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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변혁, 세계관의 목표

기독교 세계관의 적용을 위한 세 가지 제안 1: 변혁

by 김경호2023-03-17

기독교 세계관 운동 2.0 위하여

서울기독교세계관연구원(SIEW)과 함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섭니다.  

기독교 세계관이 더욱 적합한 이론과 적용이 되기 위해서는 변혁transformations, 규범norms, 역학dynamics에 대한 보완이 필요합니다. 변혁이 적용의 목표라면, 이 목표를 이루는 수단이 규범과 역학입니다. 여기서 규범이 어떤 옳고 그름에 대한 이론적 판단이라면, 역학은 실천에 반대하는 힘의 작용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규범적 판단이 아니라 역학을 이겨낼 때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 변혁과 규범과 역학이 기독교 세계관의 이론과 적용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의 요소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요소, 세계관의 목표로서의 변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변혁적 세계관의 다양한 유형들 


변혁은 세계관 적용의 목표입니다. 변혁을 위한 세계관은 리차드 니버Richard Niebuhr의 ‘그리스도-문화 유형론’에서 구체적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니버는 다섯 가지 유형을 제안합니다: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 “문화에 속한 그리스도” “문화 위의 그리스도” “문화와 역설적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입니다. 조금 더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는 문화와 그리스도를 서로 대립하는 관계로 봅니다. 이 입장을 잘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냐?” 테르툴리아누스Tertulian가 한 말입니다. “문화에 속한 그리스도”는 근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취한 입장을 들 수 있습니다. “문화 위의 그리스도”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교회를 위로, 자연을 아래로 도식화한 이원론적 위계질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자연보다 교회가 우선입니다. “문화와 역설적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처럼, 역설paradox을 강조하는 입장입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는 구조와 방향으로 구분하여 악은 존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이 왜곡된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이 입장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칼뱅John Calvin 등이 있습니다. 니버는 이 다섯 가지 유형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강조합니다. 


변혁적 세계관의 다양한 견해들


니버의 다섯 가지 유형론 이후 다시 세 가지 형태의 다양한 견해들이 등장합니다. 첫째, 신-재세례파 전통에서,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와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는 자신들의 대안적 입장을 교회론의 형태로 제시합니다. 하우어워스는 문화에 대한 태도를 세 가지, 행동주의 교회-회심주의 교회-고백주의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그 특징을 각각 설명합니다. 행동주의 교회는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다가 종교로 치장된 자유주의가 되었습니다. 회심주의 교회는 오직 내적 변화만을 추구하다가 역시 종교로 치장된 보수주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백 교회는 십자가의 교회가 되어 타협하지 않는 증언으로 세상과 대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우어워스는 이 세 번째 유형만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같은 진영의 요더의 목표는 옛 질서의 무기로 그 목적을 이루려 하지 않는 새 질서, 즉 비폭력이 내포한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요더는 예수님을 통한 새 질서의 규범에 근거한, 교회가 가지는 질적 차이성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둘째, 역설형 유형에서 데이비드 반드루넨David VanDrunen은 두 나라 국민으로 살기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그가 제안하는 대안은 ‘자연법’과 ‘두 나라 국민’입니다. 여기서 반드루넨은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를 비판합니다. 두 나라가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과 같이 개혁신학 전통에서 규범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카이퍼가 등장하면서 그 연속성이 끊어졌고 특이한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 특이한 형태란 기존의 ‘자연법과 두 나라’에서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반드루넨은 이에 반대하여 자연법과 두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기를 제안합니다. 반드루넨이 말하는 두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기란 구체적으로 노아 언약에 근거한 ‘일반나라’와 아브라함 언약에 근거한 ‘구속의 나라’ 안에 사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생활과 같은 삶, 즉 이방인, 나그네, 거류민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 삶은 이런 것입니다. “그 두 나라는 고유한 독특성을 지니며 이 세상에서 별개의 목적에 기여하지만, 두 나라 모두 주권자 하나님의 윤리적 권위 아래서 움직인다. 하나님은 두 나라 모두에서 자신을 섬기도록 신자에게 명령하신다.” 


셋째, 포스트 모던 유형에서 리차드 미들톤J. Richard Middleton과 브라이언 왈쉬Brian J. Walsh는 포스트모던적 대안을 제시합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변혁적 세계관이 억압적 이데올로기가 되지 않기 위한 다섯 가지 대안입니다. 하나. 세계관이 전체 체계로 간주될 때 억압적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습니다. 둘. 세계관이 보편적 최종성을 대표할 때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습니다. 셋. 세계관이 성경의 역동성을 잃어버릴 때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역동성이란 방향, 방향 상실, 재-방향입니다. 구체적으로, 방향 상실 없이 하나의 방향으로만 계속 가고 있다면 성경을 잘못 읽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방향 상실을 인정하고 방향을 다시 재설정할 때, 즉 성경의 역동성을 인정할 때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넷. 세계관은 변화하는 문화적 맥락에 부적절하거나 비일관적일 때 이데올로기가 됩니다. 다섯. 세계관은 자신의 공동체가 폐쇄적이며 방어적일 경우에 이데올로기가 됩니다. 


변혁적 세계관의 대안 제시 


지금까지 경쟁하는 변혁의 의미들에 대한 대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에서 변혁의 의미를 정의해야 할까요? 카슨D. A. Carson은 변혁을 위한 중요한 지침을 제공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를 생각할 때, 구속사의 중요한 전환점창조, 타락, 구속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전환점을 지침으로 매우 다른 유형들을 고안해 내는 위험을 피할 수 있고, 다른 맥락 안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하나의 복합적인 실재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카슨은 가장 중요한 단서를 “성경적인 구속사의 전환점들을 통합하려는 입장이 깊이 있는 기독교 입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나는 구속사의 전환점창조, 타락, 구속을 통합하는 모범적인 연구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알버트 월터스Albert Wolters의 기독교 세계관, 야곱 끌라베이크Jacob Klapwijk의 기독교 철학, 고든 스파이크만Gordon Spykman의 기독교 신학입니다. 


월터스는 기독교 세계관의 포괄성을 회복하기 위해 구조와 방향의 차원에서 이원론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월터스는 이원론이 두 방향을 두 구조로 환원시킨 결과이기 때문에, 창조를 구조로, 타락과 구속을 창조의 구조 위에서 살아가는 두 방향으로 구분합니다. 따라서 개혁이란 외적 갱신을 의미하는 성별이 아니라 내적 갱신을 의미하는 성화이고, 전면적으로 제거하는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 갱신이라고 정의합니다. 왜냐하면 창조구조는 변함없기 때문입니다. 이 창조구조의 항존성Perseverance of the structure of creation으로 인해 개혁은 구조로 인해 ‘혁명’을 반대하고, 방향으로 인해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하기 때문에 ‘보수주의’를 반대합니다. 


끌라베이크도 창조, 타락, 구속을 중심으로 비판적 원용critical appropriation으로서의 변혁 철학transformation in philosophy을 추구합니다. 클라베이크는 철학과 문화의 관계에서, 반정립(대립)과 종합(연결) 사이에 변혁(비판적 원용)을 제안합니다. 이는 교부들이 사용했던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면서 이 과정에 ‘약탈’이 일어났습니다. 이 약탈한 금과 은은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됩니다. 하나는 무비판적으로 금송아지 우상숭배에 사용했고, 다른 하나는 비판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예배와 성막 제작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끌라베이크는 예배와 성막 제작을 위한 사용이 바로 올바른 사용이며, 이를 비판적 원용으로서의 변혁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무비판적 방식으로 변혁을 추구할 경우에 그 반대인 역-변혁inverse transformation이 일어납니다. 역-변혁은 외면적 차원에서만 무비판적으로 기독교화가 일어날 때 생기는 현상입니다. 외면이 아무리 기독교의 용어, 모양을 가졌다고 해도 내용으로는 세속화된 개념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스파이크만도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이라는 도식을 따라 기독교 신학을 추구합니다. 스파이크만은 창조를 형성formation, 타락을 변형deformation, 구속을 재형성reformation, 그리고 완성을 회복restoration이라고 표현합니다. 기독교 신학은 창조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질서 있는 우주를 존재케 하셨습니다. 창조질서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통용되는 진리입니다. 인간은 종교적 중심인 마음을 가진 전인입니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 형상 개념은 관계적, 역동적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창조주를 드러내거나 형상화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수행하는 방식입니다. 타락은 창조의 변형입니다. 죄는 본래 창조에 속한 것(실체)이 아니고, 선의 결여이며, 분열입니다. 타락 이후 구조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방향에 급격하고 완전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원죄는 전 환경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하나님은 인류의 전적 부패의 보편성 가운데서도(반정립) 일반은총을 통해 창조구조를 유지하셨습니다(일반은총). 구원은 재형성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오심으로 교회가 탄생하고 교회의 안과 밖에서 구속과 관련된 사역이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는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가, 세상 안에는 억제와 보존으로서의 일반은총이 작동하게 됩니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증인, 모델, 대사로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 완성은 최종적 회복입니다. 스파이크만은 대표적으로 무천년설, 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소개하며, 이 가운데 자신의 입장을 무천년설이라고 밝힙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깨어있음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변혁은 기독교 세계관을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모델이자 대안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대안들도 존중해야 하며, 무엇보다 이론보다는 실천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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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경호

김경호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M.Div.) 논문 “세 가지 유형의 개혁주의 세계관 연구”로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연구단체 Worldview & Work를 설립하여 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0년부터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국내외에서 세계관 교육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