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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C. S. 루이스에게 배우는 정감적 전도

심플리 미셔널 | Simply Missional

by 김선일2023-02-06

루이스는 스스로 전도자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의 전도는 통념적인 전도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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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리 미셔널

Simply Missional


탈교회화, 비종교화의 길에 들어선 한국 사회에서 선교 과제로서 복음을 새롭게 제시합니다. 기독교의 변증 유산으로부터 오늘을 위한 복음 변증의 지혜를 발굴하고, 현대 한국의 문화 표현들과 복음의 대면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1986년 미국의 기독교 신문과 잡지에 이런 광고가 실렸다. “당신, 혹은 당신이 아는 사람이 C. S. 루이스와 그의 책에 의해 영향을 받아 인생의 큰 변화를 경험했다면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이 광고는 루이스 자료를 소장하고 연구하는 휘튼대학교의 메리온 웨이드(Marion Wade) 센터에서 냈다. 미국과 전 세계에서 많은 “간증들”이 속속 도착했다. 기독교 신앙을 갖는 데 루이스가 큰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들은 넘쳐났으며, 특히 순전한 기독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르렀다는 고백이 많았다. 또한 신앙을 유지하고 지속하는 데에도 루이스가 큰 도움을 주었다는 응답들도 많았다.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해마다 아이들에게 나니아 연대기를 읽어주면서 아이들에게 기독교적 삶의 기쁨을 소개했다. 어릴 때 루이스의 판타지 동화를 접한 아이들이 나중에 기독교 신앙에 더욱 가까워지게 되는 것은 루이스 자신이 의도했던 바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나 되었지만, C. S. 루이스는 여전히 신앙의 지성적 변증과 관련해서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의 책들은 구도자에게만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들에게도 기꺼이 권할 수 있는 진귀한 가치를 지닌다.


루이스, 전도적 관점에서


루이스는 스스로 전도자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의 전도는 통념적인 전도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낯선 이에게 다가가서 일대일로 복음을 제시하거나, 주변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도구 삼아 전도하는 전략도 취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기독교 신앙에 관해 말하는 데 조심스러워했다. 루이스 주변의 사람들은 그가 특별히 기독교 신앙인의 티를 내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그는 사람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자신이 하는 일을 예비적 복음사역(Preparatio Evangelica)이라고 일컬었다. 


루이스는 전형적인 지성적, 논증적 전도자로 간주될 것이다. 그는 설득력 있고 예리한 논리로 기독교 신앙의 타당성을 드러냈다. 그의 도덕률, 소망 충족, 삼자 택일 등의 논증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제시를 위한 길을 예비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루이스의 책을 읽고 기독교 신앙으로 나아오게 됐다. 미국의 게놈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는 신의 언어에서 기독교 유신론의 신앙을 받아들이는 데 루이스의 책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일하다가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을 선고받은 찰스 콜슨도 순전한 기독교를 읽고 회심하였다. 그는 출소 후에 교도소선교회(Prison Ministry)를 만들어 전 세계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평생 헌신하였다. 남의 나라 얘기만이 아니다. 얼마 전 필자가 만난 한 남성은 오랫동안 가톨릭의 냉담자로 지내다가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고 교회 생활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 예수를 믿게 된 한 중년 여성도 기독교 신앙에 이르는 데 루이스의 책들이 가장 친밀한 가이드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루이스의 전도적 영향력은 그의 지성적 논증에만 의존할까? 기독교로의 회심 이후 그가 겪은 인생관과 인간관계의 변화는 그의 신선한 변증 논리보다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는 회심 이후 풍성한 인간관계를 누린 것으로 보인다. 믿음과 기도의 삶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성경을 진지하게 읽으며 자신의 ‘참된 인격’과 화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루이스의 회심 이후는 겸손과 용서의 삶이라고 평가된다. 루이스 VS 프로이트를 쓴 아맨드 니콜라이는 유물론자인 프로이트와 유신론자인 루이스의 사상과 삶을 비교하다가, 책의 후반부에서 실제로 기독교로 회심한 루이스가 어떻게 전과는 달리 (또한 프로이트와는 대조적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었는가에 집중한다. 루이스는 인생 전반기에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 매우 적었으나, 회심 후에 풍성하고 친밀한 우정을 즐겼다고 한다. 그 자신의 표현처럼 그의 “외향성은 믿고 기도하는 일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흔한 표현대로 ‘나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비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보이게 되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의 타인에 대한 돌봄과 관심이고, 그다음으로는 신앙으로 인한 행복감이라고 한다. 루이스가 회심 이후 경험한 다른 이들과의 유의미한 관계나 새로운 행복은 그의 전인적인 복음사역을 위한 토대가 된다. 


정감적 복음제시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삶의 변화가 담긴 루이스의 예비적 복음 사역을 필자는 정감(affection)이라는 용어로 이해하고자 한다. 정감이라는 단어는 조나단 에드워즈도 사용하였는데, 그는 이를 시편 기자가 고백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사모하는 것”(시 27:4)에서 빌려왔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에 대한 발견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성숙과 성장을 위해서 필수 요소이다.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적, 관념적 활동의 산물이 아니다. 또한 인간이 마음으로 느끼는 변덕스러운 감정적 충동도 아니다. 따라서 정감은 감정(emotion)과는 구분된다. 정감이란 마음 깊은 곳에서 애정으로 느끼고 사랑으로 끌어안으려는 성향이다. 정감은 인간의 생각뿐 아니라 가슴과 몸에 감동을 준다. 우리로 하여금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정감은 전인적으로 사랑하고 깨닫고 행동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루이스의 기독교 변증은 마음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갈망을 충족시키는 방향성을 지녔으며, 이를 논리와 설명뿐 아니라 이미지, 상징, 내러티브, 그림 언어로 전달한다. 진리와 행복을 찾아가는 그의 치열한 경험은 이와 같은 복음 변증의 추진력이 됐다. 그는 어린 시절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갈망(Sehnsucht)이 충족되는 경험을 했다. 형 워렌이 양철통 뚜껑을 이끼로 덮고 잔가지와 꽃들로 장식한 장난감 숲을 보여줬을 때 그는 마치 천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듯했다. 또한 그는 마을의 초록빛 언덕의 능선을 보며 아득히 닿을 수 없는 곳을 동경하기도 했다. 루이스 자신은 어릴 때 종교적 경험을 거의 못 했지만 이처럼 장난감 정원과 초록빛 동산을 통해서 지고한 삶을 향한 미적 경험을 한 셈이다.


루이스의 정감적 호소는 그의 회심 경험과도 연관성이 있다.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그는 사이드카를 타고 런던 북쪽 윕스네이드의 동물원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인격적 구주로 영접했다고 한다. 그 상황에 대한 묘사는 이렇다. “어느 화장한 아침, 윕스네이드로 가는 중이었다. 출발했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지만, 동물원에 도착했을 때는 믿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는 길에 생각에 잠겼던 것도 아니었다. 격정에 휘말려 있지도 않았다.” 이 중대한 회심의 순간, 그는 무엇을 경험했을까? 루이스 자신이 특별한 분석을 내놓진 않았지만, 그다음 대목은 사소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웹스네이드 동물원으로 가는 길의 풍경에 주목한다. “그 후에 윕스네이드는 망가져 버렸다. 그때는 머리 위에서 새들이 노래하고 발밑에는 보랏빛 초롱꽃이 만발해 있으며 왈라비들이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왈라비 숲이 마치 돌아온 에덴동산 같았는데 말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예수를 영접하던 순간에 보았던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마치 에덴동산 같았던 (그래서 그에게도 감응을 유발했을?) 그 풍경을 나중에는 볼 수 없어서 실망스러웠다는 것이다. 그의 신앙고백과 미적 경험 사이에 무언가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고 하면 단순한 억측일까? 


기독교적 구원 서사가 가장 잘 나타나는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도 그의 정감적 묘사는 줄곧 등장한다. 페벤시의 아이들이 아슬란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아주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이들은 여러분보다 더 아슬란이 누군지,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있었다. … 다들 아주 색다른 느낌에 사로잡혔다. … 에드먼드는 까닭 모를 공포를 느꼈고, 피터는 갑자기 솟구치는 용기와 모험심을 느꼈다. 수잔은 뭔가 달콤한 향기나 감미로운 선물이 자기 곁으로 확 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루시는 아침에 일어나 그날이 방학 첫날이라거나 여름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느끼는 그런 기분에 휩싸였다.” 또한 아슬란이 나니아를 구하러 오는 과정도 풍경의 변화로 그 의미를 표현한다. “이제 안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늘은 점점 더 파래졌고, 가끔씩 흰 구름이 바쁘게 흘러갔다. 숲속의 넓은 빈터에는 앵초꽃들이 피어 있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에 맺힌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지나가는 그들의 얼굴에 시원하고 달콤한 앵초꽂 향기를 실어다 주었다. 나무들은 이제 힘차게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낙엽송과 자작나무는 초록으로 물들었고, 금련화는 황금빛을 띠어 갔다. 너도밤나무에서도 곧 투명하고 여린 이파리들이 돋아났다. 그들이 그 아래로 걸어가니 햇살도 초록빛으로 바뀌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아슬란이라는 존재를 루이스는 느낌과 분위기를 통해 정감적으로 전달한다. 독자들은 아슬란의 대사나 활동뿐 아니라, 그로부터 발휘되는 아우라를 통해서 영적 감수성을 자극받는다. 이를 위해서 스토리, 비유, 이미지, 감각의 활용은 필수적이며, 그러한 장치들이 루이스의 저술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복음전도의 풍성함과 아름다움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새신자들을 교육시킬 때 처음부터 교리학습을 시키지 않고, 이야기와 그림을 통해 신앙의 덕목을 나누고, 학습자들이 변화된 삶을 시도하고 경험하게 하는 데 집중했다. 초기 교회는 인간의 생각이 변화되어서 행동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먼저 변화된 생각의 삶을 경험하고 체득해야, 그들의 생각도 변화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새신자 교육에 어떠한 교훈을 줄까? 루이스의 복음사역이 상상과 내러티브를 동원한 정감적이었다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주입하고 설명해서 설득하려고 하기보다, 기독교 신앙의 미적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전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계기들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명제화된 복음제시만이 아니라, 숲속에서 창조주의 숨결을 느끼고, 음악과 미술을 통해서 (CCM이나 성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재능을 음미하고, 영화나 문학을 통해서 삶에 대한 통찰을 나누고, 대화와 즐거움의 식탁을 통한 용납과 환대가 복음을 더 깊이 경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고대 아일랜드에서 복음을 전했던 성 패트릭(St. Patrick)은 야만인 취급 받던 켈트인들에게 자연, 이미지, 이야기, 상징, 시, 노래, 동물 친화적인 태도 등을 통해서 기독교의 예술적이고 생태적인 영성을 제공함으로 대대적인 복음화를 이루었다. 오늘날 유럽에서 기독교는 계속해서 쇠퇴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성장하는 대표적인 교파는 정교회와 오순절이라고 한다. 이 두 교단의 차별성은 신앙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상징과 경험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복음전도를 내용과 교리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데 익숙하다. 혹은 관계를 도구화해서 복음을 전하는 프로그램들에 솔깃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전적이고 미래적인 전도의 방식은 복음을 전인적, 다감각적으로 접하게 하는 것이었다. 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전도의 효과적인 도구여서가 아니라, 복음 안에서 변화된 성품은 타인을 향해서 성의와 진정성 있는 태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루이스도 회심 이후 주위 사람들과의 일상적 관계에서 더욱 겸손하고 진실해졌다. 기독교 신앙의 매력을 제시하는 그의 방식은 지성적 변증과 더불어 정감적 접근이라는 두 바퀴로 이루어졌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라고 강력하게 권유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긍정적인 삶과 문학적 상상의 표현을 통해서 복음이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가게 했다. 신앙으로의 귀의가 종교적 클리셰와 관습에 갇히는 삶이 아니라, 예술적이고 생태적인 감수성이 더욱 풍성해지고 진실하고 유연한 인간관계를 누리는 삶으로의 초대라면 그것이야말로 긴 호흡의 견고한 복음전도가 될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매력을 제시하는 C. S. 루이스의 방식은 지성적 변증과 더불어 정감적 접근이라는 두 바퀴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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