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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교회를 분열시키는 네 가지 방법

열왕기상 12장 묵상

by Wyatt Graham2023-04-18

세상에는 훌륭한 기업가와 비즈니스 리더가 많다. 그중에서도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는 성공의 절정을 보여준다. 그들은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 솔로몬 왕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솔로몬에게는 “자신만의 지혜”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많은 사람처럼 지혜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다. 


지혜로운 솔로몬은 마음을 끝까지 지키지 않았다. 어겨서는 안 되는 많은 명령을 어겼다(신 17:14-20). 말(horses)을 늘이기 위해서 이집트까지 갔다. 수백 명의 이방인과 결혼했고, 아스다롯과 밀곰을 숭배함으로써 그릇된 길에 들어서는 마음을 방치했다. 그는 감람산에 그모스와 몰렉을 섬기는 산당까지 지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금과 은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모세의 율법은 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금지한다. 하나님이 솔로몬의 왕국을 찢으신 이유이다. 그러나 그 비극은 그의 시대가 아닌 다음 세대에 일어났다(왕상 11:11-13).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원칙을 배운다. 1세대 리더들이 뿌린 씨앗이 맺는 비극의 썩은 열매는 해당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왕국을 다스릴 만한 솔로몬의 지혜가 부족할 때, 왕국은 산산조각이 난다는 사실이다. 


열왕기상 12:1-24의 이야기는 왕국이 어떻게 무너지는가에 대한 것이다. 열왕기상 12:25부터 열왕기상 14장 끝까지 이야기는 이 무너짐이 어떻게 재앙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분열은 파괴로 이어진다.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열왕기상 이야기는 교회를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네 가지 방법을 보여준다. 


첫 번째, 전 세대의 지혜로운 장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새로운 교회로 오라. 가장 젊지만 나름 많은 경험도 가진 교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라. 그러나 교회 창립 멤버 또는 최소한 수년간 다닌 사람들의 말은 무시하라. 이게 바로 교회를 제대로 쪼개는 방법이다. 그러다 보면 실수가 너무 많아서 아예 회중 전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 


열왕기상 12장에서 왕이 된 르호보암은 부족한 지혜로 인해서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이집트를 떠난 여로보암은 한 무리의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와서는 왕이 된 르호보암에게 도전한다(왕상 12:2-3). “임금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셨습니다. 이제 임금님께서는, 임금님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지워 주신 중노동과 그가 우리에게 메워 주신 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임금님을 섬기겠습니다”(왕상 12:4).


르호보암은 결정하는 데 사흘이 걸렸다(왕상 12:5). 겉으로만 봐서는 현명한 것 같다. 그는 먼저 지혜로운 솔로몬과 함께 일했던 장로들과 상의한다(왕상 12:6). 그들은 현명한 조언을 한다. 여로보암의 요청에 “예”라고 말하라고 한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그 충고를 거절하고 젊은이들에게 간다(왕상 12:8-11). 그들은 한층 더 과격한 조언을 하는데, 백성들을 더 열심히 일하도록 몰아붙이라고 한다. 


백성을 과하게 부리는 것은 왕국의 경제적 번영에 유리할 것 같다. 추상적으로 볼 때 최선의 통치 결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13절 말씀대로 가혹하기만 했다. 연로한 현자는 아무리 옳은 일이더라도 때로는 미루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젊은이는 인내심이 부족하다. 그들은 르호보암에게 강하게 나가라고, 일을 완수하고, 가혹하게 통치하라고 부추겼다.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이 말을 들었어야 했다.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지만, 거친 말은 화를 돋운다”(잠 15:1).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나 성경은 도리어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엡 4:15). 진실이 없는 사랑은 감상주의에 불과하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가혹할 뿐이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만 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았다고 말할 수 있다.


르호보암은 가혹할 뿐만 아니라, 무례하기까지 했다. 그는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벅지보다 굵다”(왕상 12:10)고 말했다. 자, “새끼손가락”과 허벅지 또는 문자 그대로 “허리 부분”은 르호보암의 생식기를 가리키는 조잡한 남성형 완곡어법이다. 


우리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왕국을 살리겠다고 젊은이들이 열정에 불타고 있다. 그들은 솔로몬 치하 때보다 백성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왕상 12:10-11). 그들은 또한 거칠고 무례한 언어를 사용한다. 바보처럼 행동하고 있다. 사실 르호보암은 그렇게 젊지도 않았다. 그는 마흔한 살이었다(왕상 14:21).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다. 왕국이 분열되었다. 교회가 갈라졌다. 아무리 기술적으로야 르호보암이 옳았다 하더라도, 여로보암이 이집트에서부터 올라온 이유는 이스라엘에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였음이 분명하고, 르호보암의 대처는 왕국의 분열이라는 결과로 이끌었다. 이 모든 것은 다 주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이다(왕상 11:11-12, 14-40).


두 번째, 잘못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말라.


르호보암은 자신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인해 분열된 왕국을 목격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해결책을 향해 달려가지만, 우리가 아는 한, 그는 장로들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 대신에 아도람을 이스라엘 장막으로 보낸다. 아도람은 이스라엘의 강제 노역장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싫어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자,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날까? 르호보암은 이제 말뿐 아니라 아예 행동으로 애초의 정책을 고수했다. 그는 핵심 인물을 보냈고, 백성은 보란 듯이 그를 돌로 쳐 죽였다(왕상 12:18). 목숨이 위험해진 르호보암은 온 이스라엘이 모여 있던 세겜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도망간다(왕상 12:1).


자, 당신이 지금 교회에서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고 치자.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지금이야말로 화해를 위한 최고의 시간일 수 있다. 양 당사자가 의견을 경청하고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타협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러나 젊음의 패기로 가득하고 언젠가 왕이 될 거라 믿는 사람일수록 어떤 타협도 믿지 않는다. 세상에는 오로지 자신만 옳을 뿐 다른 누군도 결코 옳을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진리의 전사로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성령의 은사를 주신 예수님의 의도를 무시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를 보면서 그리스도의 손이나 발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쩌면 그리스도의 몸에 달린 귀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에는 내가 가장 똑똑하고 최고이며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미묘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솔로몬의 이야기에서 배우는 교훈은 재주 많은 죄인에게도 여전히 구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르호보암은 애초에 현명한 조언자를 의지했어야 했다.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까지 누구나 자신의 견해에 확신을 갖기 마련이다. 솔로몬은 그런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송사에서는 먼저 말하는 사람이 옳은 것 같으나, 상대방이 와 보아야 사실이 밝혀진다”(잠 18:17). 똑같은 일은 교회에서도 일어난다. 그리고 신학에서도 발생한다. 


목회자가 신학교에 다니고, 주석서를 읽고, 다양한 책을 읽고, 또 친구와 성경과 신학을 주제로 토론하는 이유는 나 자신의 명철에만 의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목회자에게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물론 당신이 이 세상 최고의 아버지 또는 어머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장담할 수 있다. 당신과 나는 모두 다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가 속속들이 다 알기에 인생은 너무나 크고 다양하다. 


르호보암은 아도람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냄으로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그는 듣고 배웠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만 왕국을 쪼개고 말았다. 


세 번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하는 대신 주변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자, 그곳 백성이 그를 왕으로 삼았다(왕상 12:20). 여기서는 두 가지가 문제가 된다. 첫째, 오직 유다만이 그의 왕권을 확증한다. 다른 부족은 그렇지 않다. 둘째, 그는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다. 사울, 다윗, 솔로몬이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르호보암은 그렇지 않았다.


기름부음이 없다는 사실은 르호보암이 옛길에는 전혀 관심이 없음을 보여주는 여러 사례 중 하나이다(렘 6:16-17). 르호보암은 심지어 이집트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 같다.


열왕기상 9장을 보면, 가나안 사람을 노예로 삼은 솔로몬은 마치 이집트인처럼, 그리고 게셀에서 가나안족을 멸망시킨 파라오는 마치 이스라엘인처럼 행동했다(왕상 9:16, 20-21; 신 7:1-2; 삿 1:29). 르호보암도 이와 비슷한 반전을 행동으로 반복한다.


열왕기상 12:4에서 여로보암이 묻는다. “임금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셨습니다. 이제 임금님께서는, 임금님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지워 주신 중노동과 그가 우리에게 메워 주신 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임금님을 섬기겠습니다.” 이건 마치 출애굽기 5장에서 파라오에게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사흘 휴가를 요청하는 모세의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파라오는 이스라엘 민족이 노동에서 쉬어서는 안 된다며, 모세의 요청을 거절한다(출 5:5). 바로는 심지어 그들의 짐을 더 무겁게 만들기까지 했다. “그들에게는 더 힘겨운 일을 시키고, 그 일만 하게 하여서, 허튼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여라”(출 5:9).


모세가 안식과 예배를 요청한 것처럼, 여로보암도 솔로몬이 이스라엘에게 부과한 가혹한 짐에서 벗어나 안식을 구한다(왕상 12:4). 그러나 르호보암은 파라오처럼 대답한다. “내 아버지가 당신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웠소.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당신들에게 메우겠소. 내 아버지는 당신들을 가죽 채찍으로 매질하였지만, 나는 당신들을 쇠 채찍으로 치겠소”(왕상 12:14).


르호보암이 이집트 사람처럼 병거를 타고 있는 사이에 그는 핵심 간부 아도람을 이스라엘에게 보낸다. 솔로몬은 이방 나라 중에서도 특히 이집트의 방식에 거의 전적으로 굴종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이방 나라 사람처럼 살게 된 건 따라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피터 라이하트(Peter Leithart)는 다음과 같이 통찰력 있게 논평한다. “솔로몬은 말과 병거를 얻기 위해서 이집트를 의지하고 이방 열국의 신들을 숭배하며, 그의 왕국을 이집트의 폭정으로 변모시킴으로 백성이 해방을 갈구하도록 했다. 결국 여로보암은 백성이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광야로 인도한다”(1 & 2 Kings, 2006:91). 그리고 열왕기상 12장에 기록되어 있듯이 여로보암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행한 것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든다(왕상 12:28).


르호보암은 파라오처럼 행동한다. 금송아지를 만든 여로보함은 모세 또는 아론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그만 이집트처럼 되어버렸다. 


나는 사실 르호보암이 왕이 되기 위해서 예루살렘이 아닌 세겜에 모인 이유도 궁금하다(왕상 12:1). 내가 아는 한, 그때까지 거기서 왕이 된 유일한 인물은 아비멜렉이다(삿 9:6). 아비멜렉은 난폭하고 사악하며, 여자가 그의 머리에 떨어뜨린 돌에 맞아서 죽는다. 아마 우리는 이 장소에서 무언가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다 떠나서,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라도 이곳은 가야 할 장소가 아닌 것 같다.


르호보암은 그곳을 떠나 그를 따르는 유다 족속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서둘러서 왕이 되어야 했다. 나머지 부족은 그를 따르지 않는다. 


네 번째,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무리 자신감에 넘치는 리더라도 끊임없는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다. 르호보암은 이 이야기에서 딱 한 번 옳은 일을 한다. 열왕기상 12장에 한 선지자가 나타나 여로보암과 전쟁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제 그는 예루살렘으로 도피한 후 이스라엘을 되찾기 위해 18만 명의 군인을 소집한다(왕상 12:21). 다시 말하지만, 그는 빠른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곧 멈춘다. “하나님의 사람”인 스마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르호보암에게 말한다. “나 주가 말한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시킨 것이다. 너희는 올라가지 말아라. 너희의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거라”(왕상 12:24).


이 시점에서 르호보암과 18만 명이 순종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아마도 18만 명의 유다 족속이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르호보암이 싸움을 강요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본문은 24절에서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고”라고 말한다. 결코 르호보암이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다고 쓰여있지 않다. 따라서 ‘그들’이라는 복수형이 의미하는 것은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르호보암이 단순히 그들 가운데 있었기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밀어붙일 수 없었다는 점을 강하게 암시한다.


우리는 이 모든 점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스마야는 이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점을 분명하게 했다(왕상 12:24). 우리는 이미 열왕기상 11장과 열왕기상 12:15에서 요약한 내용을 통해 이 점을 알고 있다. “왕이 이렇게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것은 주님께서 일을 그렇게 뒤틀리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실로 사람 아히야를 시켜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려 하심이니라.”


피터 라이하트는 여기에서 사용된 “사건의 전환”이라는 문구에 주목하는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여호와(YHWH)의 변형(twist)”으로 번역될 수 있다(Leithart, 1 & 2 Kings 2006:94). 그리고 그게 바로 모든 일의 실체이다. 


앞선 열왕기상 11장에서 하나님께서 여기서 일어날 일을 어떻게 예언하셨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를 보내신 바로 그 시점에만 개입하셨음을 분명히 한다.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주체가 항상 우리 자신인 상황에서, 이 본문의 경우에는 자신의 몰락뿐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분열과 멸망까지 초래한 르호보암의 어리석음을 놓고 볼 때, 하나님께서 미래를 아시고 심판을 예언하신다는 사실을 너무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이리저리 꼬이기 마련이다.


열왕기상 12장과 13장은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르호보암과 이어지는 여로보암의 악행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파괴적인 요소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그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솔로몬은 잠언 21:1에서 이렇게 말한다. “왕의 마음은 흐르는 물줄기 같아서 주님의 손 안에 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왕을 이끄신다.”

 

고작 몇 분에 불과한 짧은 설명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제대로 이해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가장 쉽게 얘기하자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완벽하게 아신다. 처음부터 끝을 다 아신다. 우리는 그분의 뜻대로 행하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과정을 주관하신다. 우리가 가진 죄성을 그토록 끔찍하게 만드는 것과 관련해서, 비난할 대상은 우리 자신 외에는 있을 수 없다. 


비난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다. 르호보암은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했다. 그는 왕국을 나누었다. 솔로몬은 거기에 못난 아버지로서 기여했다. 성경은 죄가 삼사 대까지 내려온다고 말한다(출 34:7). 죄는 가족을, 심지어 왕족까지도 병들게 한다. 죄의 여파는 세대에 따라 다르다. 당신은 악을 배운다. 그리고 악을 행한다. 악은 감염되고 부패하고 또 강력하다. 악은 삶을 나쁜 방향으로 바꾼다. 


르호보암과 18만 명이 스마야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왕국은 분열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멸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파멸을 막으셨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가능한 역사였다. 그 결과 다윗의 씨,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올 때 하나님의 왕국에 또다시 새 생명이 불어넣어지도록 예비하셨다. 할렐루야!


교회를 하나로 만들고 강화하는 방법


열왕기상 12장은 교회를 분열시키고 파괴할 수 있는 법을 보여준다. 누구라도 12장이 보여주는 단계를 쉽게 따를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잠시만 시간을 내어 질문해 보자. 어떻게 해야 우리는 반대로 교회를 더 하나로 만들고 강화할 수 있을까?


첫째, 이전 세대 현명한 장로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물론 나는 이런 조언이 모든 상황에 다 적합하지 않다는 건 안다. 아예 이전 세대의 현명한 장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젊은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이전 세대의 신학과 사상을 알아야 한다. 교회 역사와 신학을 아는 것은 우리가 이전 세대의 현명한 장로들을 존경하는 방법일 수 있다. 예수님이 직접 교회를 세우실 것이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말씀하셨을 때, 그건 교회가 1517년이나 1956년에 시작된다는 뜻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성장시키신 2천 년 역사의 성령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둘째, 실수로부터 배우자. 아무 생각 없이 어깨를 쟁기에 대고 미는 것은 쉽다.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밀면 어떻게 될까? 바위에 걸리면 돌아서야 한다!


셋째, 주변 문화 대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자.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자. 그러면 당신은 성장하고 또 성장할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그분에게로 묶는다. 히브리서 4:12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동력이 있으며 어떤 쌍날의 칼보다 더 예리한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말씀이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신다는 의미이다. 이천 년 전에 쓰인 책, 열왕기상의 경우 무려 삼천 년 전에 쓰인 책이 당신의 마음을 형성하고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육신이 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른다면, 그 누구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 전 세계에 걸쳐서 흩어져서 포로가 된 우리를 그의 몸으로 모으기 위해 오신 나사렛 예수님이다. 자신의 몸을 통해서, 그는 열두 사도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재결합하신다. 자신의 몸을 통해서, 그는 열국에 의해 파괴된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우신다. 모든 부족이 연합한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할렐루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한다. 그분의 영은 우리를 하나로 묶으신다. 우리는 모두 다 아버지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교회 분열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이다. 


성도의 하나됨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명명하고 정의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연합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모든 교회가 다 함께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하나됨을 고백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복음이 가져다준 축복이자 능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용서받고, 거룩해지고, 영화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모두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고 우리는 그의 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떨어지는 순간 교회의 연합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연합보다 더 큰 연합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연합은 복음의 문제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신다. 연합은 결코 목표가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종교 개혁가는 분열을 이단만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분열을 피해야 한다.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만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만이 “나는 진리다”라고 말씀하신 분과 직접 관계를 맺는 길이다. 거기에는 연합이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몸이다. 



원제: Four ways to Divide the Church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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