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거룩하게 하는 몇 가지 방법
by Reuben Hunter2018-12-17

나는 목회자 컨퍼런스 일정에서 ‘거룩한 교회 개척’이라는 제목을 본 적이 없다. 아마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목회자들의 참여가 적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거룩함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거룩에 대해 논하는 것은 종종 목회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삶 속에서 거룩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살았던 장면들이 슬며시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신 ‘선교적 교회 개척’, ‘문화적 교회 개척’, 혹은 그 외의 듣기 편한 수식어가 붙은 컨퍼런스로 발길을 돌린다.


하지만 성경은 교회의 거룩함에 대해 두드러지게 가르치고 또 강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보다 거룩함에 대해 더 많이 다루어야 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거룩


거룩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 거룩함은 그분의 완벽하고 장엄한 초월성을 보여 주고, 창조자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와의 닿을 수 없는 간극을 나타낸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묘사한다(사 6:3). 하나님의 거룩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답지만, 동시에 우리를 떨게 만드는 두려운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곧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인내하는 그 거룩함을 강조한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7).


거룩은 교회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더불어 성경 속 사도들은 이 새로운 정체성을 온몸으로 품어야 하는 크리스천의 소명 역시 강조한다. 베드로는 말한다.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또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들이 “거룩하게 하시려고 부름 받았다”라고 말했다(엡 1:4).


오직 하나님 안에 머무를 때, 거룩을 추구하는 삶은 기피하고 싶은 행위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변한다. 이전에는 우리를 ‘밀어내던’ 거룩이 이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우리를 ‘끌어당긴다’는 경험을 해야한다. 


한가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거룩한 삶이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세상과 대립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복음을 전파할 때에 시대적 혹은 문화적 상황에 맞추어 포용하거나, 혹은 반대로 경계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이를 ‘상황화’라고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크리스천은 반드시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으로서 이 세상과는 뚜렷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당신의 사역이 아무리 상황화되어 있다 하더라도, 또 당신이 아무리 훌륭한 목회자 또는 지도자라 하더라도, 성경에 충실한 모습으로 사역하고자 한다면 세상과는 불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당신을 고상한 척하는 사람, 고루한 윤리관을 가진 사람, 우둔한(혹은 위험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이를 두려워하지 말라.

 

지역 교회가 거룩함을 추구하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1. 세상과 구별되는 사람을 구분하라


교회 개척 초기 단계에서 세상과 구별되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기성 교회라 할지라도, 이 또한 변함없이 중요하다.


교회를 개척하면, 종종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새로운 교회’를 구경하러 온다. 여기에는 사역에 헌신하려는 준비된 크리스천도 있을 것이고, 의심의 눈초리로 교회 곳곳을 살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끊임없이 계속 교회를 옮겨 다니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며, (바라건대) 비신자도 있을 것이다.


이들 중 누가 그리스도의 자녀라고 공적으로 선언하기를 망설이고 있는가? 혹은 누가 당신과 더불어 교회의 사명을 기꺼이 감당하고자 하는가? 이들 중 누가 인도자들에게 순종하고 마지막 날에 인도자의 청산을 받을 것인가(히 13:17)? 달리 말하면, 회개도 없고 거룩하지도 못한 사람들로부터 구분해야 할 자들이 누구인가?


구별되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일은 누가 그리스도에게 속했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도록 이끈다. 경계를 모호하게 두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룩하지도 않다.


2. 구별되는 예배를 선택하라


교회사 전체를 보면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를 위해 모였고, 그 예배의 정확한 형식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 있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모일 때, 예배하는 행위는 반드시 하나님의 방식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예배를 세상의 문화와 최대한 닮게 하려 애써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제정하신 세례와 성찬을 거행해야 한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예배가 그 어떤 방법으로도 기쁨이 되지 않으니, 예배를 세상적인 모습으로 바꾸어 가면서까지 그들을 만족시키려 하지 말라. 


3. 구별되는 메시지를 선포하라


오늘날의 문화는 낙관주의 못지않게 비관주의에 의해 특징 지어진다. 기술은 발전하고 있고 우리는 점점 더 혁신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도시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은 비관론으로 일관한다.


이때 망설이지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설교한다면, 교회는 모든 형태의 죄와 고통까지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죄와 타인의 정죄는 우리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지만, 복음을 통한 구원의 소망과 값없는 은혜는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참된 희망을 준다.


오늘날의 문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성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무너지는 자신을 경험할 것이다. 마치 좌초하는 배와 같은 자신을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안에서 교회가 복음을 담대히 전할 때에,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성경 앞에 나아오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4. 탁월한 연합을 보이라


복음이 주는 은혜보다 더 강력하게 연합을 이끌어 내는 힘은 없다. 정치적 성향, 타고난 인종, 경제적 소속 집단 등을 기준으로 점점 배타적인 사회가 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교회는 삶에 대한 대안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배경 및 집단에 속한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또 연대를 이루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그런 행보를 전혀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곳 런던에서는 웹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젊은 부부가 타국에서 이민 온 싱글맘의 창업을 돕기 위해 웹사이트 개설을 지원한 예가 있다. 이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물론이다. 그 젊은 부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도운 싱글맘을 그들이 참여하는 교회에 초대하여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왔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연합을 추구하는 삶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이는 많은 기도와 겸손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분된 백성으로서 우리에게 연합은 성취할 수 있는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 흠 없이 서게 될 그날을 바라보며, 거룩함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교회를 세우자. 그리고 그 거룩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나아가자.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4 Ways to Become Holy—as a Church

번역: 하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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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Reuben Hunter

루빈 헌터는 런던에 위치한 Trinity West Church의 선임 목사이다.