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와 십자가 (하)
by Jeremy Treat2019-01-04

서로를 넉넉케 하는 관계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의 관계를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만 강조하거나 십자가에만 매달리지만, 성경은 이 관계를 서로를 넉넉케 하는 관계로 묘사한다. 이 관계는 이스라엘의 이야기로부터 흘러나오며 왕이신 그리스도의 못박히심에서 절정에 이른다. 구속의 이야기가 보여 주는 사실은 대적에 대한 승리, 죄의 용서, 그리고 새 출애굽처럼 하나님 나라가 약속한 내용들이 성취되는 장소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이다. 더구나,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는 각기 맡은 역할이 다르므로 구속 이야기 안에서 자리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십자가는 이 이야기에서 절정에 해당하므로 그 자리는 중심부이고, 하나님 나라는 이 이야기의 최종 목적에 해당하므로 그 위치는 마지막 부분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의 영광은 종말의 하나님 나라가 메시아의 죽음을 통하여 인류 역사의 한복판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요약하자면,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이며 자신의 대속적인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이 땅 위에 실현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연결된다. 십자가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 나라이고, 그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는 수단이 바로 십자가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의 메시아 사역의 실패도 아니고 왕으로서 그의 영광을 알리는 단순한 서곡도 아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사역의 정점이다. 예수님이 다스리시고 자신의 나라를 세워 가시는 왕좌가 바로 십자가이다. 타락한 인류의 논리에 비추어 볼 때,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라는 충격적인 역설은 그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개념일 것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본다면, 이 역설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이 땅 위에 이루어진다. ‘이루어진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 임하였고, 그분의 가르침 속에서 선포되었으며, 기적과 축사 사역으로 희미하게 드러났을 뿐 아니라, 그분의 죽음으로 확립되고, 그분의 부활을 통해 출범하였다. 이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통한 성령의 사역으로 진전되며,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극치에 이를 것이다.


이렇듯 십자가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구속 받은 백성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일으킨다.


십자가 형상을 가진 나라


그렇다면, 이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 사이의 상호 관계가 오늘날 기독교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 하나님 나라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세워지고 그 십자가에 의해 영원히 모양을 갖추어 가는 한,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 형상을 가진 나라(a cruciform kingdom)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전히 십자가의 상흔을 지닌 채 죽임 당하신 어린양으로서 왕좌에서 다스리신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왕이라면, 그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참으로 희한한 나라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는 이상한 나라임이 분명하다. 이 세상의 나라들은 무력에 의해 세워지나 하나님 나라는 은혜 위에 세워지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겸손한 방법 통해 당신의 나라를 세우신 것처럼, 여전히 하나님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십자가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그 나라를 확장해 가신다.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이야기에 매혹된 그리스도인들이 많지만,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다(히 11:28). 하나님 나라는 사람의 잠재력과 노력이 절정에 이른 상태가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의 은혜가 죄로 가득하고 깨어진 이 세상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역사이다. 우리의 소명은 바로 그 나라를 증언하는 일이며, 우리는 십자가를 짊어짐으로 그 일을 감당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은 그리스도인에게도 해당한다.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은 섬김과 희생으로 드러난다.


셋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십자가로 인해 죄사함을 받았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왕을 섬기는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는 죄와 어둠의 나라로부터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예수님과 그 빛의 나라를 위해 구원받은 것이다. 십자가에서 나타난 자기를 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타인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드리는 그분의 백성을 일으킨다. 하나님 나라의 표식은 정의이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이들이야말로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약한 자, 가난한 자, 압제 받는 자들을 위한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십자가 위에 달린 푯말에 쓰인 글귀인 ‘유대인의 왕’이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의 관계를 밝히 보여 주긴 하지만, 가시 면류관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가장 잘 나타낸다. 아담의 저주와 실패의 표식이었던 가시는 이제 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와 우리 죄를 짊어지는 희생 간의 역설적 통합을 상징한다. 여기서 일그러진 가시는 역사의 최종 목적으로서의 하나님 나라,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방법으로서의 속죄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구속의 전체 이야기 내내 우리에게 보여 준다. 하나님 나라는 능력으로 임한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은 바로 못박히신 그리스도이시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Kingdom and Cross: What God Has Joined Together, Let Not Man Separate

번역: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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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eremy Treat

제레미 트릿은 Wheaton College에서 박사학위(PhD) 받았으며, 현재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Biola University의 신약학 겸임교수이며, 미국 TGC의 이사로 섬기고 있다. 대표 저서로 'Seek First: How the Kingdom of God Changes Everything'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