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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역의 불안을 잠재우는 하나님의 은혜
by Jonathan Worsley2019-03-05

화요일 아침이다. 당신은 아마도 교회 사무실로 가는 차 안에서 주일에 설교한 내용을 되돌아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일 설교가 그런대로 잘된 듯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몇몇 핵심 가족이 불참했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문을 닫지 않고 유지될 수 있을까?"하고 염려가 된다. 헌금에 관해서도 걱정이다. "교회의 재정이 충분하게 돌아갈까?" 당신은 교회 건물에 도착하여, 차를 주차하고, 걸어 들어가며,건물이 파손된 곳을 목격하게 된다.  


이런 느낌이 든적이 있는가? 바로 지금, 화요일 아침에, 당신에게 필요한 교리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이다.   


우리는 주일이면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시 3:8)라는 성구를 기억한다. 우리의 머리로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부활에 관여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살리심을 알고 있다(엡 2:1, 5; 골 2:13).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으면, 우리는 예수님께 결코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요 6:44-45). 우리는 새신자가 교회에 와서 앉아 있을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 이러한 성찰은 훌륭하다. 


하지만 불가항력적 은혜 교리에서 희망을 얻어야 하는 날이 주일만은 아니다. 우리가 불안을 느낄 때, 불가항력적 은혜 교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며 길 잃은 자를 그분에게 인도하신다는 희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월요일 아침에 교회 지붕이 새는 사실을 발견할 때, 혹은 수요일에 회계 집사가 교회 재정이 충분하지 않아서 전도사를 쓸 수 없다고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설교가 마침내 완성된 금요일 저녁에, 많지도 않은 우리 교회의 성도 중에 상당한 교인들이 주일에 다른 곳에 가게 되어 교회에 나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접할 때도, 그리고 그 외에도 순간마다 목회자로서 우리는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한다.


나는 비교적 부유한 지역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다. 나는 여기에서 거의 5년 동안 목회를 하고 있으며, 주님이 하고 계신 일에 용기를 얻은 일이 몇 가지 있다. 사실, 우리 교회는 700%의 성장을 이루었다. 우리는 세 명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스물한 명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비교적 적은 교인 수 때문에 아직도 실망될 때가 있다. 한 주가 시작될 때, 나는 교회 건물 주변을 돌아보며, 유아실이 이미 비좁아졌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나는 교회의 선교 예산이 턱없이 적은데, 세속주의자들, 명목상의 크리스천들 그리고 무슬림들에게 어떻게 조금이라도 선교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할 때도 있다. 나는 많은 교인들이 일 때문에 여름에 떠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염려하며 곰곰이 생각하기도 한다.


이 모든 걱정의 결과는 무엇인가? 나는 걱정이 더 열정적으로 기도하게 하고,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더 기뻐하게 만든다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의 나는 두려워하며 가시적 열매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가 교회 건물을 확장해야 하면 어떻게 하지? 우리가 이번 복음적 행사를 위해 자금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 가족이 이사를 가면 어떻게 하지? 이러한 생각들로 불안이 몰려올 때가 많다.  


물론 교회 건물 확장, 복음적 행사 계획, 새로운 선교 사역 등 이 모든 일들은 훌륭한 사역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역이 모두 성공할 것이라고 희망할 수 없다. 


당신에게 월요일 아침에 화이트 보드 앞에서 머리를 짜내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손을 모으고 기도하며 신실하게 인내하는 일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때가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며 한 주간의 사역을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교회로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리하시면 그분의 은혜를 저항할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나님의 확고한 계획과 약속을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믿음의 첫 걸음을 떼었을 때처럼 그 다음의 모든 걸음에서도 진실로 주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나의 회심 이야기는 이러한 사실을 지지한다. 내가 열 살이었을 때이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청소년 행사로 교회 강당 안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지도자는 우리에게 그 장소 가운데로 모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중앙에 모여 앉았다. 한 친구 엄마가 큰 종이판에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의 동그란 종이 세 장을 붙였다. 그 다음 그녀는 기도에 관하여 말하면서 하나님은 때로 ‘그래 알겠다‘(초록색 불)라고 하고, 때로 ‘기다려라’(노란색 불), 그리고 때로는 ‘아니다’(빨간색 불)라고 말씀하신다고 했다. 그것이 주목을 끄는 메시지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모두 기도에 관하여 정확하게 설명한 메시지였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녀의 메시지는 내가 기도하지 않고 있었을뿐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확신시켜 주었다. 생애 첫 십 년 동안 내게 모든 것을 주신 분을 의식하지 않고 지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천로역정 초반부의 크리스천처럼, 처음으로 죄짐을 등에 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모임이 끝났을 때, 나는 새로 발견한 가르침의 무게로 집으로 가는 길이 힘겹게 느껴졌다. 나는 엄마에게 확실하게 크리스천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복음에 대해 살피고 들은 후에, 그날 저녁, 나는 그렇게 크리스천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목회자의 훌륭한 계획의 결과인가? 그날 그 교회 건물 안에서 가장 위엄있는 사람에 의해 복음이 가장 확고하게 전달되었는가? 아니다. 그날 밤, 하나님이 내게 새로운 마음을 주셨다. 마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이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손가락을 내 귀에 넣고 ‘에바다!’(열려라!)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누군가는 매주 청소년 집회가 열리도록 열심히 일해 왔다. 누군가는 복음의 메시지를 애써 준비했다. 또 누군가는 축구 경기의 심판을 담당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빨강, 노랑, 초록의 교통신호등 색깔 종이를 잘라 준비했다. 하나님은 분명 이러한 수고를 사용하셨다. 


하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믿게 된 이유가 축구 게임이 재미있었거나, 청소년 그룹이 흥미진진했거나 혹은 그 메시지가 아주 적절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자비로운 주권자 하나님이 나를 이끄셨고 믿음과 회개의 선물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복음을 믿게 되었다. 그의 은혜는 멈출 수 없는 선물이었다. 


2019년 나의 목회 사역 계획을 살펴보면서, 내가 열 살 소년으로서 교회 강당 카펫에 앉아 있던 때보다도 지금, 인간의 재주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나아온다는 사실을 더 자주 상기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형제 목회자들이여, 변함없이 신실함으로 인내하기 위하여, 우리는 불가항력적 은혜의 놀라운 교리를 날마다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항력적이다.    




출처: www.9marks.org

원제: Dilapidated Buildings, Small Budgets, and Struggling Congregations: How Irresistible Grace Creates Steadfastness in Ministry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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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onathan Worsley

조나단 워슬리는 영국에 있는 Kew Baptist Church의 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