 했지만(마 11:30), 대마초를 한 모금 빠는 것이 아직까지는 더 쉽다. 목사는 이 문제에 관해서 어떻게 말해야 할까? 십자가를 지고 가는 제자들이 대마초를 피워도 되는 걸까? 


내가 사는 일리노이에서는 오락 목적으로 대마초를 피우는 것이 이미 합법화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예닐곱 주에서도 합법화가 되었다. 주 산하 카운티와  동네들은 오락 목적으로 대마초를 파는 것을 허용해야 하는가 여부를 놓고 양분되어 있다(의료 목적의 대마초는 별개의 문제다). THC(대마에서 얻어지는 향정신성 화학물질)는 이제 구운 음식, 음료, 그리고 연기 흡입을 통해서 섭취가 가능해졌다(시카고에 본부를 둔 크레스코연구소(Cresco Lab)는 500가지 이상의 대마초 제품을 생산한다).  


대마초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판매 세금과 라이센스 로얄티를 통해서 매출 증대를 바라기 때문이고, 또 대마초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로 인해 건강 서비스에 발생할 수 있는 비용과 더불어 중독자 및 정신병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 유발할지 모르는 전례없는 개인적 및 사회적 비용에 대해 걱정한다. 


성경은 대마초라는 주제에 관해서 침묵한다(술취함에 대해서는 아니다). 대마는 에덴동산에서 얻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었다. 그리고 요한복음 6장 10절 속에 대마초에 관한 내용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영리하긴 하지만 잘못된 것이다.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영어 성경에는 잔디가 grass로 표현되었다. grass는 대마초를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역자 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잡초의 기준이 되는 원칙’(the normative principle of weedship)이라고 부르는 것, 즉 성경이 명백하게 금지하지 않는 것은 얼마든지 해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파이프 속 마약: 누구나 알아야 하는 것


오락 목적의 대마초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1970년대에 대마초가 합법화된 네덜란드의 사례를 들곤 한다. 네덜란드는 그 이후 범죄가 만연해지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사회가 붕괴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대마초 합법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적절하게만 사용하면 대마가 알콜이나 담배보다 더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대마초 합법화의 득과 실에 관한 공공 정책의 관점을 볼 수 있는 좋은 책은 ‘대마초 합법화: 모두가 알아야 할 것’(Marijuana Legalization: What Everyone Needs to Know)이다. 


일부 사용자는 감각적 경험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고 보고했지만, 연구에 따르면 대마초 사용이 가져다주는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어느 정도의 인지 장애와 수행 기능 판단 장애라고 결론을 내렸다. 위에서 언급한 책은 이렇게 서술한다. “대마초는 언어 및 작업 기억, 주의력 및 정신 운동 능력을 손상시킬 수 있다.”


대마초가 뇌에 미치는 단기 및 장기 영향에 관한 가장 좋은 자료 중 하나는 ‘약물 남용에 관한 국립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Drug Abuse) 속 대마초에 관한 페이지다. 거기에 따르면 대용량의 대마초를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삶에서 느끼는 만족도가 낮을 가능성이 높고 정신 및 신체 건강은 악화되고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한다. 

 

미국소아과학회(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에 따르면 십대와 청소년이 대마초를 사용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일어난다. “단기 기억력이 떨어지고 집중력, 주의력 및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진다 … 운동 제어, 조정, 판단, 반응 시간 및 추적 능력에도 변화가 있는 것이 관찰되었다.”


바로 이런 모든 이유 때문에 국가안전위원회(“우리의 사명은 안전”)는 고용주가 안전 문제가 예민한 작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라면, 근무하지 않을 때에도 대마초 사용을 금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일리노이주에서 모든 약국은 “대마초 섭취가 인식과 운전을 방해할 수 있으며, 대마초는 성인만이 사용해야 하고, 대마초는 습관성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임산부나 모유 수유 중인 여성은 사용해서는 안된다”라는 경고문을 게시해야 한다. 


미국 최대 의사 협회인 미국의료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믿고 있다. “대마초는 위험한 약물이고 당연히 심각한 공중 보건 문제의 원인이 된다.”


개신교인의 놀이 윤리?


지금까지 말한 내용에 대부분 찬성하는 사람들조차도 오락 목적의 대마초 사용을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 다르다. 그러므로 한정형용사(qualifying adjective)인 ‘오락 목적의’(recreational)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개신교인은 이미 직업 윤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향상된 놀이 윤리(play ethic)다. 


대마초를 책임감 있게 사용하고자 하는 성인 그리스도인, 즉 자신의 집에서 은밀하게 적절한 정도로 피우겠다는 사람에게 목회자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비록 불법이 아니더라도 대마초 흡연은 여전히 부도덕한 일이라고만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모르는 소리다. 


게다가 2018년 6월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65퍼센트가 대마초 흡연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다. 수면 아래에 숨은 진짜 질문은 대마초를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 그러니까 불안감 감소, 황홀감 체험, 창의력 향상 등을 과연 가치 있는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해로운 것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특히 오락 목적의 대마초 사용이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과 과연 어울리는 것인가(빌 3:20)?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의 원래 의미는 영적으로 새롭게 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즉 영적인 회복 또는 영혼의 소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 말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긴장을 풀거나 즐기기 위해서 하는 일을 의미한다. 레크리에이션은 여가 활동이다. 여가는 ‘자유로운’ 시간이다. 이 시간은 혼자 보낼 수도 또는 함께 보낼 수도 있다. 두 경우 다, 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뭔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요세프 파이퍼(Josef Pieper)는 여가를 세상의 현실을 인식하는 능력을 육성하는 데 필요한 지성의 태도와 영혼의 상태라고 정의했다. 그는 또한 여가는 문화의 기초라고도 말했다. 그렇다면 대마초 사용이라는 여가가 만들어내는 문화란 어떤 것일까? 대마초 사용과 관련이 있는 언어가 거기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대마초와 대마초가 일으키는 효과를 표현하는 단어는 수백 개가 넘는다. ‘망각’, 대마초는 기억을 잃게 한다. ‘후디니’(Houdini, 다양한 탈출 마술로 특히 유명한 미국의 마술사-역자 주), 현실에서 탈출하도록 한다. 그리고 ‘돌처럼 굳어버린’(stoned), 취해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도록 한다.  


더 게을러진 몸과 마음에서 파생되는 행동들과 결과로 규정되는, 점점 더 돌처럼 되어가는 문화와 그리스도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제자들을 위한 충고


두 가지 성경적으로 검토할 것이 있다. (1) 합법적인 것과 편리한 것의 대비, 그리고 (2) 경계할 것을 상기시킴 – 목회자가 오락 목적으로 대마초를 사용하는 문제에 관해서 옳고 그르냐의 도덕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보다 지혜로운가 어리석은가의 제자도의 입장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주는 것.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고전 6:12). 바로 이것이다. 바울은 아마도 여기서 당시 방탕한 고린도인의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한정형용사를 인용하는 것 같다. 바울은 지금 우리가 몸으로 하는 어떤 행동도 다 기독교인의 복음 전파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바울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뜻을 더 명확하게 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고전 6:12; 10:23).


성령 충만은 자기 절제로 이어진다(갈 5:22-23). 그에 반해, 황홀감에 빠지면 절제력이 사라진다. 술을 마시는 것과 대마초를 피우는 것의 차이에 주목하라. 식사 시간에 곁들이는 한 잔의 와인은 사람을 취하게 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비록 오락 목적이라고 해도 대마초를 피우는 것은 결국 황홀감에 빠지기 위해서다.  


두 번째 고려할 점은 그 근거를 항상 깨어서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예수님의 명령에서 가져왔다는 것이다(막 13:32-37). C. S. 루이스는 자신의 회심을 깨어남으로 묘사했다. 우리는 제자도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항상 깨어있도록 만드는 프로젝트라고 묘사할 수 있다. 복음을 지닌 천국 시민권자로서 언제 어디서나 거기에 걸맞는 삶을 사는 특권과 책임에 깨어있어야 한다. 


루이스의 ‘은의자’(The Silver Chair)에서 질(Jill)과 유스터스(Eustace) 및 퍼들글럼(Puddleglum)에게 그린 레이디가 던진 주문과 마찬가지로, 대마초는 세상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우리의 능력을 흐리게 하고 제자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우리의 긴급함을 둔화시킨다. 


깨어남은 구약에서도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그 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습 1:12).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complacent)의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와인 찌꺼기의 농축”을 의미한다. 대마초를 한 모금만 빨아도 비슷한 효과가 일어난다. 


현대 문화는 일반적으로 대마초 사용자를 불행하긴 하지만 해가 되지는 않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돌처럼 굳은’(stoned), ‘취한’(baked) 및 ‘무뎌진’(blunted)은 모두 수동적 동사로, 마약에 취해서 무기력해진 상태를 보여주는 단어다. 제자가 성자이면서 동시에 게으름뱅이일 수 있을까? 오락용 대마초는 나태해지는 가장 최신의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아예 깨어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만큼 심각한 죄악의 상태다.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On Christian Doctrine)에서 사용하는 것과 즐기는 것의 차이점을 설명한 어거스틴(Augustine)의 말은 오락용 대마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대상, 사랑받을 수 있는 대상은 오로지 삼위 하나님뿐이다. 대마초를 피워서 황홀경을 느끼겠다는 사람은 우리가 누리고 즐겨야 할 가장 높은 하나님 그분 외에 단지 창조물을 사용하여 뭔가를 즐기겠다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는 오락용 대마초는 말할 것도 없고 레크리에이션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레크리에이션을 일이 주는 억압과 대비함으로써 우상화시키려는 유혹이 있는 동시에 그 시간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단지 ‘쉬는’ 시간으로 간주함으로 경시하려는 유혹도 같이 존재한다. 선한 청지기 정신은 일하는 방식에서만이 아니라 쉬는 방식에도 적용된다. 대마초를 피우는 것은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다. 


제자는 시간과 에너지 사용에 있어서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도 우리를 영적으로 다듬어가는 과정이다. 지혜로운 제자라면 꼭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다. “깨어 있으라”(막 13:37).




원제: Should Followers of Christ Use Recreational Marijuana?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대마초는 세상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우리의 능력을 흐리게 하고 제자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우리의 긴급함을 둔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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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Kevin J. Vanhoozer

케빈 J. 반후저는 일리노이주 디어필드에 있는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의 조직신학 연구교수이며, 신학, 해석학, 문화에 대한 책을 다수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