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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판단하지 말라’는 명령을 오용하지 말라
by Donny Mathis2021-03-12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불공평한 저울이 아니라, 공정한 저울을 가지고 판단하라고 말한다. 위선이 아닌 온전함과 공감을 가지고 판단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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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커(Steve Kerr)는 심판에게 항의하는 데 있어서 전형적인 코치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Golden State Warriors,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연고지로하는 프로농구 팀-편집자주) 코치인 그는 심판이 틀린 판정을 내렸을 때, 종종 그들을 거의 잡아먹을 듯이 달려든다. “평상시에 만나는 사람한테는 내가 심판한테 하는 식의 그런 말은 절대로 안 합니다.” 스티브 커는 최근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와 나눴던 팟캐스트에서 말했다. “심판이 판정을 잘못 내릴 때, 나는 내 자신이 개인적으로 모욕을 받은 느낌을 가집니다. 말도 안 되는 불평등한 일이 생긴 것처럼 말이죠.” 나는 스티브 커의 말을 백분 이해한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대학농구 팀인 켄터키 와일드 캣(Kentucky Wildcats)이 불리한 판정을 받을 때면 심판에게 외치곤 하니까. “이 심판아, 부끄러운 줄 알아라!!” 


누구라도 듣기 싫어하는 말, 틀렸다는 말을 듣는 것이 단지 심판과 스포츠에만 국한되어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힘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현실은 걸음을 막 뗀 아기에서부터 은퇴한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다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화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심판이 틀린 판정을 해도, 그 판정은 상대팀에게 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친구와 가족이 우리의 선택을 다 좋아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SNS에서 만나는 모두가 다 나를 지지하기를 바란다. 사실 우리는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단지 그 판정이 내게 유리하기만 하다면 말이다. 우리는 판사 옷을 입은 사람 중에서도 내 편이 되는 변호사를 기대한다. 


결과적으로 마태복음 7장 1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판하지 말라는 명령은 오늘날 자율을 우상화하고 심판을 경멸하는 문화에서는 아주 멋진 말(mantra)이 된 셈이다. 어떤 사람이 나의 행동을 판단하려고 할 때, 우리는 단지 이렇게만 말하면 된다. “판단하지 말라.” 바로 이런 예수님의 말씀 덕분에 오늘날은 의문의 여지가 있는 투표 결과로 선출된 정치인, 최근 스캔들에 휘말린 연예인, 또는 누구라도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결정을 한 사람을 도와달라고 다른 사람도 아닌 나사렛 예수에게 요청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함축성 있는 짧은 구절은 논쟁에서 확실한 승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고의 카드가 되었다. 이 구절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 한번 보자.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한다. “비판받지 않으려면 너부터 비판하지 말라.”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어리석거나 포용력이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 그런 다음 예수님과 함께 차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 마이크 드롭(mic drop) 중에서도 최고의 마이크 드롭이다. 


슬프게도, 이런 장면을 보는 사람들 중에서 이니고 몬토야(Inigo Montoya)의 말을 기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내 생각에 이 구절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를 말하는 것 같지 않은데요.”


번영과 판단

 

예수님의 이 유명한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말씀이 들어있는 그 유명한 설교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청중들의 귀에 생생한, 근심을 이기는 해독제를 알려준 예수님은 설교의 방향을 바꾼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잠깐, 뭐라고? 조금 전에 예수님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일매일 해야 하는 판단,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어? 그리고 하늘나라 시민이 되는 데 중요한 열쇠 중 하나가 그런 일을 걱정하지 않는 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판단을 정죄하고 있는 거지? 


산상설교는 번영을 향한 길을 보여주는데, 그 길은 온갖 판단으로 가득차 있다. 예수님은 지금 타락한 세상에서 살면서 그의 통치를 추구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이고 관계적인 판단을 하지 말라고 금지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서 이렇다. 


5장 17-20절에서 예수님은 듣는 이들의 의사 결정에 필요한 율법과 선지자의 명령을 버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성취시킨다. 그런 다음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율법의 명령을 지키고 가르침으로 하나님이 주신 의를 드러내라고 명령하고 있다. 


5장 21-48절에서 예수님은 그의 왕국에서 순종은 단순히 율법을 범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다. 또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 관해 율법이 가르치는 내용의 핵심과 정신을 설명한다. 


6장 1-24절에서 예수님은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나누고, 기도하고, 금식하라고, 그리고 사람의 칭찬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라는 동기로 부를 추구하라고 말한다. 그런 순종은 하나님에 의해서 긍정적으로 판단될 것이다.  


7장 13-14절에서 예수님은 멸망으로 이끄는 넓은 길과 그의 왕국 아래에서 번영으로 이끄는 좁고 험한 길을 비교한다. 


7장 15절-19절에서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선지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그의 삶과 가르침이 맺는 열매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명한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지금 여러 다양한 종류의 판단을 사용해서 번영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설교를 하고 있다. 그러면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판단을 정죄하는 것일까? 


부서진 저울로 무게를 재지 말라


마태복음 7장 2절에서 예수님은 '판단하는 것'이 재는 것과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설명한다(막 4:24-25; 눅 6:37-42). 우리가 사는 문화는 실제로 균형을 맞추는 저울을 가지고 정의를 묘사함으로써 이와 비슷한 비교를 한다. 시적인 병렬 구조를 통해서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불공평한 저울이 아니라, 공정한 저울을 가지고 판단하라고 말한다. 위선이 아닌 온전함과 공감을 가지고 판단하라는 것이다. 


긴장이 고조되면서 예수님은 농담을 한다. 이것은 확실하게 기억에 남고 재미있으며 또 확실한 한방을 가진 이야기다. 예수님이 말하는 시나리오를 한번 상상해 보자. 한 사람은 눈에 작은 티가 있고, 다른 사람의 눈에는 가로 2인치, 세로 4인치의 들보가 들어있다. 누구나 눈을 불편하게 하는 작은 티가 들어올 수는 있지만, 들보가 들어온다면 단지 눈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비유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로, 어떻게 거대한 들보는 보지 않으면서 작은 티는 볼 수 있을까? 두 번째로, 어떻게 얼굴에서 튀어 나올 정도로 큰 들보를 가진 사람이 이웃에게 고통스러운 눈 수술을 하라고 권유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들보를 가진 사람을 위선자라고 부른다. 그럼 해결책은? 예수님이 그 두 사람에게 다 거울을 들고 눈을 살펴서 문제점을 스스로 해결하라고 했던가? 아니다. 예수님은 들보를 눈에 갖고 있는 사람이 먼저 그 들보를 빼고, 그 후에 티끌이 들어간 사람을 도우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죄를 발견하고 그 죄를 없애도록 하는 신자의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7:5).


이 구절은 예수님이 판단하지 말라고 금지하기 때문에 어려운 게 아니다. 이 구절이 어려운 이유는 예수님이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판단할 때 겸손한 마음으로 하라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겸손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예수님은 위선자가 되지 말라고, 위선적인 판단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판단하지 말라’의 원칙


우리가 예수님이 말씀하는 것, 또한 말씀하지 않는 것을 살펴볼 때 최소한 네 가지의 원칙이 두드러진다. 


1. 말하고 싶은 포인트를 강조하기 위해서 성경 구절 딱 하나를 사용하는 것을 주의하라


누구라도 자기가 한 말을 다른 사람이 비틀어서 곡해하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도 마찬가지다. 


2. 공감과 은혜를 가지고 판단하라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면 도덕적인 판단을 할 때 자기 자신의 죄성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해야 한다(갈 6:1-2).


3. 위선을 가지고 판단하지 말라


예수님은 따르는 자들에게 죄에 대해서 판단하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죄를 짓는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4. 분명한 판단을 해야 할 때 두려워서 숨지 말라


우리는 인기없는 진리(복음)를 선포하지 않는 우리 자신에 대한 변명으로 위선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를 악용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고 가장 갈구하는 바를 옹호하신다. 예수님은 의로우시고 또한 그를 믿는 자들을 의롭게 만드신다(롬 3:26). 그는 죄를 못 본 체 하지 않으신다. 대신 그는 죄를 정면으로 보고 우리에게 필요한 판단을 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의롭게 되고 또한 그의 현명한 통치 아래에서 바로 살 수 있도록 하신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왕국에서 함께 번성하자. 명확함, 겸손, 용기, 그리고 눈에 들보를 넣지 않고 판단하는 힘을 달라고 그분께 기도하자. 




원제: ‘Judge Not’ Isn’t the Ultimate Mic Drop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예수님이 판단하지 말라고 금지하기 때문에 어려운 게 아니다. 이 구절이 어려운 이유는 예수님이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판단할 때 겸손한 마음으로 하라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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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Donny Mathis

도니 마티스(PhD, Southern Seminary)는 사우스케롤라이나주의 그린빌에 있는 North Greenville University의 기독교학과 교수이며, The Church at Cherrydale의 장로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