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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놀라운 사랑
by John Piper2019-10-12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보여주신 사랑은 그 고난을 스스로 받기로 의도적으로(intentionally) 선택하신 매우 의식적인(conscious) 행위였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요일 3:16). 그리스도가 자신의 목숨을 의도적으로 버리셨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우리를 위함이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갈보리 길로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모두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기 위하여서는, 그것이 얼마나 완전히 의도적인 선택이었는지를 알면 도움이 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의도적으로 죽임 당하셨음을 알 수 있는 5 가지 증거들을 살펴보자.


첫째,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에게 칼을 휘둘러 그 귀를 떨어뜨린 바로 다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그분의 죽음이 얼마나 의도적인 선택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마 26:52–54).


이 말씀을 통해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성경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선택을 정확하게 그것에 맞추셨다는 사실도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내가 이 고통을 피할 수 있지만, 그러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한 성경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라고 한 말의 의미가 이것이다. “나는 성경말씀을 알기 때문에 내가 이를 피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을 하지 않고 있다. 내가 이루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선택은 하나님 말씀에 나의 죽음에 관하여 예언하는 모든 것을 이루고자 함이다.”라고 말이다. 

 

예수님의 의도가 드러나는 두 번째 증거는 사지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려 하면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막 10:32-24).


예수님에게는 자신의 죽음이 어떠해야 한다고 정해진 한 가지 방식이 있었다. 그것은 성경말씀에 따라서 죽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때가 이르렀을 때 담대하게 자신의 길을 가야 함을 알았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눅 9:51).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고난 받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 세 번째 증거는 이사야 선지자의 입으로 하신 말씀에 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사 50:6).


만일 내가 이러한 고난과 고통에 맞닥뜨릴 상황이라면, 나는 모든 상상력을 총 동원하여 나를 보호하고 방어할 강력한 대책을 생각할 것이다. 인간은 고통이 올 것 같으면 움찔하고 뒷걸음질 친다. 불의하고 험악하게 남을 괴롭히며, 야비하고 오만한 사람들이 내게 고통을 주려고 한다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고통과 수모의 순간마다, 자신이 당하는 일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기로 선택하셨다. 그분은 세차게 내려치는 사람에게 자신의 등을 맡기셨다. 자신의 뺨을 철석 때리는 사람에게 얼굴을 내어 주셨다. 수염이 뽑히도록 내어 맡기셨다. 침 뱉음을 당하도록 얼굴을 가리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분은 이러한 고통을 당하기로 스스로 선택하셨다.


예수님이 스스로 고난 받으시기로 선택하신 네 번째 의도는 베드로의 설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3)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불의가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다만,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심으로 불의를 다루셨다. 하나님은 정의가 이루어진 것을 보셔야 했다. 예수님을 갈보리의 그 길을 가게 한 부르심은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셨음을 가장 명백하게 서술하고 있는 다섯 번째 증거는 요한복음 10장 17-18절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 10:17-18).


여기에서 예수님의 요점은 자신이 완전히 자발적으로 행동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못하며, 어느 상황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순간적으로라도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휩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가지고 계셨다.


그러므로 요한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요일 3:16)라고 말할 때, 우리는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고난 받고 죽으신 행위의 정도에서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는지를 느껴야만 한다. 나는 당신이 그것을 온전하게 느끼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온전한 경험이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치기를 기도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중략]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15).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Amazing Love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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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ohn Piper

존 파이퍼는 desiringGod.org의 창립자이며, Bethlehem College & Seminary의 총장으로 33년 동안 미네소타에 위치한 Bethlehem Baptist Church의 담임목사로 섬겼다. 대표작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라’가 있으며, 최근 저술한 ‘내가 바울을 사랑하는 30가지 이유’​ 외에 5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