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신앙과 일

하나님의 No에 Yes로 답하다
by Ann Swindell2018-12-18

하나님께 조금씩 순종하자, 그분은 내가 반항심에 빠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셨다. 나의 진정한 필요는 예수님이라는 사실도 가르쳐 주셨다. 반항의 길을 계속 가는 것은 어떤 병이나 원치 않는 증상을 계속 다루는 것보다 더 비참하다고 할 수 있다. 치유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리스도를 얻었다. 그리고 그분이면, 내게 충분하다

Share this story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하나님이 항상 치유와 온전함을 보장해 주시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학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나를 즉각적으로 치유하시는 것이 그분에게는 정말 작은 일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과 씨름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쯤, 10여 년 동안 나는 털을 잡아 뜯는 병과 투쟁하고 있었다. 나는 그 병을 싫어하고 멈추기 원했지만, 매일 내 속눈썹과 눈썹을 쥐어 뜯어 냈다. 신경학적으로 나의 뇌는 그 행동을 멈출 수 없었고,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치유할 수 없었다. 치유를 요청하는 기도에 대해 계속 ‘아니다’(no)라는 답변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침묵하고 멀리 계신 것 같았다.


어느 날, 하나님께 불일 듯 불만이 일어나자, 나는 기도실로 향했다. 일기장에 분노와 경솔한 말들을 막 쏟아냈다. 하나님이 나쁘고 냉담하며 멀리 계셔서 이런 문제를 잘 다룰 줄 모르시는 것 같다고 써 내려갔다. 속눈썹을 일기장 여기저기에 흩어 놓은 채, 나의 행동에 수치심을 느끼며 앉아 있었다.


울며 눈물을 흘린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나는 외쳤다. “하나님 내가 계속 묻고 있잖아요. 왜, 왜 나를 치유하여 주시지 않는 건가요? 그 많은 시간의 기도와 간구들, 금식한 날들까지, 그것들은 다 무엇인가요? 아무것도 아닌가요?” 나는 스스로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지. 그것들은 아무 변화를 주지도 않았어! 이제 더 이상 나빠질 수도 없게 되었다고.”


나는 그분을 밀어내기 원했다. 어디든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기를 원했다.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씁쓸해지고 분노의 씨가 불신의 뿌리로 깊게 자리잡는지를 알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쓴 뿌리와 하나님과 싸운 방식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나는 정신이 혼란스러웠고 마음이 상했다.


반항이라는 선택


우리가 하나님께 간청하고 요청했는데도 우리의 상황을 바꿔 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반항 아니면 순종 밖에 없다. 반항은 우리를 재판관의 자리에 앉힌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당연히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선언한다. 그분이 우리의 계획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마음이 상한다. 또한 우리는 그분이 잘못했다고 외친다.


물론 하나님께 솔직해야 하겠지만, 진정한 솔직함과 반항적인 솔직함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진정한 솔직함은 하나님께 나아와 무릎을 꿇고 겸손과 신뢰로 간구한다. 반항적인 솔직함은 하나님의 잘못을 지적한다. 우리의 솔직함이 반항적으로 변하면, 결국 우리는 거칠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그분을 판단하고 그분으로부터 도망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정말로 필요한 위로의 원천을 거절한다.


순종이라는 선택


두 번째 선택은 순종이다. 우리가 그분을 이해하지 못할 때라도 ‘네’(yes)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단기간 동안에는 더 힘들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와 계속 동행하려면, 오직 이 길 밖에 없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그 교만한 반항심으로부터 나를 끄집어내셨다. 그 결과 작은 순종의 걸음들을 옮기자, 그분은 자신의 진리와 온유를 내게 상기시켜 주셨다. 그분은 나의 마음을 두 가지 방법으로 어루만져 주셨다. 첫 번째 방법은 내 교수님의 아내인 니타(Nita)라고 하는 분을 통해 나를 도우시는 것이었다. 그녀와 나는 한 달에 두 번씩 만나 주님과 동행하는 삶과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이야기하고 기도했다.


어느 날 오후,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나의 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분노, 불만, 상처 등이 거품처럼 커져서 식탁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니타의 말이 아니라 그녀의 행동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 손위에 올려놓고 함께 울었다. 그녀는 꾸짖거나 즉각적으로 나를 바로잡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어딘가로 억지로 나를 데려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 말을 했을 때, 그 목소리는 바이올린 소리처럼 울림이 있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앤(Ann), 우리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항상 아는 것은 아니지. 그렇지만,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늘 알고 있어. 항상 알고 있지.” 


내가 말했다. “그분의 응답을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아니다’라는 대답이 서로 조화가 된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어렵네요.” 


“앤, 이해해요. 나도 그래요.”


나는 니타가 감내해야 했던 상실들, 겪어야 했던 슬픔들을 떠올렸다. 나는 그녀가 이해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 쉬고 다시 말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35).


내가 동의했다. “아무것도 끊을 수 없지요.”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어느 누구도요.” 물론,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대답하실 때도 그 말씀은 사실일 것이다. 그날 니타가 건네 준 친절하고 진실한 말은 내게 축복이 되었다. 그녀는 성경 말씀을 들어 이야기해 주었고 내게 자비를 베풀었다. 그날 하나님은 나의 상처와 불평, 불만을 치유하기 시작하셨다.


두 번째 방법으로 나는 순종하며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와 만났을 때, 그분에게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시간을 보낸 성경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이해할 수 없을 때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게 되었다. 진정으로 겸손한 기도로 그분께 마음을 쏟아내자, 나는 그분의 위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다.


치유보다 더 나은 것


하나님께 조금씩 순종하자, 그분은 내가 반항심에 빠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셨다. 나의 진정한 필요는 예수님이라는 사실도 가르쳐 주셨다. 반항의 길을 계속 가는 것은 어떤 병이나 원치 않는 증상을 계속 다루는 것보다 더 비참하다고 할 수 있다.


치유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리스도를 얻었다. 그리고 그분이면, 내게 충분하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Fighting to Say ‘Yes’ When God Says ‘No’

번역: 정은심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Ann Swindell

앤 스윈들은 저자이며 강사이다. 그녀는 문예창작으로 석사학위(MFA)를 소유하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 Still Waiting: Hope for When God Doesn’t Give You What You Want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